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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하룻밤의 역사적인 소동들
    하룻밤의 역사적인 소동들

    아무리 세상이 어지러워도 까맣게 잠든 밤. 아침에 일어나니 그 나물에 그 밥의 인물들이 또 대거 등장하는 가운데 큰 자막을 쾅쾅 때리며 초유의 뉴스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김문수 후보 자격 불법 박탈, 야밤의 정치 쿠데타” “한덕수, 국민의힘 입당, 대선 후보로 등록” “부당한 후보 교체, 법적 정치적 조치 즉시 착수” “반민주적 일 벌어져, 어젯밤 당 괴물로 변해” “권성동·권영세, 보수 정당사 최대의 바보들”.간밤의 난장판은 굵은 고딕체의 핏빛 저 글씨로 정리된다. 결국 “막장극 넘어 공포 영화” 같은 소동도 일종의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이런 무작한 사태만 있는 건 아니었다. 용암 아래 찬 지하수가 흐르듯 뉴스들이 자막으로 화면 하단에 흘렀다. 그중의 하나인 “왜구 약탈 고려 불상 오늘 반환”은 이런 사연이다.금동관음보살좌상은 1330년 제작된 불상이다. 충남 서산의 부석사(浮石寺)에 봉안되었다가 1378년쯤 왜구에 약탈당했다. 이후 대마도 관음사(...

    2025.05.15 20:16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바보들의 행진, 바보의 역사
    바보들의 행진, 바보의 역사

    난득호도(難得糊塗)란 똑똑한 척하기보다는 바보처럼 보이기가 더 어렵다는 뜻이다. 난세에 대처하는 중국식 처세술의 고급 표현이라고 한다. 청나라 중기의 문인이자 화가인 정판교(鄭板橋·1693~1765)의 말이다.물론 바보들은 많다. 나는 누구인가 질문 한번 안 해본 자, 자기가 실은 바보인 줄을 모르는 바보야말로 진짜 바보인 줄을 바보들만 모를 뿐이다. 소년 급제하여 법대 위에 군림하다가 법에 취해 땅 디딜 줄 모르는 자들, 걸어다니는 헌법기관임을 자부하면서 거들먹거리기가 취미이거나 특기인 자들도 그 축에 포함될 것이다. 공당의 후보를 뽑아놓고 스스로 내팽개치며 그 당을 주물럭거리는 쌍바보들도 여기에 추가한다. 바보들은 모두 텔레비전에 우글거린다고 누가 일갈했다는데, 요즘 방송과 신문에 그들의 행각이 고스란히 중계되고 길이길이 저장된다. 바보들의 행진, 지켜보는 씁쓸함은 누구의 몫인가.한편 바보가 바보라서 바보이겠는가. 바보들이 수두룩하지만 이런 바보도 있...

    2025.05.08 20:50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사월 마지막의 어떤 궁리
    사월 마지막의 어떤 궁리

    그대, 이 세계를 단박에 표현해보라 한다면? 심호흡하고 한 획부터 그어야 하지 않을까. 짐승의 얼굴을 다 그릴 수 없고, 나무의 뿌리를 다 들출 수 없다. 해와 달은 참으로 착한 거리만큼 저만치 떨어져 있다. 먼저 옆으로 한 일(一)자 하나 그윽하게 긋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아무 일 없는 듯 그냥 지나갈 리 없는 사월이다. 봄 향기 속의 따끔함. 훈훈한 봄바람 속에 꽃샘추위가 발톱을 숨기고 있다. 어느 건물 엘리베이터에는 4층이 없고 F층이다. 아라비아숫자 4의 발음이 ‘죽을 사’와 같아서 그걸 피하려는 방법이다. 죽음이 그리도 무서운가 보다.죽음을 빼놓고 삶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죽음이 없는데도 된장국이 맛이 있을까. 저 냉철한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이란 자신의 ‘있음’에 대해 유일하게 질문하는 존재라고 하면서 시간의 지름길로 가서 본인의 죽음을 미리 목격할 것을 권한다. 죽음이라는 자명한 사실과 사태를 파악해야 자신의 유한성...

    2025.05.01 20:23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하루가 마무리되는 저녁 6시경, 붉은 노을에 물든 장엄한 일몰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善終) 소식이 속보로 떴다. 입적, 소천, 환원 등 종교에 따라 죽음을 담아내는 단어가 다 다르지만 천주교의 선종은 주체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는 말이다. 이 세상으로 나오는 것, 사람의 소관이 아니라 해도, 그 생을 살아내고 선생복종(善生福終)의 마무리는 본인의 의지대로라는 뜻이 역력하다.선종, 거룩한 마침. 교황은 “자기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마지막을 더욱 열심히 산 것으로 보인다”고 교황청은 밝혔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고, 삶에도 영원한 수직은 없다. 교황의 부음에 옛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에 맞춰 교회의 인가를 받아 책 하나를 기획, 출간했었다. <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바티칸 너머 세계로 전해지는 소탈한 모습과 인상적인 말씀을 편집한 사진집이었다. (저 오래된 책을 이 지면에 언급함을...

    2025.04.24 20:31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을사 봄 풍경 몇 점
    을사 봄 풍경 몇 점

    차창이 캔버스처럼 풍경을 시시각각 갈아 끼운다. 희끗희끗 잔설과 파릇한 새싹들. 멀리 뭉클뭉클 굴뚝을 빠져나가는 연기. 브레히트의 짧은 시 ‘연기’가 떠오른다.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연기는 세상에서 나가는 법을 감쪽같이 알려주고, 봄꽃은 세상으로 나오는 방법을 아름답게 가르쳐준다.겨우내 지면에 착 엎드려 고난의 시절을 이겨낸 달맞이꽃. 훈훈한 기운에 정신을 차리며 어디까지 대궁을 들어 올릴까, 자신이 처한 주위를 살피며 떠들썩하게 일어난다.도심의 은행나무는 가지가 뭉툭하다. 물푸레나무는 겨울눈이 완강하다.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기운을 맵시 있게 감아올린다. 금슬 이 좋은 부부처럼 대칭한 잎이 밤마다 포개지는 자귀나무는 끝이 여리고 가늘가늘하다. 솔기 없는 바느질 자죽처럼 하늘과 희미하게 섞인다.공중을 지휘하는 새, 표면장력이 최대치인 ...

    2025.04.17 20:12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11시22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11시22분

    2000년 6월13일 오전 11시. 공항 활주로에서 기자가 소식을 전했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평양입니다.” 이윽고 비행기 문이 열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냈다. 김 대통령은 곧바로 발을 떼지 않았다. 트랩에 선 채 한동안 북녘의 하늘 한구석을 그윽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밀한 고독을 깬 뒤 천천히 내려와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하고 포옹했다.2007년 9월의 어느 날. 선친이 이승을 떠났다. 향년 81세. 유품을 정리하다가 작은 버릇 하나를 알게 되었다. 많은 사진 속의 아버지는 카메라가 아니라 11시 방향의 공중을 늘 바라보고 있었다. 마흔의 끝자락에서 맞닥뜨린 사고의 후유증을 저런 각도로 감당한 것일까. 지상이 아니라 하늘 한구석에 마음의 거처를 미리 마련해놓은 것일까. 부친의 포즈를 그렇게 뒤늦게 이해했다.2009년 8월18일. 김대중 대통령의 영결식 날, 황지우 시인이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멈추시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발표했다....

    2025.04.10 21:32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악의 평범성
    악의 평범성

    황무지보다 잔인한 달, 4월에 접어들었다. 어떤 일마다 그 어떤 놈이 끼어드는 날들의 연속이다. 발목에 겨우 찰랑대는 내 철학의 수준. 그걸 좀 높이려 하이데거 강의 듣다가 오래전의 영화 한 편으로 연결되었다. <한나 아렌트>, 독일계 유대인 정치철학자 아렌트(1906~1975)의 삶을 다룬 영화다. 뉴요커지의 요청으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하고 리포트를 작성한 아렌트는 유대 지도자들의 책임도 정확하게 지적한 탓에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중단하라는 압력 속에 진행된 아렌트의 꿋꿋한 강의. 어라, 오늘 우리 시대가 새겨들을 말이 아닌가. 조금 길게 중계해본다.“법정에 세운 아이히만의 범죄는 법률책에 나와 있지도 않았고 뉘른베르크 재판 이전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범죄였어요. 그래도 법정은 아이히만의 행위를 규정해야 했어요. 재판의 체계도 없었고 역사와 이즘, 반유대주의도 없이 한 인물뿐이었어요. (…) 자신이 주도한 건 아무것도 없고 선이든 악이...

    2025.04.03 21:04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독도에 관한 명상
    독도에 관한 명상

    땅에 대한 오해가 있다. 우리는 북반구를 지구의 지붕처럼 여기고 땅도 북녘에서 아래로 흘러내렸다고 쉽게 생각하는 것. 이육사의 시 ‘광야’의 한 구절도 이런 상상에 기댄 게 아닐까.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유치환이 울릉도를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아주 오래전 나는 팔당을 출발해 자전거로 부산까지 나섰다. 떠나기 전, 친구들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서울서 부산까지는 도르래로 걸면 북한산에서 금정산까지 그냥 주르륵 내려가듯, 전부 내리막길이야. 뭐 그리 힘들겠나?” 그러나 실제로 달려보니 그런 내리막은 없었다. 지구는 둥글고, 따라서 모든 곳이 중심이 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무지몽매함에서 비롯된 착각이었다. 해발(海拔)이란 말처럼, 땅은 바다에서 바로 올라온다.최근 울릉도보다 더 바깥의 섬, 독도를 두...

    2025.03.27 20:57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우두머리에 대하여
    우두머리에 대하여

    말석에 앉아 노자를 읽는다. 노자만큼 도(道)를 강조한 이도 드물다. 흔히 수양이나 처세술로 읽기도 하지만, 내가 듣는 강의에서는 통치술로서의 해석에 방점을 찍는다. 어쨌든 노자 하면 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논어의 첫 글자가 학(學)이라면 노자의 그것은 도다.둥그렇게 휘어진 세상의 골목과 길. 갈비뼈 같은 저 길이 없다면 서로 통할 수 없고, 통하지 못하면 섬이다. 가슴 안의 꿈도 부풀어 오르지 못하고 세상의 이상도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골방 문화인 게임과 유튜브가 설친다 해도 밀실이 아니라 광장에서 일은 이루어진다. 이건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자명한 이치이다. 이 우주가 질서 있게 요약된 사회, 그것이 집합적으로 구현된 몸도 마찬가지다. 목숨의 바탕인 몸을 다루는 신비의 의학서인 <동의보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것이라고 한다. 통(通)하면 살고, 불통(不通)하면 죽는다.자전에 따르면, ‘道’는 (쉬엄쉬엄 갈 착)과 首(머리 수)가...

    2025.03.20 21:46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튀긴 면 하나에 수프 한 봉지. 에걔, 고작 이거냐 싶어도 끓는 물만 부으면 한 끼로 훌륭하다. 텔레비전이 먹통이 되고, 드디어 기사가 오셨다. 대뜸 건장한 기기를 자빠뜨리고, 나사 풀자, 드디어 속이 홀랑 드러났다. 이게 다야? 싸늘한 기판 위에 레고 같은 반도체, 얼기설기 전선들. 거실을 점령한 기기의 실상이다. 같잖게 볼 일은 아니다. 거대하고 복잡한 걸 작고 콤팩트하게 만들려는 게 현대의 문화다. 슥슥삭삭 점검한 뒤 놀랄 틈도 없이 전기를 넣자, 요술처럼 불이 들어오고 미국 대통령이 툭 튀어나왔다.트럼프가 채신머리없이 일론 머스크의 발바닥에 키스하는 사진이 떴다. 교묘하게 둘 다 왼발바닥이다. 물론 가짜 사진이다. 개인적인 역량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머스크는 너무 설친다. 굉장한 머리와 개척자 정신으로 시대의 길목을 지키고 앉아 대박을 노린다. 사업이든 행정이든, 예술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늉이라도 내야 하는데 막무가내의 효율성만을 따지려 든다. 그의 뉴럴링크는 사람...

    2025.03.1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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