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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병어의 얼굴
    병어의 얼굴

    생선에 밝은 친구가 강화도 대명항에서 산 회와 병어찜을 준비했다며 식구들을 모두 초대했다. 포도주로 입가심을 하고 찜보다는 회에 먼저 젓가락이 갔다. 병어를 아시는가. 나는 그간 접시에 누운 병어는 여러 번 보았지만 바다의 병어는 본 적이 없다.위키디피아에 따르면 병어는 다음과 같은 생물이다. “병어(Pampus argenteus)는 병어과의 물고기이다. 몸 길이 60㎝가량으로 둥그스름한 마름모꼴의 형태를 갖는다. 등쪽에 푸른빛을 띤 은백색에 온몸에 벗겨지기 쉬운 잔비늘이 있다. 주둥이는 뭉툭하고 양턱에 아주 작은 이가 있으며, 머리 바로 뒷부분에 물결무늬가 있다. 병어는 대륙붕의 수심 100m 이내에 많다. 산란기는 4~8월이며, 연안의 수심 10~20m인 모래 바닥에 알을 낳는다. 갑각류·다모류 등을 먹고 살며, 큰 것은 길이가 60㎝ 정도이다. 한국·일본·중국·인도양 등지에 분포한다.”공기보다 진한 밀도와 수압 때문일까. 고래를 비롯한 모든 물고기는 잘록한...

    2023.08.17 20:12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이상기후 시대의 불시화(不時花)
    이상기후 시대의 불시화(不時花)

    어느 때부턴가 산에서 뜻밖의 꽃들과 자주 만난다. 초가을에 벚꽃, 늦겨울에 진달래. 육상선수들이 경기장에서 계주하듯, 꽃들도 자연의 운동장에서 차례를 지키며 개화하는데 이를 이탈한 것이다. 무리에서 낙오한 오리처럼 어리둥절 피어 있는 꽃을 두고 때를 맞추지 못했다는 뜻으로 불시화(不時花)라고 명명한다. 꽃들의 이어달리기에서 순서가 점점 헝클어지고, 자연의 계단이 붕괴되었다는 한 전조일까.“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광야’, 이육사)”처럼 한반도는 북방에서 남으로 내리닫다가 “금수로 구비쳐 내리던/ 장백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울릉도’, 유치환)”로 울릉도를 점찍은 뒤 남해의 땅끝에서 멈추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위도가 높은 곳의 산일수록 높다고 여긴다. 하지만 해발을 꼽아보면 바다 건너 한라가 첫째이고 지리와 설악의 순이다. 생명은 바다에서 오고, 산은 바다에서 융기했다. 해발이란 말, 산...

    2023.08.10 20:02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아니 불(不)’의 명상
    ‘아니 불(不)’의 명상

    어둑해진 퇴근길, 여의도 부근에서 막혔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무심코 툭툭 던지는 잔잔한 가사로 오래전의 사연을 마치 어제 겪은 일인 듯 속삭이는 김광석은 왜 이렇게 내 마음 글썽이게 하는가.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속에 빛나는 별 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에 이르러 노래는 높고 길게 감정을 끌어올린다. 텅 빈 방에서 빛나는 별로 전개되는 저 급소를 창문을 열고 따라 부르다가 알았다. 밤하늘을 상대하기에 나는 작고 내 입은 너무 좁구나.매미 울음을 바탕으로 여름 한철 한문하고 지내는 것도 피서법의 하나다. 그렇다고 그리 거창한 공부는 아니고 고전번역원의 경서성독을 따라 읽는 정도이다. 초심자이다 보니 좀 사소하고 엉뚱한 의문도 든다. 한문에는 부정이나 금지를 나타내는 글자들이 빈출한다. 莫, 亡, 無, 毋, 勿, 未, 不, 否, 弗, 非. 왜 이 음가는 모두 미음이거나 비읍일까....

    2023.08.03 20:14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거미의 덫, 변호사의 말, 사람의 길
    거미의 덫, 변호사의 말, 사람의 길

    공부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있었다. 공부 안 하는 아이들에게 공부 잘했던 일타강사는 이렇게 일갈한다. “너희가 공부를 못하면 나중에 공부만 잘한 놈들이 만든 룰대로 살아야 해.” 여기서 룰은 법이고, 그 적용 원리는 기술이다. 아이들에게 공부시키려는 충격요법이긴 했으나, 생각할수록 기분이 좀 더러웠다. 인간의 길이 아니다.아주 오래전 법조 카르텔의 문제점을 파헤친 한 주간지의 특집 기사. 그 시시콜콜함이야 내 알 바 아니지만 전관예우의 관행을 이런 비유로 정리했다.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퇴직 후, 바로 그 교문 앞에 문구점을 차려서 학생들의 코 묻은 돈을 노리는 것과 뭐가 다른가. 실제 학교 앞에 교무실과 연결된 가게야 없겠지만 법원 근처를 뒤덮는 간판들을 보자면 딱 들어맞겠다 싶기도 했다. 사람의 길이 결코 아니다.언론에서 자주 다뤄주는 검찰 고위직의 옷 벗는 소회는 동양고전의 그럴듯한 글귀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법률 사무실의 벽에도 ‘이따만한’ 사자성어가...

    2023.07.28 03:00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각자도생 시대에 ‘백제’를 생각한다
    각자도생 시대에 ‘백제’를 생각한다

    처음 간 건 아니었지만 나이가 알려주는 게 있었다. 도심 한복판의 폐사지인 정림사지 오층 석탑. 때를 잘 맞추어 마침 하루가 저무는 무렵이었다. 바람도 어디로 자러 가겠다는 듯 한결 순해지고 석양의 탑 그림자가 길게 내 발등을 눌렀다. 문득 부여의 지명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도울 扶, 남을 餘. 이런 넉넉한 뜻으로 이름을 삼은 이들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시간을 살아낸 분들이었을까.내처 들른 박물관에서 만난 뜻밖의 문장에 넋을 온전히 빼앗겼다. 왕흥사지 청동제사리합에 새긴 6행 29자의 한자. “丁酉年二月, 十五日百濟, 王昌爲亡王, 子立刹本舍, 利二枚葬時, 神化爲三.” 붓글씨와는 또 다른 맛의 그 고졸함과 그 검박함! 앞에서 백제를 안 좋아할 도리가 없었다. 충청 땅을 무작정 밟으며 그렇게 백제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그 이후 백제는 늘그막의 새로운 공부 주제로 추가되었다. 낯선 곳에서 기이한 풍경에 몸 섞으며 어리둥절한 느낌을 갖는다는 것. 세모의...

    2023.07.21 03:00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자동차, 슬픈 동물
    자동차, 슬픈 동물

    자가용은 움직이는 부동산이다. 두어 평, 공중에 마련한 땅뙈기다. 이것처럼 인정머리 없는 물건이 또 있을까. 문을 탁, 닫자마자, 뺑소니치듯 휙 자동으로 달아나는 차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차 시동 걸 때 반드시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키를 돌려야 한다. 혹시 모를 급발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일단 시동을 걸고 나면 핸들과 함께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끊임없이 번갈아 조작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주 임무인 자동차. 그렇다고 전진만이 능사는 아니다. 어려운 건 외려 후진이다. 그냥 앞으로 가는 일이야 누구에게나 쉬운 일. 가속보다는 감속을, 다시 말해 욕망을 능숙히 통제하게 되었을 때 운전자는 비로소 초보 딱지를 뗄 수가 있다.운전대를 잡은 지가 30여년이 되었다. 차 안에 머문 시간을 이어붙이면 우락부락한 사내 하나가 뛰어나올까. 예의 순서대로 시동을 걸다가 자동차에 대해 새롭게 안 사실이 있다. 주행 중에 브레이크보다는 액셀러레이터를 많...

    2023.07.14 03:00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대화에 대하여
    대화에 대하여

    내가 아는 대화는 셋이다. 우선 지하철 3호선 끝에 있는 ‘大化’. 기차는 혼자 도착하지 않는다. 덜컹거리는 굉음과 한 시대를 몰고 오기도 한다. 오늘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그 기운을 느끼고자 한다. 오금에서 출발한 전동차가 종점인 대화역으로 진입할 때 나는 앉아 있지 않는다. 점심 무렵이라 거의 텅 빈 객실에서 일어나 어느 땐 말안장에 탄 기분, 어느 땐 괴나리봇짐 메고 방울소리 울리며 당나귀 끌고 가는 느낌을 혼자 만끽하는 것.역에서 지상으로 올라 버스정류장에 가면 구두수선방이 있다. 길바닥으로 난 작은 쪽문 입구에 빨간 글씨의 팻말이 성실하게 놓여 있다. ‘금이빨 삽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십여분 동안, 구두와 이빨의 만남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는 ‘大化’답게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겠다. 버스로 환승하여 대화를 빠져나갈 때 또 다른 대화가 떠오른다.그것은 평창에 있는 大和. 꽃산행에 빠져 강원도를 이리저리 누빌 때 이정표 하나가 번쩍 눈에 뜨였다...

    2023.07.07 03:00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부산에 가면
    부산에 가면

    여태껏 살면서 머리를 몇 번 깎았을까. 일일이 기억하고 헤아릴 순 없다. 대강 어림해 보니 군대, 장발, 학창, 까까머리 시절이 줄줄이 사탕처럼 떠올랐다. 그리 만만한 계산이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떠난 이후, 부산을 여러 번 가 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그 일에 매달리느라 정작 부산은 보지 못했다. 부산에 살 때는 입시에 시달리느라 그랬고 부산을 떠나서는 아예 부산을 볼 수가 없었다. 나의 사랑, 부산이라고 하려면 예전엔 낯이 몹시 간지러웠지만 이젠 들키지 않고 그리 중얼거리고 싶어진다. 이번엔 부산만 보자, 하고 부산으로 갔다. 그냥 가고자 했지만 마냥 갈 수는 없었다. 같이 간 일행 둘은 부산이 사실상 초행이라서 안내는 내 몫이었다. 널리 알려진 관광 코스를 잡았다. 첫날 오후에 도착해 어영부영 보내고 이튿날은 태종대, 자갈치시장, 국제시장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지막 날 해운대와 동백섬을 둘러보고 나니 오후 3시. 기차 시간이 많...

    2023.06.30 03:00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남매탑서 이(利)와 인(仁)을 생각하다
    남매탑서 이(利)와 인(仁)을 생각하다

    대학 시절 만나, 지금도 만나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들이 있다. 어쩌다 보니 각 지역을 대표하듯 강원, 충청, 전라, 경상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가끔 산행에 나서는데 이번 주최는 충청 차례였다. 갑사와 동학사를 잇는 길. 차편을 고려해서 둘로 나뉘어 서로 반대편에서 출발해서 남매탑 근처에서 만나 열쇠를 건네주기로 했다. 충청과 경상은 갑사에 전라와 강원을 내려주고 동학사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이 지역의 지리를 경상은 잘 모른다. 그저 길이 가라는 대로 충청의 운전 솜씨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나아가는 중이다. 조수석에서 충청도의 순한 산천경개를 마음껏 만끽하는데 도로교통표지판의 지명 하나로 점점 마음이 기울어졌다.그저 발췌독이나 하다가 작정하고 <논어>를 붙들었을 때 지형도를 그릴 겸 학이부터 요왈까지의 편명을 외우려고 자주 썼다. 입으로 중얼거리면 지상에 없던 스무 곳의 마을을 혀 위에 새로 짓는 기분이었다. 그중에서 네 번째인 이인(里仁)이 가장 ...

    2023.06.23 03:00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치통과 졸음
    치통과 졸음

    환자분, 졸지 마세요! 다급하게 소리치는 건 치과의사였고. 그 환자는 바로 나였다. 점심 후 임플란트 수술을 받는데 수마가 들이닥친 것이다. 아무리 마취를 해도 그렇지 드릴로 잇몸을 뚫고, 피가 나고, 그야말로 입안은 난장판일 텐데, 잠이 올까. 하지만 나는 깜빡 졸았다.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수술 도중 태연하게 잤다.누가 더 힘이 셀까. 치통과 졸음. 진료할 때 자는 사람이 더러 있나요? 멋쩍은 물음에 웃으며 말했다. 많이들 주무셔요. 그러더니 고급한 정보를 추가했다. 실은 입 벌리고 자는 분들이 치료 중에도 더 잘 주무시는 것 같아요. 우리는 자느라고 바빠서 본인의 잠버릇을 잘 모르지만 잘 때 대부분 입을 벌리고 잔다. 그 몽중에도 어디를 다녀오는지 입술을 씰룩거리도 한다. 너무 열심히 자기 때문에 그건 알 수 없는 영역의 일. 간호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정작 궁금한 건 이것이다. 왜 잘 때 대부분 입이 벌어질까?미궁이라고도 하고 미로라고도 한다. 이 길에는...

    2023.06.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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