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 사물은 그 모양대로의 웅덩이다. 풍경의 요소들은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고유한 구멍이었다. 햇빛이 그 웅덩이를 차곡차곡 채워야 사물은 그 사물로 드러난다. 나무 한 그루에는 그 부피만큼의 햇빛이 정확하게 든다. 빠르고 일정한 속도의 빛은 이 웅덩이를 동시에 가득 채운 뒤 다음 국면으로 나아간다. 자연이 명확한 둘레로 빈틈없이 구성되는 건 그 덕분이다. 산은 산, 물은 물이다라는 말도 이런 사실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이제는 옛날의 일, 겨울 한밤중 취객이 된 적이 있었다. 벗들과 술자리를 파하고 귀가할 때, 하루의 고요를 다독이며 가로수와 가로등이 나란히 서 있다. 그럴 때 고개 숙인 가로등을 만지면 공기보다 더 찬 냉기가 손바닥을 찌르고 기둥을 두드리면 텅텅 빈 소리가 울려 나왔다. 하지만 가로수는 다르다. 그 싸늘한 추위에도 한낮의 햇빛을 저장했다가 취약한 시간에 미량의 온기를 전해주었다.그때 그 촉감이 고맙고 좋아서 가로수를...
2025.10.02 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