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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시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논어는 시가 있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시(詩)는 아니고 시(時)다. 둥근 지구를 딛고 휘어진 공중에 기대 사는 동안, 시간을 벗어날 수 있을까. 시(詩)도 시(時)다. 이 말은 한 구절 모자라서 단시(短詩)도 아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공자는 말(言)을 많이 다루었다. 시도 중요하게 여겼다. 아들에게 말한다.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단다(不學詩, 無以言).”한자는 하나의 품사에 갇히지 않는다. 오늘에서 내일로 가는 시공의 흐름을 생각한다면 명사도 실은 늙어가고 낡아가는 동사일 수밖에 없다. 시(時)는 시(詩)다. 모든 때는 반지 같은 한 편의 시를 남긴다. 굽이굽이 삶의 국면과 시는 도시락처럼 궁합을 꽉 맞춘다.서른 무렵, 혼인하고 아이 둘이 차례로 태어났을 때의 시. “그대가 결혼을 하면 여인은 외부로 열린 그대의 창, (…) 그 여인에게서 아이를 얻으면 그대의 창은 하나둘 늘어난다.”(이성복) 아, 시간이 흘러 어머니 돌아...

    2025.06.26 21:40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이 나라엔 왕이 필요치 않다
    이 나라엔 왕이 필요치 않다

    ‘킹받다’는 말은 왕과는 아무 상관 없는 좀 희한한 조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던 영국도 이젠 제 섬으로 돌아갔고, 일본이 ‘공허한 중심’(롤랑 바르트)인 천황제를 아직 고수하지만 왕들은 현실 권력을 모두 궁으로 거둬들였다. 이런 차에 대체 무슨 영문인가. 민주주의의 표본인 미국에서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구호를 거리의 시위대가 외친다고 한다.우리 대한국민은 전근대적인 왕정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나라 이름을 받들고, ‘민주공화제’임을 합의해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로 역사의 물줄기를 틀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했다. 이로써 역사는 일통하게 이어지고, 14명의 대통령이 배출됐다.그랬던 우리나라에서 20대 대선 때 손바닥에 ‘왕(王)’자를 쓴 이가 뽑히더니, 실제로 그는 킹처럼 행동하더니, 그 왕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제 발등만 찧고...

    2025.06.19 21:00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보길도의 덩굴식물 앞에서
    보길도의 덩굴식물 앞에서

    10여년 만의 해남 땅끝마을. 따지고 보면 모든 지면은 다 땅의 끝이다. 미끄러운 그 위에서 아슬아슬 살아가는 중이다. 다리가 많다고 안전할까. 그건 또한 아니라서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만 나고, 아차 하다가 넘어지는 빌미가 된다. 외려 지상에서는 다리가 적을수록 더 튼튼하지 않은가. 다리가 하나뿐인 나무들을 보라. 제자리를 찾았고 뿌리를 얻었다. 그 어떤 방황이나 주저도 없이 근원을 향하여 공중을 걸어가는 자세.두 개의 떡잎 같은 발바닥에 의지해 겨우 사는 것도 대단한 존재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최근의 사정은 더욱 그러하였다. 지난겨울을 이기고 여기까지 오도록 우리 공동체를 위한 정성은 실로 각별한 것이었다. 어떻게 일어서고,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가꿀 공화국인가.이젠 불각시에 쓰러질 수도 있을 나이. 이 토말(土末)에 또 설 날이 있을까. 늦은 밤 투숙한 땅끝마을 모텔. 밤의 끝, 생의 한 둘레를 만진 듯 꿈에서 깨어나 첫 배 타러...

    2025.06.12 20:29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대통령의 자리
    대통령의 자리

    모서리 앞에 앉지 마라. 밥상머리에서 자주 들었던 말씀이다. 모난 모서리가 가슴을 찌르는 건 아니라 해도 거룩한 식사 자리에서 왠지 날카로움은 피하라는 뜻이겠다. 그래서 그 못살던 시절에 식구들은 모서리가 없는 둥근 두리반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던가 보다.점, 선, 면은 각각 0, 1, 2차원이다. 다시 하나를 더하면 3차원의 공간이고, 시간을 더하면 4차원의 시공간이다. 저 눈앞의 경계가 빛과 시간으로 가득 찬 균질한 공간은 아니다. 어제와 내일 사이에 끼인 오늘이란 시공간의 한 단면이다. 아무리 팔 저어 돌아다닌다 해도 어쩐지 납작한 삶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건 이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이렇듯 복잡한 공간에서 한 사물의 위치를 특정하는 데 필요한 개수가 차원이다.오늘은 좀 특별한 날, 이윽고 긴 하루가 또 가고 밤 8시가 되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고 주권자들의 긴장 속에 출구조사가 발표됐다. 계엄 진압과 내란 종식의 의미를 받드는 시대정신. 선명한...

    2025.06.05 20:56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부자로 죽지 않겠다는 말
    부자로 죽지 않겠다는 말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천하를 주유하듯, 우리는 저마다 시간의 돗자리를 타고 세상을 떠돈다. 구름이 저 위에 보이는 동안이 삶이요, 초승달이 저 아래에 보인다면 그땐 죽음이겠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그 돗자리에서 이탈하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다.산수와 수학만큼이나 한자와 한문은 다른 세계다. 나무의 잎과 줄기만 보다가 지하의 뿌리가 궁금해지듯 조금 깊게 공부하려고 두리번거리다가 고전번역연구원의 연수 과정에 안 될 줄 알면서 용감하게 응시했다. 시험 과목인 <논어집주> <맹자집주>를 어설피 익히고 면접까지 보는데, 이런 질문. 나이가 많으신 분이 굳이, 흐린 답변 끝에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물론 나도 안다. 시력보다도 실력 때문이란 것을. 이미 때를 놓친 욕심인가. 여긴 내 자리가 아닌가. 설령 내년에 문해력을 좀 높인다 한들 또 늘어난 나이는? 깨끗이 납득하고 마음을 정리하는데 다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머지않아...

    2025.05.29 20:59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오월의 달력
    오월의 달력

    벽에 걸린 달력만큼 중용(中庸)의 도가 실천되는 곳도 드물다. 네모난 칸마다 수인처럼 들어 있는 숫자. 비좁은 칸칸마다 똑같은 복장으로 앉아 그날 그때의 천하만사를 공평하게 지휘하는 아라비아 사신들. ‘중용의 도’란 애매한 중간을 취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중(中)과 용(庸·적중한 상태)은, 늘 떳떳하게 유지함이다. 배고플 때 밥 먹고, 머리 허전할 때 공부하는 것처럼. 살아 있는 동안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 죽음 이후에라야 이를 벗어날 수 있다니 그 얼마나 멀고 고된 길이겠는가.절기상 청명으로 시작한 사월. 4·3, 4·16, 4·19 등등 슬픔의 물결이 잇달아 도래했다. 짐짓 눈물이 필요한 나날들. 비는 하늘에서 오는 물질이다. 다행이다. 공중도 도왔다. 강원에는 늦눈이 벼락처럼 내리기도 했다. 을사 추위는 아직도 미련이 많은가 보다. 이윽고 입하, 드디어 여름이 제대로 섰는가. 5·1, 5·5, 5·8, 5·11, 5·15, 5·18 그리고 5·2...

    2025.05.22 20:52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하룻밤의 역사적인 소동들
    하룻밤의 역사적인 소동들

    아무리 세상이 어지러워도 까맣게 잠든 밤. 아침에 일어나니 그 나물에 그 밥의 인물들이 또 대거 등장하는 가운데 큰 자막을 쾅쾅 때리며 초유의 뉴스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김문수 후보 자격 불법 박탈, 야밤의 정치 쿠데타” “한덕수, 국민의힘 입당, 대선 후보로 등록” “부당한 후보 교체, 법적 정치적 조치 즉시 착수” “반민주적 일 벌어져, 어젯밤 당 괴물로 변해” “권성동·권영세, 보수 정당사 최대의 바보들”.간밤의 난장판은 굵은 고딕체의 핏빛 저 글씨로 정리된다. 결국 “막장극 넘어 공포 영화” 같은 소동도 일종의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이런 무작한 사태만 있는 건 아니었다. 용암 아래 찬 지하수가 흐르듯 뉴스들이 자막으로 화면 하단에 흘렀다. 그중의 하나인 “왜구 약탈 고려 불상 오늘 반환”은 이런 사연이다.금동관음보살좌상은 1330년 제작된 불상이다. 충남 서산의 부석사(浮石寺)에 봉안되었다가 1378년쯤 왜구에 약탈당했다. 이후 대마도 관음사(...

    2025.05.15 20:16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바보들의 행진, 바보의 역사
    바보들의 행진, 바보의 역사

    난득호도(難得糊塗)란 똑똑한 척하기보다는 바보처럼 보이기가 더 어렵다는 뜻이다. 난세에 대처하는 중국식 처세술의 고급 표현이라고 한다. 청나라 중기의 문인이자 화가인 정판교(鄭板橋·1693~1765)의 말이다.물론 바보들은 많다. 나는 누구인가 질문 한번 안 해본 자, 자기가 실은 바보인 줄을 모르는 바보야말로 진짜 바보인 줄을 바보들만 모를 뿐이다. 소년 급제하여 법대 위에 군림하다가 법에 취해 땅 디딜 줄 모르는 자들, 걸어다니는 헌법기관임을 자부하면서 거들먹거리기가 취미이거나 특기인 자들도 그 축에 포함될 것이다. 공당의 후보를 뽑아놓고 스스로 내팽개치며 그 당을 주물럭거리는 쌍바보들도 여기에 추가한다. 바보들은 모두 텔레비전에 우글거린다고 누가 일갈했다는데, 요즘 방송과 신문에 그들의 행각이 고스란히 중계되고 길이길이 저장된다. 바보들의 행진, 지켜보는 씁쓸함은 누구의 몫인가.한편 바보가 바보라서 바보이겠는가. 바보들이 수두룩하지만 이런 바보도 있...

    2025.05.08 20:50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사월 마지막의 어떤 궁리
    사월 마지막의 어떤 궁리

    그대, 이 세계를 단박에 표현해보라 한다면? 심호흡하고 한 획부터 그어야 하지 않을까. 짐승의 얼굴을 다 그릴 수 없고, 나무의 뿌리를 다 들출 수 없다. 해와 달은 참으로 착한 거리만큼 저만치 떨어져 있다. 먼저 옆으로 한 일(一)자 하나 그윽하게 긋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아무 일 없는 듯 그냥 지나갈 리 없는 사월이다. 봄 향기 속의 따끔함. 훈훈한 봄바람 속에 꽃샘추위가 발톱을 숨기고 있다. 어느 건물 엘리베이터에는 4층이 없고 F층이다. 아라비아숫자 4의 발음이 ‘죽을 사’와 같아서 그걸 피하려는 방법이다. 죽음이 그리도 무서운가 보다.죽음을 빼놓고 삶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죽음이 없는데도 된장국이 맛이 있을까. 저 냉철한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이란 자신의 ‘있음’에 대해 유일하게 질문하는 존재라고 하면서 시간의 지름길로 가서 본인의 죽음을 미리 목격할 것을 권한다. 죽음이라는 자명한 사실과 사태를 파악해야 자신의 유한성...

    2025.05.01 20:23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하루가 마무리되는 저녁 6시경, 붉은 노을에 물든 장엄한 일몰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善終) 소식이 속보로 떴다. 입적, 소천, 환원 등 종교에 따라 죽음을 담아내는 단어가 다 다르지만 천주교의 선종은 주체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는 말이다. 이 세상으로 나오는 것, 사람의 소관이 아니라 해도, 그 생을 살아내고 선생복종(善生福終)의 마무리는 본인의 의지대로라는 뜻이 역력하다.선종, 거룩한 마침. 교황은 “자기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마지막을 더욱 열심히 산 것으로 보인다”고 교황청은 밝혔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고, 삶에도 영원한 수직은 없다. 교황의 부음에 옛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에 맞춰 교회의 인가를 받아 책 하나를 기획, 출간했었다. <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바티칸 너머 세계로 전해지는 소탈한 모습과 인상적인 말씀을 편집한 사진집이었다. (저 오래된 책을 이 지면에 언급함을...

    2025.04.2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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