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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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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망우리 역사문화공원 걷는 길
    망우리 역사문화공원 걷는 길

    병오년 사소한 결심 중의 하나는 산에 갈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가겠다는 것이다. 휴일의 달콤한 늦잠 개고 이불 바깥으로 몸 빼내긴 어려워도 그래도 사실 이만큼 개운한 것도 없다. 새해 첫날의 선자령에 이어 관악산, 심학산 등 주말이면 그래도 지붕을 벗어났다. 오늘은 아차산에서 용마산, 망우리까지 걷는 길.망우리라면 얼룩진 시대를 통과한, 위대하나 불우했던 인물들을 통해서 모를 수 없는 장소다. 시나 소설이 아니더라도 이 공동묘지는 언젠가 누구나의 종점인 처연한 북망산천의 한 지표로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망우리라는 이름에는 죽음의 그늘이 짙은 듯하지만 그보다는 물망초의 ‘망’처럼 근심을 잊는다는 뜻이다. 이성계가 묻힐 장소를 정하고 생평(生平)의 숙제를 다한 느낌으로 지었다는 이름, 忘憂里.공동묘지라 비석이 즐비한 장소를 생각했지만 그런 상투적인 동네가 아니었다. 파란만장했던 삶을 그나마 위로하듯 사후의 안식을 잘 받들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안온한 휴식을 취하는...

    2026.01.22 19:47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가운데 中에 대하여
    가운데 中에 대하여

    단 한순간의 단절이나 생략도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게 허용된 면적이란 정말 작다. 그 모든 사태를 다 겪을 수는 없겠고 주제 하나를 정하는 것도 하나의 요령이다. 연초부터 각종 특집방송에서는 AI의 도래 내지는 습격! 날쌘돌이처럼 공중제비하는 피지컬 로봇한테 바짝 ‘쫄기도’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나의 고집은 자꾸 옛것으로 향한다. 한자는 어렵다고 외면할 언어가 아니다. ‘예술 한자’라 이름하고 올해의 주제로 정했다.국어사전은 가나다순이고, 영어사전은 알파벳순이다. 보이는 세상의 구체(具體)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추상(抽象)을 적확하게 포착하는 한자를 다루는 옥편은 부수로 그 체계를 잡는다. 1획부터 17획까지, 간단한 것부터 복잡한 것으로 부수는 전개된다. 그러니 옥편은 아라비아숫자순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총 214개의 부수는 세상을 한 획으로 정리하는 ‘한 일(一)’부터 시작한다. 눈앞의 무궁한 세상을 광활한 지평선에서 손톱만큼 짧게 떼내어 표현하는 것....

    2026.01.15 20:08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새해, 새에 관한 생각
    새해, 새에 관한 생각

    새해, 신춘문예, 새롭게, 시작. 시원한 시옷들의 행진이다. 시옷 자로 횡대를 이루어 날아가는 기러기처럼 또 한 해가 출발했다. 잘록한 반지를 끼우듯 연말연시는 막혔던 곳에서 툭 트인 곳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물씬하다. 좁은 조선을 빠져나와 드넓은 요동 벌판 앞에서 그저 한바탕 울기 좋은 곳이라고만 할 수밖에 없었던 박지원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병오년 첫날의 압도적인 감흥과 또 한편으로 울적한 심사에 실려 대관령 아래 자작마을에 웅크리고 있는 친구를 찾았다. 집 뒤로 돌아들면 바로 선자령으로 이어진다. 몇 발짝 만에 벌써 문명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풀과 나무와 잔설이 제공하는 풍경이다. 감쪽같이 휘어져 돌아가는 호젓한 길. 사람의 손이 아니라 발로 다듬은 작품인 산길. 그 끝은 아늑하고 둥근 둥지 같다. 멀리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서 통통 걷다가 어디로 휙 날아간다. 제 이름도 가르쳐주지 않고 산을 접었다가 공중을 활짝 펼쳐주는 새. 이참에 새에 대한 오래된 생각 하나...

    2026.01.08 20:00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빛이 나를 찾아온다
    빛이 나를 찾아온다

    할 일은 늘어나고 공부할 건 많아지고 따라서 생각할 것 높아지고 읽어야 할 책도 자꾸 쌓인다. 도무지 욕심만으로 다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럴 땐 주제를 좁게 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작년 주제가 풀이었으니 2026년 주제는 해로 정해볼까. 이제 병오년 새해가 출발하였으니 해에 대해 긴급하게 생각해 보기로 하자.오각형의 별, 삼각형의 산이라고 해를 동그라미라고 잘 표현하지는 않는다. 너무 강렬하고 강력해서 사실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어 도무지 잘 모르겠는 태양이다. 그래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정작 내가 궁금한 건 해보다는 햇빛 가루, 다시 말해 빛이다.이 천하를 가능케 하는 빛. 저 빛나는 빛을 그저 세상의 근원이자 바탕인 줄로만 알았다. 내가 내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뜨면, 세상은 아무 군말 없이 대령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나는 세상을 보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한 번만 더 관찰하면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내 알량한 시선이란 빛에 의탁하지 않고선 도무지...

    2026.01.01 20:23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작아지는 것들
    작아지는 것들

    시계는 12에서 무너져 1로 또 떨어지고, 이제 달력도 12에서 다시 1로 넘어간다. 작아지고서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한 달의 덧셈은 그리 큰 숫자는 아니었다. 한 해에 그래도 등대처럼 31일의 하루가 더 있어 얼마나 좋은가. 홀수의 그날은 많은 힘을 지니고 있다.세상일 뜻대로 안 되는 줄이야 진즉에 알았지만 올해도 어김이 없다. 수월하고 탁월하고자 하는 이 어디 혼자뿐이랴. 을사년 초에 세웠던 꿈들 점점 작아지고 작아져 마침내 마지막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마지막이라고 끝은 아니다. 옛날 영화마다 마지막에 가면 점 하나 점점 커지다가 끝이라는 글자로 변신하여 화면이 끝난다. 그때 그 ‘끝’이라는 글자는 어쩌면 그리도 해골의 앙다문 이빨 같던가. 웃음과 울음이 지나간 얼굴 한번 쓰다듬고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흐트러진 골격을 다시 짜맞추고 일상을 시작하였다.시작은 끝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심보르스카의 시집 제목은 시작과 끝,이 아니라 끝과 시작,이 아닐까...

    2025.12.25 21:48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세밑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세밑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요즘에야 터미널이 대세지만 차부라는 말이 나는 좋다. 차 구경조차 쉽지 않았던 어린 시절. 휘발유 냄새도 황홀해서 자갈투성이의 신작로를 고르기 위해 불도저가 깡촌에 오면 꼬마들은 동네를 벗어나도록 꽁무니를 쫄쫄쫄 따라다녔다. 차부. 차의 부두라는 뜻일까. 좁은 고향에서 넓은 세상으로 멀리 떠나는 이들의 불안과 설렘이 잔뜩 고여 있는 곳.모처럼 와보는 남부터미널. 내부를 둘러보다가 십수년 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 대학생이던 내가 남부터미널에 종종 왔던 건 어디로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고향에 잠시 다니러 가셨던 부모님을 마중하기 위해서였다. 전화도 제대로 없던 시절, 대강 몇시쯤에 도착한다는 전갈만 듣고 무작정 나가서 부모님을 기다렸던 것이다.차가 길게 회전을 하면서 차부에 들어서면 부모님 모습과 엇비슷한 여러 시골 어른들. 바리바리 작은 짐을 들고 내리는 게 영락없이 내가 기다리는 분들을 닮았다. 자식에게 줄 것이 분명한 짐들은 한눈에 보아도 시골에서...

    2025.12.18 20:11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E=mC² 혹은 자유
    E=mC² 혹은 자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공식인 E=mC²은 에너지와 질량이 서로 변환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이는 어떤 특정한 조건에서만 성립하는 방정식이긴 해도 결국 지하로 들어가서는, 저 흙과 이 눈이 서로 붕괴되고 삼투해서 골고루 같아지는 것처럼, 물질과 에너지는 골고루 너나들이하고, 물질을 태우면 열과 빛이 방출되듯, 결국 힘(E)은 곧 물질(m)임은 물론 나아가 빛(C)이라고 한다면 무식한 자의 헛소리인가.생명이란 한 덩어리의 물체가, 특별하고 특수한 신분을 유지하며, 가장 깊다는 피부를 경계로 삼아, 허락받은 일정 기간 동안, ‘물질=생명’임을 자각하여 각자의 이름을 걸고, 제 몫의 생을 운영하다가, 정처 없는 먼지로 산산이 흩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한편, 모든 무덤은 실은 텅 비어 있는데, 일생 몸이라는 모양에 갇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살다가, 비로소 획득한 저 분방함을 방치한 채 무덤에 가둔다고 뉘라서 외출도 않고 그 안에 얌전히 있겠는가. 그러니 스스럼없이 흙과 ...

    2025.12.11 19:57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어떤 고구마
    어떤 고구마

    어느 산, 어떤 골을 오를 때의 일. 급경사를 치고 올라 호젓한 능선을 걸을 때였다. 풍성한 치마폭 같은 게 버티고 있어 문득 길이 끊겼다. 제법 널찍한 바위를 타고 넘어야 했다. 바위가 그냥 바위인 경우는 드물다. 바위 안에는 걷잡을 수 없는 침묵이 도사리고 있지만 바위의 표면은 식물의 훌륭한 서식처이다. 각종 이끼나 지의류는 아예 바위를 거처로 삼는다. 그것들이 표시하는 무늬를 보면 우주에서 누가 적은 심오한 문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힘을 한번 주며 휙 넘어가려는데 바위에 있는 것들이 예사롭지 않다. 자세히 보니 이 산을 주름잡는 어떤 짐승이 내갈긴 그것이 아닌가. 이렇게 활짝 트인 개활지에서 볼일을 보는 녀석들이 보란 듯이 그 증거를 남긴 것이다. 어쩌면 영역표시일 수도 있겠다.휴지를 사용하는 어떤 포유류의 지저분한 그것이라면 고약한 냄새에 얼른 발길부터 돌리겠지만 이것은 자연의 생생한 작품이다. 아무것도 아닌 소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사인하여 ...

    2025.12.04 22:05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낙엽과 늙은 잠자리
    낙엽과 늙은 잠자리

    일년이 두꺼운 국어사전이라면 초겨울은 격음의 시간에 해당한다. 수분 빠진 낙엽들은 ‘ㅊ, ㅋ, ㅌ, ㅍ’처럼 거칠고 비틀리고 꼬부라진 모양으로 지면에 깔린다. 찢어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마른 잎 밟을 때마다 자지러지는 소리가 나는 건 이 때문이다. 가지에서 툭, 떨어지는 낙엽들. 점점 추워지는 날씨도 한몫을 한다.무른 바위 우세한 산기슭에서 잎사귀들의 순한 표정은 올봄의 일이었다. 물결처럼 출렁이던 잎들의 전성시대는 여름. 이제 모두 새우처럼 등을 굽히며 뒤틀린다. 어디 급히 지나가는 쓸쓸이라도 발견하면 다람쥐가 도토리 줍듯 데려다가 입안에 여러 개 저장하고 싶은 늦가을이었다. 세상의 포부를 잔뜩 담았다가 활짝 피었던 그 모든 꽃봉오리들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대궁 위에 꽃받침만 남았다. 이제 단풍도 지나 낙엽의 시기다. 단풍이 색이라면 낙엽은 태도 아닌가.일산에서 모처럼 저녁 약속. 지하철 3호선 종점인 대화는 한자로 쓰면 ‘大化’다. 대단한 변화라는 뜻인...

    2025.11.27 21:52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목포에 가면
    목포에 가면

    가끔 목포 생각이 난다. 나와 목포와의 관계는 어느 야유회에서 허리춤에 손 얹고 노래하는 아버지의 빛바랜 사진에서 시작된다. ‘목포 유달산 1960.5.12’라 적힌 걸 보니 그때의 나는 부산에서 옹알이하면서 열심히 뒤집기를 배우던 시절. 그렇던 목포를 까맣게 모르다가 꽃에 입문하고 종종 드나들게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사진 한 장이 나를 계속 목포로 끌어당긴 것일까. 지명에 나무가 들어가는 것도 나에겐 예사롭지 않았다.목포역을 나오니 마른나무 같은 사내가 광장을 빙빙 돌며 큰소리로 혼잣말을 하고 있다. 남자라면 그리해서는 안 되지, 암 안 되고 말고, 나는 다 알아요. 가로수 아래 장기판 옆에서 훈수 두는 분께 근대역사관 가는 길을 물으니, 아따 있는 줄이야 알겄는디 관심을 두지 않으니 모르겄소. 지극히 논리적이고 명쾌한 말씀이시다. 근데 바람결에 그 말을 낚아채고는 어느 행인이 이렇게 보탠다. 아따, 날 따라오시셔. 그리하여 그를 강아지처럼 따라붙게 되었다. 그냥 가...

    2025.1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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