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13일 오전 11시. 공항 활주로에서 기자가 소식을 전했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평양입니다.” 이윽고 비행기 문이 열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냈다. 김 대통령은 곧바로 발을 떼지 않았다. 트랩에 선 채 한동안 북녘의 하늘 한구석을 그윽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밀한 고독을 깬 뒤 천천히 내려와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하고 포옹했다.2007년 9월의 어느 날. 선친이 이승을 떠났다. 향년 81세. 유품을 정리하다가 작은 버릇 하나를 알게 되었다. 많은 사진 속의 아버지는 카메라가 아니라 11시 방향의 공중을 늘 바라보고 있었다. 마흔의 끝자락에서 맞닥뜨린 사고의 후유증을 저런 각도로 감당한 것일까. 지상이 아니라 하늘 한구석에 마음의 거처를 미리 마련해놓은 것일까. 부친의 포즈를 그렇게 뒤늦게 이해했다.2009년 8월18일. 김대중 대통령의 영결식 날, 황지우 시인이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멈추시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발표했다....
2025.04.10 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