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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MBC의 뽀송뽀송한 뉴스 하나
    MBC의 뽀송뽀송한 뉴스 하나

    편집이란 말처럼 그 뜻이 폄하된 단어도 드물다. 국어사전은 ‘일정한 방침 아래 여러 가지 재료를 모아 신문, 잡지, 책 따위를 만드는 일’로 풀이한다. 편집은 출판사 한 부서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우리는 각자 의도한 대로 생각을 가꾸며 그에 소용되는 말을 취사선택한다. 이것은 편집이 아닌가. 사람마다 고개를 조절하여 풍경의 한 조각을 보고 취하는 것, 이 또한 편집이 아닌가. 잊지 말라, 당신 주위에 우글거리는 모든 뉴스는 누군가의 의도하에 편집된 것임을. 앵커가 바뀐 뒤, 밤 9시는 나에겐 뉴스가 사라진 암흑지대다. 그러니 이렇게 편집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세계문학전집이나 읽자. 어이없는 사건, 울화를 돋우는 변명이 연일 도배를 한다. 뉴스 생산자들은 한번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낳는다는 기초산수도 모른단 말인가. 그런 와중에 지지난 주말 MBC <뉴스데스크>의 한 토막. 그 멘트는 이랬다. “폭염 속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작업복은 땀과...

    2024.07.18 20:38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체지에서
    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체지에서

    몹시 뜨거운 날. 원주에 간다. 이제 지구는 온난화를 넘어 열대화로 진입했다고 한다. 과히 과한 말은 아닌 듯. 드디어 도착한 송골 마을. 입구에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모든 이웃의 벗 崔보따리 선생님을 기리며.” 동학의 2대 교조인 최시형 선생의 피체지이다. 선생은 여기에서 포승에 묶여 서울로 압송되어 단성사 터에서 참수되었다 한다.내리쬐는 땡볕. 작은 언덕에 자리잡은 초라한 초가. 기우뚱한 마당에 나무들이 있다. 뒤안엔 상수리나무, 밭가에는 뽕나무, 마당 입구엔 자두나무. 나무는 무엇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술렁술렁 몸을 일으킨다. 나무들의 느리고 느린 동작들은 나의 짧은 지혜와 조급한 성격으론 도통 가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너무 늦었지만 동학에 대한 관심은 공부로 이어지고, 꽃산행을 떠나면 동학의 흔적도 먼저 찾게 된다. 강원도 산간지방은 동학을 지켜낸 도피로와 겹치는 곳이 많았다. 최시형 선생의 사상 중에 향아설위(向我設位·살아 있는...

    2024.07.11 20:54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기괴한 시대의 희한한 물고기 앞에서
    기괴한 시대의 희한한 물고기 앞에서

    펄펄 끓는 폭염, 걱정스러운 장마, 기이한 기후변화 등으로 점철되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해외토픽 하나가 눈길을 끈다. 싱가포르 해변에서 모래에 몸을 묻은 채 머리를 내민 물고기. 먹잇감을 노리는 듯 앞을 쳐다보며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이 영상에 잡혔다. 이 희한한 물고기는 ‘긴코 스타게이저’(Longnosed stargazer)로 밤하늘의 별을 응시하는 것 같아서 저 멋진 이름을 얻었단다. 그것은 입술이 통통하게 발달한 사람의 얼굴과 너무 흡사하다. 눈알도 뒤룩뒤룩 굴린다. 조금 무서워도 인어공주의 특별한 동생이라 여기면 봐줄 만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큰무늬통구멍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제주와 남해안에 산다고 한다.세상의 생물은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가. 이 사소한 질문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출발하였다. 여기에 하나 더 더할 수 있겠다. 그 다양함은 어쩌면 이렇게 모든 지면을 대접하며 골고루 분포하는가. 어느 골짜기에 가서 어떤 돌 하나라도 뒤집으면, 융단 같은 이끼 아래 저...

    2024.07.04 20:51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밥맛에 대하여
    밥맛에 대하여

    에잇 밥맛이야, 라고 할 때 누구나 쉽게 떠올릴 얼굴도 몇몇 있겠지만 사실 밥맛이 쉬운 맛은 아니다. 그렇게 만만하게 대접할 맛은 더더구나 아니다. 쌀이 간직했던 맛, 물이 찰지게 만든 맛, 빈 들판의 정기가 곤두서는 맛. 백반집에 가서 꽤 맛있는 국과 반찬이 나와도 밥이 별로면 그 식당에 다신 안 가게 된다.훤칠한 나무를 키우기 위해 산이 우람하게 있듯, 또 그만큼의 용도로 텅 빈 들판이 있고, 거기에서 벼와 보리를 비롯한 각종 작물이 자란다. 가축화와 작물화. 외양간에 소를 가두고 논에서 벼를 거두지 않았다면 인류는 식량을 찾아 지금도 거친 들판을 헤매고 다녀야 하지 않았을까.나무나 풀만큼이나 정말 고마운 벼과/사초과의 식물들. 어느 해 강릉 해변 사구 주변으로 벼과/사초과를 공부하러 갔다. 꽃들이 뜸한 시기에 공중에서 바닥으로 눈높이를 대폭 낮춘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입술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하는 그 간지러운 풀들. 사실 벼과/사초과는 종류도 많고 ...

    2024.06.27 20:38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돌멩이, 이층, 카프카
    돌멩이, 이층, 카프카

    일은 꼬이고 울적해 발길에 걸리는 대로 걷어차며 걸을 때, 아무 잘못도 없이 애꿎게 당하는 건 대개 돌멩이거나 나뭇가지인데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던 발끝에서 옛생각 하나 몰려나오기도 한다. 어린 시절 뒹군 고향의 이웃 마을은 거창군 고제면이다. 한자로 高梯, 하늘에 걸친 ‘높은 사다리’라는 뜻. 덕유산 자락인 고제는 한때 금 광산도 있고, 오일장도 열리며 번성했으나, 옛 자취는 흔적 없고 그 시절을 기억해 줄 어른들마저 사다리 타고 거의 다 올라가신 듯하다. 지금은 농협 하나로마트가 그나마 큰 건물이고, 보건소와 면사무소는 시무룩하게 서 있을 뿐이다. 그 곁에서 눈을 씻고 보면 ‘높은 다리’가 뱀 허물처럼 앉아 있는데, 이젠 그곳에서 떨어져도 안 다칠 듯한 가냘픈 높이다.그때 고제면 마을 어귀에는 초가집 이층이 있었다. 지붕 가운데를 뚫어 원두막처럼 올린 소박한 규모였다. 초가로 만든 이층이라니! 지금까지 남았더라면 아마 전국에서 유일한 건물이 아닐까. 그러다 초...

    2024.06.20 20:55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나의 나타샤 이야기
    나의 나타샤 이야기

    쟁반 같은 어깨 위로 빼꼼하게 솟아난 얼굴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최근 있었다. 사람의 생각이 언어의 지평 위로 드러난 것이라면 얼굴은 몸에서 가장 전위적으로 표현된 부분이겠다. 저 얼굴의 차이가 없다면 우리는 모두 익명의 섬을 떠도는 안개에 불과하지 않겠는가.오래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의 사할린 꽃산행에 참가했을 때의 이야기. 현관부터 시작해서 몇 개의 문을 통과하고 출국심사대에 섰다. 심사관은 여권 사진과 실제 얼굴을 이모저모 대조하였다. 그즈음 누가 급격히 휩쓸고 간 내 마음의 주소를 몇 년 전의 모습에서 찾기가 어려웠던가.사할린에서 먼저 마주한 건 텁텁한 공기와 낯선 문자였다. 영어 알파벳과는 족보를 전혀 달리하는 키릴 문자들. 건조하고 딱딱한 러시아 관리들의 따발총처럼 빠른 말투. 그들 앞에 또 섰다. 그 역시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 발행한 여권과 한 사내의 얼굴을 여러 번 힐끔거렸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몹시 붐비는 국제공항. 저마다의 생각...

    2024.06.13 20:50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뒷모습과 화양연화
    뒷모습과 화양연화

    나이 사십이면 본인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다. 살아가는 동안 몸을 대표하는 그것을 문지르고 닦지만, 그것만으로 얼굴은 관리되는 게 아니다. 세월이 와서 주무르는 데 피할 방법이 어디 있겠나. 그러니 저 말은 살아간다는 것의 단정함과 엄숙함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이해한다.그보다 더 서늘한 말도 있다. 사람의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 자신의 뒷모습을 아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 광명한 세상에 유일한 맹점이 있다면 그건 본인뿐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자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을 잊어버리고 종내에는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운명인가 보다.누구나 가까이에 짊어지고 있는 뒷모습. 결코 볼 수 없는 모습. 자주는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꼭 펴보는 책이 있다. 인물의 뒷모습을 찍은 흑백사진과 깊은 사유가 뒷받침하는 짧은 글.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뒷모습>이다. 사진도 좋...

    2024.06.06 20:47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하룻밤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하룻밤

    속도란 이럴 때 쓰라고 공중이 내주는 것, 내 고향과도 연결된 경남의 산수를 휘감아 등에 업고 함안읍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이제 육안으로도 포착이 가능하니 어디에서 불쑥 나타날까 은근 기대하면서 전방을 주시했다. 이윽고 시내로 들어와 두리번거리는데 복잡한 전선, 가로등과 표지판 사이에서, 아연, 아라가야의 푸르스름한 무덤들이 공중에 떠올랐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말이산 고분군.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이 신비와 경이 앞에서.숙소를 정하고 해가 넘어가기 전에 얼른 서둘렀다. 아파트와 무덤이 이리도 서로 잘 어울릴 줄이야. 세상 어디든 바깥과의 접면은 있는 법이다. 늦은 오후와 저녁이 교차하는 해 질 녘, 여름 낮은 길어서 사물의 분간은 아직 뚜렷하고, 햇살도 옆으로 낮게 비춰 키 작은 풀들의 그림자도 길게 만든다. “현실이란 외투의 구멍”(<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을 통해 옛 가야의 정취를 탐험하기에 너무 좋은 시간.제4호 무덤 앞에...

    2024.05.30 20:33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마음 心에 관한 마음
    마음 心에 관한 마음

    물론 햇빛도 빠르지만 빛보다 더 빠른 게 있다. 태양을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착하는 데 8분20초나 걸리지만 사람의 생각은 그 100분의 1인 5초 만에 우주를 몇 바퀴나 돈 뒤 다시 화성의 고리를 어루만지고도 여유가 있다. 어깨 위의 먼지들에게 말해주라, 우리의 두개골은 저 불타오르는 태양과의 달리기 시합에서 언제나 이긴다.빛은 빠르기가 아니라 그 빠른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만약 광속이 관찰자에 따라 다르다면, 눈앞 풍경이 그 얼마나 뒤죽박죽이겠는가. 그래서 명민한 물리학자들은 세상의 길이를 재는 기준인 1미터(m)를 빛이 진공에서 1/299,792,458초 동안 진행한 거리로 정의했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바탕이 여기에서 시작된다.세상에 복잡한 것 많아도 마음만 한 게 또 있을까.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마음. 도무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마음. 그 마음 내려놓아라, 쉽게 말씀들 하시지만, 아니 도대체 어디에 있는 줄을 알아...

    2024.05.23 21:05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붓다에서 부텨까지, 부터에서 부처까지
    붓다에서 부텨까지, 부터에서 부처까지

    자유. 스스로 自(자), 말미암을 由(유). 자신을 원인으로 삼는다니 그 얼마나 서늘하고 무서운 말인가. 자유를 많이 입으로 뱉은 자일수록 그 말에서 도망치기 바쁘다. 문명의 밭(田) 위에 누가 주인처럼 앉아 있는 게 由라면, 눈(目) 위에 새 한 마리 걸터앉은 게 自. 자(自)는 ‘몸소, 자기’라는 뜻도 거느린다.요즘 식당에서 셀프(Self)는 흔히 만나는 단어다. 어제 간 곳에도 셀프가 많았다. 물은 셀프, 셀프 코너, 셀프 앞치마까지. 뜻을 파고들자면 사실 셀프는 그리 쉬운 말이 아닌데도 고개를 갸웃하는 이 아무도 없었다. 저마다 잘 알아서 물과 추가반찬을 직접 가져다 먹었다. 여기에서 셀프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기’라 할 수 있을까.국어사전은 자기(自己)를 “그 사람 자신”이라고 풀이한다. 한편 自古以來(자고이래,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경우처럼, 자(自)는 전치사로도 쓰인다. 말석에서 노자를 배우는데, ‘自己造也(자기조야)’란 글귀가 나왔다. “자기 스...

    2024.05.16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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