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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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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횡단, 횡단하는 나날들
    횡단, 횡단하는 나날들

    매년 10월25일은 독도의날이다. 법정기념일은 아니지만 소홀히 할 수 없는 하루다. 대륙에서 홀로 떨어져 동해를 업고 위대한 높이로 솟아올라 먼발치에 일본 열도를 던져둔 독도. 이제 일본은 이런 기본적 사실을 고맙게 여기고 허튼소리 말아야 한다.내가 만든 책을 소개하는 셈이라 퍽 조심스럽지만 작년 광복절 즈음 이 코너에 “1901년부터 2021년까지, 치열하게 전개된 120년의 근현대사를 횡단하듯 조감하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쓴 적이 있다. 충분히 고통스러운 개화-식민-독립-독재-민주-선진의 굽이굽이를 나름의 시선으로 요령 있게 요약한 다큐멘터리 북. 지난달에 완성해 <횡단 한국사>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내보냈다. 우리를 웃고 울린 역사는 깨알 같은 사건이 종횡으로 결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책에도 독도의 안녕을 기원하고 의미를 묻는 내용이 명토 박혀있다.크든 작든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는 사람들의 사소한 발밑이다. 언젠가 우리는 달이나 태양에 걸려 ...

    2025.10.30 19:56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우리에게는 먼 산이 있다
    우리에게는 먼 산이 있다

    손바닥은 별들의 전쟁터다. 삼성, 갤럭시, 구글, 클라우드 등등 이 바닥의 작명은 하늘에 빚진 게 많다. 휴대전화를 통해 바깥을 보니 갈수록 점점 더 별 볼 일 없어지는 세상이다. 급기야 그제는 좀 색다른 산이 등장했다. 유튜브가 한때 장애를 일으켜 영상이 재생되지 않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에 따라 “지하철에서 유튜브가 안 돼 먼 산만 바라본다”는 사태가 속출했다는 뉴스. 그렇다고 이런 먼 산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제법 오래전. 호남선 종착점인 목포역에 내리자마자 입장 마감 시간에 쫓길라 서둘러 목포문학관으로 뛰었다. 발열체크를 하는 분이 어디서 오셨냐며 조금 늦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목포, 마음먹은 지 수년 만에 오늘. 이렇게 너무나 멀리 돌아오느라 그리된 것이라고 대답했다. 차범석관, 박화성관을 지나 김현관을 보았다. 각종 전시물 중에서 눈에 띄는 몇가지. 김치수에게 보낸 편지 끝에 ‘김광남’이란 본명으로 쓴 초서체 사인이 독특하다. 선생은 그림도 곧잘 그렸다. 병 ...

    2025.10.23 19:47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뱀과 거울
    뱀과 거울

    뱀은 길다. 나에게도 꼬리가 있다. 나이 들수록 차마 코끝이 늘어나지는 못하고 그 꼬리가 자꾸 길어진다. 꼬리는 내가 만드는 업보일까. 그 매서운 줄이 발등을 때리는 날은 기어코 오고야 만다. 있는 줄도 몰랐던 꼬리. 점점 윤곽이 갖춰지는 꼬리. 이제는 희미하게 만져지는 꼬리. 나도 모르게 물컹, 밟을 것 같은 꼬리. 그게 무섭기도 해서 산으로 간다.나이가 길어질수록 자연과의 접촉 면적을 넓히는 게 좋다. 어쩐지 산에서는 꼬리가 감춰지는 것 같다. 이 번들거리는 세상에서의 유일한 비상구다. 산에서 만끽하는 잠깐의 신선한 이탈은 그 덕분일 것이다. 산에서 무덤 하나 지나치지 않을 수 없듯 뱀 하나 만나지 않기란 어렵다. 고요와 침묵의 바위틈에서 넥타이처럼 풀어진 뱀을 또 만났다. 어린 시절 우리한테 걸리면 꼼짝없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뱀. 무서운 우리 보고 재빨리 도망치던 뱀. 이제는 뱀을 보면 내가 무섭다. 옛날 담벼락 아래에서 눈싸움하며 대치하던 생각도 났다....

    2025.10.16 20:17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치읓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치읓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ㅊ. 한글 자모의 열 번째 글자. 치읓이라 이르며, 목젖으로 콧길을 막고 혓바닥을 경구개에 대어 날숨을 막았다가 터뜨릴 때 마찰이 동반되며 거세게 나는 소리다. 치읓은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추위를 만드는 닿소리. 치읓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출렁이는 마음이 어떻게 세상에 닻을 내렸겠나. 치카치카, 아침마다 칫솔질해서 말과 밥이 범한 거친 입을 개운하게 청소하겠나. 저만치 피어 있는 진달래 곁을 떠나 초록의 물결 걷히자 들이치는 인생의 친척들.아, 치읓이 없었더라면 멀리서 친구가 찾아올 수 있으랴. 아차 한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은 어렵고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사철가 눈대목을 들을 수 있겠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의 애국가 후렴구를 제창할 수 있으랴. 이제 꽃봉오리의 벅찬 마음도 지나 최소한으로 산다. 약방의 감초처럼 있어야 할 데마다 꼭 있는 치읓.암소 끌던 노인은 삼척 어느 절벽에서 척촉(철쭉)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치며 헌화가를 불렀지. 표준...

    2025.10.09 20:57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나무에게 배우는 맹자 한 대목
    나무에게 배우는 맹자 한 대목

    천하 사물은 그 모양대로의 웅덩이다. 풍경의 요소들은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고유한 구멍이었다. 햇빛이 그 웅덩이를 차곡차곡 채워야 사물은 그 사물로 드러난다. 나무 한 그루에는 그 부피만큼의 햇빛이 정확하게 든다. 빠르고 일정한 속도의 빛은 이 웅덩이를 동시에 가득 채운 뒤 다음 국면으로 나아간다. 자연이 명확한 둘레로 빈틈없이 구성되는 건 그 덕분이다. 산은 산, 물은 물이다라는 말도 이런 사실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이제는 옛날의 일, 겨울 한밤중 취객이 된 적이 있었다. 벗들과 술자리를 파하고 귀가할 때, 하루의 고요를 다독이며 가로수와 가로등이 나란히 서 있다. 그럴 때 고개 숙인 가로등을 만지면 공기보다 더 찬 냉기가 손바닥을 찌르고 기둥을 두드리면 텅텅 빈 소리가 울려 나왔다. 하지만 가로수는 다르다. 그 싸늘한 추위에도 한낮의 햇빛을 저장했다가 취약한 시간에 미량의 온기를 전해주었다.그때 그 촉감이 고맙고 좋아서 가로수를...

    2025.10.02 21:35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거창군수님께 드리는 간청
    거창군수님께 드리는 간청

    고향은 저물 무렵이 특히 좋다. 오늘은 벌초하는 날. 풀 냄새 흥건한 산소 앞에서 절하다가 저무는 저녁을 맞이했다. 언제나 고향은 상냥하고 포근한데, 내 마음 왜 이리 무거워질까.지리산, 가야산, 덕유산의 무게중심인 거창. 내 고향은 그중에서도 주상면 내오리 오무마을. 무주구천동 지나 백두대간의 한 자락인 덕유산 빼재에서 남으로 뻗은 수려한 경치 속에 있다. 전라에서 경상으로 넘어가는 곳. 그 가운데 알싸한 문명이 있으니, 하늘로 가는 높은 사다리라는 고제(高梯)다. 다시 내리닫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은 퇴계가 극찬한 수승대, 왼편은 거창읍으로 연결된다. 완대초등학교 터, 내오리 지석묘를 따끔따끔 지나니 바로 고반재(考槃齋)다. 아, 고향에 가까워지는데 왜 내 마음 점점 어두워질까.고반재는 있을 만한 곳에 있을 법하게, 그냥 없는 듯이 있는 작은 재실. 내 어린 시절 소먹이 하러 자주 드나들던 고방골 입구에 쓰러질 듯 자리 잡았다. 고반은 시경(詩經)으로 바로 연결되는...

    2025.09.25 20:29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가 없다

    비는 가볍게 내려 무겁게 떨어진다. 집 벗어나니 해방된 감각인가. 낯선 곳에 가면 빗소리도 더 잘 들린다. 반복되는 일상의 보자기를 벗어던진 덕분일까. 그곳이 바닷가라면 빗방울도 더욱 굵어진다. 모텔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깨어나 바깥을 보았다. 산에 가려고 동해시에 왔는데 난감한 상황으로 머릿속이 아연 축축해졌다.몇해 전, 제주에 꽃산행 갔다가 비슷한 상황에서 번개 같은 꾀 하나를 장만해 두었더랬다. 타박타박 떨어지는 저 빗소리, 하늘에서 누가 글 읽는 소리! 주룩주룩 빗줄기를 옛글로 환기한 이후 이런 혼자만의 ‘우쭐’에 빠졌다. 어쨌든 하루는 비가 오거나 비가 안 오거나 둘 중의 하나이니 시시때때로 공부하는 셈이 아닌가.산행 도중 산에서 비 만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아침부터 비 내리는데 등산하기에는 마음이 좀 켕긴다. 그러나 이 또한 어쩔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가뭄 강릉, 이 지역의 물 사정은 재난으로 선포될 정도로 심각하다는 뉴...

    2025.09.18 20:02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물방울 하나 관찰하기
    물방울 하나 관찰하기

    비 그친 뒤 숲에는 돌연 적막. 이윽고 공중이 비의 발을 모두 거두자 잎사귀마다 물방울 하나 만들려는 안간힘이 빗발친다. 아무래도 널찍한 활엽수보다 새침한 침엽수가 물방울 만들기에는 유리한 구조다. 그냥 덧없이 증발되기보다는 한 방울이라도 되어 뿌리 근처로 뛰어내리려는 빗방울들의 갸륵한 노력.그 물방울 떨어져 들꽃이 먹는 이슬이 되고, 그런 광경을 보고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런 시를 남겼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떠도는 먼지에서 몸을 읽고 뒹구는 모래에서 세계를 찾는 것은 실로 대단한 통찰이다. 거미줄처럼 가는 줄기에 얹힌 들꽃에서 하늘나라를 발견하다니!감나무에 맺힌 물방울에서 뜻밖의 무늬를 알아차리고 시를 쓴 소년도 있다. “빗방울에/ 풍경이 비치고 있다/ 방울 속에/ 다른 세계가 있다.” 이후 ‘나무와 풀을 주시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된 그는 그 빗방울이 내어준 길을 따라 걸어, 세심히 보고 끊임없이...

    2025.09.11 20:16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이사하는 날, 장롱과의 작별
    이사하는 날, 장롱과의 작별

    모처럼 늦잠 자고 일어나 베란다에서 바깥을 보니 공중을 들락날락거리는 보따리의 행렬이다. 좋은 구경거리라서 잠깐 아래를 보니 사다리차 근처 올망졸망한 짐들 사이로 건장한 체격의 장롱이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어둑한 곳에서 조금 억울한 일상만 지내다가 모처럼 햇빛 활짝 쬐며 고향 쪽도 실컷 쳐다보는 장롱. 다들 고만고만한 세간살이 중에서도 유독 장롱에 마음이 가는 건 오래전 이런 시를 읽은 덕분이다.“우리집 식당에는 윤이 날 듯 말 듯한/ 장롱이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 대고모들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은 것이다./ 그들의 추억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는 장롱, (…)”(프랑시스 잠, ‘식당’). 만물을 만진 뒤 하늘로 떠난 햇빛은 우주 한 귀퉁이에 차곡차곡 쌓이는데, 그 빛뭉치를 지구로 가지고 와 조심스레 풀면 아득한 옛날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고 한 물리학자가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리 멀리 갈 것 있으랴. 우리...

    2025.09.04 22:03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호주머니 속의 송곳에 대하여
    호주머니 속의 송곳에 대하여

    생김새는 물론 한번 이름을 들으면 쉬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송곳도 그런 것 중의 하나다. 일상에서 접하기 퍽 힘든 사물이지만 이런 말은 일찍이 들었다. 가령, 송곳 하나 꽂을 데가 없을 만큼 해운대에 구름 인파로 붐볐다는 표현.내가 나온 고등학교의 상징은 벌이다.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말은 그때부터 머리에 꽉 박힌 경구다. 일생을 통틀어 하고 싶은 일 하나는 분명히 가지자는 말은 이웃사촌이다. 어쩌면 우리가 산다는 건 그것에 바쳐져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망외의 그 어떤 성취를 이루더라도 그게 없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그것.이런 경우도 있다. 어느 청년이 ‘문학, 목매달고 죽어도 좋은 나무’에 한번 씌고 나면 설령 그리로부터 멀어진다 하더라도 호주머니 속에 송곳 하나를 평생 간직하게 된다. 하여 그 송곳이 삐죽이 솟아나서 걸을 때마다 허벅지를 찌른다. 그러다가 종내에는 그곳이 피로 붉게 젖는 느낌.색다른 송곳도 있...

    2025.08.2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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