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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 전체 기사 214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호주머니 속의 송곳에 대하여
    호주머니 속의 송곳에 대하여

    생김새는 물론 한번 이름을 들으면 쉬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송곳도 그런 것 중의 하나다. 일상에서 접하기 퍽 힘든 사물이지만 이런 말은 일찍이 들었다. 가령, 송곳 하나 꽂을 데가 없을 만큼 해운대에 구름 인파로 붐볐다는 표현.내가 나온 고등학교의 상징은 벌이다.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말은 그때부터 머리에 꽉 박힌 경구다. 일생을 통틀어 하고 싶은 일 하나는 분명히 가지자는 말은 이웃사촌이다. 어쩌면 우리가 산다는 건 그것에 바쳐져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망외의 그 어떤 성취를 이루더라도 그게 없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그것.이런 경우도 있다. 어느 청년이 ‘문학, 목매달고 죽어도 좋은 나무’에 한번 씌고 나면 설령 그리로부터 멀어진다 하더라도 호주머니 속에 송곳 하나를 평생 간직하게 된다. 하여 그 송곳이 삐죽이 솟아나서 걸을 때마다 허벅지를 찌른다. 그러다가 종내에는 그곳이 피로 붉게 젖는 느낌.색다른 송곳도 있...

    2025.08.28 21:13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명품이라는 것들
    명품이라는 것들

    경남 남해군 아기자기한 바닷가에 물건리가 있다. 잘 조성된 방풍림이 천연기념물일 만큼 명승 해안 마을이다. 상록수 공부하러 갔다가 한번 들으매 잊을 수 없는 이름의 물건중학교가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빗방울 흔적, 뛰놀던 운동화 자국이 뚜렷하게 어울린 운동장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물건리의 물건은 우리가 짐작하는 그 물건은 아니다. 지세가 ‘물’(勿)자 혹은 ‘수건 건’(巾)자 모양을 닮아서 물건(勿巾)이다. 학교마다 명물은 있고, 여기 졸업생들 사회로 나가 물건리 출신답게 물건이 되고 명사가 되기도 하였을까.살아가는 동안 이래저래 말의 영향을 입는다. 어느 시기에는 어떤 특정한 말에 꽂히기도 한다. 주방의 칼도 명장이 요리할 땐 한입 크기로 재단하는 훌륭한 도구이지만, 누군가의 손에서는 살벌한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말도 마찬가지다.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는 말도 명언이다. 한번 뱉은 말,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점에서 말과 물은 같다....

    2025.08.21 21:18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가로등 아래 반지 찾는 사람
    가로등 아래 반지 찾는 사람

    형하고는 지은 인연이 오래고 두텁다. 멀리 꽃산행 갈 땐 늘 룸메이트다. 형은 과학 출판 초창기 무렵, 번역에 투신해 ‘과학세대’를 이끌며 두툼한 목록을 쌓았다. 독문학 전공의 형이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군 성과다. 그랬던 형도 호주머니에서 늘 콕콕 찔러대는 송곳을 피하지 못했다. 서른 무렵 독일로 공부하러 가겠다며, 불후의 명작 하나 써오겠다며, 나태한 일상에 젖은 나에게 말했다.문학에 대한 순정으로 반짝거리던 형의 눈망울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러나 몇몇이 발목을 잡아 당시에는 다소 생소하던 과학사회학에 뛰어들었다. 형의 도저한 세계를 내가 운위할 깜냥은 아니고 가끔 형의 유튜브 강의를 즐겨 듣는다. 어느 날에는 이런 마무리에 혼자 박장대소했다. 형이 펴낸 <과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 과학혁명의 구조>(김동광, 아이세움)에 실린 우화이기도 하다.늦은 밤 이(李)의 귀갓길. 동네 가로등 한 줌 불빛 아래 김(金)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이가 뭐 하느냐...

    2025.08.14 21:28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나무와 어린 왕자
    나무와 어린 왕자

    거대한 두 눈의 외계인이 사는 공중. 그 무량한 곳에서 나오는 톱니바퀴 같은 더위가 전신을 꽉꽉 찔러댄다. 땡볕의 나날, 요즘 가장 각광받는 장소 중 하나는 나무 아래일 것이다. 저 집요한 태양도 어쩌지 못하는 곳. 문명사적으로 많은 일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곳도 보리수, 공자가 제자를 길러낸 곳도 은행나무 아래 아닌가. 인류는 그늘에 큰 빚을 지고 있다. 부채 하나 들고 나도 나무 아래로 내려가 나무에 관한 오래된 생각을 구슬려본다.나무에 대해 많은 이들이 많은 이야기를 한다. 나무에 대한 시도 흔하고 우리 안의 폭력성을 견딜 수 없어 나무가 되려는 인간을 다룬 소설도 있다. 나무 동화도 많다. 그러나 이 모두는 부분적인 것이다. 나무를 옆에서 보고 나무의 일부를 다룬 것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구름은커녕 전봇대보다 낮은 키의 나는 아직 나무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식물성이 우리를 구원한다지만 나무라고 완결된 존재일 리는 없다. 또 어디로 가...

    2025.08.07 20:52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장인어른과 옛날로 떠나기
    장인어른과 옛날로 떠나기

    하루에도 몇번 드나드는 화장실. 그곳에 우두커니 걸린 수건을 보며 쓴 시가 있다. “거실 화장실 수건은 늘 아내가 갈아 두는데/(…)/ 어느 날 아침 변기에 앉아 바라보면, 억지로/ 찢어발기거나 태워 버리지 않으면 사라지지도 않을/ 낡은 수건 하나가(…)/ 이제나 저제나 우리 숨 끊어질/ 날을 지켜보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소멸에 대하여1, 이성복)저 ‘무시 못할’ 수건에서 소멸을 길어 올리는 어마무시한 시에는 그 수건을 어느 기념식에서 받아온, 이제는 돌아가신 ‘도포에 유건 쓴 우리 아버지’와 ‘강서구청 총무국장인 우리 장인어른’이 등장하는데, 오늘은 그 구절을 훔치며 나도 장인어른에 관한 생각 하나를 덧대본다.장인어른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한 지 어느덧 30여년. 장모님 병원에 누워 계시고 홀로 일상을 다스리는데 가끔 안부도 살피고 말벗도 해드릴 겸 춘천으로 찾아뵌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장인께서 강원도의 벽지학교를 전전하신 것을 새삼 알게 ...

    2025.07.31 20:45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아래 하(下)에 대한 한 생각
    아래 하(下)에 대한 한 생각

    충남 공주에는 제민천을 따라 옛 하숙집들을 재현한 ‘하숙마을’이 있다. 파란 쪽대문, 작두펌프, 텃밭과 툇마루 등을 꾸며놓아 추억과 향수에 젖게 만든다.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거나 못다 한 공부를 새로 시작하고 싶거든 교육도시 공주, 그중에서도 하숙마을로 가보시라. 뜻밖의 회심과 함께 그 어떤 돌발사태를 맞이할지도 모른다.내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부산의 동래에는 기장, 장안, 양산 등 동해 남부 지역에서 유학 나온 소금기 많은 촌놈들이 많았다. 친척 집에 얹혀 지내기도 했지만 더러 곰팡내 나는 자취나 하숙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가끔 그곳에 작당하러 가면 우리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싫지는 않았다.하숙의 한자는 ‘下宿’이다. ‘일정한 방세와 식비를 내고 남의 집에 머물면서 숙식함’에 왜 ‘아래 하(下)’를 쓸까. 하차(下車)나 하관(下棺)은 딱 그 행위가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옥편을 뒤지니 ‘下’에는 ‘귀인이 머무는 거처’라는 뜻...

    2025.07.24 21:41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밝은 방, 퇴이, 신비복숭아
    밝은 방, 퇴이, 신비복숭아

    봄꽃 눈뜰 무렵 사진 하나를 받았다. 무릇 사진에는 인물이나 풍경이 서로 나오려고 기를 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휑한 사진이었다. 사진이란 피사체까지 닿았다가 튕겨 나온 빛들의 집합이다. 빛을 물줄기처럼 조절할 수 있다면 이 세계의 표면적은 얼마나 늘어날까. 너와 나 사이, 그 어떤 섬 하나 있을지도 모를 일. 애석타, 카메라는 그걸 포착하지 못한다.텅 빈 방을 보여주는 사진. 모처럼 벽과 바닥이 우쭐한 방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없는 듯 있었던 형광등과 유리창이 그 큰 눈을 껌뻑거리는 게 이제야 보였다. 밝은 방. 품 안의 거울처럼 나는 종종 사진을 꺼내보았다.그 사진은 가르치는 업에 진심이던 내 일생의 친구가 정년을 맞이하며 보내준 것이다. 나도 여러 번 가본 방. 어쩌다 바둑 둘 때 장고 끝에 흰 돌을 떨어뜨려 바닥에서 찾으려면 먼지는 물론 학생들과 나눈 대화가 낙엽처럼 쌓여 있던 방. 공부의 기쁨과 슬픔, 때로는 일의 의무나 억압을 전달하며 ...

    2025.07.17 20:59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백두산에서의 만물 조응
    백두산에서의 만물 조응

    우주 먼지의 집적, 무수한 체세포의 집합, 반투과성 막(膜)들의 연결이라는 그 언저리에 내 몸은 있다. 옷으로 가꾸고 등산화로 가둔 이 불룩한 부피를 실은 나도 잘 모른다. 전모를 동시에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언제나 바깥을 향해 기웃거리고 방황하는 중이겠다.우리나라, 대한민국. 삼면이 바다이고 멀리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이 우뚝하고 사이사이 앞산과 뒷산, 그 어디쯤에 나는 산다. 삼시세끼로 생명을 유지하지만 입안을 통과해 그 어디로 넘어가는 것들, 그것에 대해서도 실은 아는 바가 없다.마음 길게 내어 백두산 천지 가는 길. 해발 2744m에 지상 174㎝의 내 키가 더해졌다. 우리 영토의 가장 높은 곳을 받들었으니 이제 지하삼림에서 가장 낮은 것을 관찰한다. 이것은 기생꽃, 저것은 나도범의귀, 여기에 풍선난초. 이크, 저기에는 분홍노루발. 여기선 쉽게 툭툭 이름을 부르지만 남한에서는 발음하기에도 송구할 만큼 고이 받들어 모셔야 할 귀한 야생화들.저 꽃...

    2025.07.10 21:16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제목들
    제목들

    젊은 날 체계적이지 못해 사방으로 흩어진 밥풀처럼 난삽하기 그지없는 세상 공부다. 밥은 먹으면 부르고 술은 마시면 취한다. 이건 명백한 부작용이다. 수불석권(手不釋卷)하라는 선친의 가르침이 있어 옆구리에 책은 하나 끼고 다녔다. 문지방이 닳도록 호프집을 드나들던 시절, 어느 날 헌책방에서 만난 네 글자가 뒤통수를 때렸다. <꿈꿀 권리>. 가스통 바슐라르.저 높은 곳의 달. 그곳에 누가 있어 지구의 후줄근한 나를 본다면, ‘넌 왜 아직도 거기에 거꾸로 매달려 있니?’ 하고 추궁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는 서로가 서로를 정중하게 받드는 상대성의 세계. 여기에 중심은 없다. 없어서 없는 게 아니라 모두가 중심이라서 굳이 중심은 없다는 것. 철석같은 나를 배제한 절대 객관의 세계가 절실하게 궁금해서 그것에 대한 생각을 이리저리 굴린다. 요즘 AI가 대세지만 이 또한 IT의 일환이다. 겸손하게 소문자로 옮기면 it, 그것이 아닌가. 이러니 이런 제목에 어찌 마음이 휘...

    2025.07.03 21:15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시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논어는 시가 있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시(詩)는 아니고 시(時)다. 둥근 지구를 딛고 휘어진 공중에 기대 사는 동안, 시간을 벗어날 수 있을까. 시(詩)도 시(時)다. 이 말은 한 구절 모자라서 단시(短詩)도 아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공자는 말(言)을 많이 다루었다. 시도 중요하게 여겼다. 아들에게 말한다.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단다(不學詩, 無以言).”한자는 하나의 품사에 갇히지 않는다. 오늘에서 내일로 가는 시공의 흐름을 생각한다면 명사도 실은 늙어가고 낡아가는 동사일 수밖에 없다. 시(時)는 시(詩)다. 모든 때는 반지 같은 한 편의 시를 남긴다. 굽이굽이 삶의 국면과 시는 도시락처럼 궁합을 꽉 맞춘다.서른 무렵, 혼인하고 아이 둘이 차례로 태어났을 때의 시. “그대가 결혼을 하면 여인은 외부로 열린 그대의 창, (…) 그 여인에게서 아이를 얻으면 그대의 창은 하나둘 늘어난다.”(이성복) 아, 시간이 흘러 어머니 돌아...

    2025.06.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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