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나의 친구, 모나미 볼펜](https://img.khan.co.kr/news/c/300x200/2024/01/11/l_2024011201000360900037061.jpg)
나 처음 왕만두만 한 핏덩어리로 태어나 이내 젓가락, 연필 그리고 볼펜하고 사귀었습니다. 그중의 모나미 볼펜은 언제나 볼품이 참 건조하고 간단해서 가까이하기에 너무 좋았습니다. 수학 시간에 미적분을 맹렬하게 풀 때 기저귀에 애기똥 묻히듯 볼펜똥이 귀엽게 흘러나오기도 했던 나의 친구, 모나미.고등학교 시절의 우리는 금쪽같던 쉬는 시간에 티나크래커 한 봉지를 걸고 볼펜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시합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코메티 조각의 길쭉한 다리 같은 볼펜은 나름 부품이 정교합니다. 몸통, 앞뚜껑, 볼펜심, 스프링, 똑딱이 걸쇠. 나사는 쉽게 풀리지만 뚜껑 걸쇠를 분리하자면 요령이 필요했습니다. 손끝의 감각이 미세한 녀석이 결국 이겼습니다. 나의 이력과 필기구의 종류는 정확히 일대일 대응의 관계입니다. 초등학교-연필, 중학교-만년필, 고등학교-볼펜, 대학교-볼펜 그리고 사회-볼펜과 붓. 그 묵묵한 것들이 실어나른 각종 서류의 밑줄, 연습장의 낙서, 영수증의 사인들. 어지...
2024.01.11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