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엔 “그 집 고추는 좀 어뗘?” 질문이 잦다. 표정들로 보아 올해 고추농사가 영 시원찮은 모양이다. “뭐 그냥 그럭저럭….” 답한다. 생각보다는 잘됐다는 말은 생략한다. 벌레약도 뿌리지 않고 제초제로 풀을 잡지도 않았으며, 고추에 달라붙은 노린재는 툴툴 털어냈으니까. 비 한 방울 뿌리지 않는 땡볕 더위가 보름, 장대비가 쏟아진 날들이 보름씩 번갈아 찾아왔으니까. 악조건에서 이렇게나마 자라준 고추가 대견하고 기적 같다. 아무리 이상기후라지만 지금처럼만 되길 기원하는 심정이기도 하다.참외처럼 노릿한 토종오이 장아찌 몇 개 들고, 아랫집 언니집에 마실 가니 온 가족이 수돗가에서 고추를 씻고 있다. 큰 다라이 두 개에서 번갈아 씻겨지는 고추를 건지다 보니, 물속 고추 빛깔이 환상적이다. “이 색 좀 봐. 고추는 정말 이쁜 선홍색이고, 꼭지는 진짜 이쁜 녹색이다.” 나는 철없이 색을 찬양하고, 언니는 “올핸 고추 따는 재미가 없네. 고추가 죄다 떨어져서 줍느라…” 울상이다....
2023.08.31 2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