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자의 작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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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자의 작은 이야기] 꽃도둑의 눈

    꽃도둑의 눈

    자고나면 갓 핀 꽃송이가 감쪽같이 없어지더니 밤새 금잔화 꽃숭어리만 뚝 따먹고 가더니 이 눔이 좀 모자란 놈인가, 시 쓰는 놈 혹시 아닐랑가 서리태 콩잎보다 향기로운 꽃을 좋아하다니이 눔 낯짝 좀 보자 해도 비 온 뒤 발자국만 남기더니 며칠 집 비운 새, 앞집 어르신이 덫 놓고 널빤지에 친절하게도 써놓은 ‘고랭이 조심’에도 아랑곳없이 밤마다 코밑까지 다녀가더니 주야 맞교대 서로 얼굴 볼 일 없더니 어느 아침 꽃 우북한 데서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꽃향기에 취해 잠이 들었나 놀란 이 꽃도둑 후다닥 논틀밭틀로 뛰어가는데 아 참, 도둑의 눈이 그렇게 맑다니 - 시 ‘꽃도둑의 눈’, 김해자, 시집 <해자네 점집> 중에서갈색으로 물들어가는 들깨를 베고 있는데, 윗밭 언니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올라오다, “그래 댁의 콩은 괜찮수?” 묻길래, “갸가 팥도 먹대유.” 했더니, “이그...
  • [김해자의 작은 이야기] 그냥상

    그냥상

    물장화 고무장갑 냅다 던지고고무줄바지 낡은 버선 돌돌 말아 처박고꽃내 분내 관광 간다굼실굼실 떡도 찌고돼지머리 꾹꾹 눌러정호반점 앞에서 새벽 버스 한 대씨바씨바 출발이다소주도 서너 박스 맥주도 서너 박스행님아 아우야 고부라지며자빠질 듯 자빠질 듯흔들며 흔들리며간다, 매화야 피든 동 말든 동간다, 빗줄기야 치는 동 개든 동죽은 영감 같은 강 따라술 마시고 막춤 추며씨바시바 봄이 간다-시, 「씨바씨바」, 권선희, 시집 <꽃마차는 울며 간다>권선희는 최근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간 포항 구룡포에서 산다. 20년 가까이 사는 포구에서 중대장각시로 불리는 그는 짠물에 들어가지 않고도 홍게나 오징어 과메기나 자연산 미역 등 철철이 귀한 것들을 얻어먹고 산다. 그중 일부는 멀리 사는 친구들 입에도 들어간다. 동네 어른들은 물론 ‘종팔씨’나 ‘흰돌이’ ‘...
  • [김해자의 작은 이야기] 그 많던 참새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참새는 다 어디로 갔을까

    새 몇 마리가 나부대며 해종일 복상나무 위로 들락거리고 있었다이튿날도 한 무리가 그쪽에서 종종거렸다며칠 뒤에는 하늘 가득 새떼가 북풍을 몰고 은하수처럼 흘러왔다진눈깨비 날리는 한파와 함께 코로나 역병 소문이 먼 도시에서 흘러왔다나는 얼음장 성질이 좀 눅눅해질 때까지 부초 발가락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매화나무 뿌리가 물소리 쪽으로 귀 세우는 기척 엿듣자톱 들고 가위 차고 사다리 위로 올라갔더니복상나무 가지마다 진흙 발자국이 백 켤레쯤 걸려 있었다진흙 발자국은 먼 길 떠나는 새들의 항로 이정표 아닌가그러니까 나는 해마다 새들의 이정표를 싹둑싹둑 잘라버렸다는 것,새들이 지평선 끌고 가버려 옹색해진 들판에서서른 몇 해 농사와 내 시인 깜냥이 참 구성없다는 것이었다- 시, ‘가지치기 하다가’, 이중기, 시집 <정녀들이 밤에 경찰 수의를 지었다> 중장대비가 쏟아진 8월8일 저녁,...
  • [김해자의 작은 이야기] 양승분 언니의 식탁

    양승분 언니의 식탁

    밤새 비 내린 아침옥수수 거친 밑동마다 애기 손톱만 한 싹이 돋아났다 지가 잡초인 줄도 모르고, 금세 뽑혀질 지도 모르고 어쩌자고 막무가내로 얼굴 내밀었나밤새 잠도 안 자고 안간힘을 썼겠지푸른 심줄 투성이 저 징그러운 것들,생각하니 눈물 난다누구 하나 건드리지 않고 무엇 하나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게 솟아오른 저 순한 새순 앞에 우리네 시끌벅적한 생애는 얼마나 엄살투성인가 내가 사람으로 불리기 전에도 잠시 왔다 가는 이승의 시간 이후에도 그저 그러하게 솟았다 스러져 갈 뿐인 네 앞에 너의 부지런한 침묵 앞에 이 순간 무릎 꿇어도 되겠는가-시, ‘스스로 그러하게’, 김해자, 시집 <축제> 중8월은 무성하다. 우거질 무(茂)에, 담을 성(盛), 풀도 우거지고 작물도 차고 넘친다. 여름에는 억센 풀만 잡고 삐죽한 데만 분지른다....
  • [김해자의 작은 이야기] 덕순 언니의 밥상

    덕순 언니의 밥상

    봄이 오는 소리에 놀라씨감자가 뿔이 났어요밭에다 심었더니새삭이 잘 자랏다연보라색 꽃이 예쁘게 되었다다 자랏다는 신호인 것 같다토실토실한 감자가 얼마나 열였을까생각만 해도 마음이 흐믓하다-시, ‘봄이 오는 소리’, 신위선, 공동시집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고개를 젖히더니 옆으로 누워버린 누런 잎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망설이다 폭우가 내린다기에 감자를 캐기로 했다. 줄기를 살살 흔들면서 잡아끌었더니 뿌리가 뽑혀 올라오는데 놀랐다. 제법 큰, 그러니까 어른 주먹만 한 감자가 달려 나왔으니까. 쭈글쭈글한 감자알을 쪼개 묻어 두었을 뿐인데, 그 시꺼먼 땅속에서 맑고 둥글둥글한 것들이 알아서 자라고 있었다니. 기대하지 않아서 더 신기했을 것이다. 새로 얻은 도지에 흙을 퍼붓고 돌을 고르고 이랑을 만들다보니 이웃들보다 한 달여 늦게 심은 데다, 5월 내내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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