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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의열투쟁이었다
안중근의 이토 암살 놓고 일본 교과서의 시선은 다양 한국병합 ‘계기’로 설명하다 1990년대 초반 이후에 변화 민족·의병운동가 표현 늘어‘조선 근대화’ 방해자로 간주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 서술 김원봉이 주도한 ‘의열단’ 일제에 대항 암살파괴 활동‘주와 종을 혼동’ 비판받자 민중 무장역량 강화로 전환 윤봉길 의거가 돌파구 제공 군사학교서 청년투사 배출 독립전쟁에 나설 간부 양성일본어 구글 위키피디아에서 안중근을 검색하면, 그는 “대한제국(한국)의 독립운동가, 테러리스트이고,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암살자이다”라고 나온다. 반면에 한국어 구글 위키피디아는 그를 ‘독립운동가, 항일 의병장, 정치 사상가’로 소개하고 있다. 테러리스트, 암살자라는 규정이 없다. 안중근에 대한 이같은 상반된 평가는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그의 행위를 역사에 자리매김하는 문제와도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 이토 암살, 한국... -
새로운 기념 하기
1907년 8월1일은 일본이 대한제국 군대 강제로 해산하자 여기에 순응하지 않은 시위보병 2개 대대가 일본군과 시가전 벌인 날 이후 광복군 제2지대서 광복군 역사 정리하며‘독립전쟁기념일’로 간주 1917년 7월4일 발표된 대동단결선언은 제국서 민국으로 전환을 명확히 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 내세우게 했고 대한제국과 독립운동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연결되는 근거를 제공했다사람은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해 특정 날을 지정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는 흔히 특정한 그날을 무슨 기념일이라고 말한다. 개인 차원의 생일과 국가 차원의 국경일이 단적인 보기일 것이다.기념하기란?기념일에는 대부분 기념행사를 한다. 그래야 의미를 되새기고 기억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념일의 기념행사는 1년에 한 차례씩 돌아온다. 그래서 364일의 긴 공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 -
‘분단시대’, 강만길이 바꾸어 놓기 시작한 시선
남북 분단을 유기적 연결체로 보려는 강만길의 시선은 민주화운동 진척 과정에서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으로 확장되었다최근에는 한반도 분단문제를 동아시아의 역사와 현재의 국제질서 측면에서 주목하며 연구한 이삼성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으로 이어졌다그사이 남북이 ‘경쟁과 배제의 (비)대칭적 관계’를 지속한 시선도 정착했다. 모두 분단현실의 고유성과 (비)연속성에 주목하며 학문 만들기에 노력한 결과다살다 보면 누군가의 짧은 한마디가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다. 나도 그랬다. 박사학위논문 최종 심사 때, 학위논문을 책으로 낸 이후에도 한눈팔지 말고 두 번째 연구서를 꼭 내라고 당부한 분이 계셨다(<한국 역사학의 기원>(2016)). 작년에 작고하신 강만길 선생님이다.안타깝게도 해외 출장 중이어서 조문하지 못했다. 그러다 1주기가 다가오는 최근 북한의 ‘두 국가론’을 분석한 글들을 읽다가 문득 선생님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1978)... -
시대정신 찾아보기
3·1운동 때처럼 주체의 능동적인 움직임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최근의 경험은 촛불항쟁일 것이다 하지만 촛불난동이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를 되치기당했고, 그렇게 힘썼던 분단 문제는 단 1㎜도 현상을 변경하지 못했다이제 다시, 민주주의 확대와 분단 극복을 아우르는 시대정신 찾아내 두 과제의 해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1876년의 개항, 1910년의 망국과 1945년의 해방은 한국 근대사의 결정적 전환 국면을 만든 역사인 데다,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현대사이기도 하다. 개항은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과 국가가 자본주의 세계에 편입되는 신호탄이었고, 망국은 그 편입의 귀결이었다. 해방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할 기회가 동시에 주어진 시작점이었고, 현재 진행형인 분단은 그 길의 귀결 지점이다. 개항, 망국, 해방은 외부의 요소가 급속한 전환을 추동한 결과라는 점에서 공통된 경험이다. 반대로 내부의 잠재된 힘이 결정적 전환을 ... -
히틀러의 ‘나의 투쟁’ 독후사, 그럼 지금은?
‘나의 투쟁’에는 역사와 관련한 사상과 대중파시즘으로 가는 방향을 시사하는 내용이 있다 그럼에도 모든 죄악의 근원과 책임을 히틀러의 ‘단독죄책론’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단선적 역사관에 빠지면 대중파시즘에 동조한 다른 모든 사람에게 되레 면책을 줄 수도 있다청소년 시절에 친구나 선배 집에 놀러 가면 문학, 사상, 인물에 관한 글을 모은 전집(全集)이 거실 장식장에 빼곡히 진열된 경우를 자주 본 기억이 있다. 비싼 전집류 구입은 경제성장으로 폭넓게 형성된 도시 중산층의 교육열, 과시 욕망과 연관이 깊으며, 지적 허기짐을 일거에 메워 주는 방법이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경까지 좀 잘나간다는 출판사들은 이때를 기회 삼아 회사의 운명을 걸고 전집류를 기획하여 외판 영업에 뛰어들었다. 출판사들은 대체로 한국과 세계로 전집류를 구분했다. 물론 이때의 세계는 동북아시아 이외의 아시아, 아프리카와 남미를 제외한 ‘서구’를 의미했다. ‘세계○○전집’은 서구 중... -
이름 없는 독립군을 기억하자
민생단사건과 국민혁명그리고 자유시참변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한순간 최대의 독립군이 희생된 아픈 역사다희생자 중 가장 많은 수가민초였을 것이다3·1절을 맞아 생각해본다지금 독립운동 관련 시설 어디에도 없지만모든 무명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기념물이 독립기념관부터 시작해 각지에 설치됐으면 한다어느덧 30년이 넘었다. 박사논문 준비차 1993년 연변대학에 반년 정도 유학을 다녀온 지. 정식 절차를 밟아 그곳에 가기 위해 서울 수유리 교육장에서 4시간 동안 반공 정신교육을 수강하기도 했다. 그때는 그랬다. 중국을 포함해 8개 국가를 방문하려는 한국인이라면 그래야 나갈 수 있었다. 몇달 전인 1992년 8월에 한국이 중국과 수교했는데도 말이다.■ 민생단사건, 가해자도 희생자도 조선인약간 부담스러운 미지의 세계를 방문하는 데 따른 불안감을 가진 채 연변대학에 가서 가장 먼저 집중한 주제가 1932년 2월 결성된 민생단을... -
민주공화, 대동세상의 현재이자 미래
임시정부 건국강령은 특권을 철폐하고 차별을 방지하며 균등을 국가가 주도하는‘전민적 데모크라시’ 구상 해방 후 분단체제로 그 이상은 사라진 상태지만 희망의 끈은 아직 남아 광주 5월항쟁과 촛불 때 대동세상을 직접 경험했다 공공성 강화하는 방향서 이것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자 민주공화를 구현하려는 사람들이다대동세상, 대동사회는 한국 사회에서 미래의 이상향을 말할 때 사용하는 용어의 하나다. 한자사전에서 대동(大同)을 찾아보면, 약간 차이가 있을지라도 대체로 같다는 뜻과 다른 세력끼리 하나 된다는 의미가 있다. 또 세상이 번영하여 화평(和平)하게 된 이상향이라는 뜻도 있다. 결국 약간의 차이를 넘어 서로 협동하며 번영함으로써 평정한 상태를 대동사회, 대동세상이라 말할 수 있겠다.■ 대동의 사회화대동이란 말은 17세기 대동법의 실시 과정에서 확산했다. 대동법은 공물(貢物), 곧 특산물을... -
시선의 변화와 1960년대 시대전환
1960년대 근대화론은 외부에서 들어온 발전 담론이지만 지도자에게 강력한 의지를 표출할 틀과 방향을 제공했다 그 결과 한국 사회가 확연히 다르게 바뀌는 데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지금과 그때를 비교할 때 민주주의 더 안정됐지만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미래를 놓고 함께 고민할 의제 하나 생산하지 못해 되레 총선 다가와 그런지 이념과 진영에 갇혀 ‘태세전환’ 잔머리 굴리는 잔챙이들만 보인다사람이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로부터 시작해 ‘인생이 바뀐다’로 끝나는 긴 명언도 있듯이, 한 사회의 전환도 인식 대상에 대한 해석 틀로서 새로운 담론에 따라 시작될 수 있다. 담론의 변화는 그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공유하는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하며 새로운 목표와 정체성을 규정하고 실천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대적 전환이란 꼭 격동의 과정을 거친 결과로만 나타난다고 볼 수 없다. 발전 담론... -
한반도 문제 해결 주체의 아쉬운 상상력
해방 직전 독립운동 세력은 널리 분산·고립되었다. 이에 비해 열강은 한반도 문제를 자기 이해관계에 맞게 풀어가기 위한 ‘관리’의 대상으로 간주했다주체와 열강의 구성 방식 그리고 관리와 해결이라는 주체와 열강 사이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자기 안의 모습과 한계를 짚어내려는 주체의 노력이 부족한 풍토는 그것의 다른 표현이다. 이리되면 우리는 당분간 계속 관리의 대상에 머물지 않을까세계가 신냉전적 다극 질서로 변해가고 있다. 냉전 질서가 확고했던 시절처럼 이념으로 편을 가르지 않고, 다른 편과의 군사 대결도 전제하지 않지만, 진영 간 안보 대립이 존재하는 시대 말이다. 그러면서 진영을 넘나드는 협력과 경쟁도 병행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적대관계가 항존하지 않고 선택과 배제가 동시에 작동하지 않는 복합 시대에 접어들었다.이것은 우리에게 축복의 기회일 수도 있다. 특히 주변 4강의 협력을 바탕으로 분단 문제를 풀어야 하는 대한민국으로서는 더더욱 그렇... -
무엇을 기억하게 가르치지? 홍범도의 삶과 육사
홍범도는 왕조에서 제국으로 이어 식민지, 사회주의로 세상이 바뀌어도 좌절하지 않고 굳센 삶을 살았다 ‘고려 독립’을 희망하고 삶의 목적으로 내세운 독립운동가다 육사가 육성해야 할 진정한 정예장교는 바른 가치관·도덕적 품성 우선 갖춘 군사전문가다 그렇지 않은 장교는 군사기술자로 공동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지난 8월25일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육군사관학교 측에서 독립영웅 5명의 흉상을 학교 밖으로 옮길 계획을 비판했다. 이들이 보기에 육사 측의 계획은 국군의 역사적 기원을 뒤집어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반헌법적 처사”였다. 이에 국방부는 소련공산당 활동에 동조한 홍범도의 흉상만이라도 학교 밖으로 옮기겠다는 뜻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홍범도가 1921년 6월 자유시 참변 때 볼셰비키와 가해자 측에 가담했고, 1927년 소련공산당에 입당한 사실을 이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