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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민주주의 퇴행과 4·10 총선
올해는 70여개 나라에서 전 세계 성인의 절반인 약 20억명이 투표하는 ‘슈퍼 선거의 해’라고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시민 의견을 정치에 반영해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 최근 치러진 러시아, 인도네시아 대선은 반자유주의와 장기집권, 세습, 유권자의 무관심 등이 확인돼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스웨덴 예테보리대학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는 2022년 세계 민주주의의 질이 1986년 수준으로 퇴행했다고 분석했다. V-Dem은 선거·자유주의·참여·심의·평등 5가지 원칙에 따라 민주주의 건전성을 평가한다. 국제민주주의선거지원연구소(IDEA)가 조사하는 ‘글로벌 민주주의 상태 이니셔티브(GSDI)’는 지난해까지 6년 연속 하락했다. 1975년 이후 가장 긴 하락세다. 국제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2023년 세계 자유가 18년 연속 감소했다고 밝혔다.... -
탄소중립과 그린벨트 해제라는 모순
나무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산소를 공급하고 미세먼지를 걸러준다. 습도를 조절하고 온도를 낮추는가 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뿌리를 내려 산사태를 막고, 약재나 땔감으로도 쓰인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전주시가 홍수 예방 조치라며 최근 전주천과 삼천 일대 버드나무 수백그루를 잘라냈다. 시민사회단체는 수십년 된 나무를 잘라낸 책임을 물어 시장 퇴진을 요구하겠다고 한다. 나무를 포함한 지구 생물권은 인간이 배출한 탄소의 45%를 빨아들인다. 각국은 2050년쯤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데, 이미 달성한 나라도 있다. 글로벌 데이터 네트워크 ‘에너지모니터’ 조사를 보면 2021년 기준 부탄과 수리남 등 8개국이 탄소 중립 또는 마이너스 상태이다. 대부분 가난한 나라지만 국토의 상당 부분이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이라는 특징이 있다. 2000㏄급 승용차 한 대가 연간 2만㎞를 운행하면서 배출하는 탄소량은 3.2t이다. 30년생... -
코리아 디스카운트 키우는 정부 리스크
한국 증시가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6일 주식시장에서 코스피지수는 2576.20을 기록해 이틀 연속 하락했다. 올해 들어 26거래일 중 하락한 날(16일)이 훨씬 더 많다. 코스피와 흐름이 비슷하다던 미국 나스닥은 딴판이다. 올해 상승한 날(15일)이 하락한 날(9일)보다 훨씬 많다. 지난해 말 대비 이날까지 코스피는 3.0% 떨어졌다. 해외 주요 증시는 대부분 오름세를 보인다. 미국은 나스닥과 S&P500이 3%대 후반 상승률을 기록 중이고, 장기간 거의 움직이지 않던 일본은 8% 넘게 뛰어올라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과 시가총액 규모가 비슷한 독일과 대만도 소폭 올랐다.한국 증시에는 세계적인 기업이 적지 않다. 삼성전자는 세계시장에서 스마트폰과 메모리반도체, TV 등의 점유율이 선두권이고,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일본 도요타, 독일 폭스바겐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자동차를 판매했다. 2차전지도 한국 기업들이 각광받고 있다. 한국 조선업은 중국과 수... -
탁월한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5년 단임
한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5년 만에 일본에 추월당할 것 같다고 한다. 한국은행은 2023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1.4%로 추산하는데, 일본 추정치(1.5%)보다 낮다. 한국은 1980년(-1.6%) 2차 오일쇼크와 1998년(-5.1%)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1968년 이후 줄곧 일본보다 성장률이 높았다.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에 뒤떨어지는 경제 성적표라는 탄식마저 나온다.정부가 제시한 올해 성장률 목표 2.2%도 달성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내수와 건설투자가 부진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라는 리스크에도 직면하고 있다”는 기획재정부 진단은 경제 환경이 녹록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 경제정책이 오락가락해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친시장·친기업을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은 최근 오히려 시장과 기업을 억누르는 행태를 드러냈다. 고물가를 끌어내린다며 기업을 압박하고, 공... -
기후 악당들의 그린워싱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한국을 포함해 198개 나라가 참가했던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가 12일(현지시간) 끝났다. 쟁점이었던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은 결국 합의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저개발국을 지원하는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을 출범시킨 게 그나마 성과였다. 땅을 헤집어 원유를 뽑아내는 나라에서 지구를 지키겠다는 모임이 열렸으니 성과를 기대하는 게 무리였을 것이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는 캐낼수록 지구에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특히 석탄은 에너지 단위당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더러운 연료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보면 석탄 1t을 태울 때 이산화탄소 9.14t이 나온다. 석유는 연소할 때 7.33t, 천연가스는 3.62t의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이들 화석연료는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도 배출한다. 글로벌 통계 사이트 ‘Our World In Dat... -
‘아니면 말고’ 위험한 정치의 계절
세계적 명장 반열에 오른 박찬욱 감독 집안 가훈은 ‘아니면 말고’라고 한다. 딸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숙제가 가훈 알아오기였는데, 즉석에서 써준 것으로 알려졌다. 가훈으로 정할 정도라면 ‘일단 해보자’는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오픈 국어사전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할 때 쓰는 말’이라고 부정적인 뜻으로 정의한다. 아니면 말고는 언론계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용어다. 오보를 자주 내는 기자를 일컫는다. 사실 확인을 철저히 해야 할 기자에게 아니면 말고 식 취재는 절대 해서는 안 될 무책임한 일이다. 언론사마다 현장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출고 전에 수차례 확인하고 검증하는 ‘게이트 키핑’ 과정을 두는 것은 아니면 말고를 막으려는 조치다.경기 김포시를 서울에 편입하겠다는 ‘메가시티 서울’은 대표적인 아니면 말고 식 발상이다. 편입을 당론으로 정해 추진키로 했다는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발표는 전격적이었다. 김... -
한국이 망해가고 있다는 ‘합계출산율 0.7명’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남녀 임금 격차를 연구해온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돌아갔다. 골딘 교수는 수상 소식이 알려진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1분기) 0.86명인 것을 잘 안다”고 말해 한국 내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한국 기자들이 “여성의 일·가정 양립이 한국 내 저출산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느냐”고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남녀 임금 불평등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6월 발표한 ‘2023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는 여성이 남성과 같은 경제적 능력을 확보하는 데 169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이슬란드 여성은 전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남성과 가장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남성의 91.2% 수준이었다. 여성과 남성의 격차가 20% 이내인 나라는 146개국 가운데 8개국뿐이었다. 한국은 108위로 하위권이었다.미국은 1963년 ‘동일임금법(Equal Pa... -
불평등 방치한 국가의 책임과 재정건전성
‘계층 간 갈등을 심화시켜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질 수 있다.’ 양극화나 불평등에 관한 경제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최근 사회불만 범죄가 끊이지 않는 걸 보면 경제면에서 접했던 내용이 현실화하고 있다. 성남 서현역과 서울 신림동 흉기난동뿐 아니라 며칠 전에는 7층 건물 옥상에서 아래로 벽돌과 나무토막을 던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사회에 대한 불만이 쌓여 범행을 저질렀다는 공통점이 있다.2021년 선진국 그룹에 편입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이래 57년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된 사례는 한국이 처음이었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그해 미국 여론조사업체 퓨 리서치센터가 17개 선진국 성인 1만9000명을 상대로 ‘무엇이 인생을 의미 있게 하는가’를 조사했다. 한국은 ‘물질적 풍요’를 1순위로 꼽았고, 2위는 ‘건강’, 3위는 ‘가족’이었다. ‘가족’이 1순위였던 14개국 사람... -
한경협 됐다고 정경유착 사라질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기업 반열에 오르는 것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삼성그룹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과 몇몇 기업인이 1961년 설립했는데, 박정희 정부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당시 10개 남짓이었던 전경련 회원사는 2016년 600개를 웃돌 정도로 팽창했다. 전경련이 22일 임시총회를 열고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이름을 바꿨다. 새 회장을 선임하면서 윤리헌장도 발표했다.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한경협이 흡수 통합해 글로벌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전경련에는 주로 대기업 회원사를 대상으로 돈을 모금하는 창구 역할을 했던 어두운 과거가 있다. 과거 군사정권의 돈줄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기업들은 돈을 주고 특혜를 샀다. 결국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 때 실체가 여실히 드러났다. 정경유착의 고리이자 헌법질서를 유린한 범죄집단이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2017년 삼성과 현대, SK... -
실익 없는 아시아나 합병, ‘플랜B’가 필요하다
최근 TV 채널마다 해외여행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한동안 해외에 나가지 못한 이들이 나라 밖 여행 계획을 짜도록 유혹한다. 한국관광공사 출입국 통계를 보면 올해 1~5월 해외 출국자는 일평균 5만4037명이다. 해외여행객이 가장 적었던 2021년 같은 기간(일평균 2484명)에 비해 20배 넘게 폭증했다. 코로나 팬데믹 전인 2019년(8만2861명) 수준에는 이르지 않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내 2위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은 호황과 동떨어진 채 크고 작은 사고에 시달리고 있다. 며칠 전 미국 시애틀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려던 여객기에 결함이 발생해 출발이 약 19시간 지연됐다. 기내식에서 이물질이 나오고 비행 도중 비상구 문이 열리기도 했다. 조종사노동조합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했다가 가까스로 잠정합의했다.2020년 11월 대한항공과의 합병 발표 이후 아시아나는 수년째 경쟁력 약화에 시달리고 있다. 아시아나가 보유한 항공기는 2019년 85대에서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