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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을 즉각 체포하라
전봉준농민투쟁단의 마음 받아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이 12월31일과 1월1일, 윤석열 관저 앞에서 1박2일 밤샘 농성을 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신년의 첫해가 오르는 1월1일 새벽 6시 그의 관저가 있는 매봉산 신년 산행을 계획했습니다. 헌법재판소, 공수처, 국가수사본부 등 헌법기관들의 소환과 출석통지서도 받지 않는 ‘수취인 불명’의 내란 수괴가 정말 그곳에 있는지 확인할 참이었습니다. 전체 주권자의 명령으로 붙잡아 헌법기관에 인도해 주고 싶은 마음들이었습니다. 한반도 전체 민중·시민·노동자·소수자들의 피와 생명을 대가로 신종 군부정권을 세우려 했던 극악한 자를 즉시 체포, 구속하지 않고 올해를 넘기려는 이 국가와 정부의 책임을 묻고 싶었습니다. 그 당연한 헌정의 집행을 지연시키고 방해하는 ‘내란의힘, 국민의짐’을 포함한 모든 기구나 기관은 내란 종사·연장·지속 업무에 가담한 내란 공동공모정범이라고 외칠 참이었습니다. 문학인 1100인 선언, 영화인 6700명 선언, 음악인 2000인 선... -
박정혜·소현숙 힘내라
암 투병 김진숙은 박문진과 함께160㎞ 걸어 두 노동자를 껴안았다이 추운 겨울의 고난과 투쟁에함께하려는 걸음들이 분주하다춥다. 며칠 전엔 폭설이 내렸다. 이런 날씨에 오늘로 330일째 고공농성 중인 사람들이 있다.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에 올라가 있는 박정혜(39)·소현숙(42) 두 여성 노동자다. LCD 편광 필름을 생산하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2003년 구미4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일본의 ‘니토덴코’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다. 알짜 기업으로 18년 동안 17조원을 벌었다. 그간 한국 정부로부터 토지 무상임대, 법인세와 취득세 감면 등 각종 혜택을 받아왔다. 그러던 2022년 10월4일, 공장에 큰불이 났다. 하지만 1300억원에 이르는 화재보험금을 받는다니 모두가 한숨을 놓았다. 그러나 회사는 생산물량을 한국 내 자회사인 평택 한국니토옵티칼로 모두 옮긴 후 200여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을 내쫓았다. 희망퇴직이라 했지만 강제해고와 다름없었다... -
다시, 연대와 희망을 노래한다
‘청계천 8가’의 가수 손현숙은 지난해에 암태도 소작쟁의 100주년을 기억하는 문화제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가수 안계섭은 10여년째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청와대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해왔습니다. 이사 전 그의 청운동 녹음실은 청와대 앞에서 노숙하던 이들의 쉼터 겸 물품창고 역할을 했습니다. 류금신 가수는 ‘단결투쟁가’ ‘희망의 노래’ 등을 부르던 1988년 ‘노동자노래단’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거리에 서고 있습니다. ‘노동자노래단’은 김호철, 윤민석 등이 함께했습니다. 2013년 “추억의 노래가 아닌, 여전히 투쟁의 자리에서 불러지는 위로와 공감의 노래, 힘이 필요한 곳에 주먹 불끈 쥐고 싸울 의지를 만들어주는 노래, 그리고 지지 말고 싸워서 되찾아야 할 많은 것들 중에 우리의 노래가 있음을 새기며 활동하겠다”는 마음으로 결성된 ‘노래로 물들다’의 지민주, 이혜규, 김영희 가수 등은 오늘도 저항의 노래, 연대의 노래가 필요한 곳을 눈여겨 찾아가고 있습니다. 1999년 백... -
김남주 30주기 ‘해남집회’를 다녀와서
“선생님, 저 잘했죠. 칭찬해주세요.”2011년 겨울이었다. 희망버스 기획자라는 표적이 되어 수배생활을 마치고 부산구치소 7上1, 0.68평짜리 독방에 갇힌 첫날이었다. ‘철커덩’ 육중한 철문을 잠근 간수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쯤 나도 모르게 김남주 선생님께 독백처럼 건넨 인사였다. 이런 독방에서 9년3개월을 사셨을 선생님의 삶 앞에 조금은 부끄럽지 않고, 칭찬받고 싶은 날이었다. 선생님은 이 감옥이 “팔과 머리의 긴장이 잠시 쉬었다 가는 휴식처이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독서실이고 정신의 연병장”(‘정치범들’ 중)이라고 했다. 나는 이곳에서 어떤 꿈을 키워나가야 할까. 내심 꿈에 부풀기도 했던 날이었다.김남주 선생은 내 삶의 이정표그해 6차에 걸쳐 한진중공업 희망버스가 운행되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매회 1만여명에 이르는 공권력을 투입하고 경찰 댓글부대를 운영하는 등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희망버스를 막으려 했지만 자발적 연대자들로 이뤄진 희망버스는 멈추지도 타협... -
이번 희망버스는 ‘아리셀’로 간다
8월17일 희망버스가 다시 출발한다. 이번엔 화성시 전곡산업단지에 있는 리튬이온배터리업체 아리셀 참사 현장이다. 6월24일 대형폭발사고가 일어나 중국 동포노동자 17명, 한국 노동자 5명, 라오스 이주노동자 1명 포함 총 스물세 분이 사망했다. 충북인뉴스 기자 최현주님 사연은 가슴 아팠다. 얼마 전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특집기사 외에도 줄기차게 이태원 참사와 오송 참사, 그리고 경기도 내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 기사 등을 보도해 주던 참 고마운 분이었다. 그의 남편 김병철님도 사망했다. 아리셀의 연구소장이던 그는 폭발사고가 난 3동으로 사람들을 구하러 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평소 현장에서 이주노동자 등을 챙겨 간식과 도시락을 나눠 먹던 이였다고 한다.우리의 민낯 보여준 진상규명 과정한국에 온 지 20년이 된 중국 동포노동자 채성범 선생님은 따님을 잃었다. 13년 전 그가 오게 했다. 건물 외벽에 대리석을 붙이는 건설일을 하다 떨어져 죽을 뻔한 후 직종... -
이게 나라냐고, 다시 외칠 수밖에 없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며칠 동안 부들부들 떨린다. 참담하다. 지난 7월4일이었다. ‘용호성’이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누구인가? 박근혜 대통령 집권 초인 2013년 3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내 문화체육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재직하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인물이다.그는 2013년 국립극단에서 공연 예정이던 <개구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화하고, 좌파 문화예술인이 연출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공연 자체를 무산시킨 당시 사건에 관여했음이 밝혀져 있다. 2014년엔 영화 <변호인>을 파리 한국영화제 출품 작품에서 배제토록 지시했다. 같은 해 3월경엔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 교문수석 모철민, 문체비서관 김소영 등으로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총 19명이 좌파 성향이니 위촉을 배제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아 문체부 담당 사무관에게 여러 수단을 강구해 배제 대... -
‘키다리 아저씨’ 김판수의 노래 이야기
수재 소리를 들으며 1961년 서울대 영문과에 입학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친구의 삼촌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국제법 전공 박노수 교수로부터 친구와 함께 유학을 오라는 멋진 제안을 받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보릿고개조차 힘겹게 넘던 때, 국경을 넘어 유학을 가는 것은 조선시대 박지원이 사절단에 뽑혀 청나라 열하를 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가자.” 청년은 학교 입학 후 1964년 ‘한일협정 반대 학생 동조 단식’에 참여하는 등 나름 의협심이 강했습니다. 박정희 군부독재에 비판적 인식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싶은 기대와 용기도 충만했습니다. 청년은 케임브리지대에서 1년 수학 후 박노수 교수 추천을 받아 덴마크 코펜하겐의 국제학교 ‘인터내셔널 피플스 칼리지(IPC)’ 영화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핀란드에서 온 눈동자가 지중해처럼 푸른 소녀 에텔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20대는 무엇을 해도 좋고 아름... -
여섯 박스의 경옥고
지난주 금요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에서 ‘최인기를 위한 꿀밥’ 자리를 가졌다. 얼마 전 1년2개월의 감옥살이를 마친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최인기를 위로하는 소박한 자리였다. 2023년 2월10일 그와 그의 동료 다섯 명이 법정 구속됐을 때 이 지면에 ‘감옥만 여덟 번째인 최인기를 위하여’라는 글을 썼다. 구속 사유가 근 10여년 전인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강남구청의 폭력적인 노점상 단속에 항의해 연대했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해 연대한 일로 10여년간 경찰, 검찰, 법원에 끌려다녔으면 충분한 죗값을 받은 것과 같은데 실형이라니. 감옥 안에서 그가 겪은 이야기도 충격적이었다. 여전히 과밀수용이 이뤄지고 있는데, 나날이 증가하는 조현병 등 정신질환 수용수들도 별도의 의료조치 없이 혼거방에 함께 수용하면서 힘겹고 험악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양심수’들 역시 불평불만만 많은 ‘앙심수’ 정도로 취급받으며 인권유린을 겪어야 했... -
‘바람의 세월’, 그 10년에 대하여
<바람의 세월>은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다큐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학생이었던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 선생은 그해 8월8일부터 캠코더를 들고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일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4·16TV’의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보관한 영상자료만 5000여개, 50테라바이트에 이른다. 편당 1~1.5기가바이트인 영화로 치면 5000여편. 하루도 빼지 않고 8시간씩 4년여를 쉼 없이 찍어야 가능한 분량이다. 처음 뵐 때 검었던 머리는 세어 이제는 은빛이다. 그는 지금도 해마다 몇번씩 딸이 물길 따라 주검으로 돌아왔던 동거차도를 찾아간다.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헌법 34조 6항) 의무를 지닌 이 국가와 정부가 모두 해야 했을 일이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등”을 약속했던 이 국가와 정부가 해야 했을 일이다. 그러나 그 무엇도 이뤄지지 않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진상조사위원회는 정치권에 의해 ... -
내 마음속 ‘파블로 네루다 문학학교’
청소년을 위한 파블로 네루다 평전을 쓴 적이 있다. 안타깝지만 출간은 아직 못했다. 세계의 혁명가와 위인들에 대한 평전을 제안받고는 두말없이 나는 파블로 네루다를 써보겠다 했다. 사랑과 혁명의 시인으로 동시에 불리는 그를 꼭 한번은 사숙해 보고 싶었다. 더불어 그의 시와 삶을 좇다보면 자연스레 근대 남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공부가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그는 처음엔 사랑의 시인으로 시작했다. 그의 첫 시집인 <스무 개의 사랑노래와 한 개의 절망노래>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는 사랑에 관한 최고의 작품이다. 하지만 네루다는 일찍 얻은 명성에 안주하지 않았다. 근원적인 외로움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외로움을 떨쳐보기 위해 머나먼 아시아로 새로움을 찾아 떠났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얀마의 랑군과 실론섬 그리고 싱가포르였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더 깊은 소외의 늪을 경험하게 된다. 기묘하고 신비로운 의식들과 문화, 종교들. 거기에 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