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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 전체 기사 28
  • [김숨의 위대한 이웃]‘노동’하는 인간, 안규백씨
    ‘노동’하는 인간, 안규백씨

    ‘너 왜 거기에 있어?’해가 없다. 바람이 없다. 의자가 없다. 사람이 없다. 내 앞으로 살과 피가 뜯어 먹히고 뼈만 남겨진 짐승 같은 철 덩어리가 흐른다. 심장 없이, 발 없이, 온기 없이 태어난 철 덩어리에 매달려 나는 2시간째 흘러간다. 내가 인간임을 망각해버릴 것 같은 공포감이 심장을 조여오고, 방광이 터질 것 같다.‘내가 왜 여기에 있지?’심장을 빼앗기지 않으려, 온기를 빼앗기지 않으려, 손을 빼앗기지 않으려, 눈물을 빼앗기지 않으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흘러갔다. 사람으로 보이려, 사람으로 존재하려.사람이 사람을 본다. 사람이 사람을 존재하게 한다. 사람 사이에는 사람이 있다.조립 2공장(한국지엠 부평2공장). 흐르는 컨베이어 라인 위에서 15년이 흘렀다. 노동은 내가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게 해줬다.모든 인간에게는 선함이 있다고 믿는 나, 노동에 중독되지 않으려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는 나, 노동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

    2025.11.19 21:49

  • [김숨의 위대한 이웃]플라멩코 여인, 박재한씨
    플라멩코 여인, 박재한씨

    와인색 댄스화. 7월의 샐비어를 닮은 치마. 화려한 화장, 빨간 귀고리와 머리 장식. 양손에 들린 캐스터네츠. 평소에 할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 그리고 무대가 있다. 온전히 그녀를 위한 무대.무대로 나와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우아하게, 공작이 날갯짓을 하듯 쳐드는 그녀. ‘미 세비야나’가 플라멩코 기타 반주와 함께 흐른다. 그녀의 얼굴에 순간 환희에 찬 웃음이 번지는 걸 그녀만 알지 못한다.그녀는 자신의 표정을 본 적 없다. 선천성 시각장애인인 그녀는 불빛 정도만 감지한다. 가까이 있는 글씨, 얼굴은 윤곽만 흐릿하게 보이고, 아예 안 보이기도 한다.그녀가 본 적 없는 춤. 그녀가 추면서도 보지 못하는 춤. 플라멩코.“난 내 몸이 취하고 있는 포즈, 플라멩코의 동작들, 내 표정, 내 손 움직임, 내 발 움직임을 볼 수 없어. 플라멩코를 추는 내 모습을 보고 싶어. 거울을 통해서 보지 못하는 게 가장 속상해. 내가 플라멩코를 ...

    2025.10.22 21:15

  • [김숨의 위대한 이웃]멀리 있는 아빠, 알리
    멀리 있는 아빠, 알리

    나는 ‘사람’으로 왔다.나는 하늘 아래에 있다. 그리고 땅 위에 서 있다. ‘사람’으로 온 모든 존재가 그렇듯. 나는 북적거리는 저녁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내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아내의 품에는 6월에 태어난 딸이 안겨 있다.딸이 태어날 때 나는 멀리 있었다. 멀리, 이곳에.3700여㎞ 떨어진 이곳에서 내 첫아이인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나 자신이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감격에 휩싸여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 이름과 아내의 이름에서 글자를 하나씩 따 ‘하니’라는 이름을 딸에게 지어주었다.아내의 위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다. 한국말로 의사에게 약 처방을 받고 마트에 들러, 달걀 한 판과 마늘 한 주먹을 샀다. 나는 손가락으로 아내의 배를 가리키며 ‘위, 위, 아파요’ 하고 설명했다.이곳은 어딜까. 13년 동안 아무도 내게 이곳이 어딘지 말해주지 않았다. 휴대전화 대리점, 빵집, 노래방, 단란주점, 직업소개소, 복권 판매점,...

    2025.09.17 20:46

  • [김숨의 위대한 이웃]돼지네 옷집 박경자씨
    돼지네 옷집 박경자씨

    “내 생애 짓는 마지막 옷? 내 옷 지을 것 같아. 50년 양장점을 했어도 내 맘에 드는 옷감 떠다가 내 옷을 지어 입은 적 없어. 다른 사람들 옷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으로 만들어 입었어.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내가 지었지. 하얀색 블라우스하고 바지. 난 하얀색 옷이 좋아. 나이 들어서 하얀색 옷 입으면 더 나이 들어 보인다는데,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새 옷 지어 입고 친구들 만나러 가지. 맛있는 것도 사 먹고.”일요일 밤, 박경자씨(1950년생)는 혼자 재봉틀 앞에 앉아 있다. 그녀의 손에는 아흔 살 손님이 수선을 맡긴 셔츠와 바늘이 들려 있다. 셔츠를 붙들고 앉아 하나부터 열까지 손보고 있다. 뜯고, 접고, 잇고, 박고.아들 돌 때 장만한 재봉틀의 나이는 마흔넷. 그동안 그녀는 재봉틀을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고장 나면 그때그때 고쳐서 썼다. 모터는 두 번 갈았다. “고마워, 우리 식구 살게 해줘서.” 일심동체인 재봉틀에게 그녀는 소리 내 고마움을 표현하곤 한...

    2025.08.20 20:43

  • [김숨의 위대한 이웃]‘있는’ 최해경씨
    ‘있는’ 최해경씨

    ‘해경, 넌 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니?’나는 날 모르는 것 같다. 내가 날 속일 때도 있는 것 같고, 내가 날 받아들이지 않으려 고집을 부릴 때도, 때로는 나에 대한 환상에 휩싸여 허우적거릴 때도 있다. 요즘 나는 날 알고 싶어서 나에게 질문을 자주 한다.‘해경, 넌 누구니?’나는 마흔두 살 여성(1982년생). 서울에서 나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고 있는 1인 가정의 가장. H출판사의 문학팀 팀장, 농부의 딸. 시를 동경해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 덕분에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한 나. 그리고 문학책 편집자.대학교를 졸업하고 출판사의 문학 편집자가 됐다. 3월 하순이면 벚꽃이 개화하는 남쪽에서 태어나고 자란 난 홍대 인근 고시원을 얻어 서울살이라는 걸 무심코 시작했다. 고시원 방에서 3년을 살았다. 그 시절을 지나고 나서야 고시원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깨닫고는 뒤늦게 스스로가 안쓰러웠다. 그냥 견뎌야 하는 줄 알았다. 서울이라는 곳...

    2025.07.23 20:49

  • [김숨의 위대한 이웃]미용사 정영희씨
    미용사 정영희씨

    “왜? 난 ‘왜’를 빼고 사는 사람이야. 왜 살아? 그런 거 생각 안 해봤어. 왜 죽어야 해? 그것도 생각 안 해.” 배우 김지미의 미모 못지않은 미모의 소유자, 정영희씨.“후회? 모르겠네. 후회하는 거 없는데. 후회 같은 거 안 하고 살아. 나는 그냥 그날 하루 열심히 살아. 그날 안 좋았던 일 있으면 그날 가기 전에 버리고 다음날 새로 시작해.”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그녀의 직업은 미용사.“행복? 지금이 가장 행복해. 젊어지고 싶은 마음? 눈곱만큼도 없어. 젊을 때로 돌아가서 해보고 싶은 거? 그런 것 없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한 그녀의 나이는 75세(1950년생).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까.“아침에 ‘수영 가야지’ 하고 일어나. 40년 수영했어. 매일 자유형으로 25m를 10바퀴 왕복해. 아침에 일어나서 무의미하게, 무기력하게 있는 게 싫더라고. 그래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수영을 만났어.” 미용실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그녀의 앞,...

    2025.06.25 21:24

  • [김숨의 위대한 이웃]아름다운 뚜리앙
    아름다운 뚜리앙

    8개월여 전. 뚜리앙은 아침을 먹고 집 문을 나선다. 곱슬곱슬한 머리에, 유색인이지만 피부가 희고 고운 편이며, 생글생글 웃고 있는 눈동자는 높이 매달린 열매처럼 또렷하고 부드러우며 맑다. 그의 나이 27세.아침 8시경, 모곡 마을의 새들이 운다.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북쪽으로 200㎞ 떨어진 산간마을 모곡. 최고급의 루비가 생산되는 곳. 지구에서 소비되는 루비의 60%가 그곳에서 나온다. 모곡 마을이 시작된 건 지금으로부터 800년 전. 미얀마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샨족 사냥꾼 셋이 길을 잃고 헤매다 루비를 발견한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마을이 만들어졌다.웅장한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모곡에서 태어나고 자란 뚜리앙이 집을 떠나 날아가려는 곳은 한국. 엄마는 마당까지 아들을 따라 나온다. 다민족 국가인 미얀마에는 135개 이상의 크고 작은 종족이 존재한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네팔인의 피가 흐르지만, 그는 소수민족 중 하나인 노산족으로...

    2025.05.28 20:53

  • [김숨의 위대한 이웃]일본군 ‘위안부’ 활동가 김동희씨
    일본군 ‘위안부’ 활동가 김동희씨

    22세 때 우연히 참가한 수요시위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났다. 29세에 활동가가 돼, 매일 활동가로 살다 45세에 스톱. 그즈음 동고동락했던 활동가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공황장애가 왔다. 할머니들 곁에서 희로애락을 나누며 살았던 시간이 부정당하고 의심받고 있었다. 활동가가 아닌 나는 상상조차 한 적 없던 내 청춘을 통째로 상실한 듯한 슬픔을 느꼈다. 불면증약과 수면제, 항우울제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던 날들을 살아내고 49세에 다시 활동가로 돌아온 내게 누군가 물었다. “(활동가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요?”“내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 있으면 손잡아주며 살고 싶어요.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는 성소수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 그런 곳, 소외되고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그냥 함께 있고 싶어요. ”나는 어쩌다 활동가가 됐을까?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불평등과 차별이 없고, 골고루 복되고 평화로운 나라다. 그런데 내가...

    2025.04.30 20:53

  • [김숨의 위대한 이웃]밥하는 수녀
    밥하는 수녀

    그녀를 매일 묵상하게 하는 것은 ‘밥’.그녀를 매일 실손하게(버리고 잃어버리게) 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두 발을 땅으로 끌어내리는 최고의 장소는 ‘부엌’.월화수목금토일, 아침점심저녁. 그녀는 부엌데기가 돼 종일 부엌에 깃들여 살며 밥을 한다.밥을 하는 내내 소란스럽게 돌아가던 환풍기가 꺼지고, 고요하고 차분해진 가운데 삼백 사람이 먹을 한 끼를 내보내며 그녀는 새삼스레 감탄한다. “오늘도 기적이 탄생했네!” 밥, 국, 반찬. 한 끼가 완성돼서 나가는 걸 보고 있으면 그녀는 정말 기적이 탄생한 것 같다.매일 세 끼의 기적을, 부엌에서 체험하는 그녀. 25년을 부엌에서 밥하는 수녀로 살았다. ‘밥은 생명’ ‘누군가의 입에 밥을 넣어주는 것은 생명을 넣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10여년 전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밥하는 일을, 일로 대했다.밥이 있어야 그다음이 있다. 달리 말하자면, 그다음이 있으려면 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밥을 함부...

    2025.04.02 21:34

  • [김숨의 위대한 이웃]빗자루와 남기호씨
    빗자루와 남기호씨

    새벽에 빗자루질을 하려 6수를 했다. 5번 떨어지고 6번 만에 붙었다. 32세 때 첫 도전을 했다. 6명 뽑는데 105명 남짓이 지원했다. 시험 과목은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배근력, 멀리뛰기.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는 둘 다 1분 62개 이상. 배근력은 180㎏을 당겨야 한다. 만점이 2.75m인 멀리뛰기는 점수제로. 8개월간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헬스장에서 살며 홀로 혹독한 훈련을 했다. 체력 시험 통과. 그러나 결과는 불합격. 재수를 선택했다. 1982년생인 그때 내 나이 32세, 딸이 3세. 아내와 딸을 위해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 직업이 절실히 필요했다. 재수가 3수, 4수, 5수로 이어졌다.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다. 5수 도전도 실패.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네.’ 울산이 고향인 아내가 내게 말했다. “울산으로 내려갈까? 조선소에 취직하는 건 어때?” 나는 6수를 결심했다. 36세. 기적이 일어났다. 그토록 바라던 환경공무관이 된 날, 나는...

    2025.03.05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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