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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에게 보내는 답글
최근에 나눈 작은 대화를 하나 소개한다. 알게 된 지 어언 10년이 넘은 친구이자 오랜 글벗인 미국 보스턴 대학 리치 연구소 소장인 안토니 우셀라(Antoni Urcelor S J) 신부가 지난 6월에 방한하여 일본의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대한 강연을 숭실대에서 한 적이 있다. 강연에서 내가 흥미롭게 들은 것은, 일본의 경우에 에도 막부가 불교를 이용해 그리스도교를 박해했고 그리스도교와 유교가 아니라 신도 사상과 불교의 충돌이 핵심이었다는 대목이었다. 이 대목이 흥미로운 것은, 한·중·일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유교의 성격이, 특히 조선 유교의 특징이 그리스도교의 박해 과정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강연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유교에 대한 학술적인 관심이 높았지만, 그 관심이 조선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생활세계에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를 보여주는 방증이 조선의 그리스도교 박해라고 한다. 요컨대, 윤지충 바로오가 제사를 거부한 사건은 그리스도교... -
인구절벽을 보는 또 다른 시선에 대하여
역대 한국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 중에 가장 성공한 것이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인구정책일 것이다. 그 목표치는 이미 초과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인구가 국가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었다. 요컨대, 인구문제는 로마 역사의 초기부터 정치의 핵심적인 고민이었다. 리비우스의 말이다. “인구수를 늘릴 목적으로 로물루스는 국가를 건국했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전통적인 수법을 썼다. (…) 지금은 성벽으로 둘러싸였지만, 구원을 찾아 카피톨리움 언덕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위해 성스러운 숲 사이에 피난소를 열었다. 이곳으로 인근의 지역에서 자유인과 노예, 온갖 무리의 사람이 새로운 삶을 찾아 도망쳐왔다. 이는 로물루스가 국력을 키우기 위해 우선적으로 행한 일이었다.”(<로마건국사> 제1권 8~9장) 인용은 로마라는 국가의 개방성을 잘 보여준다. 로마의 개방성은 처음부터 인구문제와 직결되어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타자에 대한 인식의... -
사랑은 사랑일 뿐이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다. 사랑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을 하나 소개하겠다. 아풀레이우스(서기 2세기)가 쓴 <황금 당나귀>라는 소설이다. 루키우스라는 젊은이가 마법을 좋아하다가 실수로 당나귀로 변신하여 고생하다 사람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여느 술집에서 들을 수 있는 온갖 음담패설들을 모아 놓은 이야기다. 서양 고대의 로마식 ‘야동물의 끝판왕’이다. 온갖 애정 행각이 나열되어 있음에도 작품의 밑바탕에는 순수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는 작가의 숨은 생각이 깔려 있다. 작품은 사랑이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가 목적임을 강조한다. 작품은 육욕에 봉사하는 사랑은 채워지면 곧 비워지는 욕구이고, 사랑을 이용해서 재물을 획득하는 것은 결핍의 가련한 욕심이며, 사랑을 이용해서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려는 것도 망가진 허영에 뿌리내린 욕망의 허망한 끝자락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특히 <큐피드와 프시케의 사... -
낭만이 사라진 이유에 대하여
낭만이 떠난 지도 오래되었다. 격정도 함께 떠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비가 와도,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을 찾지 않는다. 낭만은 어디로 떠났을까? 여러 해명이 가능하다. ‘먹고사니즘’ 탓일 수도 있고 ‘귀차니즘’ 탓일 수도 있다. 혹자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견디며 하루를 버티고 삶을 이어가고, 혹자는 ‘소확행’의 즐거움으로 하루를 꾸미며 인생을 장식한다. 소위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다. 뭔가 부족해 보인다. 이게 낭만이 사라진 시대의 풍경일 것이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허전한 시대 풍조가 그 한 이유일 것이다. 물론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말이다.“숭고는 설득이 아니라 황홀로 청중을 사로잡네. 경이는 모든 것을 뒤흔들고 설득과 즐거움도 항상 압도하네. 설득은 인간적인 재량에 달려 있지만, 저 위대함은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청중을 압도하네. 발견기술과 소재배치의 뛰어남은 한두 구절에서는 드러나지 않네. 텍스트 ... -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작은 전시회(20일~8월16일 서울대 중앙도서관)를 하나 소개한다. 전시회의 제목은 “ut poema pictura, ut pictura poema”이다. “그림은 이야기처럼, 이야기는 그림처럼”으로 번역된다. “그림 그리는 것처럼 이야기를(ut poiesis pictura, <시학> 362행)” 지으라는 호라티우스(기원전 65~8년)의 말을 약간 바꾼 것이다. 전시회를 준비한 학생들은 “그림에서는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에서는 그림을 보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아 ‘poiesis’를 ‘poema’로 바꾸었다고 한다. 내 생각에, 이 바꿈이 더 재미있다. 이 말의 원래 주인은 호라티우스가 아니고 시모니데스(기원전 556~468년)이다. 그의 말이다. “이야기는 말하는 그림이고, 그림은 침묵하는 이야기다(poema pictura loquens, pictura poema silens).” (플루타르코스 <아테네인들의 영광> 3권... -
푸르름에 담긴 슬픈 이야기
눈이 부시게 푸른 날이다. 자연이 고마운 나날이다. 이렇게 고마움을 제공하는 신록의 뒷면에는 이런 슬픈 이야기도 숨어 있다고 한다. 로마의 이야기꾼 오비디우스의 이야기다. 어느 날, 아폴로는 다프네를 마주치게 된다. 황금 화살을 맞은 아폴로는 사랑의 화염으로 불타오른다. 납 화살을 맞은 다프네는 아폴로의 사랑을 피해 달아난다.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쪽에서는 좋은데, 저쪽에서 싫어하는 상황을 말이다. 이런 상황에 처할수록, 덤벼드는 마음은 더욱 불타오르고 도망치는 사람의 마음은 더욱 얼어붙는다. 아폴로는 손가락, 어깨, 하얀 팔에 감탄하고, 드러나지 않은 부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를 상상하면서 다프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다프네는 바람보다 더 빠르게 도망쳤다. 다프네를 쫓는 아폴로의 말이다.“모든 약초들의 효력이 나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아아, 사랑을 치료해 줄 약초는 어디에도 없구나.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나의 의술도 그 주인인 나에게는 쓸모가 ... -
적은 소탕 대상, 경쟁자는 소통 상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대해 말들이 들려온다. 안타까운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는 짚고 가자. 선거는 전쟁이 아니다. 물론 서로 다투는 과정에서 전쟁에 가까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럼에도 정치의 경쟁자가 전쟁의 적군은 아니다. 그는 어쩌면 직장 ‘동료’이고, 고향의 ‘벗’이며, 학교 ‘동창’이고, 생각의 ‘동지’이자 이익의 ‘동반자’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정치의 경쟁자도 공동체의 재난과 위기에는 서로 손을 맞잡고 힘을 합해야 하는 공동체의 친구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선거는 전쟁과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적은 소탕의 대상이지만, 경쟁자는 소통의 상대이다.선거는 끝났다. 하지만 사정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선거 과정에서 작동했던 언어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전쟁 영웅인 오디세우스는 “적군에게는 쓰라림, 친구에게는 달콤함”(<오디세이아> 6권 184행)을 주라는 명언을 남겼다. 틀린 ... -
막말보다는 웃음이 더 효과적이다
막말은 사실 아무런 생각 없이 하는 말이 아니다. 상대방을 공격함에 나름 효과가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말이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자기편의 결집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다급한 처지를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그리 권장할 만한 언행은 아니다. 또한 막말을 하는 사람을 보기 흉하게 만들기에 전술적으로도 그리 추천할 만한 것은 아니다. 막말보다는 웃음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웃음을 일으키는 것이 연설가의 일임은 당연하네. 호의를 얻고자 하는 이에게 호감이 생기게 하는 것이 실은 즐거움이네. 어떤 사람이든 대개 답변하는 사람이 내놓은 한 단어에 담긴 예리함에 감탄한다네. 물론 때때로 날카롭게 공격하는 사람의 한마디도 그렇다네. 웃음은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저지하며 가볍게 만들고 두렵게 만들며 반박한다네. 또한 연설가를 세련되고 교육을 잘 받았고 기지가 넘치는 사람으로 드러내 준다네. 특히 엄중함과 가혹함을 부드럽게 만들며, 종종 아주... -
때론 양방향으로 말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말 한마디로 정치생명이 좌우되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한다는 말을 실감하는 시기이다. 아무튼 말의 힘이 가진 양면성을 현실적으로 뼈저리게 체감한 사람이 키케로였다. 오죽하면 “말의 저울(pondus verbi)”을 혀에 달고, “양방향으로 말하는(in utramque partem dicere)” 연습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사실 이 능력을 연마하는 것이 연설가의 고유한 소임이라 하겠네. 하지만 이를 연마하는 일은 이미 철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네. (…) 어떤 주제가 주어지든지, 그들은 양방향으로 말을 아주 풍부하게 하곤 했다네.”(키케로 <연설가에 대하여> 제1권 263절)소위 경영학에서 말하는 “SWOT” 분석의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키케로가 말하는 ‘양방향으로 말하는 방식’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아무 말이나 나오는 대로 하지 않고, 내편과 네편의 강점과 약점과 기회와 위기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 -
잠시 생각을 멈추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말이 난무하는 시기이다. 한편으로 특정 경험, 특정 정보, 특정 이념, 특정 세력, 특정 정파, 특정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행태인 ‘반지성주의’가 사람들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어 놓고, 다른 한편으로 소위 진영론과 음모론이 결합하여 사람들을 유혹하고 강요하는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는 헬레니즘 철학자들이 권했던 ‘판단 중지(epoche)’도 도움이 된다. 가끔은 판단을 멈추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판단 중지’란 헬레니즘 시대에 유행했던 회의주의 철학의 핵심적인 수행 방식이었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을 요구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우 높은 수준의 계산과 통찰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회의주의 철학자 피론(기원전 360~270)의 말이다. “회의(懷疑)는 현상과 판단 가운데에서 서로 반대되는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든 끌어내어 세울 수 있는 능력이다. 서로 맞서는 사태와 논증의 특성을 표현하는 같은 무게를 저울질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