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매들은 이제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아짐들도 그 뒤를 따랐다. 내가 언니라 부르던 이들이 어느 순간 동네 할매가 되었다. 하기야 내가 할매 나이다. 일찍 결혼한 친구 중에는 손주를 두어 진짜 할매가 된 사람도 있다. 세월은 이렇게나 빠르다.오늘의 할매는 젊다. 순전히 내 기준으로. 나보다 열 살쯤 위려나? 그런데 십오 년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그이가 할매인 줄 알았다. 구십 도로 굽은 허리 탓이었다. 그이는 동네에 새로 이사 온 내가 싹싹하게 인사를 해도 잘 받아주지 않았다. 어디선가 구한 유모차를 보행기 대신 밀고 집과 논밭만 부지런히 오갔다. 동네 마실도 다니지 않았다. 체구도 자그만 양반이 보릿고개 있던 시절의 소처럼 잠시도 쉴 틈 없이 일만 했다. 일하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었다. 하도 경이로워 언젠가 걸음을 멈추고 오래도록 지켜본 적이 있다. 고추밭의 풀을 매는 그이의 동작이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부드럽고 ...
2025.02.27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