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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삿속’ 퐁피두 ‘맞장구’ 부산시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 구입 예산은 형편없다. 해마다 들쑥날쑥하지만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현대미술관조차 50억원 안팎이다. 지자체 산하 공립미술관들은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다. 많아야 10억원대이고 수억원에 불과한 곳도 적지 않다.이런 예산으론 어지간한 작품 한 점도 사기 어렵다. 2022년 기준 작품 구입비로 5억원이 편성된 부산시립미술관이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2억원에 팔린 김환기 작품 ‘05-Ⅳ-71#200 우주’를 소장하려면 무려 26년치 예산을 모아야 한다. 글로벌 미술관을 표방하지만 1만점이 조금 넘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90%가 국내 작품인 것도 ‘궁핍’과 무관하지 않다.기증 문화가 뒤처진 한국에선 소장품 구입 예산 대부분을 정부와 지자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원은 매우 박하다. 소장품의 문화적·역사적 가치에 대한 인식 빈약이 원인이지만, 지방정부는 곧잘 재정 부족을 내세운다. 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산광역시 씀... -
공항은 공항이고, 폭력은 폭력이다
강한 플래시를 얼굴에 쏘면 특수폭행죄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됐다. ‘변우석 과잉 경호 논란’이 화제가 되며 언론에서 나온 얘기다. 공항에서 경호원이 팬의 얼굴에 플래시를 발사하는 일은 그간 일상처럼 벌어져왔다. 한데 피해 대상이 대한항공 프레스티지 라운지 이용객과 일반인이 되니 전대미문의 사건처럼 다뤄지고 있다. 발생 단 5일 만에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질의를 받았고, 현재 경비업법 위반으로 관련자 4명이 입건됐다. 해당 경호업체 대표가 “경호원이 플래시를 비추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 인정하고 사과도 했다. 나는 이 온도 차가 너무나 얼떨떨하다. 심하게 밀쳐서 넘어뜨리고 폭언을 하는 ‘전통적인’ 팬 대상 폭력과 이번 사건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해당 경호원들은 플래시를 쐈을 뿐만 아니라, 권한 없이 통로를 막고 탑승권을 검사하는 중대한 업무방해 행위를 했다. 그러나 위력을 과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해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 -
나이
스포츠 중계에, 종종 전성기가 지난 선수가 그에 버금가는 실력을 선보일 때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말이 등장한다. 스포츠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노장의 활약 뒤에는 이 말이 붙곤 한다. 요즘 이 말은 처세의 한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동안이 강조되는 시대다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거 아냐”라는 말을 인사치레로 하는 경우도 있다. 내남없이 건강한 삶을 꿈꾸는 세상에서 이 말은 그만큼 값어치가 높은 축에 든다.나이를 거꾸로 먹진 않지만, 나이가 멈춰버린 여성이 있었다. 물론 현실에서의 일은 아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의 주인공 아델라인 보먼(블레이크 라이블리)은 100년째 29세를 살고 있다. 폭설이 내리던 날 그가 운전하던 차가 호수에 빠지고, 목숨은 건졌지만 아델라인은 그날 이후 더는 나이를 먹지 않았다. 처음엔 좋았다.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인가. 하지만 현실을 깨닫는 데... -
‘한국의 나오시마’가 나오려면
둘레 16㎞에 불과한 일본 세토(瀨戶) 내해의 작은 섬 ‘나오시마’(直島)는 1990년까지만 해도 폐기물로 뒤덮인 쓰레기 섬이었다. 구리제련소가 배출하는 아황산가스를 피해 주민들조차 떠나가던 황무지였다. 그런 그곳에 1987년부터 ‘예술’이라는 옷을 입혔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세계 최초의 지하미술관인 지추(地中)미술관을 비롯해 독특하고도 자연친화적인 미술관을 섬 곳곳에 세웠고 클로드 모네, 이우환, 쿠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 카렐 아펠, 데이비드 호크니와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앉혔다. 모두 장소 특정적인 건축물과 미술이었다.이후 나오시마는 전 세계에서 매해 수십만명이 방문하는 ‘예술의 성지’가 됐다. 빈집을 개조해 마을과 주민의 역사가 작품의 일부이도록 하고, 다양한 기획전과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통한 지속 가능의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시키자 200명에 불과했던 인구는 현재 약 40배 가까이 불어났다. 나오시마를 거느린 가가와현의 경제도 비약적으로 ... -
장벽
세상 도처에 장벽이 있다. 침략자를 막기 위한 장벽이 있는가 하면, 피아(彼我)를 구분하기 위한 장벽도 있다. 전자의 대표적 예가 우주에서도 보인다는(하지만 보이지 않는) 만리장성이다. 후자는 한때 냉전의 상징물이었으나 지금은 ‘기억’을 위해 일부 보존되고 있는 베를린 장벽이 대표적이다. 베를린 장벽이 상징성만 남았다면, 휴전선은 피아를 구분하는, 분단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 의지가 담긴 장벽도 있다. 네덜란드엔 암스테르담, 로테르담처럼 명칭 끝에 담(dam)이 붙는 곳이 많은데, 바다나 강의 범람을 막으려 댐을 설치한 도시들이다. 댐은 ‘막다’ ‘차단하다’ 뜻을 담은 중세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장벽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편이다. 적을 막는 일도, 피아를 구분하는 일도, 바다의 범람을 막는 일도 결국 삶을 위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장벽은 되레 삶을 파괴한다.이탈리아 작가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은 마음속에... -
예술에서의 ‘나’의 경험
돈 매클레인의 ‘빈센트(Vincent)’는 누구나 알고 있는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주제로 한 곡이다. 고흐의 작품을 기리기 위한 노래로, 고통 속 고독한 삶을 살았던 그의 생애를 담고 있다.내게 ‘빈센트’는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첫 계기였다. 감수성 예민하던 고등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이 불러준, 그 감미로운 목소리에 실려 귀로 전해지던 연민 어린 가사가 아니었다면 미술비평가로 살아가는 지금의 나는 아마 없었을지도 모른다.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간신히 구한 작업실에서 혼자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1980년대 말, 스스로의 선택에도 의문과 불안이 가시지 않던 당시 접한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은 막연함에서 벗어나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품게 한 내 인생의 두 번째 노래다.이후 내 삶에 그토록 짙은 영향을 미친 음악은 없다. 대신 숱한 미술작품이 일상을 채웠다. 학교까지 찾아... -
K팝 위기론이 나오는 이유
피아노 음계도 잘 못 짚는 내가 실용음악학원에 다니게 될 줄은 몰랐다. ‘K팝 칼럼니스트’라고 자기소개를 하고 있으니 기초 작곡 과정은 배워야 할 것 같았다. 직장 근처 가장 큰 지하철역으로 주소지를 설정하고 검색하니 수십곳이 나왔다. 그중 얼마나 많은 아이돌을 배출했는지 필사적으로 홍보하는 학원에 가보기로 했다. 아이돌을 많이 배출했다는 건 그만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췄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상담만 먼저 받아보려 했으나 수강생들이 ‘표정 연습’을 하는 전신거울이 비치된 작은 방, 곳곳에 붙은 기획사 내방 오디션 전단을 보고 바로 작곡 입문반에 등록했다. 작곡은 핑계이고 아이돌 지망생의 세계가 궁금했다. 입문반 월 수강료는 현직 작곡가 주 1회 수업에 50만원이었다. 가장 싼 코스였다. 댄스와 보컬을 기본으로 과목을 추가하고, 외국어 실력도 따로 쌓아야 하는 지망생들은 의대 입시에 버금가는 사교육비를 들이고 있을 것이다. 체계도, 교육도 과할 정도로 본격적이었다. 아이돌 출... -
MBTI
얼마 전부터 몇몇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너 T야?” 그들은 하나같이 내 대답을 듣기 전에 스스로 답한다. “T 맞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T(Thinking)형 인간이 되었다. 세상에나, 내가 진실과 사실에 관심이 많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심지어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는 걸 얼마 전에서야 알았다. 풍문으로 들은 T의 반대 성향은 F(Feeling)라는데, 사람과 관계에 관심이 많고, 공감 잘하고, 주관적 판단에 강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혈액형이나 별자리 등등으로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구분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당연히 MBTI 검사 역시 해보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T형 인간인지, 아니면 F형 인간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내게 ‘대문자 T’라는 명찰을 달아주었다.알베르 카뮈가 1942년 발표한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문제적 인물이다. 유일한 혈육인 엄마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무덤덤했다.... -
평범한 악인
묵직한 파장을 일으키는 영화가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유대계 영국인 조너선 글레이저가 감독·각본을 맡았다. 10여년 전 한국에도 출판된 <런던 필즈(London Fields)>의 저자 마틴 에이미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영화의 주인공 루돌프 회스는 나치 장교다. 아내 헤트비히를 포함한 가족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 사택에 거주한다. 이들의 집에는 아름답게 꾸민 정원과 온실, 수영장까지 딸려 있다. 그들 스스로 ‘낙원’이라 부르는 그곳에서 지인들과 평화롭게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파티를 연다.사택 맞은편 수용소는 죽음의 공간이다. 유대인을 실어 나르는 기차가 멈추고 나면 고통스러운 비명이 지축을 흔들고 검은 재가 하늘을 덮는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와 끔찍한 살육이 이어지는 ‘지옥’이다. 낙원과 지옥을 구분하는 건 담장이다. 한쪽은 경험적·주관적 자기 인식의 세계에 매몰된 채 살아... -
뉴진스, 하이브 그리고 시간 여행
뉴진스의 신곡 ‘How Sweet’는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기분 좋게 튀어오르는 총천연색 뉴트로 사운드, 하이파이브를 보내고 싶은 경쾌한 춤 동작을 볼 때면 과거에 도착한 기분이 든다. 짙게 태닝한 피부에 코 피어싱을 한 1990년대 ‘추구미’의 현신 같았던 채리나, “너는 옷이 그게 뭐니?”에서 ‘그게’를 담당하던 힙합바지를 떼로 입고 나와 공연하던 영턱스클럽이 떠오른다. 요즘 많은 이들이 뉴진스가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고 말한다. 그 시대의 가장 예쁘고 쿨한 스타일을 가져와 재창조한 뉴진스의 세계관은 당시를 살아본 이들에겐 힙합바지가 ‘그게’에서 ‘옷’으로, 댄스가요가 문화권력의 가장자리에서 핵으로 변모해온 세월의 격차를 뛰어넘어 젊은날의 자신을 만나게 한다. Y2K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즐기는 1990년대 이후 출생자들에겐 또 다른 감각으로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노스탤지어란 한때의 웃음이 담긴 메아리다.” 노스탤지어에 대한 수많은 정의 중 내가 가장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