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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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과 오늘]‘아보하’를 빼앗긴 삶

    ‘아보하’를 빼앗긴 삶

    출근 전,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 하나를 뽑아든 그는, 차에 올라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올드 팝을 들으며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샌드위치 하나로 점심을 해결하면서도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필름 카메라에 담는 그의 얼굴에선 어떤 깊이마저 느껴진다. 일을 마친 그는 동네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자전거를 타고 간 단골식당에서 간소하게 저녁을 해결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헌책방에서 산 윌리엄 포크너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등의 소설을 읽다가 잠이 든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며, 내일도 그럴 것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고지)의 하루는 매일매일이 별다를 것 없다. 구구절절 보여주지 않지만, 히라야마라고 왜 사연이 없을까. 그럼에도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히라야마의 온전하고 오롯한 하루에 집중한다. 도쿄 시내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직업인 히라야마의 삶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
  • [예술과 오늘]도시 재생과 ‘공공미술’

    도시 재생과 ‘공공미술’

    ‘도시 재생’이란 1차적으론 쇠퇴한 지역을 개선하여 물리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도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도시(지역)를 만들자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사회·경제·환경·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촉진함으로써 도시와 인간 삶의 가치를 새롭게 극대화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도시 재생의 최근 개념은 도시의 역사적 의미와 인문학적 범주는 물론, 개발이 아닌 재생의 관점에서 행해지는 새로운 환경적·공간적·문화적 생태까지 아우른다. 그리고 공공의 장에서 대중과 시대적 사안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촉매로서의 가능성을 안은 공공미술은 그 인문학적, 미학적 가치와 의미를 촉발하는 데 있어 중요 매개임을 의심받지 않는다. 특히 공공미술에 내재된 ‘문화적 공공성’은 예술과 삶에 대한 근본을 묻고 사회적 문제에 관한 대안 제시를 통해 문화적 어젠다 창출을 주요 영역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도시 재생이 추구하는 도시와 지역사회 활성화에 가장 부합하는 장치다. 이처럼 공공미술은...
  • [예술과 오늘]불빛을 꺼뜨리지 마

    불빛을 꺼뜨리지 마

    “가 204표.” 터질 듯한 환호가 국회 앞 대로를 흔들었다. 탄핵소추안 가결을 알리는 의사봉 소리와 함께 거짓말처럼 ‘다시 만난 세계’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그건 정말 거짓말 같았다. 2016년 이화여대에서 시작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현장, 이후 성평등을 외친 모든 투쟁 현장에 함께했던 이 노래가 역사의 한복판에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2007년 데뷔한 소녀시대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운동화를 신고, 발차기를 하며 박력 있게 춤추는 새로운 시대의 걸그룹이었다. 남녀 관계와 대상화된 여성성이 아닌 주체적인 꿈과 연대를 노래한 ‘다시 만난 세계’는 이 땅의 모든 소녀들에게 언제나 희망의 불빛으로 존재했다. MZ세대 여성의 투쟁가로 빠르게 자리 잡은 배경이다. 칼바람이 부는 여의도에서 이 노래를 힘껏 따라 불렀다. 목이 메일 때마다 응원봉을 더 높이 흔들었다. 그 순간 내가 정말 응원하고 싶었던 것은, 여성 혐오가 공기처럼 만연한 이 세상에 지지 않고, 지치지 않고 싸워온 ...
  • [예술과 오늘]광장에 나선 ‘토끼들’의 함성

    광장에 나선 ‘토끼들’의 함성

    TV 프로그램 <최강야구>를 종종 본다. 프로에서 은퇴한 선수들과 프로 진출을 꿈꾸는 젊은 선수들이 ‘최강 몬스터즈’라는 이름으로 모여 아마추어 팀들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이 프로그램을 아끼는 이유는, 모든 출연자들에게서 야구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부터 그렇다. KBO 리그 여러 팀의 감독을 지낸 그는 선수들에게 “여러분은 프로 출신이고, (…) 돈 받는다는 건 프로라는 것”이라며, 예능이 아닌 승리를 요구한다. 매사에 엄격하지만 자상함도 넘친다. 땡볕을 피하라고 파라솔을 챙겨놔도 그는 “선수들이 연습하는데 나만 쓸 수 없다”며 고사한다. 연습이 끝나면 함께 공을 줍고, 상대팀 선수에게도 적절한 가르침을 마다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그를 믿고 따르는 이유다.알바니아 출신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피라미드>의 배경은 기원전 26세기경 고대 이집트다. 왕위에 오른 새 파라오 쿠푸는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흘린...
  • [예술과 오늘]‘저 너머’는 어디인가

    ‘저 너머’는 어디인가

    인간 두개골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해’(2007)는 죽음과 사치, 불멸의 욕구를 담았다. 투명한 아크릴 상자에 실제 상어를 넣은 그의 또 다른 작품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1991)은 인간의 죽음이란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것임을 보여준다.프랑스의 예술가 소피 칼은 어머니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기록한 작품 ‘포착할 수 없는 죽음’(2007)으로 죽음이 갖는 개인적, 보편적 의미에 대해 물었다. 멕시코의 테레사 마르골레스는 시신을 씻기는 데 사용된 20ℓ의 혼합물을 공기 중에 뿌리는 설치작업 ‘Aire(Air)’(2003)를 통해 죽음을 물리적, 감각적 수준에서 체험하게 했다.이밖에도 헌 옷 더미와 크레인, 138개의 스피커 등을 이용해 죽음 이후의 흔적과 사라짐, 부재의 기억을 새긴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사람들’전(2010)을 비롯해 빌 비올라, 마크 퀸 등 삶과 죽음의 경계를...
  • [예술과 오늘]‘렛츠 겟 라우드’ 해야만 한다

    ‘렛츠 겟 라우드’ 해야만 한다

    렛츠 겟 라우드(Let’s Get Loud). 큰 소리를 내자는 뜻으로, 제니퍼 로페즈의 데뷔 앨범 <On The 6>(1999)의 수록곡 제목이다. 요즘 조깅하며 이 노래를 자주 듣는다. 흥겨운 라틴 리듬의 댄스곡인데 문득 울컥해서 소매로 눈가를 찍곤 한다. ‘갓생’과 초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석촌호수 트랙에서 내가 청승을 떠는 이유는 이 문장이 라티노, 이민자, 여성인 사회적 소수자로 생존해온 그의 인생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 되기까지 제니퍼 로페즈는 도전과 증명을 거듭하는 삶을 살았다. 이렇게 훈장처럼 얻은 영향력을 지난 미국 대선 당시 카멀라 해리스 후보 지지 연설에서 발휘했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반이민주의적 발언에 대항해 공동체의 결집을 호소하고, “렛츠 겟 라우드”라고 소리친 것이다. 자막 없이는 연설을 전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내 가슴에 울려 퍼졌다.해리스...
  • [예술과 오늘]수능이 뭐길래

    수능이 뭐길래

    수능날이 밝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줄여 흔히 수능이라 부르는 이날, 수험생과 그 가족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긴장 아닌 긴장을 한다. 얼마나 중요한 날이면, 여타 학생들의 등교시간과 직장인들의 출근시간이 한 시간 늦춰지고, 비행기는 ‘영어 듣기 평가 시간’에 뜨고 내리지도 못한다. 이외에도 수능날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은, 생략한다. 전 세계에 또 이런 나라가 있을까 싶지만, 그 비슷한 또래의 아비이다 보니,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수험생들의 얼굴이 안쓰러울 뿐이다.<관촌수필>로 유명한 이문구의 단편 ‘장평리 찔레나무’의 주인공 김학자는 장평리 부녀회장이자 기본바로세우기운동 장평분회장이다. 이금돈에게 시집와서 엽렵한 솜씨로 살림살이했고, 하나밖에 없는 시동생을 건사하며 남부럽지 않게 장가도 보냈다. 시내에서 당구장을 해보겠다고 들들 볶아대기에 적잖은 돈도 대주었다. 시동생 이은돈은 그걸 반년 만에 남의 손에 넘기고 서울 가서 점방을 차려 앞가림 정도는 ...
  • [예술과 오늘]비평계의 붕괴

    비평계의 붕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이 열릴 때마다 한국관 취재기자단을 선발한다. 다수의 기자를 추첨 방식으로 뽑아 왕복 항공료와 숙박에 필요한 경비를 세금으로 전액 지원한다. 이에 비평계 일각에선 비평가들도 해당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내비친다.개인적으론 반대다. 말이 좋아 지원이지, 총 3건의 기사를 필수로 작성해야 한다는 등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조건도 탐탁지 않은 데다 대체로 홍보를 목적으로 하기에 객관적이며 심층적인 평가와 개선점 파악을 우선하는 비평의 직무와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한 문화적·예술적 기록 면에서도 주고받음이 정해진 지원은 안 받느니만 못하다.문화예술 정책을 설계·실행하는 문체부와 공공기관들을 향한 비평가들의 주문은 단지 지원 수준에서 논의되지 않는다. 건강한 비평 생태계 구축을 위한 기초이면서 활동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안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표준계약서’다....
  • [예술과 오늘]국정감사로 간 K팝

    국정감사로 간 K팝

    “K팝 산업을 국정감사로 소환해 주십시오.” 22대 국회의원 선거일 다음날인 4월11일자 지면에 ‘K팝을 사랑하는 의원 당선인께’라는 칼럼을 썼다. 21대 국감에선 ‘달콤왕가탕후루’ 사내이사도 증인으로 소환되어 당 과다섭취로 청소년의 건강을 해쳤다고 질의받았는데, K팝은 왜 안 되느냐가 요지였다. 고작 반년 전이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급진적인 주장을 해도 될지 수없이 망설이며 원고를 썼다. 그로부터 약 열흘 후, 하이브의 경영권 내홍이 터졌다. 이를 계기로 음반 밀어내기, 사행성 굿즈 판매 등 K팝 산업의 곪은 문제들이 속도감 있게 공론화되었다. 드디어 국감으로도 소환되었다. 그러나 공론화에서 국감까지 오는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일까. 기대보다 아쉬움이 컸다.하이라이트는 단연 지난 15일 뉴진스 하니의 참고인 출석이다. 그러나 빈 수레만 요란했다. 안호영 환경노동위원장의 책임이 크다. 이미 충분히 보도된 하니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정황 파악에만 혼자 20여분을 쓰며, 약...
  • [예술과 오늘]한강의 ‘다음’을 기다리는 이유

    한강의 ‘다음’을 기다리는 이유

    그날 저녁, 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만을 고집하는 한 배우의 삶을 그린 연극을 보고 있었다. 섬세한 연기, 묵직한 울림, 모든 게 좋았다. 오후 9시30분, 객석을 빠져나오며 스마트폰 전원을 켜자 적잖은 수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 수신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문자에는 ‘한강’ ‘노벨 문학상’이란 단어가 선명했다. <더 드레서>의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새로운 전율은, 돌고 돌아가는 귀갓길마저 흥겹게 했다. 혼자서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축배를 들이켠 나는, 일의 특성상 대부분 ‘초판 1쇄’일 수밖에 없는 한강의 작품들을 찾아, 다시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더 드레서>는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지방을 전전하며 셰익스피어의 작품만을 공연하는 ‘선생님’과 그의 의상을 담당하는 ‘드레서’인 노먼이 주인공이다. 공연 당일 선생님은 치매인 듯 길거리를 헤매다가 병원으로 실려갔고, 우여곡절 끝에 극장으로 돌아왔지만, 그날 공연할 <리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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