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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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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과 오늘]장벽
    장벽

    세상 도처에 장벽이 있다. 침략자를 막기 위한 장벽이 있는가 하면, 피아(彼我)를 구분하기 위한 장벽도 있다. 전자의 대표적 예가 우주에서도 보인다는(하지만 보이지 않는) 만리장성이다. 후자는 한때 냉전의 상징물이었으나 지금은 ‘기억’을 위해 일부 보존되고 있는 베를린 장벽이 대표적이다. 베를린 장벽이 상징성만 남았다면, 휴전선은 피아를 구분하는, 분단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 의지가 담긴 장벽도 있다. 네덜란드엔 암스테르담, 로테르담처럼 명칭 끝에 담(dam)이 붙는 곳이 많은데, 바다나 강의 범람을 막으려 댐을 설치한 도시들이다. 댐은 ‘막다’ ‘차단하다’ 뜻을 담은 중세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장벽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편이다. 적을 막는 일도, 피아를 구분하는 일도, 바다의 범람을 막는 일도 결국 삶을 위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장벽은 되레 삶을 파괴한다.이탈리아 작가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은 마음속에...

    2024.07.24 20:36

  • [예술과 오늘]예술에서의 ‘나’의 경험
    예술에서의 ‘나’의 경험

    돈 매클레인의 ‘빈센트(Vincent)’는 누구나 알고 있는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주제로 한 곡이다. 고흐의 작품을 기리기 위한 노래로, 고통 속 고독한 삶을 살았던 그의 생애를 담고 있다.내게 ‘빈센트’는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첫 계기였다. 감수성 예민하던 고등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이 불러준, 그 감미로운 목소리에 실려 귀로 전해지던 연민 어린 가사가 아니었다면 미술비평가로 살아가는 지금의 나는 아마 없었을지도 모른다.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간신히 구한 작업실에서 혼자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1980년대 말, 스스로의 선택에도 의문과 불안이 가시지 않던 당시 접한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은 막연함에서 벗어나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품게 한 내 인생의 두 번째 노래다.이후 내 삶에 그토록 짙은 영향을 미친 음악은 없다. 대신 숱한 미술작품이 일상을 채웠다. 학교까지 찾아...

    2024.07.10 20:42

  • [예술과 오늘]K팝 위기론이 나오는 이유
    K팝 위기론이 나오는 이유

    피아노 음계도 잘 못 짚는 내가 실용음악학원에 다니게 될 줄은 몰랐다. ‘K팝 칼럼니스트’라고 자기소개를 하고 있으니 기초 작곡 과정은 배워야 할 것 같았다. 직장 근처 가장 큰 지하철역으로 주소지를 설정하고 검색하니 수십곳이 나왔다. 그중 얼마나 많은 아이돌을 배출했는지 필사적으로 홍보하는 학원에 가보기로 했다. 아이돌을 많이 배출했다는 건 그만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췄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상담만 먼저 받아보려 했으나 수강생들이 ‘표정 연습’을 하는 전신거울이 비치된 작은 방, 곳곳에 붙은 기획사 내방 오디션 전단을 보고 바로 작곡 입문반에 등록했다. 작곡은 핑계이고 아이돌 지망생의 세계가 궁금했다. 입문반 월 수강료는 현직 작곡가 주 1회 수업에 50만원이었다. 가장 싼 코스였다. 댄스와 보컬을 기본으로 과목을 추가하고, 외국어 실력도 따로 쌓아야 하는 지망생들은 의대 입시에 버금가는 사교육비를 들이고 있을 것이다. 체계도, 교육도 과할 정도로 본격적이었다. 아이돌 출...

    2024.07.03 20:50

  • [예술과 오늘]MBTI
    MBTI

    얼마 전부터 몇몇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너 T야?” 그들은 하나같이 내 대답을 듣기 전에 스스로 답한다. “T 맞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T(Thinking)형 인간이 되었다. 세상에나, 내가 진실과 사실에 관심이 많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심지어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는 걸 얼마 전에서야 알았다. 풍문으로 들은 T의 반대 성향은 F(Feeling)라는데, 사람과 관계에 관심이 많고, 공감 잘하고, 주관적 판단에 강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혈액형이나 별자리 등등으로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구분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당연히 MBTI 검사 역시 해보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T형 인간인지, 아니면 F형 인간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내게 ‘대문자 T’라는 명찰을 달아주었다.알베르 카뮈가 1942년 발표한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문제적 인물이다. 유일한 혈육인 엄마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무덤덤했다....

    2024.06.26 20:34

  • [예술과 오늘]평범한 악인
    평범한 악인

    묵직한 파장을 일으키는 영화가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유대계 영국인 조너선 글레이저가 감독·각본을 맡았다. 10여년 전 한국에도 출판된 <런던 필즈(London Fields)>의 저자 마틴 에이미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영화의 주인공 루돌프 회스는 나치 장교다. 아내 헤트비히를 포함한 가족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 사택에 거주한다. 이들의 집에는 아름답게 꾸민 정원과 온실, 수영장까지 딸려 있다. 그들 스스로 ‘낙원’이라 부르는 그곳에서 지인들과 평화롭게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파티를 연다.사택 맞은편 수용소는 죽음의 공간이다. 유대인을 실어 나르는 기차가 멈추고 나면 고통스러운 비명이 지축을 흔들고 검은 재가 하늘을 덮는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와 끔찍한 살육이 이어지는 ‘지옥’이다. 낙원과 지옥을 구분하는 건 담장이다. 한쪽은 경험적·주관적 자기 인식의 세계에 매몰된 채 살아...

    2024.06.12 20:32

  • [예술과 오늘]뉴진스, 하이브 그리고 시간 여행
    뉴진스, 하이브 그리고 시간 여행

    뉴진스의 신곡 ‘How Sweet’는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기분 좋게 튀어오르는 총천연색 뉴트로 사운드, 하이파이브를 보내고 싶은 경쾌한 춤 동작을 볼 때면 과거에 도착한 기분이 든다. 짙게 태닝한 피부에 코 피어싱을 한 1990년대 ‘추구미’의 현신 같았던 채리나, “너는 옷이 그게 뭐니?”에서 ‘그게’를 담당하던 힙합바지를 떼로 입고 나와 공연하던 영턱스클럽이 떠오른다. 요즘 많은 이들이 뉴진스가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고 말한다. 그 시대의 가장 예쁘고 쿨한 스타일을 가져와 재창조한 뉴진스의 세계관은 당시를 살아본 이들에겐 힙합바지가 ‘그게’에서 ‘옷’으로, 댄스가요가 문화권력의 가장자리에서 핵으로 변모해온 세월의 격차를 뛰어넘어 젊은날의 자신을 만나게 한다. Y2K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즐기는 1990년대 이후 출생자들에겐 또 다른 감각으로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노스탤지어란 한때의 웃음이 담긴 메아리다.” 노스탤지어에 대한 수많은 정의 중 내가 가장 동...

    2024.06.05 20:41

  • [예술과 오늘]눈물
    눈물

    지난 4월 말 종영한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최고 시청률 24.85%를 기록하며 세인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제목과 달리 여주인공보다 남주인공이 눈물을 더 많이 흘리긴 했지만, 오히려 그 절절한 눈물에 팬들은 더 열광했다고 한다. 사전 정의에 따르면 “눈물샘에서 분비되는 액체 형태의 분비물로 눈을 보호하고 청결을 유지하는 역할”을 할 뿐이지만, 살다 보면 눈물엔 여러 가지 정황이 있다. 때로 슬퍼서, 종종 기뻐서 눈물짓는다. 반가워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 눈물의 정황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삼국지>의 주인공 격인 유비는 눈물로 자기 세상을 열어간 사람 중 하나다. 황건적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후한(後漢) 조정은 무능했다. 그래서 눈물 흘렸다. 의병을 조직해 적잖은 전공을 세웠지만, 비록 황제의 후손일지언정, 당시로서는 듣보잡이라 공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또 눈물지었다. 유비의 가장 빛나는 눈물은, 아무래도 삼고초려(三顧草...

    2024.05.29 20:22

  • [예술과 오늘]한국 미술계의 시급한 과제
    한국 미술계의 시급한 과제

    한국 미술계는 장단기 계획 아래 논의할 부분들이 상당하다. 시급한 과제도 산적했다.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며 창작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AI’도 그중 하나다. 육체노동의 보완에서 인지 영역으로 확장된 AI는 급기야 자발적 능동학습을 통한 인간 고유의 의식과 영감, 감정을 흉내 내는 단계로까지 이르렀다. 이쯤 되면 미술계를 포함한 문화예술계는 인공지능이 촉발한 예술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심도 있는 토의절차를 밟아야 한다. 지나치게 헐값인 예술인 보수에 대한 문제도 있다. 대표적인 게 평론가 원고료다. 약 한 달 내외의 시간이 투입되는 정신적·육체적 노동의 대가치곤 국공립미술관을 포함한 미술 관련 공공기관들의 평론비는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작년 10월 광주비엔날레는 30만원의 평론비를 비평가들에게 제시했고, 지난 4월 전북도립미술관이 밝힌 평론비 역시 25만원에 불과했다. 이 정도면 거의 착취에 가깝다. 특정인, 특정기관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매해 수억원에서...

    2024.05.15 20:49

  • [예술과 오늘]내가 K팝을 왜 좋아하는지 알아?
    내가 K팝을 왜 좋아하는지 알아?

    “내가 K팝을 왜 좋아하는지 알아? 나를 좋아해주는 기분이 들거든.” 영화 <조이 라이드>에 열혈 K팝 팬 캐릭터로 등장하는 ‘데드아이’의 대사다. K팝은 애정을 주고받으며 국경을 초월한 인기와 영향력을 쌓아 왔다. 이 상호작용은 K팝을 하나의 음악 장르를 넘어 문화로 명명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애정에 실망과 답답함이 스며들었다. 좋은 음악과 문화에 대한 고민으로 채워져야 할 자리에 주가조작, 인수·합병 같은 자본의 언어가 침입한 후부터다. 이번 하이브의 경영권 분쟁은 그동안 막연하게 감지해 온 K팝 위기론의 실체를 보여줬다. 내부 감사로 조용히 처리해야 할 사안을 일방적으로 터트리고 자극적으로 받아치는 모습에서, 무의미한 여론전에 아티스트를 끌어들이는 비겁함에서 자본 규모는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위상에 맞는 자질은 갖추지 못한 K팝 산업의 지체와 해로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방만 경영이다. 하이브 박지원 대표이사는 얼마 전 열린 1분...

    2024.05.08 20:07

  • [예술과 오늘]하지도 않은 말과 ‘와전’
    하지도 않은 말과 ‘와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로 종종 언급되는, 영국의 극작가이자 사회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알려진 말이다. 하지만 묘비명 원문은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당연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정도의 번역이 과하지 않다. 흥미로운 사실은 조지 버나드 쇼는 묘지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후 화장된 그의 유해는 오랫동안 은둔하며 작품을 썼던 런던 교외의 ‘쇼스 코너’ 정원 곳곳에 뿌려졌다. 묘비는 아예 세워지지도 않았다. 그 이전부터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2000년대 중반 한 이동통신사가 만들어낸 묘비 사진과 과장된 말은 이제 정설처럼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조지 버나드 쇼가 의미만큼은 통하는 말을 ‘직접’ 남겼다면, 어떤 이들은 하지도 않은 말들이 그 자신의 말처럼 후대에 전해지기도 했다. 대표주자는 “너 자...

    2024.05.0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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