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의 문화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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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봉석의 문화유랑]다정함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정함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혐오의 시대다. 여성을, 장애인을, 중국인을, 또 누군가를 타당한 이유 없이, 나의 이익이나 권리를 침해했다면서 일방적으로 조롱하고, 배척하고, 탄압한다. 초유의 일이 아니고 낯설지도 않다. 희생양을 만들어 진짜 악에서 시선을 돌리려는 음모는 인류사에 항상 존재했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가 있었고, 제국주의 일본의 조센징 혐오도 있었다.12일 개봉한 <화이트 버드>는 유대인을 혐오하고 학살한 역사를 그린 영화다. 2017년 개봉해 많은 이들이 감동했던 <원더>의 스핀오프 작품이다.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오기는 뒤늦게 학교에 편입한다.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오기는 결국 친구들과 함께 웃음을 되찾는다. 괴롭힘을 주도했던 줄리안은 전학을 간다. 좋은 영화다. ‘다름’을 이유로 차별하고 괴롭히는 행동이 얼마나 그릇된 것임을 잘 보여주었다.<원더>는 해피엔딩이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의 일들은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꽤 ...
  • [김봉석의 문화유랑]폭력은 모든 것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폭력은 모든 것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역사는 때로,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개인의 삶을 뒤틀어버린다. 평소에 개인과 집단, 세상, 사회와의 관계를 인식하고 있건 말건 상관없다. 속세를 떠나 인적 드문 곳에서 홀로 살아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외면해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때로 개인의 모든 것을 무참하게 짓밟아버린다. 지진처럼, 해일처럼, 언젠가 우주에서 떨어질지 모르는 소행성처럼 무자비하고 예외는 없다.<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보사노바 뮤지션의 실종을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다. 2004년, 보사노바의 황금기를 책으로 쓰려는 제프 해리스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취재를 시작한다. 취재원에게 피아니스트인 테노리우 주니오르의 음반을 선물로 받는다. 처음 들은 테노리우의 연주에 매혹된 제프는 그의 행적을 파고든다. 1976년 아르헨티나 투어를 간 테노리우는 공연이 끝난 후 새벽에 사라져 돌아오지 않았다.테노리우 주니오르는 실존 인물이다.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의 ...
  • [김봉석의 문화유랑]사상검증을 해야만 살아남는 지옥

    사상검증을 해야만 살아남는 지옥

    대학 시절, 어느 시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해방 후의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았던 부모 세대의 경험. 낮에는 국군이, 밤에는 빨치산이 장악했던 시골 마을. 늦은 밤에 자고 있으면,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벌컥 열고 손전등을 비춘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며 바라보지만, 불빛 때문에 누구인지 제대로 식별할 수 없다. 그가 묻는다. “너 어느 편이야?” 물어보는 이가 국군인지, 빨치산인지 알 수 없기에 제대로 답할 수가 없다. 반대쪽이라고 말하면, 바로 죽을 수도 있다. 말 한마디에 목숨이 걸린 상황. 가장 두려운 공포 아닐까.지난달 31일 개봉한 <시빌 워: 분열의 시대>에서, 그 시절 기억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만났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가상의 내전이 벌어진 상황을 그린다. 남북전쟁 당시처럼 주들이 나뉘어 싸우는 미국 전역은 수시로 총격전이 벌어지는 전장이다. 베테랑 종군기자인 리와 초보 기자인 제시 등은 워싱턴에 고립된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위험한 여정을 ...
  • [김봉석의 문화유랑]망상의 세계에서 출몰하는 유령들

    망상의 세계에서 출몰하는 유령들

    12월3일 밤, 10시 반이 지난 시각이었다. 페이스북과 엑스 등 소셜미디어를 뒤적거리다 ‘비상계엄 선포’라는 포스팅을 발견했다. 농담인가, 가짜뉴스인가, 소설인가 생각하다가 포털 사이트의 뉴스를 찾아봤다. 한 줄짜리 속보가 있었다. 비상계엄 선포는 현실의 사건이었다. 다시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의 국회 앞 생중계를 보면서 당황했다.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이전의 계엄이 45년 전이었던가.국회의 빠른 결의로 계엄은 해제됐다. 당시만 해도 비상계엄은 그저 술주정뱅이의 객기인가 의심했다. 하지만 이후 드러난 사실과 폭로 등을 살펴보면 몇개월간 어쩌면 몇년간 치밀하게 준비했던 ‘내란’으로 보인다. 자신의 적으로 간주한 이들을 모두 체포하고, 민주주의 대신 독재를 꾀한 친위 쿠데타. 법을 무기로 평생을 살아온 자가 법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구시대 독재자들과 같은 길을 가려 했다는 현실을 믿기 힘들었다. 대통령이며 내란 수괴인 그는 망상의 세계에 빠진,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무뢰한이었...
  • [김봉석의 문화유랑]인생이라는 이름의 회전목마

    인생이라는 이름의 회전목마

    잠이 잘 들지 않는 밤에는, 빗소리나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한다. 재클린 듀프레이의 첼로 연주들, 영화 <토니 타키타니>에 나오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솔리튜드(Solitude)’와 함께 자주 듣는 음악은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인생의 회전목마(人生のメリ-ゴ-ランド)’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메인 테마곡. 왈츠풍의 ‘인생의 회전목마’는 차분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여 활기찬 어린 시절에서 청년을 거쳐 절정에 이르렀다가 천천히 정리되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인생을 회전목마에 비유한 곡이다.어린 시절, 어린이대공원이나 에버랜드에 가면 회전목마를 탔다. 말 위에 앉아서 빙글빙글 돌아가면 나를 찾는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다시 돌아가면 또 만날 수 있었다. 조금씩 변하지만 회전목마에서 보는 풍경은 돌 때마다 같은 곳이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더 이상 회전목마는 타지 않게 됐다. 빠르고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롤러코스...
  • [김봉석의 문화유랑]조용하게, 천천히 가는 사람들

    조용하게, 천천히 가는 사람들

    지인들과 만나 대화를 하다가, 첫 기억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했다. 까마득한 기억을 되짚어봤다. 유치원으로 가던 골목길의 낡은 풍경이 기억났다. 어린 시절, 마당에서 형과 뛰어놀던 기억도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니 화사한 빛이 떠올랐다. 아마도 어릴 때 살던 집의 마루였다. 홀로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에 가득 맞고 있었다. 옆에 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혼자서, 조용히, 햇볕을 즐겼던 걸까. 처음으로 가장 좋았던 기억인 걸까.이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하면서 근래에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렸다. 돈과 명예에 매달리지 않고, 고요하고 평온하게 일상을 유지하며 살아가자는 정도의 의미. 오십이 넘으면 주변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진다. 친구와 동료, 선후배의 부고를 수시로 듣게 되고, 세상의 많은 것이 나와는 무관한 세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는 우주의 티끌 같은 존재임을 더 많이 떠올린다.그런 생각을 하다가, 지난 10일 스웨덴 ...
  • [김봉석의 문화유랑]기억할 만한 작품 ‘로봇 드림’

    기억할 만한 작품 ‘로봇 드림’

    9월이 시작되면서 자주 흥얼거린 노래가 있다. ‘Do you remember…’로 시작하는,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셉템버’(September). “말해줘요. 당신은 기억하나요? 우리가 춤추던 9월에는 걱정 없는 나날뿐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춤추던 9월은 황금빛 꿈이 빛나는 날들이었다는 것을.” 가사는 아련하지만, 무척이나 흥겨운 곡이라 절로 몸이 들썩이며 리듬을 타게 된다. 1978년 발표하여 번들거리는 1980년대에 꽤 유행한 사랑 노래.현란했던 시절의 기억만으로 9월 들어 ‘셉템버’가 머릿속을 맴돈 것은 아니다. ‘셉템버’를 흥얼거리며, 다정한 개와 로봇을 생각했다. 올해 3월13일 개봉하여 4만8000명의 관객이 본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의 주제곡이 ‘셉템버’였다. 주제곡의 계절을 맞아서, 9월25일 메가박스 단독으로 재개봉을 했다.<로봇 드림>은 올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
  • [김봉석의 문화유랑]아무것도 없는 풍경의 아름다움

    아무것도 없는 풍경의 아름다움

    처음으로 일본에 간 해는 1998년이었다.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영화 <하나비>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을 인터뷰하러 도쿄에 갔다. 당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 아무로 나미에의 스타일을 따라 하는 젊은 여성들이 활보하는 시부야, 만화 <시티 헌터>의 배경인 신주쿠, 첨단 전자제품과 애니메이션의 성지 아키하바라 등 도쿄의 중심가를 경탄하며 걸었다. 당시의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가는 선진국이었다. 화려한 거리와 느긋한 공원의 비일상적인 풍경,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상품들이 즐비한 세련된 상점도 모두 신기했다. 그 시절, 일본을 다녀올 때면 캐리어에 책과 DVD, CD가 가득 채워졌다. 새로운 문화와 트렌드를 알고 싶으면, 미국이나 일본을 가야 했던 시절이었다.이후 일본 여행을 자주 갔다. 일 년에 대여섯 번 넘게 가기도 했다. 도쿄와 오사카를 주로 갔고, 가끔 후쿠오카 정도. 선진국의 대도시에서, 당시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을 ...
  • [김봉석의 문화유랑]완벽하지 않지만, 멋진 선택

    완벽하지 않지만, 멋진 선택

    우리는 무수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대부분은 인생에 큰 영향이 없다.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어떤 운동화를 살까, 비가 오는데 산책을 갈까 등등. 하지만 때로는 가벼운 선택이 인생의 경로 자체를 바꿔버린다. 우연히 본 영화인데 마음을 흔들어 삶의 방향이나 태도가 달라진다. 우연히 떠난 여행에서 인생의 파트너를 만나기도 한다. 어쩌면 선택은 우리 삶의 정체성일까.그때 선택하지 않은 길을 후회하기도 한다. 어리석게 자책에 사로잡혀 남은 인생을 고통으로 메우기도 한다. 후회가 없더라도 궁금하기는 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인생의 변곡점이 몇번 있다. 그때 다른 길을 택했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가보지 않은 길은 너무나 궁금하다.마블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소니의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와 2023년 아카데미에서 작품, 감독, 여우주연, 남우조연 등 7개 부문상을 휩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김봉석의 문화유랑]작고 단단한 일상이 만드는 ‘완벽한 날들’

    작고 단단한 일상이 만드는 ‘완벽한 날들’

    새벽에 일어나 싱크대에서 세수하고, 화분에 물을 준다. 도쿄 시부야구의 화장실을 돌며 청소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한적한 신사에서 나무와 햇살을 보며 샌드위치를 먹는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 동네 공중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아사쿠사역 근처 허름한 선술집에서 하이볼을 마신다. 작은 다다미방에서, 스탠드 불빛으로 윌리엄 포크너의 문고본을 읽다가 잠이 든다.이 정도면 완벽한 날들일까?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새로운 영화와 세계를 꿈꾸었던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였고, 현대인의 삭막한 마음을 위로하는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를 연출했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피나>로 현대 예술의 지고한 아름다움을 영상으로 담아냈던 빔 벤더스가 일본의 한 중년 남자의 일상을 그린 영화 <퍼펙트 데이즈>다.예고편을 보고 생각했다. 소박한 일상만으로 완벽한 날들이라고. 짐 자무시의 <패터슨>(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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