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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 전체 기사 32
  • [김봉석의 문화유랑]끝나지 않은 국가폭력, ‘허수아비’의 질문
    끝나지 않은 국가폭력, ‘허수아비’의 질문

    6월3일 지방선거가 끝났다. 내란을 옹호하고,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국민을 압박했던 세력이 다시 표를 구걸하며 민주주의의 무대로 돌아오는 모습은 거대한 농담 같았다. 대통령의 권력만으로도 부족해 군대와 경찰 등을 동원하며 국가폭력을 행사한 집단이 다시 권력의 중심부로 복귀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국가폭력의 문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군대와 경찰, 검찰, 법원 등 국가 권력이 행사하는 폭력에, 개인은 극도로 취약하다. 그렇기에 국가폭력은 시효가 없어야 하며, 개인의 범죄보다 더욱 엄중하게 다뤄야 한다.지난 5월26일 종영한 드라마 <허수아비>를 보며 국가폭력의 잔인함을 직면했다.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의 모티프이기도 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지금은 이춘재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허수아비>는 실화의 재현이나 범죄 스릴러의 관습에 쉽게 기대지 않는다. 괴물을 쫓는 형사의 땀방울과 함께 야만적인 국가 권력이 무고한 사...

    2026.06.04 19:59

  • [김봉석의 문화유랑]일단 만들어내는, Z급 생명력
    일단 만들어내는, Z급 생명력

    3년 만에 다시 찾은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몇편을 봤고,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1990년대 일본에서 극장 개봉 없이 비디오로만 출시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V시네마 회고전 대담은 감회가 각별했다. 2002년 ‘씨네21’ 기자 시절, 미이케 다카시 감독과 아이카와 쇼 배우 등을 만나 현지 취재를 하고 ‘V시네마’ 특집 기사를 썼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시절 V시네마가 뿜어내던 날것의 에너지를 20여년이 지나 전주에서 다시 마주했다.이번 영화제에서 흥미로운 만남은 일본의 우가나 겐이치 감독이었다. 매년 3~4편의 저예산 장르영화를 찍어내는 경이로운 생산성의 소유자다. 특별전에서 상영한 <저주> <브루클린의 Z급 감독을 좋아하게 됐어> <불완전한 의자> <세상의 끝으로부터>는 모두 6개월 동안 연출한 최신작이다. 호러부터 로맨틱 코미디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우가나의 작업 방식은 개인의 성실함을 넘어, 영화를 대하는 기...

    2026.05.07 20:14

  • [김봉석의 문화유랑]붕괴한 현실의 거울, 공포
    붕괴한 현실의 거울, 공포

    영화 <살목지>가 8일 개봉했다. 최근 아이돌 캐스팅과 과도한 자극에 의존하던 일부 호러 영화들과는 달리, 스토리 전개에 설득력이 있으며 공포감을 적절하게 유지한다. 김혜윤과 이종원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추정컨대 순제작비가 약 30억원인 영화는 손익분기점(70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1998년 <여고괴담>의 신드롬, 2003년 <장화, 홍련>의 대성공으로 한국 호러는 잠시 인기 장르였다. 하지만 외국 호러의 느슨한 모방과 충격 효과(점프 스케어와 거슬리는 효과음)에 기댄 소모성 기획물이 양산되면서 관객의 신뢰를 잃었고, 오랜 정체기에 들어갔다. <파묘>(2024)가 천만 관객을 넘으며 비로소 호러 영화는 산업의 기대를 받는 장르가 됐다.세계는 지금 호러 붐의 재현이다. 할리우드는 <할로윈>과 <스크림> <컨저링>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등 인기 시리즈의 신작이 속속 만들어지고,...

    2026.04.09 19:59

  • [김봉석의 문화유랑]춤이 끝나고, 고독한 자신을 만나자
    춤이 끝나고, 고독한 자신을 만나자

    2월20일 넷플릭스에 공개한 영화 <파반느>가 조용한 찬사를 받고 있다. 첫 주 글로벌 톱10 비영어권 7위로 시작해, 입소문을 타고 2주차 4위로 세 계단을 거슬러 올라 역주행을 했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서정적인 영상과 ‘파반느’라는 제목에 걸맞은 우아하고 정적인 연출이 대중의 호응을 받고 있다.박민규의 원작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날카롭게 그려냈다. 영화의 배경은 지금에서 5년 전쯤으로 모호하게 옮겼다. 외모에 대한 낙인과 혐오가 시대를 막론하고 벌어지는 현실임을 드러낸다.원작과 다르게, 이종필 감독의 <파반느>는 그녀가 못생겼다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 미정(고아성)의 얼굴을 이질적으로 분장하는 대신, 조명과 분위기를 통해 그녀를 감싼 그늘과 위축된 눈빛을 포착한다. 미정은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스스로 사랑하지 못해 어둡고 침울한 ...

    2026.03.12 20:03

  • [김봉석의 문화유랑]성공은 누구의 것일까
    성공은 누구의 것일까

    테일러 스위프트의 ‘디 에라스 투어’(The Eras Tour)는 공연 기록 경신을 넘어, 음악 산업과 경제 효과의 판도를 바꾼 하나의 ‘현상’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2023년 3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21개월간, 5개 대륙 51개 도시에서 총 149회 공연, 약 1016만명이 관람했다. 티켓 매출로만 20억달러를 돌파하며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투어다.공연 실황과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가 공개되었고, 공연 이후 소식이 전해지며 대중이 감동한 지점은 화려한 숫자가 아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공연을 함께 만든 스태프에게 약 1억9700만달러(약 2800억원)가 넘는 보너스를 지급했다. 주요 역할을 담당한 스태프는 물론 트럭 운전사, 무대 설치팀, 백댄서 등 모두에게 1억원 이상의 보너스가 돌아간 것이다. 메시지는 간단하다. 성공은, 결코 나 혼자만의 천재성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선언이다.최근 맷 데이먼과 벤 ...

    2026.02.12 20:08

  • [김봉석의 문화유랑]너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너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승패가 명확히 갈리는 스포츠에는 열광한다. 기록과 점수로 증명되는 세계는 깔끔하고 공정하니까. 참가자들이 각자의 노래를 부르며 축제처럼 즐기는 가요제도 괜찮다. 하지만 음악이나 요리처럼 주관적인 영역에서 ‘과제’를 내주고, 우열을 가려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과정은 어딘가 불편하다.기존의 음악 경연 예능들도 별 감흥이 없었다.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처럼 이미 잘 알려진 이들이 나와 펼치는 가창력 대결은 화려한 쇼의 한 장면일 뿐이다. 누군가의 노래를 재해석하는 것이라면 잘 만들어진 리메이크 음원을 듣는 것으로 충분하다. 굳이 그들을 무대에 세워 점수를 매기는 광경을 지켜볼 이유를 찾지 못했다.그런데 지난 1월6일 막을 내린 <싱어게인 4>에는 빠져들었다. 이곳의 무대 위에 선 이들은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린다. 단지 호명을 위한 기호가 아니다. 그들은 ‘무명’이라는 익명성에 갇혀 있던 가수...

    2026.01.15 19:59

  • [김봉석의 문화유랑]다정함은 우리 시대의 펑크다
    다정함은 우리 시대의 펑크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고, 밤의 여행자들이다.’ 하룻밤 머물 공간을 내어줄 배려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다정함이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가족이 될 수 있다. 지난 17일 개봉한 <파리, 밤의 여행자들>(2022)이 건네는 메시지다.1980년대 파리,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엘리자베트는 10대의 남매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출산과 유방암 투병으로 경력단절이 된 그는 즐겨 듣던 라디오 심야 방송의 전화교환원으로 일하게 된다. 청취자들이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DJ와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 엘리자베트는, 낮에는 도서관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남편의 배신, 경제적 어려움 등등 가볍지 않은 생활이다.어느 날, 방송국에 사연을 전하러 온 탈룰라를 집으로 데려온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가출해 파리에 온 탈룰라는 4년째 집 없이 거리를 떠돌고 있다. 불안하지만 자유로운 탈룰라는 엘리자베트 가족에게 낯설지만 새로운 공기를...

    2025.12.18 20:04

  • [김봉석의 문화유랑]정통과 파격, 모두를 아우르는 시스템
    정통과 파격, 모두를 아우르는 시스템

    지난 8월22일 개봉한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마침내 2025년 영화 흥행 순위 정상에 올랐다. 11월19일 기준 누적 관객 수 563만명. 상반기 인기를 끌었던 웹툰 원작 <좀비딸>과 같은 관객 수다. 하지만 <귀멸의 칼날>은 여전히 하루 1만명 이상의 관객이 들고 있어, 곧 단독 1위가 될 예정이다.올해 영화 흥행 순위에서 흥미로운 점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다. 지난 9월24일 개봉한 <체인소맨: 레제편>은 312만명으로 6위이고, 3월 개봉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은 94만명이다. 그 외에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초화려!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그림이야기> 등 익숙한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10만 넘는 관객을 기록했다.돌이켜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 늘 인기였다. 1967년 TBC의 한...

    2025.11.20 20:05

  • [김봉석의 문화유랑]선하고 이타적인 영웅의 시대
    선하고 이타적인 영웅의 시대

    지난 18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LA 다저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의 4차전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 탄생했다. 다저스 선발투수로 나선 오타니 쇼헤이는 1회초 삼진 3개를 잡아 이닝을 끝내고 1회말 톱타자로 바로 타석에 들어서 홈런을 쳤다. 오타니는 6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잡고,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타자로는 1·4·7회에 홈런 3개를 기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타니가 음악의 베토벤, 희곡의 셰익스피어, 농구의 마이클 조던, 골프의 타이거 우즈에 필적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오타니야말로 역사상 최고의 야구 선수라는 찬사가 쏟아진다.한국프로야구는 지명타자가 있어 투타 겸업이 거의 없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해태 타이거즈 김성한이 투수로 10승5패, 타자로 3할대를 기록했는데, 그도 이듬해부터는 타자에 전념했다. 고교야구에서는 투수가 타석에 서고, 보통 투수를 잘하면 타자 재능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말 잘하는 선수들만 살아남는...

    2025.10.23 19:51

  • [김봉석의 문화유랑]뾰족하고 모난 콘텐츠를 만들자
    뾰족하고 모난 콘텐츠를 만들자

    9월11일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얼굴·사진>은 24일까지 77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개봉일 1위였던 <얼굴>은 하루 만에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에 뒤졌다가 15일부터 다시 10일째 1위를 기록했다. 100만명을 넘을지 궁금하다.<부산행>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했고,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과 <기생수: 더 그레이>가 인기를 끌며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이 제작에 참여한 <계시록>을 연출했고, <선산> <괴이> <방법> 등 각본과 제작 등을 맡은 다수의 드라마를 성공시켰고, 일본의 고전 <가스인간>을 리메이크하는 등 국내외 차기작이 줄줄이 늘어선 연상호에게 <얼굴>의 100만 관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얼굴>의 제작 과정은 특이하다. 2억원의 제작비, 20여명의 스태프, 프리 프로덕션은 2주, 촬영...

    2025.09.25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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