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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 [김봉석의 문화유랑]작고 단단한 일상이 만드는 ‘완벽한 날들’
    작고 단단한 일상이 만드는 ‘완벽한 날들’

    새벽에 일어나 싱크대에서 세수하고, 화분에 물을 준다. 도쿄 시부야구의 화장실을 돌며 청소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한적한 신사에서 나무와 햇살을 보며 샌드위치를 먹는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 동네 공중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아사쿠사역 근처 허름한 선술집에서 하이볼을 마신다. 작은 다다미방에서, 스탠드 불빛으로 윌리엄 포크너의 문고본을 읽다가 잠이 든다.이 정도면 완벽한 날들일까?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새로운 영화와 세계를 꿈꾸었던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였고, 현대인의 삭막한 마음을 위로하는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를 연출했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피나>로 현대 예술의 지고한 아름다움을 영상으로 담아냈던 빔 벤더스가 일본의 한 중년 남자의 일상을 그린 영화 <퍼펙트 데이즈>다.예고편을 보고 생각했다. 소박한 일상만으로 완벽한 날들이라고. 짐 자무시의 <패터슨>(201...

    2024.07.04 20:47

  • [김봉석의 문화유랑]‘창가의 토토’에게 배운 자유
    ‘창가의 토토’에게 배운 자유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는 영화를 보러 간다. 문화의날이라 영화 관람료가 절반이다. 하루 중에 할인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그래도 일정을 맞춰 보러 간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관람료가 1만5000원까지 올랐기 때문에, 잘 모르겠는데 일단 아무 영화나 보러 갈까라는 선택은 사라졌다.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은지, 몇번이나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한다.5월의 마지막 수요일, 집에서 가까운 극장의 상영표를 살펴봤다. 시간대로 훑어내리다, <창가의 토토>를 발견했다. 내가 아는 <창가의 토토> 맞나? 개봉 소식을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고, 구로야나기 데쓰코의 유명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인지 몰랐다. 포스터를 보고, 영화 정보를 찾아보니, 내가 읽은 소설 <창가의 토토>를 각색한 애니메이션이었다.<창가의 토토>는 일본의 배우이자 MC인 구로야나기 데쓰코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쓴 자전 소설이다. 1933년생인 그는 배우로도 ...

    2024.06.06 20:46

  • [김봉석의 문화유랑]옛날 극장에 가고 싶다
    옛날 극장에 가고 싶다

    충무로의 대한극장이 올해 9월30일 운영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1958년, 당시 최대 규모로 개관하여 <벤허>와 <사운드 오브 뮤직> 등 70㎜ 대작을 상영한 대한극장은 시대 변화에 따라 2001년 멀티플렉스로 전환했지만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이로써 단성사, 명보, 스카라, 국도, 중앙 등 추억의 극장들은 모두 사라졌다. CGV에서 인수한 피카디리극장만이 ‘CGV피카디리1958’이라는 이름으로 그나마 남아 있다.아쉬운 것은 극장의 이름만이 아니다. 대한, 명보, 단성사 등은 멀티플렉스로 전환하기 위해 기존의 건물을 헐었다. 국도, 스카라는 변신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1999년과 2005년에 문화재로 남았어야 할 극장 건물을 철거해 버렸다. 최근 원주에서도 아카데미극장을 보존하는 대신 부숴버렸다. 20세기의 영화관은 서울에서 경험할 수 없는, 기록만 남은 과거가 되어버렸다.20세기의 영화 개봉 방식은 지금과 달랐다. 시내에 있는 개봉관...

    2024.05.09 20:23

  • [김봉석의 문화유랑]부자가 환경보호를 외친다면 모순일까?
    부자가 환경보호를 외친다면 모순일까?

    속초로 여행을 갔다. 근 20년 만이었다. 그동안 동해 바다를 보러 강릉, 정동진, 묵호, 고성 등은 갔는데 속초만 빼놓았다. 예전 속초를 갈 때는 한계령을 굽이굽이 넘어갔는데, 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하니 2시간 조금 넘어 도착한다. 호쾌한 동해가 좋고, 아기자기한 영랑호와 청초호가 함께 있어 더욱 끌리는 도시다. 앞으로 바다, 옆에는 호수, 뒤로 설악산의 어우러짐은 어떤 장소와 비교해도 멋지다.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속초 등대 옆 영금정으로 향했다. 정자 이름인가 했는데, 바닷가에 깔린 넓은 암반을 영금정(靈琴亭)이라고 한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신령한 거문고 소리 같아서 붙여진 이름. 조선 시대 문헌에 따르면, 당시엔 이곳을 비선대라 불렀다 한다. 밤이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하고 노래를 부르며 놀던 곳. 영금정의 정자에 올라 앞을 보니 푸르른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뒤를 돌아보니, 설악산이 드리워져 있다. 아직 산 위의 눈이 녹지 ...

    2024.04.11 20:19

  • [김봉석의 문화유랑]‘호러’는 금기어
    ‘호러’는 금기어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했다. 동네 재개봉관에서 부모님과 한국영화 <목없는 미녀>를 봤고, TV에서 방영하는 <전설의 고향>에 빠져들었다. ‘소년중앙’ ‘새소년’ 등 아동잡지에서 세계의 불가사의, 유령이 나오는 집 꼭지는 반복해서 읽었다. <엑소시스트> <오멘> <13일의 금요일> <나이트메어>의 몇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무서운 이야기를 지금도 좋아한다. <심야괴담회>를 즐겨 보고, 종종 유튜브의 괴담 영상을 틀어놓고 일한다. 흥행에 실패했으나 수작인 한국영화 <소름>과 <불신지옥>을 모르는 이에게 늘 추천한다. OTT에 올라오는 낯선 공포영화들도 찾아본다. 가끔 공포영화를 함께 보는 소모임에 나가 한국에 수입되지 않은 호러영화를 보고 담소한다. 그곳에 모인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 공포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본다고 한다. 끔찍한 걸 ...

    2024.03.14 20:13

  • [김봉석의 문화유랑] 죽음을 선택해 주는 국가
    죽음을 선택해 주는 국가

    언젠가 나는 아사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나이가 많이 들고, 주어진 인생을 충분히 성실하게 살아냈다고 확신할 때, 천천히 곡기를 끊으며 스스로 죽어갈 것이라고. 태어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죽음은 나의 의지로 선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홀로 살아가고, 홀로 죽어갈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의 치기였다.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몸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거나, 치매 등으로 나의 의식과 기억이 허물어져간다는 것을 알았다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여생을 살아가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나의 의식과 육체를 온전히 움직이고 책임질 수 없다면 기꺼이 죽음을 맞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지난 7일 개봉한 <플랜75>는 나이 75세가 되면 안락사를 택할 수 있는 제도 ‘플랜75’가 시행된 미래의 일본을 그린 영화다. 78세의 여성 미치는 호텔 청소를 하며 홀로 살아간다. 일할 수 있는 한 타인은 물론 국가의 도움도 원하지 않...

    2024.02.15 20:18

  • [김봉석의 문화유랑]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2023년 극장에서 보는 마지막 영화로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선택했다.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받은 <마지막 황제>,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출연도 한 <전장의 크리스마스>, 지난해 11월 개봉하여 40만명이 넘게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 등 많은 걸작 영화음악을 작곡한 뮤지션 사카모토 류이치의 연주를 담은 영화다.사카모토는 2023년 3월28일, 71세로 세상을 떴다. 몇년간 대장암으로 투병을 하면서 죽음을 예감한 사카모토는 마지막으로 피아노 연주 영상을 찍었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피아노만이 존재하는 무채색 스튜디오에서 20곡을 연주하는 사카모토의 모습을 담은 영화다. 8일간 하루 3곡씩 2, 3번의 테이크로 찍었다. 카메라는 담백하다. 그가 연주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때로 얼굴이나 손으로 다가간다. 만족스러운 연주일 때 사카모토의 얼굴은 부드러워지고 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건반을 두...

    2024.01.1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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