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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 [김월회의 아로새김]‘학술 적자국’이라는 자화상
    ‘학술 적자국’이라는 자화상

    “역사적으로도 과학에 관심을 가진 국가는 흥했고 이를 무시하는 국가는 망했다.”지난 7일 과학기술정책 국민보고회에서의 대통령 발언 중 일부다.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바이오, 반도체, 우주항공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이 시대를 선도하며 국가 발전을 견인하고 있음은 부인키 어려운 사실이다. 그런데 과학에‘만’ 관심을 가지는 국가의 흥망성쇠는 어떠할까?이를 역사에서 검증하기는 불가능하다. 동서고금의 역사 어디에도 국가가 과학기술만으로 세워졌거나 운영된 예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역사는 국가 흥망성쇠의 요체가 문화임을 분명하게 일러준다. 문화가 과학기술을 뒷받침하고, 때로는 선도하며 함께 발달할 때 국가가 흥했음을 말해준다. 나아가 문화의 힘이 미흡하면, 과학기술의 힘에 의지하는 것조차 실현 불가능함도 알려준다. 국가가 과학기술 발전에 주력하는 만큼 문화 진흥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다.문화의 원천은 학술이다. 인문학, 사회과학 같은 학술의 근간이 발...

    2025.11.11 19:57

  • [김월회의 아로새김] 눈 감고 활쏘기라는 요행
    눈 감고 활쏘기라는 요행

    <한비자>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이 어둠 속에서 화살을 마구 쏘다 보면 과녁에도 적중된다. 머리카락같이 아주 가는 털을 맞힐 때도 있다. 그런데 불을 켠 다음 다시 맞혀보라고 하면 못 맞힌다. 과녁을 맞힌 것은 요행이지 실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실력이 없으면서도 과녁을 맞히는 방법이 또 있다. <여씨춘추>에 나온다. 과녁을 향해 1만명이 일제히 쏘면 정중앙에 적중하는 화살이 틀림없이 생긴다. 이 또한 실력이 아니라 요행이다. 정중앙에 맞힌 자더러 다시 정곡을 맞혀보라고 하면 못 맞힐 가능성이 십중팔구는 넘을 것이기에 그렇다.요행의 한계는 분명하다. 어쩌다 정곡을 찌를 수는 있지만 반복해 찌르라고 하면 못 찌른다. 요행히 잡은 기회를 온전히 살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곡을 찌른 효과조차 말짱 헛것이 된다. 꼭 활쏘기에만 해당하는 이치가 아니다. 요즘 국정감사에서 종종 목도되는 ‘묻지마’식 문제 제기도 마찬가지다. 과녁을 제대로 맞혔다...

    2025.10.28 20:03

  • [김월회의 아로새김]백성의 고통은 위정자의 안락
    백성의 고통은 위정자의 안락

    “전해오는 말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을 위태롭게 함으로써 자신을 안락하게 하고, 남을 해함으로써 자신을 이롭게 한다.” 맹자와 함께 공자 사후 유학의 양대 산맥을 이룬 순자의 증언이다. 한마디로 남의 불행을 자기 행복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뜻이다.유학자들이 경전 중의 경전으로 매우 중시했던 <시경>에는 이러한 시구도 실려 있다. “백성이 받는 재난은 하늘이 내린 것 아니네. 모이면 말만 많고 등지면 미워하는, 오로지 다투는 사람들 때문이라네.” 여기서 백성의 원문은 ‘하민(下民)’이다. 시인은 ‘민’ 한 글자로도 백성이라는 뜻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음에도 ‘하’를 넣었다. 은연중에 ‘상층 대 하층’이라는 구도를 소환함으로써 서로 헐뜯기에 여념 없었던 이들이 상층 사람임을 환기하기 위해서였다.백성들은 자신들이 겪는 재난은 하늘이 내렸다는 말을 듣곤 했다. 위정자들이 늘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잘못한 게 없음에도 재난을 겪는 것을 두고는 하늘이 ...

    2025.10.14 21:05

  • [김월회의 아로새김]마음을 저버린다는 것
    마음을 저버린다는 것

    영화나 소설에서 볼 법했던 모습을 삶터에서 자주 접하는 시절이다. 자기가 달려가는 길 끝에 절벽이 있을 줄 모르고 욕망을 주체치 못해 끝까지 달려가다가 고꾸라지는 이들의 모습이 그것이다.그들의 모습은 맹자식으로 말하자면 자포자기의 전형이다. 흔히 자포자기라고 하면 모든 일을 포기하고 절망에 빠져 무기력하게 퍼져 있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자포자기라는 말의 지식재산권자 격인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를 해치는 자와는 더불어 말할 수 없고, 자신을 버리는 자와는 함께 일할 수 없다. 예의를 비방하며 말하는 것을 일러 ‘자포(自暴)’라 하고, 인의를 행치 않음을 일러 ‘자기(自棄)’라고 한다.”맹자에 따르면 자포자기하게 되는 이유는 ‘방심(放心)’, 그러니까 마음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본래 사람은 하늘의 도덕적 본성을 마음에 타고난 선한 존재다. 다만 하늘의 도덕적 본성을 ‘단서’의 형태로 타고난다. 그래서 사람은 성장하면서 또 살아가면서 도덕의 단서,...

    2025.09.23 21:21

  • [김월회의 아로새김]미래 먹거리와 ‘살거리’
    미래 먹거리와 ‘살거리’

    지난달 정부는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보다 대폭 증액한 35조3000억원으로 편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예산은 오롯이 과학기술계 몫인데, 대폭 증액한 근거는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등 미래 먹거리 방면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나라와 국민의 미래 먹거리를 챙김은 국가가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책무이기에 R&D 예산 증액은 무척 반길 일이다. 그런데 국가는 미래 먹거리만 챙기면 되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먹기만 하면 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살거리’ 또한 국가가 응당 챙겨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인문사회계의 R&D 예산이 대폭은 고사하고 다소라도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의 핵심 의무를 저버린 행태로 비판받아 마땅하다.맹자는 백성에게 항상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줌으로써 먹는 문제를 해결해줘야 비로소 백성이 예의를 닦게 된다고 했다. 관중이라는 명재상은 “창고가 곡...

    2025.09.09 20:53

  • [김월회의 아로새김]공정의 토대
    공정의 토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닦고(修) 가문을 가지런하게 하며(齊) 나라를 다스리고(治) 천하를 태평케 한다(平)”는 뜻이다. 그런데 이들 동사(修·齊·治·平)에는 모두 ‘공평무사하게 하다’라는 뜻이 들어 있다.공평무사하게 한다는 말을 달리하면 ‘공정하게 한다’이다. 공정함이 개인부터 국가, 세계 차원에 이르기까지 기본이자 궁극의 가치로 제시된 것이다. 이는 오늘날이라고 다르지 않다. 공정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이자 시대정신이다. 그렇다 보니 정치인들은 상대를 공격할 때면 줄곧 공정을 들고나오곤 한다. 공정치 못하다는 지적이 그만큼 대중에게 먹히기 때문이다.그런데 공평무사, 즉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사사롭지 않다”는 공정이 웬일인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공정을 내세우지만 속으론 공정을 불편해하기에, 공정한 나라를 부르대지만 행실은 불공정을 일삼기에 그럴 수도 있다. 공정이란 가치를 앞세웠지만 실제론 정치, 경제적...

    2025.08.26 21:40

  • [김월회의 아로새김]교육부의 재구성
    교육부의 재구성

    교육부 장관의 자격으로 꼽히는 바를 보면, 교육부 장관이 되려면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사회부총리 역할은 논외로 하자. 사교육 문제 해결, 대학 서열 타파, 지역대학 활성화, 유보통합 관련 정책 역량의 구비는 물론이고 유아·초등·중등·고등 교육 및 평생학습 모두에 밝아야 한다.이뿐만이 아니다. 디지털 대전환, 글로컬(glocal) 시대 및 다문화·다원화 사회의 일상적 전개 등으로 촉발된 교육 환경의 근본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이를 선도적으로 이끌어갈 역량도 갖춰야 한다. 교육 환경의 근본적 변화는 각 단계의 교육 내용과 방법, 목표 등에 본질적 차원의 변화와 갱신을 요구하기에, 사실 어느 한 교육 단계에 대한 안목을 지니는 일만 해도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니 어느 한 사람이 이 모두에 대해 준수한 역량을 갖춘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사정이 이러하다면 교육부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교육부에 초·중·고등 교육부...

    2025.08.12 20:48

  • [김월회의 아로새김]평생학습시대와 교육학습부
    평생학습시대와 교육학습부

    공자는 학습을 중시했다. 제자들이 “배우고(學) 때때로 익히면(習)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를 <논어>의 첫 구절로 배치한 까닭이다. 그런데 학습에 중점을 둔 공자의 관점은 실제 역사에선 교수자와 가르치기를 중시하는 관점으로 변형되었다.그 결과 스승이 임금, 아버지와 동렬로 추켜세워졌고, 스승 중심의 위로부터 아래로의 가르치기가 올바른 근간이라고 인식됐다. 이는 근대 이후까지도 이어졌고, 교육과 학습을 국가 차원에서 관장하는 부처의 이름도 문화교육부·교육인적자원부·교육과학기술부·교육부 등처럼 교육을 주축으로 삼았다.그런데 공자는 교육을 언급할 때면 줄곧 학습의 방향에서 접근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중 선한 이를 택하여 본받고 선하지 못한 이를 반면교사 삼아 나를 바로잡는다”와 같은 방식이었다. 그들이 나를 가르칠 수 있기에 그들을 스승으로 삼음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통해 학습할 수 있기에 스승으로 삼는다는 ...

    2025.07.29 21:05

  • [김월회의 아로새김]인사권자의 눈이 높다고 하려면
    인사권자의 눈이 높다고 하려면

    국민주권정부의 초대 내각 인선이 마무리되자 대통령비서실장은 인사권자의 눈이 너무 높았다고 말했다. 듣는 순간 의아했다. 몇몇 장관 후보자의 흠결이 작다고 할 수는 없어서였다.맹자와 쌍벽을 이루었던 순자는 신하를 넷으로 나눴다. 태신(態臣), 찬신(簒臣), 공신(功臣), 성신(聖臣)이 그것이다. 그는 군주가 성신을 등용하면 존귀해지고 공신을 등용하면 영예로워진다고 했다. 백성들을 잘 단합하게 하고 외환을 잘 막으며 군주에게 충성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데 지치지 않는 신하가 공신이고, 이에 더해 예기치 못한 일이나 변화에 잘 대처하고 기존 시스템을 넘어서는 것에 기민하게 대응해 법제도를 빈틈없이 마련하는 신하가 성신이기 때문이다.반면에 군주가 찬신을 등용하면 위태로워지고 태신을 등용하면 망한다고 했다. 찬신은 백성을 단합시키지도 외환을 막아내지도 못하건만 아첨으로 군주의 총애를 얻는 데는 단연 최고인 자다. 태신은 찬신의 못남에 더해 백성들에게 인기나 얻으려 하고 ...

    2025.07.15 21:05

  • [김월회의 아로새김]돈은 억울, 알아서 기는 사람이 유죄
    돈은 억울, 알아서 기는 사람이 유죄

    돈의 힘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하다. 2100여년 전 <사기>를 쓴 사마천은 이렇게 통찰했다.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열 배 부자이면 헐뜯지만 백 배이면 그를 두려워한다. 천 배이면 그의 일을 대신해주고 만 배이면 그의 하인이 되고자 한다. 이는 세상사의 섭리다.이를 뒤집으면 이렇게 된다. 남들보다 돈을 열 배 더 갖고 있으면 남을 굳이 헐뜯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진 돈이 남들의 백 배이면 남들이 자기를 두려워하게끔 하고, 천 배이면 남들에게 자기 일을 전가하며, 만 배이면 남들을 노예처럼 부려먹는다. 가진 돈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질수록 사람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정도가 커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왠지 저 옛날 중국에서나 있었던 일이 아닌 듯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그 옛날 사마천의 통찰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싶다.실제로 예나 지금이나 거금을 쥔 자에게는 사람들이 알아서 굽신거리고, 그가 제멋대로 굴어도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런 일이 누...

    2025.07.0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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