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
  • 전체 기사 16
  • [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신종 정치 지배계급
    신종 정치 지배계급

    9월10일 ‘세계자살예방의날’이 되면 국회에서는 ‘자살예방유공자표창’ 행사를 한다. 아이러니다. 자살률이 줄었다면 모를까 현실은 그 반대이니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은 한국이 가장 높다. 20년째 1위다. 우리를 뺀 국가들의 자살률은 꾸준히 줄었다. 최근 20년 평균을 계산하면 10만명당 10명 정도다. 우리는 반대다.이달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5’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9.1명까지 늘었다. 2위 국가인 슬로베니아의 17.5명에 비해서도 압도적이다. 국회의 행사는 자살 예방을 위한 게 아니라 ‘자살예방의날’을 위한 것이라 해야 맞다. 본말의 전도다.얼마 전 ‘세계여성의날’에도 같은 문제를 느꼈다. 이날 많은 의원이 영상을 올렸다. 모두가 “성평등 민주주의의 실현”을 약속했다. 공허하게 들렸다. 때가 되면 ‘하게 되어 있는 말’을 담아 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한 건 했다”고 여기...

    2026.03.29 20:03

  • [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한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한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2세기 전 민주주의는 ‘신분질서 폐지’를 뜻했다. 1835년 출간된 토크빌의 <미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엔 이미 세습 군주와 귀족이 없었다. 프랑스 귀족 출신 토크빌이 보기에 신분 불평등의 종식은 피할 수 없는 ‘섭리’ 같았다.1세기 전 민주주의는 ‘재산에 따른 권리 부여 제도의 철폐’를 의미했다. 한 지역이 걷은 세금의 크기로 의원 수를 결정했고, 재산 없는 이는 투표할 수 없는 시기가 있었다. 영국에서 재산에 따른 선거권 제한이 철폐된 것은 1918년이었다. 1원 1표에서 1인 1표로 바꾸는 것, 그것이 당시의 원칙이었다.민주주의의 역사를 달리 설명할 수도 있다. 첫째는 배링턴 무어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에 따라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봉건제 신분질서의 붕괴를 주도한 사회계급이 부르주아였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의 세계관에 따라 실현된 것이 민주주의이고, 그런 기준에서 보면 1...

    2026.03.01 20:02

  • [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김병기와 루바쇼프
    김병기와 루바쇼프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은 당과 개인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든 정치 소설이다. 주인공 루바쇼프는 김병기처럼 정보기관 출신이다. 권력서열 2위까지 올라간 그가 어느 날 반역 혐의로 심문을 받는다.심문의 목적은 진실을 밝히는 데 있지 않다.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을 받아들여 당과 혁명의 대의를 지키라는 것, 심문관은 일관되게 그것을 요구한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지원도 김병기에게 같은 것을 말했다. “선당후사의 살신성인의 길”을 택하라. 안 그러면 “당이 힘들어진다”.루바쇼프의 심문관은 말한다. 당 앞에 개인은 없다. 개인은 ‘허영’이고 ‘제로’일 뿐, 실존하는 것은 전체로서의 당이다. 당은 개인의 희생 위에서만 전진할 수 있다. 한결같이 옳은 것은 당이지 개인이 아니다. 개인은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종속된 존재, “경제적 숙명성이라는 계시 아래 서 있(는)” 가여운 존재다. 경제법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개인은 무기력하다.당만이 역사법칙의 수레바퀴를 바꿀 ...

    2026.01.25 20:08

  • [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정치적인 것과 민주적인 것의 분열
    정치적인 것과 민주적인 것의 분열

    정치가 왜 이렇게까지 된 걸까. 정치해서는 안 될 성품과 도덕성을 가진 이들이 국회를 이끌고 정당을 대표한다. 그들이 어떻게 저 자리까지 올라갔는지가 경이로울 뿐, 정치가답게 정치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그런데 이는 사태의 일면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지금 정치를 이끄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지지자를 가진 사람들이다. 쿠데타로 그 자리에 간 것이 아니고 내란으로 권력을 잡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모두 ‘당심’이든 ‘민심’이든 지지 여론을 불러일으켜 선출되었다. 정치가로서 그에 합당한 자질과 품성, 실력을 갖췄는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이 민주적으로 성공했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다.큰 지지 얻었다고 좋은 정치가 아냐민주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부정교합, 지금 우리 정치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민주적 정당성의 요건으로서 누구보다 큰 지지를 받는 이들이 적대와 혐오를 키우는 정치를 한다. 민심·당심·국민주권·당원주권을 강조하는 이들의 정치가 더 분열적이...

    2025.12.28 19:58

  • [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민주당이 만들려는 세상
    민주당이 만들려는 세상

    정청래 대표의 말만 들으면, 민주주의는 목소리 큰 당원들이 원하는 대로 하는 서바이벌 게임 같다. 여론조사든 당원 총투표든 오로지 이겨야 살아남는다. 쪽수 많은 쪽이 권력을 갖는 게 ‘당원 주권 민주주의’ 아닌가. 이런 관점의 민주주의도 민주주의인 것은 맞지만, 대신 삭막하고 편협하다. 서로 다른 구성원들이 함께 이끌 정당 공동체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두고 도덕적 질문이 제기될 여지가 없다. 그런 민주주의관에서는 생각이 다른 당원·대의원·의원을 윽박지르고 싶은 열정, 그것밖에는 느껴지는 게 없다.정청래 지도부, 공존보다 ‘배제’정청래 지도부의 정치 언어에는 평화롭게 공존하고 평등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 닫혀 있다. 배제하고 파괴하려는 열망이 그들의 말을 압도한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첫째도 처벌, 둘째도 처벌, 셋째도 처벌이다. 반항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만 한다. 그럴 거면 정치도 없애고 의회민주주의도 폐지하고 민주당을 공안위원회로 만들어 3권을 통합한 뒤...

    2025.11.30 20:09

  • [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국회의 문제
    국회의 문제

    국회의 역할에 회의감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대개는 의원의 인성을 탓하는 개탄조 얘기다. 그렇게라도 여론을 형성해 제재하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인성론에 한정된 비난은 잠깐이다. 사과하고 비켜 있으면 그만이다. 부여된 권한의 크기에 맞게 책임을 지울 수가 없다.의심 대상·폭정 주체가 된 의원들국회의원은 헌법으로 보장된 정치제도이자 국가기관이다. 개인이 제도이자 기관인 경우는 최고 행정관인 대통령과 입법자인 의원뿐이다. 헌법 제41조는 의원의 권력이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었기에 발생한다고 적시한다. 인민주권의 원리가 우선 적용되는 공직자는 의원이지 대통령이 아니다. 헌법 제46조에 따르면 의원은 독립 기관이다. “청렴의 의무”가 있고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해야 한다.국회의원은 제1의 권력 부서인 입법부의 공동 운영자다. 총리가 있고 장차관과 그 이하 위계적 구조로 작동하는 행정부와 다르게, 국회는 동등한...

    2025.11.02 20:12

  • [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윤석열을 양산하는 정치
    윤석열을 양산하는 정치

    대학병원은 인간을 겸손하게 한다. 아픈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가. 삶과 죽음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환자와 그 곁을 지키는 이들, 떠날 사람과 남겨질 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에서 우리가 본래 어떤 존재였는지를 조용히 생각해본다. 그러다 보호자 대기 공간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 국회 법사위 장면을 보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대체 언제까지 저런 정치를 인내할 수 있을까. 양당 독과점 정치도 지켜보기 괴로운데, 제3당과 위성 정당의 정치인들까지 우리를 힘들게 한다.권력 악용한 죄로 몰락한 윤석열정치에서의 오만(hubris)은 처벌을 받는다. 정치사상가들 모두가 힘주어 경고한 사실이다. 과시의 수단이 된 권력은 흉기다. 힘과 권력은 절제의 덕목이 함께할 때만 선용할 수 있다. 윤석열이 좋은 사례다. 윤은 오만했고 제멋대로였으며 그래서 처벌을 받게 되었는데, 많은 의원이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윤은 실력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아...

    2025.09.28 21:35

  • [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예의 있는 민주주의
    예의 있는 민주주의

    여야가 있는 다원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확고한 합의다. ‘일당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중국과 다르다. 인민 다수의 지지를 얻은 한 지도자의 의지에 체제 운영을 맡기는 러시아식 ‘주권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여야의 경쟁과 정권의 교체가 허용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우리 관점에서 민주주의가 아니다.두 번의 대통령 탄핵은 ‘야당 무시’에서 비롯되었다. 박근혜는 야당과 국회를 꾸짖어달라며 국민 서명운동에 나섰다. 윤석열은 야당과의 대화를 감정적으로 거부했고 국회의 권위를 조롱하며 불법계엄을 도모했다. 그들은 여와 야 사이에서 일을 풀어가는 법을 몰라 몰락했다.여야의 적대정치, 헌법 정신 배치여야가 공존하면서 경쟁하는 민주주의는 우리 헌법의 요청이다. 헌법 제8조는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고 규정한다. 국회의원의 의무와 관련해 제46조는 “국가이익을 우선”하라고 되어 있지 당파적 이익의 극대화를 권하지 않는다. 정당은 공익을 두고 경쟁하는 정치 조직이기에 법의...

    2025.08.31 21:33

  • [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국민 임명식’ 유감
    ‘국민 임명식’ 유감

    오래전 조국 장관 후보의 ‘국민 청문회’ 주장만큼이나, 새 대통령의 ‘국민 임명식’ 발상은 과하다. 국회가 인정한 장관이 아니라 국민이 적격 판정한 장관이 되겠다는 것은 황당했는데, “당신을 나의 대통령으로 임명한다!”라고 선포할 이번 국민은 또 누가 될까.국회에서의 취임식이 “약식”이고 “간소”해서 임명식이 필요하다는 설명은 의아하다. 대통령 취임식은 헌법 제69조에 따른 절차다. 핵심은 ‘취임 선서’에 있다. 목적에 맞게 권력을 제한해 쓰겠다는 공적 약속을 해야 대통령직의 헌법적 정통성이 발생한다. 그 합당한 절차를 거쳤기에 약식이 아니라 정식이었고, 간소해서 아쉽다면 축하 행사를 열면 된다.한국 정치에서 과용되는 ‘국민’취임식이냐 임명식이냐도 그렇지만, 국민이라는 말의 과용은 더 문제다. 한국 정치에서 ‘국민’은 허망한 말이다. 박근혜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 전 대통령은 “어둠 속의 등대처럼 국민만 보고 가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2025.08.03 21:15

  • [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정당의 변형
    정당의 변형

    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을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승리한 후보는 1987년 국가안전기획부에 입사해 25년을 일하다 정치에 입문한 3선 의원이다. 그가 꺾은 경쟁자는 같은 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운동권 출신 4선 의원이다. 선출 과정에서 논쟁은 없었다. 두 후보 모두 대통령을 위해 일을 잘해내겠다고 했다. 경쟁이 아니라 간택해달라는 요청에 가까웠다. 대통령의 국회 정무수석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 같았다.김병기라는 인물에 새삼 관심이 갔다. 그가 여러 의원 중 한 사람이었을 때는 정보기관 출신 한 명이야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지난해 당내 공천을 기획한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 정도로 넘어갔다. 그런데 원내대표 자리는 차원이 다르다. 의원들을 지휘하는 국회 사령부의 수장이고, 권력 서열에서 의장 다음의 최고위 자리다.‘열성 친명’ 김병기 원내대표1987년에 그는 어떤 마음으로 안기부에 입사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

    2025.07.06 20:50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