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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누적
  • [반복과 누적]품격을 잃지 않는 멜랑콜리
    품격을 잃지 않는 멜랑콜리

    밴드 이름은 ‘일본식 아침’인데, 한국인이다. 정확하게는 한국인 피가 흐르는 미국인이다. 생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로 활동하는 미셸 자우너(사진)는 미국에서 꽤 큰 존재다. 그 유명한 ‘지미 팰런쇼’에 출연하고, 오바마와 코난 오브라이언이 그의 책 <H마트에서 울다>를 향해 찬사를 보냈다. 미셸 자우너는 탁월한 뮤지션이다. 감정을 섬세하게 짚는 그의 음악과 노랫말은 이미 세계적인 입지를 단단하게 굳혔다. 무명에 가까운 인디였던 미셸 자우너는 어느덧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그래미 후보에 오른 음악가다.재패니즈 브렉퍼스트가 4집 ‘포 멜랑콜리 브루넷츠 & 새드 위민’(For Melancholy Brunettes & sad women)을 막 발표했다. 음반의 정서는 제목 그대로다. 멜랑콜리다. 그러나 미셸 자우너의 멜랑콜리는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이 점이 중요하다. 뭐랄까. 이것은 삶의 온도로 딱 적당한 과잉 없는 ...

    2025.04.06 20:44

  • [반복과 누적]흑마법이냐 백마법이냐
    흑마법이냐 백마법이냐

    하루 최소 10만곡이 쏟아지는 시대다. 어느덧 음악 만들기가 쉬워진 덕분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여러분도 할 수 있다. 노트북을 비롯한 장비 몇개 사고, 프로그램을 깔면 끝이다. ‘장비빨’ 확실히 세우면서 ‘홈 리코딩 음악가’가 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2000년대 이전만 해도 녹음을 하려면 상당한 비용을 내야 했다. 스튜디오 임차 자체가 돈이었다. 풍경이 변한 이유의 9할은 인터넷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술의 발전이다. 바야흐로 인공지능(AI)이 작곡하는 시대다. 인간은 인간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인간이 만든 음악인지 AI 창작인지 구별할 수 없다.유튜브에 ‘AI Music’이라고 치면 수많은 음악을 찾을 수 있다. 여러 스타 음악가 역시 AI 기반으로 곡을 발표한다. 나는 유발 하라리가 아니다. AI의 영향에 대해 확언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생각 정도는 갖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

    2025.03.30 20:48

  • [반복과 누적]차트의 역사는 만들어진 역사
    차트의 역사는 만들어진 역사

    평론가로서 챙겨야 할 직업적 의무가 있다. 그중 하나가 차트 점검이다. 나는 매주 빌보드(사진)를 검색하고, 멜론 차트를 체크한다. 현대 대중음악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함이다.우리는 보통 차트를 객관적 지표로 간주한다. 반면 평론가의 관점은 객관적일 수 없다. 매일 최소 10만곡이 발매되는 시대다. 취향이 갈수록 세분화하는 속에 평론이 겨냥해야 할 최선의 목표는 분명하다. ‘자신의 관점을 잘 설득하는 것’이다.차트 순위 역시 객관과 거리가 멀다. 우리가 자생적이라고 여기는 음악가의 성적조차 철저한 계획의 산물임을 기억해야 한다.일례로 미국에서는 DJ에게 뇌물을 주고 선곡을 청탁하는 행위가 1980년대까지 버젓이 이뤄졌다. 1959년 법의 철퇴를 맞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이걸 페이올라(Payola)라고 부른다. 대표적으로, 1970년대 후반 빌보드 차트 디렉터 빌 워들로가 음반사로부터 받은 뇌물은 상상을 초월한다. “워들로에게 돈을 찔러주면 1위 곡으로 보...

    2025.03.23 20:40

  • [반복과 누적]젠트의 D는 묵음이다
    젠트의 D는 묵음이다

    젠트(Djent)라는 장르가 있다. 웬만한 음악 마니아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장르다. 젠트는 헤비메탈의 하위 장르다. 2000년대 말부터 떠오른 흐름으로 시원하게 뻗는 저음역대를 특히 강조한다. 이게 핵심이다. 그냥 저음만 연출하는 건 어렵지 않다. 젠트는 특유의 저음을 구현하기 위해 복잡한 악기 세팅을 요구한다. 계측기처럼 정확하면서도 기술적인 연주 또한 젠트의 특징이다.최근, 이 젠트를 음악에 녹여낸 밴드가 등장했다. 어떤 독자는 긴장할 것이다. 헤비메탈도 익숙지 않은데 젠트는 또 뭔가 싶을 것이다. 괜찮다. 밴드의 존재가 안정감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록을 안 들었어도 알 수밖에 없는 그 밴드의 정체, 바로 YB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굳이 분류하면 YB는 대중친화적 록 밴드다. 히트곡을 여럿 발표했고, 두꺼운 팬층을 자랑한다. 요컨대 지금껏 쌓아온 경력을 유지만 해도 뭐라 할 사람 하나 없다. 그들이 새 영역에 도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예를 들어...

    2025.03.16 20:48

  • [반복과 누적]싱글은 앨범이 아니다
    싱글은 앨범이 아니다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시상식이 열렸다. 걸그룹 에스파가 3개 부문 수상, 로커 이승윤도 트로피 3개를 가져갔다. 작년 <PSST!>라는 훌륭한 앨범을 낸 존박은 팝 부문 주인공이 됐다. <PSST!>는 정확하면서도 적절한 편곡으로 이뤄진 2024년 최고의 메인스트림 팝 앨범이다. 음악적으로 탄탄한 현재의 대중음악을 듣고 싶다면 강력하게 추천한다.한대음의 하이라이트는 ‘올해의 음반’이다. 그렇다. 싱글이 대세임에도 앨범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싱글이 가능한 차선이라면 앨범은 불가능한 최선이다. 음악가는 싱글로 상업적 성공을 손에 쥐려 하고, 앨범으로는 예술적 완성을 꿈꾼다. 2025년 올해의 음반 수상작은 밴드 ‘단편선 순간들’의 <음악만세>(사진)다. 짐작건대 ‘단편선 순간들’을 아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리더 단편선은 2010년부터 활동한 인디 음악가다.시상식 다음날 라이브클럽데이...

    2025.03.09 21:46

  • [반복과 누적]위대함이란 무엇인가
    위대함이란 무엇인가

    위대함의 증거는 무엇일까. 이것만은 확실하다. 음악인을 예로 들면 음악은 몰라도 이름은 아는 대중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밥 딜런이 그런 경우다.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대중음악 역사상 위대한 이 중 하나다. 얼마 전 전기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사진)이 개봉했다. 한국에 마니아가 없지 않지만, 그의 국내 인기는 해외와 차이가 크다. 해외는 학술 논문을 검색하면 끝도 없이 나온다. ‘딜러놀로지(Dylanology)’라는 학문까지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믿을 구석은 단 하나뿐, 바로 스타 배우 티모테 샬라메의 존재감이다.적어도 음악적 측면에서 <컴플리트 언노운>은 흠잡을 구석 없는 영화다. 전기 영화의 으뜸 미덕이 충실한 고증과 성실한 재현에 있다면 10점 만점에 9점은 된다. 티모테 샬라메는 영화에서 진짜 딜런처럼 말하고 노래한다. 1960년대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풍경을 관람하는 재미도 상당하다.기실 딜런은 정의하기 까다로운 음...

    2025.03.02 20:35

  • [반복과 누적]잘 만든 콩글리시 한 점
    잘 만든 콩글리시 한 점

    미국의 국민 스포츠는 미식축구다. 미식축구 시장 크기는 유럽 축구 4대 리그를 합친 것보다 크다. 따라서 가장 거대한 스포츠 이벤트는 미식축구 결승전인 슈퍼볼이 된다. 음악계에서도 슈퍼볼은 매년 화제다. 전후반 중간의 하프타임 쇼 때문이다. 2025년의 주인공은 켄드릭 라마였다. 솔직히 큰 인상은 못 받았다. 켄드릭 라마는 현대 힙합의 왕이다. 이걸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장르가 무엇이든, 메시지가 어떻든 반주 테이프 틀고 하는 라이브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같은 힙합이라면 닥터 드레, 스눕독, 에미넘, 켄드릭 라마가 함께 나온 2022년이 훨씬 근사했다.반주 테이프를 한국에서 ‘MR’이라고 한다. 콩글리시다. 잘 만든 콩글리시이기도 하다. 뮤직 레코디드(Music Recorded)를 줄였는데 그럴듯하다. 정확한 표현은 인스트루멘털(instrumental)이다. 녹음된 연주로 해석하면 맞는다.원래 하프타임 쇼의 성격은 지금과 달랐다. 프로 아닌...

    2025.02.23 21:01

  • [반복과 누적]혁명에서 일상으로
    혁명에서 일상으로

    지난 1일 브루노 마스와 로제의 ‘아파트’(APT.·사진)가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올랐다. 한국 여가수로는 최고 기록이다. 모든 기사가 그렇진 않았지만 구체적인 음악 얘기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순위와 수익을 강조해 국뽕을 자극하는 조회수 장사는 이제 시대정신이라 할 만하다. 활자 매체만은 아니다. 거대한 낚시터가 된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의 풍경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현대다.장르로 구분하면 ‘아파트’는 팝 펑크다. 그렇다면 질문해야 한다. 펑크란 무엇인가. 적시하면 펑크는 뭐가 있기보다는 없는 음악이다. “달랑 코드 3개로 음악 할 수 있다”라는 게릴라적 상상력이 펑크 정신의 요체다. 심지어 펑크의 시조새라 할 영국 밴드 섹스 피스톨스의 베이시스트는 베이스를 전혀 칠 줄 모른다는 바로 그 이유로 베이스 연주자가 됐다. 한데 이 덕분에 펑크는 결정적인 장점을 획득한다. 뼈대만 덜렁 있는 음악이기에 다른 장르와 아주 잘 붙는다는 거다. 특히 전자음악과의 궁합이 좋다. ...

    2025.02.16 21:24

  • [반복과 누적]도구는 죄가 없다
    도구는 죄가 없다

    종종 폭압적인 세상사로부터 거리 두기를 하고 싶다. 이런 이유로 소셜미디어를 끊으려 했던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쉽지 않다. 그로부터 얻는 정보가 쏠쏠해서다. 얼마 전 한 음악가를 알았다. 지인을 통해서였다. 정확하게는 지인의 소셜미디어를 통해서였다. 이름이 독특하다. 김반월키다. 앨범 제목은 <빈자리>(사진). 장르로 구분하면 포크에 실내악을 섞은 음악을 담고 있다.역사적으로 포크는 ‘감정적 나체 되기’를 주저하지 않은 장르다. 편곡도 대부분 최소주의를 지향한다. 김반월키는 반대로 간다. 그는 소리를 겹겹이 쌓는 음악가다. 그렇다. 오직 빼기만이 최선의 미학일 수는 없다. 대신 조건이 있다.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풀어오르는 구체처럼 소리가 팽창할 때도 군더더기라고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과연, 소리는 감정 이전에 과학이다. 공학이다. 따라서 음악가라는 직업은 어쩌면 건축가에 가깝다. 이런 측면에서 김반월키의 <빈자리>는 202...

    2025.02.09 20:50

  • [반복과 누적]재능이냐, 노력이냐
    재능이냐, 노력이냐

    천재는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다. 우리는 천재가 되기를 갈망하면서도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하고, 때로 질시한다. 살리에리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사진)에게 열등감을 느낀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럴 이유 또한 없었다. 후대에 의해 덧씌워진 역사적 오류다. 적시하면 살리에리는 꽤 준수한 작곡가이자 훌륭한 음악 교육자였다. 진실도 존재한다. 모차르트가 부정할 수 없는 천재였다는 것이다.바로 이런 이유로 천재는 효과적인 면죄부가 되어준다. 어차피 천재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내가 달성할 수 있는 성취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미리 벽을 치는 식이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지독한 연습광이었다. 그는 엄청난 양의 훈련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되풀이했다. 즉 반복하고 누적했다. 재능이냐, 노력이냐는 오래된 논쟁거리다. 정작 사람들은 지루한 반복을 이겨내는 태도야말로 재능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2025.02.0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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