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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원의 다른 시선들
  • [남지원의 다른 시선들]모두를 위한 성평등
    모두를 위한 성평등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여러 차례 ‘남성에 대한 차별’을 언급했다. 취임 직후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는 “남성들이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영역이 있는데, 공식적으로 논의하는 곳이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지난달 19일에는 청년 대상 토크콘서트에서 “취업하기까지는 여성이 좀 유리하고, 남성이 차별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가 여자를 미워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여자가 남자를? 상상하기 어려운 접근이라 안타깝다”는 발언이 바로 이 자리에서 나왔다.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는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여성에 대한 구조적 성차별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데 아주 특정한 영역에서는 예외적으로 남성들이 차별받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이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과 ‘예외적인 남성 차별’을 따로 떼어 말한다. 언뜻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남성들이 겪는 고통의 상당수는 성차별적 구조를 극복하려다 생긴 부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성차별적 구조 그 자체의 결과물이다. 이를...

    2025.10.29 20:24

  • [남지원의 다른 시선들]마른 여자들
    마른 여자들

    몇달간 가공식품만 먹고 지내던 시기가 있었다.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의 열량과 영양성분을 측정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기록하던 때였다. 멸균 포장된 현미곤약밥, 플라스틱 통 샐러드, 무가당 두유 같은 공장에서 나온 식품들은 칼로리를 계산하기가 손쉬웠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 때는 원재료를 전자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쟀다.그렇게 기록한 열량이 하루 1300㎉를 넘기면 밤마다 혼자서 자책했다. 정상체중보다 고작 몇 ㎏ 더 나가는 몸을, 앉으면 접히는 뱃살과 틈 없이 맞닿는 허벅지를 스스로 혐오했다. 한밤중에 배가 고파오면 옷장에서 옷을 마구잡이로 꺼내 입어봤다. 물배라도 채우고 싶었지만 물을 많이 마시면 다음날 공복 몸무게가 늘어날까봐 그조차 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아침마다 체중계에 올라 전날보다 소수점 단위로 줄어든 몸무게를 확인해야 비로소 안심이 됐다.그렇게 몇달을 지내자 주변 사람들이 칭찬했다.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고, 너무 예쁘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그...

    2025.09.17 20:46

  • [남지원의 다른 시선들]막을 수 있었던 죽음들
    막을 수 있었던 죽음들

    그를 만난 것은 수습기자 시절 찾았던 어느 장례식장이었다. 살해당한 20대 여성의 빈소였고, 그는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그는 울었는지 붉어진 눈으로 고인의 친구들 무리 사이에 끼어 있었다. 유족과 친구들에게 몇 가지 사실관계들을 묻다가 으레 그렇듯 그날도 빈소에서 쫓겨났던 기억이 난다. 며칠 후 범인이 잡혔다. 슬픔에 잠긴 것처럼 보이던 그 남자가 범인이라고 했다. 여자친구가 자신을 무시했고, 다른 남자와의 관계가 의심됐다는 것이 가해자가 진술한 범행 이유였다.충격적인 경험이었지만 빠르게 무뎌진 이유는 비슷비슷한 사건을 그 후로 너무나도 많이 마주했기 때문이다.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당하는 가장 많은 이유는 ‘이별을 통보하거나 재결합을 거부해서’ ‘다른 남성과의 관계를 의심받아’ ‘홧김에’ ‘자신을 무시해서’ 등이다. 지난해 4월 경남 거제에서 한 20대 남성은 전 여자친구가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찾아가 살해했다. 지난해 5월에는 서울 강남의...

    2025.08.06 21:04

  • [남지원의 다른 시선들]어떡하죠, 우리는 세상 곳곳에 있는데요
    어떡하죠, 우리는 세상 곳곳에 있는데요

    제26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렸던 지난달 14일은 하루종일 비가 올 거라고 예보된 날이었다. 걱정이 무색하도록 하늘이 맑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무지개 깃발이 나부끼는 풍경은 예뻤지만 정말 더웠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아스팔트 도로에서는 열기와 함께 습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 참가자의 투덜거림을 듣고서는 ‘웃참’에 실패했다. “아니 나는 퀴어 당사자니까 왔는데, 이 날씨에 여기에 오는 앨라이(성소수자들의 지지자)들은 진짜 대단하다.” 퀴어퍼레이드 단골 참가자들은 ‘퀴퍼 날은 항상 덥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이들이 매년 거리에 나오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성소수자 집단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것 자체가 저항이기 때문이다. 퀴어 당사자는 아니지만 퀴어퍼레이드에 갔던 것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사상 처음으로 차린 공식 부스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언론의 성소수자 관련 보도가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지 않도록 하고, 퀴어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현장을 안전...

    2025.07.09 20:48

  • [남지원의 다른 시선들]‘분열은 무능의 결과다’
    ‘분열은 무능의 결과다’

    전 정부의 몰락이 언제부터 시작됐냐고 묻는다면 2022년 1월7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윤석열 당시 후보가 아무런 설명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페이스북에 올린 날이다. 2030세대 남성 표심을 잡기 위해서였다는데, 여성가족부가 사라지면 이들이 어떤 구체적 실익을 얻을지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젠더 갈등 프레임을 자극해 표를 모으기 위해서 정부 내 성평등 추진체계를 없애버리자고 선언한 것이다. 소수자 혐오에 기반해 집권한 윤석열 정부는 3년 뒤 자멸했다. 그를 파면시킨 광장의 주역은 그가 배제한 여성과 소수자였다.우스운 것은 이번 대선에서는 너도나도 상대편을 공격하기 위해 ‘여성혐오’를 입에 올렸다는 점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상대 후보의 가족을 검증하겠다며 여성에 대한 가학적 성폭력을 TV토론에서 묘사하면서 “이것은 여성혐오냐”라고 물었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노동자 출신인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배우자를 거론하며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

    2025.06.04 20:15

  • [남지원의 다른 시선들]우리 차례는 언제 올까
    우리 차례는 언제 올까

    “기자님 페미세요? 우리나라 박살 날 상황인데 남녀 비율이 중요해요?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세요.” 경향신문 여성서사아카이브 채널 플랫에서 지난주 출고한 기사에 이런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꾸린 정책 싱크탱크의 주요 보직자 65명 중 여성이 단 5명뿐이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일단 기자는 페미니스트인가. 기사를 쓴 후배에게 물어보니 “그럼 아니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다음으로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조금 더 길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수십년 동안 비슷한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든지,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든지, 지금 ○○○라는 거악의 집권을 막아야 하는데 고작 그런 문제로 발목을 잡느냐든지,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리겠다’든지…플랫팀은 독자들에게 ‘이번 대선의 공약이 되어야 할 성평등 의제’를 모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모집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는데도...

    2025.04.30 20:53

  • [남지원의 다른 시선들]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2020년 3월8일 출범했다. 여성의 목소리가 주변화될 수밖에 없는 불평등한 현실에서 여성의 목소리와 서사를 중심에 두고 취재하는 버티컬 채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지난 5년간 플랫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보도하는 모습을 동료로서 지켜보다가 올 초부터 팀을 맡게 됐다.‘젠더데스크 겸 플랫팀장’으로 발령받을 것이란 소식을 들은 건 서부지법 폭동 이후 생각이 많아지던 시기였다. 서부지법이 침탈당한 그날 밤, 새벽 내내 유튜브 중계를 보면서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수준으로 치달은 백래시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 노동자가 ‘집게손가락 동작’을 작업물에 끼워넣었다는 누명을 씌워 공격하던 사람들, N번방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일삼고 ‘페미들은 꺼지라’고 악플을 달다가 여성가족부 폐지론으로 정치세력화된 반페미니즘 세력이 끝내 폭도가 되어 법원에 난입했다. 이들과 이들을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

    2025.03.27 06:00

  • [남지원의 다른 시선들] ‘대치맘의 명품 패딩’보다 중요한 것
    ‘대치맘의 명품 패딩’보다 중요한 것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의 수학 학원에 4살짜리 아이를 보내고 돌아서서 차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제이미맘’. 그는 아이가 어느 날 과자가 너무 적다며 더 달라고 하는 모습에서 ‘벌써 수를 이용하기 시작하는 영재적인 모먼트’를 느꼈다고 한다. 제이미가 배변훈련에 성공했다는 전화에 감격하고, 제기차기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며 ‘소피아맘’에게 소개받았다는 제기차기 과외교사를 만나 면접을 보는 장면이 뒤이어 펼쳐진다.너무 진지해서 더 우스꽝스러운 광경 가운데 화면에는 제이미맘이 입은 명품 브랜드 패딩점퍼와 자동차 핸들의 외제차 엠블럼이 끊임없이 부각된다. 요즘 유튜브에서 화제를 쓸어모으고 있는 한 예능인의 패러디 콘텐츠 ‘휴먼다큐 자식이 좋다’ 내용이다.솔직히 말하면 재미있게 봤다. 교육계를 취재할 때 만났던 몇몇 취재원들이 겹쳐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예능적 과장이 끼어 있긴 하지만 놀랄 만큼 현실을 모사한 콘텐츠라는 생각도 했다. 4살에 수학학원에 간다는 아이를 본 적은...

    2025.02.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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