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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 전체 기사 10
  • [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낡은 문장에서 해방되려면
    낡은 문장에서 해방되려면

    세상일이 내 뜻 같지 않을 때 나는 흐릿한 미래보다는 제법 선명해 보이는 과거를 돌이켜 보곤 한다. 저렇게 또렷한 옛길도 많은 사람들이 수상한 안개를 뚫고 수고스럽게 걸어 온 덕분에 생겼다. 지금 당연한 것이 과거에는 격렬한 의심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면, 가망 없이 갈라져 가는 오늘을 낙관할 힘이 불쑥 솟아나곤 한다. 그래서 오래된 문장이 그럴듯한 새 옷을 입고 우리 주위를 배회할 때면 나는 오히려 반갑다. 나아갈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그러니 세월을 거슬러 가보자. 19세기 영국 의회는 아동노동을 제한하기 위해 연일 논쟁을 벌였다. 찬반 진영은 날카롭게 대립했다. 그때 아동노동이 불가피하다고 한 사람들은 짧고 강력한 문장을 하나 제시했다. “아동노동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누군가의 잔혹함 때문이 아니라 가난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한 주장은 곧바로 아동노동의 규제나 철폐는 가족을 더 깊은 빈곤 속으로 밀어넣을 뿐이라는 논리로 연...

    2025.12.23 20:01

  • [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나침반에서 새벽배송까지
    나침반에서 새벽배송까지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다. 없는 곳을 다녀온 여행을 회고하는 토머스 모어는 궁여지책으로 유토피아를 저 아득히 멀리 있는 섬으로 묘사했다. 설정 자체가 역설적이니, 모어는 그 역설을 대수롭지 않은 듯한 문체로 밀어붙였다. 나침반 얘기가 그렇다. 유토피아의 섬에는 나침반이 없었다. 파도 잔잔한 여름에만 항해했다. 어둡고 바람 불고 추운 날에는 엄두도 내지 않았다. 낯선 외지인이 나침반을 소개해 주자, 섬사람들은 당연히 열광했고 더 이상 어둠과 겨울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그런데 나침반이라는 바늘 하나가 뱃길의 경계를 넓혀놓자, 사람들은 마치 위험을 상쇄해주는 부적처럼 의지하기 시작했다. 나침반 하나만 믿고 너나없이 더 멀리 더 오래 바다로 나가다 보니, 배가 길을 잃고 항구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외려 더 많아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술이 열어젖힌 가능성 위에 뒤늦게 질서를 얹었다. 바다에 길을 만들고, 불을 켜고, 규칙을 세웠다. 그 규칙 속에서 나침...

    2025.11.25 21:55

  • [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실감나는 적’을 찾아서
    ‘실감나는 적’을 찾아서

    모든 시대에는 경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선을 긋고, 안과 밖을 나눈다. 선을 긋는 행위는 언제나 단순하고, 그 단순함은 안도감을 준다. 선이 명확할수록 안쪽은 더 안전해 보인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정치적 상상력은 언제나 “경계가 분명한 공동체(bounded community)”를 향한다.역설적이게도, 그런 공동체는 위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안쪽의 질서를 지키려면, 언제나 바깥의 혼란이 필요하다. 적이 사라지는 순간, 내부의 결속도 함께 무너진다. 그들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적이 사라지면, 새로운 적을 찾아 나선다. 마치 사라진 신을 대신해 새로운 신을 만드는 신학자처럼. 의도라기보다 습관이며, 습관이라기보다 거의 반사에 가깝다. 인류의 오래된 방어기제가 정치의 본능으로 굳어진 셈이다.냉전의 시절, 그 적은 분명했다. 북한이었다. 반공은 신앙이었고, 신앙에는 어둠이 필요했다. 그 어둠이 체제를 비춰주는 등불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2025.10.28 20:05

  • 부쳐지지 않은 편지, 카프카가 트럼프에게

    저는 프란츠 카프카입니다. 프라하에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제 소설 하나쯤은 들어보셨으리라 믿습니다. 아마 <변신>은 아시겠지요. 다만 제가 생각하기엔, 당신에게는 오히려 <심판>의 풍경이 더 친숙하겠습니다. 그 끝의 외침 “개 같군”은 당신이 즐겨하는 표현과도 닮아 있습니다.저는 아버지와 오랫동안 치열하게 불화했습니다. 사사건건 부딪쳤고, 삶의 중요한 길목에서 날카롭게 대립했습니다. 마흔 즈음, 뒤늦게 화해를 시도하려 했습니다만, 사람이 쉬운가요. 말로는 못하고 결국 한 통의 긴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차마 직접 전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전해달라 부탁했지요. 어머니는 그 편지를 남편에게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곧 세상을 떠났으니, 그 편지는 ‘부쳐지지 않은 편지’가 되었습니다.그 편지를 오래 묵혀 두었는데, 이제 놀랍게도 당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득 느꼈지요. 세상에, 나의 아버지가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고. 그래서,...

    2025.09.23 21:21

  • 죽어도 안 된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1967년 9월3일. 이날은 역사가 시작된다. 우리는 우측통행을 시작했다. 오전 9시에.” 스웨덴 여성 청소노동자 마이아 에켈뢰브의 일기 속 이 구절은, 아무런 수식어도 없이 쓰였지만 사실상 혁명 선언문이었다. 그날 아침, 스웨덴은 교통 방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꾸었다. 수천년간의 관습, 100만대 차량의 습관, 온 국민의 몸에 밴 ‘왼쪽 본능’을 뒤집은 날이었다. 그것도 단 몇분 만에.전국에 생중계된 그날, 스톡홀름 거리에서 마지막 전차가 종착역에 도착하자 시민들은 낯선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송 카메라는 전쟁 종식을 기록하듯 전차의 뒷모습을 따라갔고, 어떤 이는 울었고 어떤 이는 웃었다. 그러나 모두 불안했다. 과연 이게 될까?이런 전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뿌리는 19세기 초,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야심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왼손잡이였고, 무엇보다 세상을 뒤집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황제 즉위 직후 단행한 개혁 가운데 하나가 바로...

    2025.08.26 21:40

  • 잠이 보배다

    어릴 적 나는 시골 외갓집에서 늦잠을 자곤 했다. 점심밥 때가 다 되어도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좀 미안해졌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으셨다. 오히려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잘했다, 잠이 밥이고 잠이 보배다.그때 나는 그 말이 그저 한 노인의 다정한 위로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세월이 지나 보니 그 말이야말로 보배였다. 잠이 정말 밥이고, 밥보다 나을 때도 있었다. 할머니는 당시 이미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감춰진 베개’의 가치를 알고 계셨다.이제는 경제학자들도 그 말을 입증하고 나섰다. 독일의 연구진이 발표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잠을 평균보다 1시간 더 자는 사람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1.6%포인트 더 높고, 주당 수입도 3.4%나 많다고 한다. 더 놀랍게도 그렇게 더 자는 사람이 일하는 시간은 오히려 0.8% 적다고 한다. 잠을 더 자니 덜 일하고도 더 버는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반기를 드는 이...

    2025.07.29 21:05

  • 말귀를 못 알아먹는 남자들

    ‘가정의 달’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불안해진다. 이 문구는 늘 희생을 요구한다. 남자로서 부인하고 싶지만, 그 희생은 대개 여성의 몫이다. 정책은 가족을 위한 것이고 복지라고 써놓았지만, 정작 남편들은 그걸 ‘자기개발비’쯤으로 해석하는 일도 많다.사실, 이런 일은 오래전부터 그랬다. 50년 전 독일에서는 아이 옷을 사라고 지급한 아동수당이 이상하게도 아빠들의 양복값으로 증발했다. 정부는 놀랐고, 곧장 수령인을 엄마로 바꿨다. 그러자 수당은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 아이들 옷장에 안착했다. 학계에선 “복지의 도착지 오류”라는 기괴한 개념을 만들었고, 가정 내 자금 흐름의 오묘한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비밀의 역사는 계속됐다. 북유럽에서 남성에게 육아휴가를 의무화했다. 아빠가 육아의 몫을 나누도록 강제한 것이다. 그랬더니, 낚시터를 찾아 강과 바다로 나가는 젊은 아빠들이 난데없이 늘었다. 휴가의 목적은 ‘육아’였으나 사용처는 ‘휴양’이었다. ‘낚시지표’가 유럽...

    2025.07.01 21:15

  • 민주주의는 방귀다

    내게 사전은 늘 비장하거나 곤혹스러운 물건이었다. 어릴 적 한글사전은 세종대왕의 분투와 일제강점기 한글학회의 외로운 투쟁을 떠올리게 했다. 사전을 넘길 때마다 손아귀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비장함이 있었다.중학생 때 처음 받은 영어사전은 이름이 ‘콘사이스(Concise)’였지만 전혀 간략하지 않았다. 두툼한 사전을 잘근잘근 씹어먹듯 외워야 한다고 해서 몇번 입에 넣었지만 단어는 머리에 남지 않고 항문으로 빠져나갔다.그런데 어른이 되어 알게 된 인물 하나가 사전에 대한 나의 감정을 조금 바꾸었다. 그는 새뮤얼 존슨. 18세기 영국의 문인이자, 최초로 본격적인 영어사전을 만든 사람이다. 당시엔 표준화된 영어라는 개념조차 희박한 시대였던지라, 존슨은 혼자서 수십년 동안 수천개의 단어와 그 용례를 모아 책을 냈다. 어두운 골방에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을 한 까닭에 그는 ‘무료함’을 정의할 때 “사전을 만드는 일”을 예로 들었다.나는 그 순간 옥스퍼드대학의 답답한 도서관...

    2025.06.04 01:04

  • [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마지막 선거라는 마음으로
    마지막 선거라는 마음으로

    이젠 못 보겠제. 버스에 타고 떠나는 내게 손을 흔드는 외할머니의 몸짓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구부정해져버린 허리 탓에 걷기조차 힘들었지만, 동네 어귀까지 나와서 손자의 손을 어루만지고 버스가 떠난 후에도 그곳에 오랫동안 앉아 계셨다. 할머니에게 우리 만남은 늘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주었다. ‘운 좋게’ 손자를 다시 보면 다시 마지막인 양 온 힘을 다했다. 나는 그걸 몰랐다. 때로는 귀찮다는 듯 할머니 손에서 서둘러 내 손을 빼냈다. 마지막인 줄도 몰랐던 마지막이 머지않아 다가왔고, 버스 뒤편에 이젠 외할머니가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나는 슬퍼했다. 왜 달리 마지막이라고 하겠는가. 되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후회해봐야 소용없었다.오스트리아의 유대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마지막을 빨리 깨닫고 그 이전에 세상과 연을 끊은 사람이다. 히틀러의 폭정이 시작되자 그는 전쟁과 학살의 그림자를 본능적으로 느꼈다. 주위 사람들이 그럴 리가 없다고...

    2025.05.06 20:20

  • [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어떤 불굴의 정신
    어떤 불굴의 정신

    움베르토 에코는 이탈리아에서 은밀하게 꿈틀거리던 파시즘과 싸웠다. 싸움이라는 표현은 사실 옳지 않다. 그는 웃으면서 화내는 법을 고민했다. 인간을 말살하는 잔인함에는 당연히 정색하며 분노해야 하지만, 어리석음에 대해서는 웃으며 화낼 수 있다. 그런데 쉽지 않다. 성격이나 재주 탓이 아니라,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어리석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나를 비웃는 법부터 익혀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에코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과는 달리 세상 사람들이 가장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 것은 양식(bon sens)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적어도 어리석음에서는 인간은 공평하다.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바깥을 떠돌면서, 점령당한 땅에 갇혀 살고 있는 동포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역사가 고통받는 자가 아니라 지배하는 자에 의해 쓰이는 ‘힘의 역사’를 바로잡고자 했는데, 결과는 가혹했다. 자신의 나라로 영영 돌아가...

    2025.04.0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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