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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 전체 기사 13
  • [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피하지 못하는 사람들,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피하지 못하는 사람들,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봄꽃이 터지듯 피어오르던 로마를 떠나던 날, 테헤란에는 폭탄이 쏟아졌다. 나는 간드러진 봄바람 속을 가로질러 공항으로 향했고, 다른 누군가는 폭탄이 떨어지는 두바이 공항에서 필사적으로 빠져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계절은 제시간에 도착하는데, 인간은 번번이 제정신에 도착하지 못한다.전쟁이 시작되면 넘쳐나는 것은 피란민만이 아니다. 말도 함께 넘쳐난다. 패권, 억지력, 안보, 자유. 텔레비전 화면 아래로 흘러가는 그 단어들은 하나같이 크고 단단하다. 마치 세상의 운명이 정말 그런 말들 사이에서 결정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말들은 한결같이 파괴와 죽음을 가리키면서도 어김없이 평화와 생존의 이름으로 발화된다. 살육을 계산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인간의 오래된 습속이다.전쟁의 약속은 내 가망 없는 친구의 말과도 닮았다. 약속시간에 늦는다고 재촉하면 이제 곧 내려간다고 한다. 그런데 실은 이제 겨우 샤워를 마치고 젖은 머리를 말리고 있다. 전쟁도 늘 그렇게 말한다. 이번...

    2026.03.24 19:54

  • [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이 세계 통역되나요?
    이 세계 통역되나요?

    오늘도 통역기를 낀다. 스페인어 통역사는 두 명인데 스타일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한쪽은 손짓까지 섞는 열정의 라티노이고, 다른 한쪽은 늘 무덤덤하다. 한쪽은 같이 흥분하고 울부짖지만, 다른 쪽은 감정의 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다. 그래서 통역기가 들려주는 말은 원뜻과 전달자의 체질이 뒤섞인, 탁하지만 발랄한 소통의 언어가 된다.통역이라는 인간의 일도 조만간 인공지능에 자리를 내어줘야 한다고들 말한다. 인간의 섬세함이냐 기계의 균일성이냐, 논쟁은 길지만 결론은 짧다. 따질 틈도 없이, 당장 통역사를 고용할 돈이 없다. 국제회의가 일상인 국제기구의 새로운 풍경이다.사실, 투정할 일도 아니다. 인간이든 기계든, 통역의 정확성은 이미 부차적이다. 통역이란 본디 서로 다른 언어가 한자리에서 같은 방향을 보게 하는 작은 기계이자 연결장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통역기는 ‘연결’이 아니라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보험’이 되었다. 다리를 놓는 일이 이제는 난간을 세우는 일이...

    2026.02.24 20:07

  • [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설명 뒤에 숨을 때
    설명 뒤에 숨을 때

    우리는 설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보고서는 두껍고, 진단은 정교하며, 문제의 원인은 빠짐없이 정리된다. 통계는 늘 최신이고, 그래프는 점점 세련된다. 무엇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런데 그다음 장면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 결정이 없다. 책임도 없다.책임을 물을 때마다 설명은 늘어난다. 그리고 그 설명은 거의 언제나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시스템 탓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선택 탓이다. 구조가 문제이거나, 개인의 판단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갈래 설명이 등장하는 순간, 결정의 순간은 마법처럼 사라진다. 누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왜 그 선택이 가능했는지는 모호해진다.설명은 본래 책임을 위해 존재했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그 결과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설명은 책임을 밀어내는 기술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 설명은 이상한 균형을 이룬다. 사고가 나면 ‘시스템의 한계’가 원인이 ...

    2026.01.20 20:02

  • [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낡은 문장에서 해방되려면
    낡은 문장에서 해방되려면

    세상일이 내 뜻 같지 않을 때 나는 흐릿한 미래보다는 제법 선명해 보이는 과거를 돌이켜 보곤 한다. 저렇게 또렷한 옛길도 많은 사람들이 수상한 안개를 뚫고 수고스럽게 걸어 온 덕분에 생겼다. 지금 당연한 것이 과거에는 격렬한 의심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면, 가망 없이 갈라져 가는 오늘을 낙관할 힘이 불쑥 솟아나곤 한다. 그래서 오래된 문장이 그럴듯한 새 옷을 입고 우리 주위를 배회할 때면 나는 오히려 반갑다. 나아갈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그러니 세월을 거슬러 가보자. 19세기 영국 의회는 아동노동을 제한하기 위해 연일 논쟁을 벌였다. 찬반 진영은 날카롭게 대립했다. 그때 아동노동이 불가피하다고 한 사람들은 짧고 강력한 문장을 하나 제시했다. “아동노동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누군가의 잔혹함 때문이 아니라 가난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한 주장은 곧바로 아동노동의 규제나 철폐는 가족을 더 깊은 빈곤 속으로 밀어넣을 뿐이라는 논리로 연...

    2025.12.23 20:01

  • [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나침반에서 새벽배송까지
    나침반에서 새벽배송까지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다. 없는 곳을 다녀온 여행을 회고하는 토머스 모어는 궁여지책으로 유토피아를 저 아득히 멀리 있는 섬으로 묘사했다. 설정 자체가 역설적이니, 모어는 그 역설을 대수롭지 않은 듯한 문체로 밀어붙였다. 나침반 얘기가 그렇다. 유토피아의 섬에는 나침반이 없었다. 파도 잔잔한 여름에만 항해했다. 어둡고 바람 불고 추운 날에는 엄두도 내지 않았다. 낯선 외지인이 나침반을 소개해 주자, 섬사람들은 당연히 열광했고 더 이상 어둠과 겨울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그런데 나침반이라는 바늘 하나가 뱃길의 경계를 넓혀놓자, 사람들은 마치 위험을 상쇄해주는 부적처럼 의지하기 시작했다. 나침반 하나만 믿고 너나없이 더 멀리 더 오래 바다로 나가다 보니, 배가 길을 잃고 항구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외려 더 많아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술이 열어젖힌 가능성 위에 뒤늦게 질서를 얹었다. 바다에 길을 만들고, 불을 켜고, 규칙을 세웠다. 그 규칙 속에서 나침...

    2025.11.25 21:55

  • [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실감나는 적’을 찾아서
    ‘실감나는 적’을 찾아서

    모든 시대에는 경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선을 긋고, 안과 밖을 나눈다. 선을 긋는 행위는 언제나 단순하고, 그 단순함은 안도감을 준다. 선이 명확할수록 안쪽은 더 안전해 보인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정치적 상상력은 언제나 “경계가 분명한 공동체(bounded community)”를 향한다.역설적이게도, 그런 공동체는 위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안쪽의 질서를 지키려면, 언제나 바깥의 혼란이 필요하다. 적이 사라지는 순간, 내부의 결속도 함께 무너진다. 그들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적이 사라지면, 새로운 적을 찾아 나선다. 마치 사라진 신을 대신해 새로운 신을 만드는 신학자처럼. 의도라기보다 습관이며, 습관이라기보다 거의 반사에 가깝다. 인류의 오래된 방어기제가 정치의 본능으로 굳어진 셈이다.냉전의 시절, 그 적은 분명했다. 북한이었다. 반공은 신앙이었고, 신앙에는 어둠이 필요했다. 그 어둠이 체제를 비춰주는 등불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2025.10.28 20:05

  • 부쳐지지 않은 편지, 카프카가 트럼프에게

    저는 프란츠 카프카입니다. 프라하에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제 소설 하나쯤은 들어보셨으리라 믿습니다. 아마 <변신>은 아시겠지요. 다만 제가 생각하기엔, 당신에게는 오히려 <심판>의 풍경이 더 친숙하겠습니다. 그 끝의 외침 “개 같군”은 당신이 즐겨하는 표현과도 닮아 있습니다.저는 아버지와 오랫동안 치열하게 불화했습니다. 사사건건 부딪쳤고, 삶의 중요한 길목에서 날카롭게 대립했습니다. 마흔 즈음, 뒤늦게 화해를 시도하려 했습니다만, 사람이 쉬운가요. 말로는 못하고 결국 한 통의 긴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차마 직접 전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전해달라 부탁했지요. 어머니는 그 편지를 남편에게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곧 세상을 떠났으니, 그 편지는 ‘부쳐지지 않은 편지’가 되었습니다.그 편지를 오래 묵혀 두었는데, 이제 놀랍게도 당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득 느꼈지요. 세상에, 나의 아버지가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고. 그래서,...

    2025.09.23 21:21

  • 죽어도 안 된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1967년 9월3일. 이날은 역사가 시작된다. 우리는 우측통행을 시작했다. 오전 9시에.” 스웨덴 여성 청소노동자 마이아 에켈뢰브의 일기 속 이 구절은, 아무런 수식어도 없이 쓰였지만 사실상 혁명 선언문이었다. 그날 아침, 스웨덴은 교통 방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꾸었다. 수천년간의 관습, 100만대 차량의 습관, 온 국민의 몸에 밴 ‘왼쪽 본능’을 뒤집은 날이었다. 그것도 단 몇분 만에.전국에 생중계된 그날, 스톡홀름 거리에서 마지막 전차가 종착역에 도착하자 시민들은 낯선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송 카메라는 전쟁 종식을 기록하듯 전차의 뒷모습을 따라갔고, 어떤 이는 울었고 어떤 이는 웃었다. 그러나 모두 불안했다. 과연 이게 될까?이런 전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뿌리는 19세기 초,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야심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왼손잡이였고, 무엇보다 세상을 뒤집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황제 즉위 직후 단행한 개혁 가운데 하나가 바로...

    2025.08.26 21:40

  • 잠이 보배다

    어릴 적 나는 시골 외갓집에서 늦잠을 자곤 했다. 점심밥 때가 다 되어도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좀 미안해졌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으셨다. 오히려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잘했다, 잠이 밥이고 잠이 보배다.그때 나는 그 말이 그저 한 노인의 다정한 위로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세월이 지나 보니 그 말이야말로 보배였다. 잠이 정말 밥이고, 밥보다 나을 때도 있었다. 할머니는 당시 이미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감춰진 베개’의 가치를 알고 계셨다.이제는 경제학자들도 그 말을 입증하고 나섰다. 독일의 연구진이 발표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잠을 평균보다 1시간 더 자는 사람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1.6%포인트 더 높고, 주당 수입도 3.4%나 많다고 한다. 더 놀랍게도 그렇게 더 자는 사람이 일하는 시간은 오히려 0.8% 적다고 한다. 잠을 더 자니 덜 일하고도 더 버는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반기를 드는 이...

    2025.07.29 21:05

  • 말귀를 못 알아먹는 남자들

    ‘가정의 달’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불안해진다. 이 문구는 늘 희생을 요구한다. 남자로서 부인하고 싶지만, 그 희생은 대개 여성의 몫이다. 정책은 가족을 위한 것이고 복지라고 써놓았지만, 정작 남편들은 그걸 ‘자기개발비’쯤으로 해석하는 일도 많다.사실, 이런 일은 오래전부터 그랬다. 50년 전 독일에서는 아이 옷을 사라고 지급한 아동수당이 이상하게도 아빠들의 양복값으로 증발했다. 정부는 놀랐고, 곧장 수령인을 엄마로 바꿨다. 그러자 수당은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 아이들 옷장에 안착했다. 학계에선 “복지의 도착지 오류”라는 기괴한 개념을 만들었고, 가정 내 자금 흐름의 오묘한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비밀의 역사는 계속됐다. 북유럽에서 남성에게 육아휴가를 의무화했다. 아빠가 육아의 몫을 나누도록 강제한 것이다. 그랬더니, 낚시터를 찾아 강과 바다로 나가는 젊은 아빠들이 난데없이 늘었다. 휴가의 목적은 ‘육아’였으나 사용처는 ‘휴양’이었다. ‘낚시지표’가 유럽...

    2025.07.0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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