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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태도
  • 전체 기사 5
  • [내일의 태도]작별의 장면들
    작별의 장면들

    안성기를 생각할 때면 왜인지 늘 그의 뒷모습부터 떠오른다. 내가 기억하는 영화 속 그는 언제나 쓸쓸히 길을 걷는 모습이다. 눈 덮인 산속을 헤매던 빨치산(<남부군>)은 물론, 첫눈에 반한 여자에게 끝없는 구애를 퍼붓던 너드(<기쁜 우리 젊은 날>), 악연인 형사의 얼굴에 주먹을 꽂던 조폭 두목(<인정사정 볼 것 없다>), 한물간 록스타를 꾸준히 뒷바라지하며 재기를 성공시킨 매니저(<라디오스타>)까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인상임에도 그의 존재는 왜인지 모두 춥고 언 길을 묵묵히 걷는 뒷모습으로 남아 있다.몇년 전 봤던 만화 <룩 백(Look Back)>은 만화 그 자체를 사랑하는 두 소녀, 후지노와 ‘쿄모토’의 우정과 이별을 다룬다. 작품은 제목 그대로 인물의 ‘등’을 집요하게 그린다. 주인공 후지노는 쿄모토를 이기기 위해, 또 쿄모토의 격려로 포기했던 만화를 다시 그리기 위해 책상 앞에 앉는다. 창밖으...

    15시간 전

  • [복길의 내일의 태도]점선을 따라 안쪽으로 접으세요
    점선을 따라 안쪽으로 접으세요

    이제 10대 시절의 이야기를 하기엔 제법 나이를 먹었지만, 내가 느끼는 고통의 기원을 찾다 보면 태연히 그때로 돌아가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무엇도 탓하지 않고 오직 나의 서사 안에서 싹트는 새파란 고통을 보기 위해서. 그러나 어린 내 모습을 마주하고 연민을 경계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 한동안은 그 연민을 이겨내지 못해, 어른이 된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안아주는 신파적인 장면을 수없이 바라봐야 했다.어항에서 수족관으로어쩌면 고통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신파가 끝나고 찾아온 냉혹한 자기혐오의 시간은 내게 더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었고, 그 고통에 무뎌지면 기억의 해상도가 점점 낮아지다, 복잡했던 과거는 결국 하나의 뭉툭한 단상이 된다. 잦은 회상으로 심각하게 마모된 기억. 겉면엔 ‘탈출’이란 글자가 희미하게 적혀 있다.내가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나는 당연히 더 크고 더 멋진 곳에 살아야...

    2025.12.14 19:56

  • [복길의 내일의 태도] 학교 밖의 동창회
    학교 밖의 동창회

    숫자 ‘1’ 옆에 마치 실수로 인쇄된 듯 보이는 또 다른 ‘1’. 손가락 열 개를 채우고도 하나가 남는, 인심 좋은 숫자 11. 실수를 저질러도 왠지 한 번 기회를 줄 것 같은 안도의 숫자 11. 아직 한 달이 더 남았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듯한 11월. 게으른 인간의 마지막 보루.스무 살 노동, 어떻게 위협받는가“12년의 입시가 종료되는 날이네요. 차분히 문제를 풀고, 끝나면 마음껏 기쁨을 누리세요.” 아침 라디오 DJ의 반복적인 응원과 격려를 듣고서야 11월에 수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수능, 인생엔 그보다 몇 곱절이나 힘든 고통이 있다는 걸 체험한 후, 내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고만 아주 사소한 이벤트. 음, 쓰고 보니 ‘인생 별거 아냐’ 하는 종류의 허세 가득한 소회인 것 같아 부끄럽다. 하지만 오늘은 지우지 않는다. 수능 당일 SNS에서 보았던, ‘제발 수능 못 쳐도 인생 망한 거 아니라고 해줘요’란 어느 청소년의 절박한 요청에 답을 보태고...

    2025.11.16 21:54

  • [복길의 내일의 태도]토끼풀 신문사
    토끼풀 신문사

    꽤 오랫동안 게임에 문외한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게임 속 세계관에 대한 해석이나 게임회사의 운영 방식을 두고 골치 아프게 싸워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게임을 잘 몰라서요. 가끔 스도쿠 정도 해요” 하며 얄밉게 빠져나가는 식으로 말이다.내가 자란 세계관에서 게임이란 학생이 해서는 안 될 불량한 활동이자, 단속의 대상이었다. 학교 선배 중 하나가 스타크래프트 게이머가 되었다는 것에 분노하다 급기야 그의 미래에 저주를 퍼붓고 말았던 교장 선생님의 담화는 그 세계관을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억이다. 그렇게 축적된 편견들 때문에 서른이 넘어서까지 나의 유일한 게임 경력은 일곱 살에 했던 ‘슈퍼 마리오’뿐이었다. 그러니 2년 전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을 플레이하며 내가 흘린 뜨거운 눈물은, 게임을 모르고 살아온 지난 20여년의 한이자 설움이었다…!억압을 ‘백지’로 거부한 청소년들‘리토의 마을’은 이 게임의 배경인 ‘하이랄 왕국’에서 내가 가장 좋...

    2025.10.19 20:37

  • [복길의 내일의 태도]종로의 밤
    종로의 밤

    본관이 어디냐는 질문에 잠시 눈앞이 하얘졌다. 우물쭈물하니 친구의 아버지가 먼저 “요즘엔 성을 묻는 사람이 잘 없지” 하고 속을 헤아려줬다. 대체 어른들은 남의 집 족보가 왜 궁금한 걸까? “그게 어른들한텐 일종의 MBTI 같은 거지.” 친구는 자신의 아버지를 변호하듯 멋쩍게 말했다. 나는 친구 아버지가 준 배 한 상자를 트렁크에 실으며 호쾌하게 웃었다. 친구야,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익현(최민식)은 ‘어디 최씹니까?’라는 질문 하나로 주먹 세계의 실세가 됐어. 한국 사회에서 뿌리를 안다는 건 그만큼 강력한 힘인 거야. 참… 난 경주 최씨도 아닌데 이렇게 좋은 배를 받아도 되는 건지…본관을 알려준 대가로 받은 배는 달고 시원했지만, 남의 족보를 묻는 게 거북하다는 내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경상도 집성촌에서 조선시대부터 대를 이어 살아온 나의 조부모는, 내가 겨우 말을 뗐을 때부터 가문의 큰 인물이 세운 업적들을 읊어주던 분들이었다. 400년 전 죽은 내 조상의 ...

    2025.09.1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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