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 전체 기사 16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거장들의 유산이 모인 별, 호크니에게
    거장들의 유산이 모인 별, 호크니에게

    후일담부터 말하자면, 6월 어느 날 남편이 데이미언 허스트의 전시를 보는 동안 나는 미술관 카페에 앉아 데이비드 호크니의 책을 읽었다. 나만의 의미가 담긴 미학적 저항으로 끝까지 허스트를 밀어낸 날, 왜 하필 나는 호크니를 선택했을까?손수 제작했느냐 아니냐를 두고 그 두 작가가 격돌한 때가 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호크니가 지키려 한 것이 손의 순수성보다 눈의 능동성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직접 그린다는 것은 화가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고, 같은 길을 계절마다 걸으며, 나무 한 그루가 어제와 오늘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자신의 몸으로 확인하는 일이었다. 허스트와 달리 호크니는 자신을 한 번도 대표작 속에 가두지 않았다. 수영장 회화로 성공한 뒤에도 사진 콜라주를 만들고 무대미술을 거쳐 풍경으로 돌아왔으며, 여든이 넘어서도 아이패드로 봄이 도착하는 시간을 그렸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에게는 정교한 구조와 공간...

    2026.07.30 20:07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이상은 왜 ‘큐비스트’이고자 했을까
    이상은 왜 ‘큐비스트’이고자 했을까

    이상은 그 이름처럼 이상한 예술가였다. ‘오감도’라는 난해한 시를 썼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일하다 각혈을 한 뒤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한국어 시를 쓰며 자신을 큐비스트라 칭했다. 기생 금홍과 사랑에 빠져 제비다방을 열었고, 금홍이 손님을 맞는 동안 뒷방에서는 <날개>를 썼다. 그리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짧은 생을 마쳤다.건축가였고, 시인이었고, 소설가였고, 화가였다. 그런데 그 이질적으로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씩 이어 붙이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의 그림이 떠오른다. 나는 그게 바로 이상이라는 한 편의 큐비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가 남긴 작품보다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이상만 한 작품이 있을까. 그렇게 매력적으로 불안한 작품은 드물 것 같다.그래서였을까. 퐁피두센터 한화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특별 섹션에서 이상을 만났을 때 나는 다른 누구보다 반가웠다. 특히 내 발길을 오래 붙잡...

    2026.07.16 19:47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진동하는 사물들과의 북촌 여행
    진동하는 사물들과의 북촌 여행

    도시는 오래 머물러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 떠나 있다 돌아왔을 때 비로소 자신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래서 서울에 갈 때마다 나는 시민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이방인이 된다. 발터 베냐민이 말한 플라뇌르(산책자)처럼, 나는 도시를 소비하기보다 읽으려고 한다.안국역에 내려 미쉐린에 실렸다는 라면집으로 향했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직업과 나이가 사라지고 모두가 하나의 국물을 기다리는 존재가 된다. 기다림조차 경험으로 만드는 도시. 좋은 음식은 혀보다 시간을 설득한다는 말을 이해하게 하는 그런 맛.라면집을 나와 천천히 걸었다. 걸을 때 가장 많은 것을 보여주는 도시를 읽는 일은 하나의 미적 체험이 된다. 오래된 담벼락의 빛, 유리창에 겹쳐진 얼굴, 골목의 작은 식물들은 도시가 건물의 집합이 아니라 관계의 풍경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다.그리고 이내 나의 목적지인 국제갤러리에 도착해 사진가 구본창이 기획한 9인의 그룹전 ‘진동하는 ...

    2026.07.02 19:58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의심하며 반목하고 해체하는 듯 보이는
    의심하며 반목하고 해체하는 듯 보이는

    혁신이란 뭘까? 우리가 당연하게 믿고 있던 창(세상을 보는 창)에 먼저 ‘의심’이라는 돌을 던져 금을 내는 일. 그렇게 창을 산산조각 낸 다음 더 아름답게 재구성하는 일. 심지어 그것이 더 가치 있다는 걸 알게 하는 전시가 있다. 퐁피두센터 한화의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그런데 우리가 흔히 ‘큐비즘’ 하면 떠올리는 피카소의 대표작 때문이었을까?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관측해 한 화면에 배치한 피카소의 초기 입체파 그림이 너무 강렬해서 카를로 로벨리 같은 당대 최고의 이론물리학자도 큐비즘은 상호작용하는 파편들만 캔버스에 나열한 채, 그 너머에 존재하는 우주 본연의 구조를 탐구하길 포기한 예술이라고 비판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그런데 다행히도 그게 ‘오류’이고 ‘오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시를 내 눈으로 직접 본 덕분이다. 피카소의 다중 시점이 큐비즘의 문을 연 중대한 ‘해체’의 시작이었다면, 퐁피두에서 목격한 다른 혁신가들은 각자 자기 손으로 쪼갠 파...

    2026.06.18 19:50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첩자가 보내온 미술계의 빛과 어둠
    첩자가 보내온 미술계의 빛과 어둠

    최근에 미술책 하나를 샀다.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인데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운 책이라 아예 옆에 두고 싶어서 구입했다. 제목은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작가 비앙카 보스커가 뉴욕 현대 미술계 이곳저곳에 잠입 취업해 마치 스파이처럼 활동하며 쓴 예술 에세이다.스파이에게는 완수해야만 하는 임무라는 게 있다. 비앙카가 ‘환영받지 못할 첩자’ 신분으로 스스로를 미술계의 밑바닥에 밀어넣으며 부여한 임무는 바로 “도대체 예술이 뭐길래 삶의 벼랑 끝에서도 인간이 그것으로 희망의 빛을 구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오는 것이었다.그 임무에 영감을 준 이는 그녀의 할머니였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던 할머니는 화가는 아니었지만 난민수용소에서도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자로 빠듯한 삶을 살면서도 미술을 사치스러운 취미가 아닌 ‘삶의 일부’로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은퇴 후 여든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직접 붓을 들고 그림 그리는 삶을 시...

    2026.06.04 19:54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피터 도이그스럽다는 것!
    피터 도이그스럽다는 것!

    미술계의 은둔자로 불리는 피터 도이그 앓이는 제법 오래됐다. 그러나 소문에 의하면 피터 도이그는 한국 미술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한국에서의 개인전도 원치 않는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나의 미학적 추측에 가까운 확신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사실일 거다.최근 몇년간 한국 미술계는 세계에서 가장 뜨겁고 트렌디한 시장으로 급부상했지만 그 이면은 피터 도이그가 가장 혐오하는 ‘철저한 계급화와 서열 매기기, 그리고 블록버스터 전시 다반사와 높은 가격대의 작품만 팔리는 자본의 재현’ 시장이 됐다. 누구의 그림이 투자 가치가 높은지, 누가 소장했는지, ‘리셀(Resale)’ 가격이 얼마인지가 작품의 아우라를 압도하는 시장이 된 거다.그러나 내가 알기로 피터 도이그는 내 작품이 왜 그렇게 고가인지 모르겠다며 도리어 불쾌감을 드러내는 작가다. 그런 그가 지금 파리 16구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르코르뷔지에 재단이 본부로 사용하는 주택 건물 ‘라 로슈’에서 2026년에 제작한 신...

    2026.05.21 19:50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예술이라는 이름의 약 처방
    예술이라는 이름의 약 처방

    어디선가 잘못된 레코드가 돌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분명 바늘을 새로 바꾸고 턴테이블의 수평을 맞췄는데도, 음악은 결정적인 순간에 튀어버린다. 그리고 일상의 리듬이 갑자기 견딜 수 없는 소음이 되어 내 심장을 조금씩 조이는 것 같다. 그 소음을 멈추기 위해 약을 먹거나, 누군가 내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주길 바라며 소파에 눕는다. 하지만 그 원인을 찾아 치료하지 못한다면, 병은 낫지 않고 약은 계속 먹어야 한다.한국의 마음 치료라는 시스템은 어딘가 기묘한 구석이 있다. 정신과 대기실에는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의사와 마주 앉는 시간은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시간보다 짧다. 반대로 상담소의 문을 두드리면 공감과 경청이라는 이름의 긴 터널이 시작된다. 물론 다정한 위로는 소중하지만, 몇년째 터널 속을 걷다 보면 내가 길을 찾고 있는 것인지, 그저 어둠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인지 모호해진다.공황장애도 대물림이나 유전적인 문제가 있을까? 아니면 같은 환경에서...

    2026.05.07 20:12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데이미언 허스트 전시에 왜 뒤샹이지?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에 왜 뒤샹이지?

    잘 그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환영 만들기다. 예술에서 환영 만들기는, 화가가 던진 미끼를 관객이 덥석 물어서 자기 마음속에서 형상을 완성하게 만드는 ‘심리 게임’에 가깝다고 곰브리치는 말했다. 장담하건대, 데이미언 허스트 역시 곰브리치의 <예술과 환영>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족관 속 박제 상어나 ‘다이아몬드 해골’ 작품 앞에서 결국 셀카를 찍는 사람들을 보며, 승리감에 웃었을 것 같다. “보라, ‘욕하면서도 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허스트의 진짜 마법’이라고 했지?”라면서.먼저 선언한다. 나는 그 ‘마법의 환영 만들기’에 동원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나는 이번 전시를 직접 보지 않고 비평하기로 한다. 누군가는 주제넘게 오만하다고 할지 모르나, 허스트의 예술이 ‘삶과 죽음의 문제를 화려한 전리품’으로 만드는 이미지의 범람이자 지각의 기만이라면, 그 현장 점유조차 그가 설계한 ‘구경꾼의 몫’에 포섭되는 일이기 때문이다.대신 나는 내 마음속에, 내...

    2026.04.23 20:08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29세의 고흐와 에머슨을 품고 양평으로
    29세의 고흐와 에머슨을 품고 양평으로

    “그림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아.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이는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고흐가 몇 차례 좌절을 겪은 뒤 테오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7세(1880년) 무렵이었고, 이 편지는 29세였던 1882년 10월경에 쓰였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반 고흐 미술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폭풍우 속의 스헤베닝겐 해변’이나 ‘헤이그의 오래된 집들과 신교회’가 대표적이다. 스승 모베를 만나 화가로서의 기초를 다져가던 시기로, 결코 어설픔이 느껴지지 않으며 고흐가 추구한 예술의 진정성이 처음부터 또렷하게 드러난다.지금, 마치 그 시기의 고흐처럼 어떻게 하면 더 잘 그릴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자신의 그림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궁금해하는 젊은 ...

    2026.04.09 19:53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함돈균과 피터 도이그의 예수, 그리고 ABC
    함돈균과 피터 도이그의 예수, 그리고 ABC

    얼마 전부터 술과 담배를 끊듯 유튜브도 끊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폐허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별’처럼 챙겨 보게 되는 채널이 있다. 함돈균의 뉴스쿨이다. 문학비평가의 언어가 ‘무사의 칼’보다 더 날카로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정치·시사 비평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듣다 보면 결국 더 오래 남는 것은 문학비평이다. 시인 이영광의 산문집, 한강의 시집, 카뮈의 <결혼, 여름> 같은 작품을 풀어내는 방식이 그야말로 ‘죽여주게’ 좋다.아마 제임스 볼드윈의 말일 것이다. 사회가 제공하는 ‘정해진 답’이 우리를 잠들게 만든다고 했던 건. 그는 예술의 목적을 “정해진 답에 가려진 질문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았다.함돈균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잠들게 하고 눈멀게 하는 뻔한 ‘답’을 문학과 예술, 철학과 교육으로 깨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 같다. 그 믿음은 거의 ‘종교’에 가깝고, 때로는 전쟁도 불사할 듯한 신념처럼 강력하다. 솔직히 이런 비평가는...

    2026.03.26 20:13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