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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 시의 세계
  • 전체 기사 15
  • [세계의 시, 시의 세계]교체
    교체

    잭 런던은 평생 술꾼으로기이하고 영웅적인 남자들의 이야기를 썼고유진 오닐은 고주망태로음울하고 시적인 작품을썼다.현대 문인들은넥타이와 양복 차림으로대학에서 강의하고젊은 남자들은 학구열과 맨정신으로젊은 여자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위쪽을올려다본다.잔디는 너무 파릇하고 책은 너무 따분하고삶은 목마름에죽어 간다. - 찰스 부코스키(1920~1994)미국 대공황 시절 LA의 빈민가에서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찰스 부코스키는 노동자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서른다섯 살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1연에 언급된 잭 런던이나 유진 오닐처럼 부코스키 역시 지독한 술꾼에다 싸움과 스캔들, 온갖 기행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그의 시집은 제도권 사회나 문학에 대한 통쾌한 풍자와 유머로 대단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더러운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부코스키는 어떤 수사도 없이 자신이 거쳐온 밑바닥 삶을 드러냄으로써 날것의 진실을 전달한다. 그의...

    2026.04.19 20:05

  • [세계의 시, 시의 세계]축복의 시
    축복의 시

    누구도 눈물이나 비난쯤으로 깎아내리지 말기를.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 그 오묘함에 대한나의 허심탄회한 심경을.신은 빛을 여읜 눈을이 책 도시의 주인으로 만들었다.여명마저 열정으로 굴복시키는 몰상식한 구절구절을내 눈은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뿐.낮은 무한한 장서를 헛되이눈에 선사하네.알렉산드리아에서 소멸한 필사본들처럼까다로운 책들을.(그리스 신화에서) 샘물과 정원 사이에서어느 왕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 갔네.높고도 깊은 눈먼 도서관 구석구석을나는 정처 없이 헤매네.(후반부 생략)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작가이자 도서관 사서였던 보르헤스는 1955년 아르헨티나의 국립도서관장이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 무렵 안타깝게도 시력을 거의 상실했다. 신은 그에게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것이다. 사랑하는 책들을 가까이 두게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읽을 수 없게 된...

    2026.04.12 19:56

  • [세계의 시, 시의 세계]무거운 질문
    무거운 질문

    네팔은 작고 작지만나도 작고 작지만나는 우상도 아니고돌도 아니니어떻게 나를 자로 잴 수 있을까네가 나를 무시한다면내가 어떻게 살아남을까하얀 모자를 쓰고 있는 에베레스트와즐겁게 노래하는 강들을자연의 축복받은 이 나라를저주는 누가 했나?순교자도 많았는데피의 강이 땅을 적셨는데어찌 이 땅은 이리 메말랐는가?깃털 같은 정치가들아이 무거운 질문을 가슴에 담아라(중략)그대이빨만 반짝이는 정치가여검은 눈동자로 사진을 찍어라네 얼굴에 찍힌 사진을 들여다보아라 - 두르가 랄 쉬레스타(1935~)네팔의 국민시인 두르가 랄 쉬레스타는 1990년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직전 이 시를 썼다. 당시 네팔은 비렌드라 국왕의 장기집권으로 정치적 억압과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었다.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천혜의 자연을 지닌 나라지만, 판차야트 체제의 현실은 참담했다. 시인은 “어찌 이 땅은 이리 메말랐는가?”라고 탄식하며 부...

    2026.04.05 19:55

  • [세계의 시, 시의 세계]한 가지 기술
    한 가지 기술

    (1·2연 생략)더 많이 잃고, 더 빨리 잃는 연습을 할 것.장소들을, 이름들을, 여행하려고 마음먹었던 곳들을.이것들을 잃었다고 재앙이 오지는 않는다.나는 어머니의 시계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보라! 사랑했던세 집 중 마지막 집, 아니 끝에서 두 번째 집도 사라졌다.잃어버리는 기술을 익히기란 어렵지 않다.나는 두 도시를 잃었다. 아름다운 도시들. 내가 가졌던더 넓은 영토들, 두 개의 강과 하나의 대륙을.그들이 그립지만, 그렇다고 재앙은 아니었다.―심지어 당신을 잃는대도(농담하던 그 목소리, 내가사랑한 그 몸짓을) 내 말은 거짓이 아니다. 분명히잃어버리는 기술을 익히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당장은 (그냥 써!) 재앙처럼 보이겠지만. - 엘리자베스 비숍(1911~1979)살면서 필요한 한 가지 기술로 비숍은 “잃어버리는 기술”을 말한다. 시인은 “더 많이 잃고, 더 빨리 잃는 연습”을 독려하면서 그동안 잃어버린 존재들을 떠올린...

    2026.03.29 19:52

  • [세계의 시, 시의 세계]경이로움
    경이로움

    무엇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이 한 사람인 걸까요?다른 이가 아닌 오직 이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나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요?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필이면 화요일에?새들의 둥지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비늘이 아닌 피부로 숨을 쉬면서?잎사귀가 아니라 얼굴의 거죽을 덮어쓰고서?어째서 내 생은 단 한 번뿐인 걸까요?무슨 이유로 바로 여기, 지구에 착륙한 걸까요? 이 작은 혹성에?수없이 오랜 세월 존재조차 없다가 왜 갑자기?모든 시간과 지평선을 뛰어넘어 왜 하필?어째서 해조류도 아니고 강장동물도 아닌 걸까요?무엇 때문에 지금일까요? 왜 단단한 뼈와 뜨거운 피를 가졌을까요?나 자신을 나로 채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왜 하필 어제도 아니고, 백 년 전도 아닌 바로 지금왜 하필 옆자리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도 아닌 바로 이곳에 앉아서어두운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며영원히 끝나지 않을 독백을 읊조리고 있는 걸까요?마치 고...

    2026.03.22 19:50

  • [세계의 시, 시의 세계]선물
    선물

    나 저 깊은 밤의 끝에 대해 말하려 하네나 저 깊은 어둠의 끝에 대해깊은 밤에 대해말하려 하네사랑하는 이여내 집에 오려거든부디 등불 하나 가져다주오그리고 창문 하나를행복 가득한 골목의 사람들을내가 엿볼 수 있게 - 포루그 파로흐자드(1935~1967)이란의 여성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포루그 파로흐자드는 가부장적인 관습과 금기에 맞서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서른두 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섯 권의 시집을 남겼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도 파로흐자드의 시에서 따온 제목이다. 이 시는 “나 저 깊은 밤의 끝에 대해 말하려 하네”로 시작되지만, 밤의 절망에 대해 자세히 들려주지는 않는다. 다만, 화자는 사랑하는 이에게 “등불 하나” “창문 하나”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이 선물은 자신을 둘러싼 깊은 어둠을 밝힐 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엿보기 위한...

    2026.03.15 19:56

  • [세계의 시, 시의 세계]손톱만 한 작은 해 1
    손톱만 한 작은 해 1

    할아버지 가슴에서 홑겹의 게르 안에서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웅얼웅얼 소리가 난다. 손톱만 한 작은 해가 천창 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약해진 심장 멀리에서 소리가 난다.“말을 찾았느냐? 말의 콧소리를 듣고 싶구나…”라고 하신 몇 마디 말에 목이 막히시는 듯 말이 없으셨다.다행히 말 묶는 곳에서 등자 소리가 나고, 말이 낮은 소리로 히이잉― 울었다. 할아버지는 천창을 덮은 덮개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웃으시며,“큰애가 왔니? 말을 찾았느냐?”라고 하시는 말씀이 좀 전보다 더 또렷이 들렸다. 나는 나가 보지도 않은 채…“네, 형이 왔어요. 말을 찾았어요….”난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버렸다.할아버지께서 “아, 다행이구나” 하시며 깊은 숨을 내쉬시다 멈추셨다. 읍의 의사가 들어오자마자 오른쪽 문가에서 흰 가운을 입고 나갔다… 손톱만 한 작은 해가 천창 틀에서 날아갔다. - 바오긴 락그와수렌(1944~2019...

    2026.03.08 19:54

  • [세계의 시, 시의 세계]비즈니스
    비즈니스

    사랑에 빠진다는 건 오늘 날씨가 어떤가보려고 밖에 나가는 것과 비슷하지요. 오해는마세요. 당신이 그녀를사랑한다고 해서, 그녀도 당신을사랑한다는 걸 어찌 증명하겠어요, 그냥일어나는 일, 아주 희박한 가능성에당신 자신을 거는 수밖에요? 하지만 물물교환은 원래인디언에게는 생존 수단이었잖아요.기록에도 남아 있어요. - 로버트 크릴리(1926~2005)로버트 크릴리는 미국 블랙마운틴 유파에 속했던 시인으로, 간결하고 절제된 언어로 통렬한 성찰을 담은 시들을 썼다.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첫 번역 시선집 <나는 긴장을 기르는 것 같아>(정은귀 옮김)가 출간된 것은 불과 몇달 전이다. 로버트 크릴리의 시가 지닌 묘미는 단순한 일상어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시행을 어긋나게 배치하는 앙장브망(시행 엇붙임)을 통해 심리적 긴장을 조율하는 데 있다. 연과 연 사이에서도 하나의 문장을 종결하지 않고 분절함으로써 일정한 거리를 유지...

    2026.03.01 19:47

  • [세계의 시, 시의 세계]알비옹의 폐허
    알비옹의 폐허

    1966년 2월 24일알비옹의 고결한 지표면에 구멍을 뚫는 사람들은 이것을 반드시 헤아려야 한다. 우리는 싸우는 것이다. 내리는 눈이 겨울날의 여우가 되고 또한 봄날의 오리나무가 되는 한 장소를 위해서. 그곳의 태양은 우리의 세찬 피의 위로 떠오르고, 인간은 동포의 집에서 결코 수형인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있어, 이 장소는 우리들의 빵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것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 르네 샤르(1907~1988)르네 샤르는 2차 세계대전 동안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프랑스의 저항시인이다. 1960년대에는 환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60년 전, 그는 고향 근처인 알비옹 고원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는 정부에 맞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싸웠다. “고결한 지표면에 구멍을 뚫는” 행위를 강력히 비판하며 그는 자연을 지키는 레지스탕스가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날짜가 명시된 이 시는 일종의 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핵미사일 기지는 결국 세워지고...

    2026.02.22 19:52

  • [세계의 시, 시의 세계]저물녘
    저물녘

    저물녘 잠자리를 찾는한 떼의 새.내게 깃들인다.어스름 속에 서 있는 나는한 그루 나무.팔꿈치에, 어깨에, 머리카락에, 가슴에새들이 파고들어밤새 내는 소리가 아무리 괴로워도쫓아낼 수 없다.그 많은 새들이 다 내 형제들의 영혼.나는 그들의 집이 되어야만 한다.이 대규모의, 구제받지 못한, 벌벌 떠는 다수.밤이라 불리는 이 음울한 평야에나는 단 한 그루 나무.떨리는 손들이 자신을 덥힐 땔감을 달라 한다.그래서 나는 내 가지로 불을 먹여야 한다.이것이 그들이 기억이라 부르는 것. - 자카리아 무함마드(1950~2023)팔레스타인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25년간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등을 난민으로 떠돌다 1993년에야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다. 이산의 세월도, 돌아온 고국의 현실도 그에게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인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알리기 위해 쓴 절절한 시들이 시집 <우리는 새벽까지 ...

    2026.02.0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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