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살던 집 사립문 옆에는 큰 오동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둘레는 어른이 한아름에 안을 수 없었고, 가지와 잎이 무성해 여름이면 널찍한 그늘을 마당귀에 드리워 그 아래 멍석을 펴고 놀곤 했다. 나무를 조금만 타고 오르면 굵은 가지가 갈라지는 지점에 이르렀고, 그곳에 앉으면 동네 길이 한눈에 들어와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곤 했다.어느 날 아버지가 그 나무를 베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깜짝 놀란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한 탁발승이 집에 들러 밥을 먹고 시주를 받은 뒤, 그 나무가 집안에 좋지 않으니 베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내심 몹시 서운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무를 베는 날, 간단히 상을 차려 제를 올렸고, 아버지는 불경을 읽었다.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했지만 경건하고 진지했다는 것만은 또렷이 기억난다.베어진 나무는 판재가 되어 솜씨 좋은 오촌 숙부의 손을 거쳐 책상으로 만들어졌고 나는 그 책상을 썼다. 오동나무 그루터기에서는 해마다 ...
2026.06.11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