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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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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인간이 나무에 할 수 있는 일
    인간이 나무에 할 수 있는 일

    어릴 적 살던 집 사립문 옆에는 큰 오동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둘레는 어른이 한아름에 안을 수 없었고, 가지와 잎이 무성해 여름이면 널찍한 그늘을 마당귀에 드리워 그 아래 멍석을 펴고 놀곤 했다. 나무를 조금만 타고 오르면 굵은 가지가 갈라지는 지점에 이르렀고, 그곳에 앉으면 동네 길이 한눈에 들어와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곤 했다.어느 날 아버지가 그 나무를 베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깜짝 놀란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한 탁발승이 집에 들러 밥을 먹고 시주를 받은 뒤, 그 나무가 집안에 좋지 않으니 베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내심 몹시 서운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무를 베는 날, 간단히 상을 차려 제를 올렸고, 아버지는 불경을 읽었다.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했지만 경건하고 진지했다는 것만은 또렷이 기억난다.베어진 나무는 판재가 되어 솜씨 좋은 오촌 숙부의 손을 거쳐 책상으로 만들어졌고 나는 그 책상을 썼다. 오동나무 그루터기에서는 해마다 ...

    2026.06.11 20:15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미술가의 캐릭터 변화
    미술가의 캐릭터 변화

    사진은 어느 미술관의 오픈 파티 준비 장면이다. 20년이 넘은 오래된 사진이다. 보고 있으니 그사이 예술가나 미술가의 캐릭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생각하게 된다.해외의 경우를 보자.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몇몇 작가들이 있다.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요제프 보이스… 이들의 캐릭터는 과연 어땠을까.고흐와 고갱, 폴록은 예술적 순교자, 세잔과 뒤샹은 차이는 있지만 구도자이자 혁명가, 피카소는 천재이자 혁신가이며 세속적 대성공 모델, 워홀은 통찰력 있는 비즈니스맨, 보이스는 샤먼과 예술가와 쇼맨의 캐릭터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이 캐릭터들 모두 올드 모델이라는 점이다.근래에 큰 세속적 성공을 거둔 제프 쿤스, 데이미언 허스트와 몇 작가들은 전형적인 사업가 모델이다. 선구자인 워홀이 수공업적 수준에 머무른 데 반해 이들은 회사를 차려 운영하는 경영자들이...

    2026.05.28 20:18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무인도의 꽃밭
    무인도의 꽃밭

    어린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 이름은 지도북국민학교 어의분교다. 교실도 두 칸뿐인 너무 작은 학교라 해마다 학생을 모집하지 못하고 한 해 걸러 모집했다. 학교에는 늘 1·3·5학년 아니면 2·4·6학년만 있었다. 1·2학년이 교실 한 칸을 썼다. 상급 학년은 같은 교실에서 칠판을 나누어 쓰며 수업했다. 공부한 기억은 별로 없다.4학년 때 새 선생님이 왔다. 김은택 선생님이었다. 이듬해 사모님인 윤혜정 선생님도 왔다. 두 분이 오고 나서 학교가 완전히 달라졌다. 교실 뒷벽에 우리가 사는 섬과 근처를 그린 지도가 붙었다. 행사표도 달마다 새로 그려져 달렸다.5학년 때는 학예회도 했다. 두 선생님은 그해 3월부터 우리에게 연극과 춤, 합창을 연습시켰다. 학생 수가 적었기 때문에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그해 어버이날 학예회가 열렸다. 학교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어서 교실 안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무대는 책상을 잇대어 놓아 ...

    2026.05.14 20:27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작품 속의 부동산?
    작품 속의 부동산?

    작가는 작품을 만들 때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담는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 의도를 알아보고 공감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말하는 방식은 단순하지 않다. 주제와 소재, 그리고 이를 담아내는 매체가 적절하게 결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김환기의 점묘 추상화를 보자.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우주, 하늘, 바다, 인간에 관한 것일 수 있지만, 표현은 결국 물감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는 유화 물감을 기름에 풀어 액체처럼 녹여서 캔버스 위에 하나씩 점을 찍는다. 점들은 서로 번지다 멈추며 경계를 만들고, 모여서 그림이 된다. 우리는 그가 전하려는 바를 물감이라는 매체를 통해 느끼지만, 해석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내 작업도 그러했다. 사진에 채색을 더한 ‘녹색연구 - 서울 공터, 용산 미군기지’는 2020년에 제작된 연작 가운데 하나다.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에 피어나는 녹색 잎들에 반해 2012년에 시작한 ‘녹색연구’의 후속 작업...

    2026.04.30 20:12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좋은 전시, 나쁜 전시, 이상한 전시
    좋은 전시, 나쁜 전시, 이상한 전시

    올해에도 각 미술관에서 블록버스트급에 가까운 전시들을 열고 있다. 그 전시들 가운데 어떤 전시가 좋은 전시일까? 작가 입장에서 좋은 전시란 작업실로 빨리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전시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전시된 작품을 보는 내내 작업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전시 말이다. ‘아, 나는 왜 이걸 이런 시각에서 보지 못했을까’ ‘이 작가는 어떻게 이 매체를 이렇게 쓰게 되었을까’ 등등… 반성과 자책하는 마음이 들고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결국 얼른 가서 작업을 해봐야지 하는 전시가 좋은 전이다.예를 들면 최근 몇년 사이에 본 호암미술관의 김환기, 정선, 루이즈 부르주아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키키 스미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윌리엄 켄트리지 전시가 그러했다. 특히 내 경우에는 그림, 드로잉, 사진 등의 매체를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다루는 작품에서 더 큰 자극을 받는다.좋은 전시는 두 번 이상 가게 된다.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혹시 내가 잘못 보았나 싶...

    2026.04.16 19:53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어머니의 봄
    어머니의 봄

    10여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봄이 되면 고향엘 가고 싶어 하셨다. 연세가 드신 후 여러 사정 때문에 서울 근교에 내가 모시고 있었는데, 봄이 되면 “집에 가고 잡다”고 하셨다.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어의도라는 고향 섬에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고 목포나 광주에 내려서 시외버스를 타고 지도읍엘 간다. 그다음에 택시나 버스로 지도의 북쪽 참섬 선착장에 가 나룻배를 탄다. 내려서는 고향에 살고 있는 동생이 몰고 온 경운기나 트럭으로 집에 갔다. 한마디로 하루 종일 걸리는 머나먼 길이다.긴 여행 끝에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짐들을 대강 던져두고 바구니, 칼, 비닐 자루 등을 챙겨 헌 유모차에 싣고 동네 야산으로 향했다.헌 유모차는 쓸데없는 것을 떼어내고 뼈대만 남겨서 허리가 불편한 농어촌 여성 노인분들이 유용하게 쓰는 도구이다. 어머니도 그러했다. 유모차를 밀고 언덕을 올라 꽃이 져가는 벚나무 아래 세워놓고 어머니는 산으로 들어가셨다. 사진은 오래전에 찍은 어머니가 세...

    2026.04.02 20:13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나쁜 예언은 왜 맞는가
    나쁜 예언은 왜 맞는가

    불타는 63빌딩과 동강 난 채 추락하는 전투기를 함께 배치한 합성 작업을 한 것은 1998년이었다.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9·11 테러가 일어나기 3년 전이다. 훗날 여객기가 건물에 충돌해 붕괴되는 장면을 보며 떠올린 생각은 “나쁜 예언은 맞는구나”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작업은 우리 사회에 잠재된 ‘전쟁 공포’를 다룬 연작으로, 미국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다. 그러나 시대와 공간을 건너 그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를 미술의 신통력으로 설명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왜 나쁜 예언은 유독 잘 들어맞는지, 그 점이 궁금하다.이 작품 말고 ‘전쟁 공포’ 연작에는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 저 멀리 잠수함이 떠오르는 작품도 있다. 그리고 몇년 뒤 그 근처에서 북한 잠수함이 어부의 그물에 걸려 잡혔다. 이 예언도 비슷하게 맞은 것이다.나쁜 예언은 왜 맞는가? 내 생각에는 세상에 나쁜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들의 본성이 나쁘기...

    2026.03.19 20:11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젊은 작가들에게
    젊은 작가들에게

    삼월이다. 지구촌 사방이 전쟁터지만 그래도 초중고, 대학에 신입생들이 입학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대학에서 회화나 순수미술을 전공한 친구들도 졸업을 했으리라.누군가는 대학원이나 유학을 가고, 극히 일부는 취업을 하고, 대부분은 백수도 작가도 아닌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중 누군가는 어찌어찌 모은 돈이나 빌린 돈으로 작은 작업실을 차리고, 먹고살 일을 따로 하면서 작업을 계속하리라 다짐할지도 모른다.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미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예전에 비해서 여건은 많이 좋아졌다. 여러 가지 젊은 작가 지원 프로그램, 입주 제도, 아트페어, 전시 공모를 하는 갤러리들이 이곳저곳에 생겨 기회는 많아졌다. 그런 프로그램에 응모해서 발탁이 된다고 해도 뭔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시작일 뿐이다. 전시를 한두 번 한다고 세상이 갑자기 주목을 해주지도 않고, 미술관에서 불러주지도 작품이 팔리지도 않는다.한강에 내 젊은 시절의 얼굴이 ...

    2026.03.05 20:03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지워지는 개처럼
    지워지는 개처럼

    카메라를 메고 거리를 걷다 보면 상상하지 못한 장면들과 마주친다. 그런 장면들은 대개 미술 작품에서 보지 못한 것들일 때가 많다. 현실은 늘 미술가들의 상상력을 넘어선 곳에서 뜻밖의 상황들을 연출하고 보여준다. 거리의 골목에서도 그렇고 철거 중인 재개발 지역에서도, 남쪽 어느 작은 섬에서도 발견된다. 물론 대단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홍대 앞 어느 골목길에서 찍은 개를 그린 벽화 사진도 그렇다. 벽화 속의 개는 얼굴만 겨우 남아 있다. 배경에는 빨래가 널려 있고, 앞쪽에 담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앞발을 담장에 얹고 집 밖을 구경하는 개를 그린 것 같다. 오래된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골목에서 흔히 마주치는 장면이다.누군지 모르지만 이 벽화를 그린 작가는 그런 장면을 인상적으로 보아두었다가 그렸을 것이다. 창의적인 작업이 아니라도 보통 사람들이 보아서 즐겁고 익숙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목표였을 것이다.벽화가 온전한 상태였다면 나는 이 사진을 찍지 않았을 것이다....

    2026.02.19 19:56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따뜻한 밥 한 끼
    따뜻한 밥 한 끼

    날이 춥다. 너무 춥다. 처음 서울에 왔던 1984년, 영하 18도의 겨울밤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다시 학생이 되어 교사 시절 모은 돈 몇푼을 들여 운영하던 화실의 모든 물이 얼어붙어 마실 물조차 없던 겨울. 건물주가 화실에 더 이상 세를 주지 않겠다는 바람에 화실을 접은 뒤, 서교동 어느 차고 두어 군데 세를 살다 다시 근처 어느 집으로 세를 들어갔다.내가 세 든 집은 전체가 셋집이었다. 집에는 두 가구가 세 들어 있었다. 중국집을 운영하는 40대로 보이는 부부와 남매로 이루어진 일가, 갓난아이가 있는 신혼부부 황씨네였다. 내가 세를 든 곳은 황씨네 두 방 중 작은 방이었다. 그러니까 집주인이 아닌 황씨네와 계약을 해서 세를 든 것이다. 이른바 겹세였다.이사를 한 첫날 저녁 나는 황씨네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서울에 와서 몇군데 이사를 다녔지만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지방 도시에서는 셋방에 세를 들면 대개 밥 한 끼는 같이 먹...

    2026.02.0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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