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갈 때마다 들르는 동네 일식당이 있다. 호텔 주방장 출신인 사장님은 은퇴 후 서너 평 남짓한 작은 식당을 차리고 정갈한 솜씨의 가정식을 깔끔하게 내놓으신다. 메뉴의 가짓수는 몇개 없지만 요리솜씨가 늘 감탄스러운 곳이다. “결제되셨습니다.” “식사 나왔습니다.” “식판은 퇴식구에 갖다 놔주세요.” 허튼 말을 절대 안 하는 사장님은 하루 종일 세 문장을 반복하면서 묵묵히 돈가스를 튀기고 우동을 삶는다.그날은 어쩐 일인지 사장님이 안 계셨고, 다른 요리사가 주방에서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었다. 심심찮게 건물이 바뀌고 주인이 바뀌는 빠른 속도에 인사도 없이 단골식당과 헤어진 게 벌써 여러 번, 이번에도 단골을 잃어버리게 된 건가 싶어 기운이 빠졌다.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도마를 앞에 두고 식재료를 다듬는 어정쩡하게 구부정한 자세, 콘트라베이스를 연상시키는 저음, 되도록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낫다는 듯 핵심만 전달하는 짤막한 어투, 미동 없이 일자로 굳게 ...
2026.04.12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