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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의 사소한 세계
  • 전체 기사 6
  • [최정화의 사소한 세계]인간도 똥을 눈다
    인간도 똥을 눈다

    외할머니의 집에는 따로 욕실이 없이, 마당 뒤편에 작은 재래식 화장실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깊숙이 땅을 파내 만든 똥통 위에 쪼그려 앉아 아랫배에 힘을 주면 철썩 소리와 함께 똥 위에 똥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코를 막아도 지독한 똥 냄새를 끝내 막을 수 없었다.물론 집에서는 수세식 변기를 사용했으니까 외할머니 댁에 가지 않는 한 똥 냄새를 맡을 이유는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할 일이 전혀 없었다. 똥을 누고 나면 변기 물을 내린 뒤 곧장 휴지로 엉덩이를 닦아내고 손을 씻는다. 그리고 한 번도 똥을 누지 않은 사람처럼 깨끗한 척 화장실을 나오면 그만이다.며칠 전 동물병원에서 소독액을 구해와 턱을 다친 길고양이의 피부를 소독하려고 근처 공터에 나갔다가, 동네 주민에게 진탕 욕을 얻어먹었다. 고양이들이 길에 눈 똥이 문제였다. 고양이들이 눈 똥 때문에 파리가 꼬인다, 그래서 여름인데도 창문을 열 수 없다며 난리를 피웠다. 맞대응을 해봤자...

    2026.06.07 19:57

  • [최정화의 사소한 세계]재개발구역의 유령들
    재개발구역의 유령들

    재개발이 시작된다는 흉흉한 입소문에 이어 급기야 동네 골목에 플래카드가 내걸렸는데, 어, 뭔가 좀 이상하다. 재개발추진위원회 대신 ‘모아타운 건설준비 위원회’라는 기이한 이름이 붙어 있다. 세입자에게는 투표할 권리도 알권리도 없어서, 쫓겨나는 게 언제인지나 확인하자는 심정으로 동네 부동산을 찾아갔다.“모아타운이 뭔가요?”“주민들이 직접 나라에 재개발 요청을 하는 거예요.”“재개발인가요?”“다르죠. 이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요청하는 거니까.”과연 기업은 기업이다. 스스로 재개발을 추진하게 하는 전략이라니 뒤통수를 맞았다. 정작 집에 살고 있는 내가 이 동네 주민이 아니라는 뼈저린 사실도 깨달았다. 세입자는 재개발 추진에 대한 찬반투표를 던질 자격이 없었다. 인간이 되지 못해 유령처럼 흐물거리는 마음으로 부동산을 나섰다.며칠 뒤 최단기간 내 주민동의를 달성했다면서 새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주민의 70% 이상이 재개발에 찬성했고, 최단기간의 신기...

    2026.05.10 19:58

  • [최정화의 사소한 세계]언더 더 스킨
    언더 더 스킨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갈 때마다 들르는 동네 일식당이 있다. 호텔 주방장 출신인 사장님은 은퇴 후 서너 평 남짓한 작은 식당을 차리고 정갈한 솜씨의 가정식을 깔끔하게 내놓으신다. 메뉴의 가짓수는 몇개 없지만 요리솜씨가 늘 감탄스러운 곳이다. “결제되셨습니다.” “식사 나왔습니다.” “식판은 퇴식구에 갖다 놔주세요.” 허튼 말을 절대 안 하는 사장님은 하루 종일 세 문장을 반복하면서 묵묵히 돈가스를 튀기고 우동을 삶는다.그날은 어쩐 일인지 사장님이 안 계셨고, 다른 요리사가 주방에서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었다. 심심찮게 건물이 바뀌고 주인이 바뀌는 빠른 속도에 인사도 없이 단골식당과 헤어진 게 벌써 여러 번, 이번에도 단골을 잃어버리게 된 건가 싶어 기운이 빠졌다.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도마를 앞에 두고 식재료를 다듬는 어정쩡하게 구부정한 자세, 콘트라베이스를 연상시키는 저음, 되도록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낫다는 듯 핵심만 전달하는 짤막한 어투, 미동 없이 일자로 굳게 ...

    2026.04.12 20:06

  • [최정화의 사소한 세계]이 쓰레기는 아름답다
    이 쓰레기는 아름답다

    캣맘 2년 차, 나도 모르게 투덜거리는 말버릇이 생겼다. ‘더럽고 치사해’다. 밥자리를 만들 때마다 욕을 먹으며 점점 더 구석으로 밀려나야 하는 게 억울하고 분했다. 인간들은 길고양이가 더럽다고 말한다. 눈에는 눈곱이 끼고, 입에서는 구내염으로 인한 침이 흐르고, 상처가 나서 털이 벗겨지고, 면역력이 약해 피부병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 더러움은 더러움이 아닌데, 아픔이고 고통인데, 더 따지고 들면 그냥 아픔도 고통도 아니라 인간으로 인한 아픔이고 고통인데, 동네가 자기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착각은 고통을 더러움으로 보이게 한다.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새벽 세 시에 밥을 주러 다녔다. 새벽 두 시의 거리에는 쿠팡 노동자들이, 네 시에는 택시 기사들이 있다. 세 시에는 정말 아무도 없다. 새벽 세 시는 길고양이들만의 시간이다. 인간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니 도망칠 필요도, 겁낼 필요도 없다. 인간들이 왈가왈부하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을 우리는 결국 찾아내고야 말았다....

    2026.03.15 19:50

  • [최정화의 사소한 세계]아버지의 외출복
    아버지의 외출복

    아버지의 방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명절이면 어머니의 방에는 낮잠을 자거나 짐을 꾸린다며 마음 편히 들락거렸지만, 아버지 방에는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방은 아버지가 사는 방이기보다 아버지가 나오는 방이었다. 아버지의 방 안쪽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해서 더 알게 되는 게 어쩐지 달갑지 않았다. 아버지를 미워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나는 가족들 중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고, 내성적이어서 말수가 없는 아버지가 편했다.작년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제 비로소 아버지가 궁금해져서가 아니라, 방을 정리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아버지 방에 들어갔다. 좀처럼 집안일을 거드시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방이 꽤나 지저분할 거라고 상상했는데, 아버지의 방을 보고 나면 얼마간 우울해질 거라는 각오가 무색할 정도로 깨끗하고 말끔했다.가장 놀란 것은 옷장이었다. 옷이 너무 많았다. 아버지는 좀 별난 ...

    2026.02.08 20:12

  • [최정화의 사소한 세계]교실 이데아
    교실 이데아

    소설 <날씨통제사>는 저자인 나를 청소년 독자들과 연결시켜 준 고마운 책이다. 기후위기, 불평등, 소수자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들을 선명하게 드러낸 이 단편집은 중고등학교에서 환영받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가 종종 생겼다.세종시의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던 중 한 학생이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학생은 기후위기를 주제로 짧은 스피치를 할 정도로 상당한 배경지식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었다. 그는 기후위기의 원인이 3차 산업혁명인데, 북반구와 남반구 간의 사회적 격차를 원인이라고 설명한 강연 내용이 틀렸다고 지적했다.학생의 말이 맞았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산업혁명이다. 그런데 사회적 격차이기도 하고, 인간과 자연의 단절이기도 하다. 플랜테이션 농업이고, 정신과 물질 사이의 불균형이며, 남들보다 더 가져야 행복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크릴새우에서 추출한 오메가3와 연어 추출물로 만든 화장품, 일회용 플라스틱, 그 모든 것들 중 기후위기의 ...

    2026.01.1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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