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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사람속으로
  • 한국의 보이조지 이승철

    ‘희야 날 좀 바라봐 / 너는 나를 좋아했잖아 / 너는 비록 싫다고 말해도 / 나는 너의 마음 알아.’ 1985년 겨울, MBC 버라이어티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당시엔 ‘토토즐’이라고 불렀다) 라이브 무대. 긴 롱코트에 중절모를 쓴 그룹 ‘부활’의 리드싱어가 질러대는 노래는 그렇고 그런 노래들과 분명 달랐다. 고음의 미성(美聲)에 담긴 애절함이 폐부를 찔렀다. 한국의 보이조지로 불리면서 단숨에 소녀팬들을 사로잡았던 가수 이승철. 불과 열아홉 나이에 스타덤에 올랐다. 방위병으로 군복무하던 시절, 김태원이 이끌던 그룹 ‘부활’의 리드싱어로 전격 발탁된 그는 순식간에 ‘부활은 곧 이승철’이라는 등식을 만든 것이다. 그가 가수생활 20년을 맞았다. 우리 나이로 불혹(不惑). 20년 전의 얼굴에 적당히 살이 붙었지만 미소년 같은 인상은 여전하다. 그뿐 아니라 인기도 그침이 없다. 지난해 10대들의 전유물인 된 방송 인기가요 순...

    2005.06.12 17:45

  • 개관 1년 맞은 ‘얼굴 박물관’ 김정옥관장

    지난해 5월15일 연극연출가 김정옥씨(73·극단 ‘자유’ 예술감독)가 얼굴박물관을 개관하자 많은 이들이 입소문따라 그곳을 찾았다. ‘얼굴박물관에 가지 않은 예술인은 간첩’이라는 우스갯말이 돌 만큼 문화계 명소가 됐다. 경기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68번지 박물관 ‘얼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멋스럽고 토속적인 문화공간에서 수백년의 풍상을 견뎌온 옛 조각들을 마주하며 옛 사람들과 교감한다. 1년 만에 찾아간 얼굴박물관은 정다움, 편안함, 구수함으로 가득했다. 박물관을 둘러싼 푸른 나무와 팔당호수는 도심의 찌들어가는 회색빛 절망을 어루만진다. 은회색 대문을 밀고 들어가니 마당에 서있는 70여개의 돌사람 틈에서 김정옥 관장이 객을 반긴다. 박물관터는 2,000평. 150평의 ‘실내 전시공간’ ‘야외 전시장’, 전남 강진에서 옮겨온 80년 된 ‘전통한옥’ 등 세 부분으로 돼 있다. 이곳에는 이름 없는 예술가인 석수, 목수, 도공들이 만든 석인, 목각인형, 도자인형,...

    2005.06.05 18:11

  • “운보다 노력이 ‘로또 명당’ 만들었죠”

    “좋은 꿈을 꿨나요.” “요즘은 하도 피곤해서 꿈을 제대로 꾸지도 못해요.” 지난 27일 만난 로또 명당 ‘대박찬스’를 운영하는 이상오씨(45·충북 청주시 가경동)에게 대뜸 꿈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가게에서 1등이 나온 주엔 그전에 반드시 좋은 꿈을 꿨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바쁘단다. 지난 21일 129회차에서 1등 당첨자를 내는 등 이제까지 1등만 4명이나 배출한 그는 하루에 받는 전화가 200통이 넘는다. 수화기를 놓을 새가 없다. 대개 돈을 보낼 테니 로또를 우편으로 부쳐달라는 외지의 전화다. 물론 가게에서 1등 당첨자가 나온 다음주는 더욱 몰린다. 전화에 시달리는 통에 집에 들어가자마자 곯아 떨어지기 일쑤다. ‘돼지꿈’을 꿀 새가 없는 것이다. 그의 1등 꿈은 대개 물과 관련돼 있다. ‘낚시에 무언가 물려 끌어올리니 집채만한 물고기가 달려왔다.’ ‘큰 어항의 맑은 물에 고기들이 수없이 놀기에 잡으니 팔뚝만한 잉어가 올라오더...

    2005.05.29 17:41

  • 문예진흥원장 현기영

    누구든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들고 왔다가, 숟가락 하나 남기고 간다. 문예진흥원장 현기영(65), 아니 ‘지상에 숟가락 하나’의 소설가 현기영은 신이 인간에게 쥐어준 숟가락의 의미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우리 시대의 좌장이다. 이쯤해서 그를 한번 보고 싶었다. 소위 공직에 있으면서 좀체 나대지 않는 그가 궁금했고, 두달여 뒤면 문예진흥위원회가 출범하기에 자세한 얘기도 듣고 싶었다. 봄볕이라고 하기엔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서울 동숭동 문예진흥원 원장실을 찾았다. 20여년전 금서(禁書) 중 하나였던 소설집 ‘순이삼촌’(창작과 비평사)을 괴롭게 읽던 기억이 떠올랐다. 30만 제주 인구 중 적어도 3만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 4·3항쟁’을 다룬 그의 소설집이 나올 무렵만 해도 빨갱이들의 폭거쯤으로 치부됐었다. 그는 고향 제주도에 떠도는 원혼을 달래기 위한 소설작업에 몰두하면서 4·3항쟁을 재조명했고, 때로 모진 고문도 당했던 실천적 소설가였다. 20...

    2005.05.22 17:38

  • 동부민요 지킴이 박수관

    사람의 일생이 배움의 과정이라면 그 길은 대개 세 갈래쯤 된다. 하나는 독학으로 일관하여 어느 정도 내공을 쌓지만 곧 한계에 부딪힌 채 ‘우물안의 개구리’로 머무는 경우다. 보통의 경우는 제도권의 교육을 받으며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좀 특이한 경우는 혼자 수련하다 기인(奇人)같은 스승을 만나 도(道)를 터득하는 것이다. 이는 흔히 무협지의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현실속에서는 극히 드물지만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면 그가 바로 동부민요 명창 박수관(50·동부민요보존회 회장)이다. 그는 거의 묻힐 뻔한 동부민요를 되살렸을 뿐 아니라 미국 뉴욕의 카네기 메인홀 공연 등 200여회의 공연을 통해 국내·외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린 소리꾼이다. 1999년 국악계에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무명’의 인물이 등장, 3월 제1회 상주 전국민요경창대회 명창부 대상인 문화관광부 장관상, 같은해 5월 제2회 남도민요 전국경창대회 일반부 대상인 국무총리상, 10월에는 제7회 서울...

    2005.05.15 17:53

  • ‘박정헌 소장학자賞’ 의 박정헌옹

    요즘 국제적으로 저명한 상을 타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부쩍 자란 우리나라의 힘과 학문의 키를 반영한다. 그래도 국제적으로 우리나라 사람 이름으로 제정된 상을 찾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아시아사회심리학회의 ‘박정헌 소장학자상’(Jung-Heun Park Young Scholar Award)은 더욱 눈에 띈다. 학회는 2년 전 만장일치로 이 상을 제정한 데 이어 지난달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열린 6차 총회에서 첫 수상자를 냈다. 그러나 상의 주인공 박정헌씨(朴貞憲·93·대구 수성구 황금동)는 이름을 기념할 만한 저명한 학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학회에 막대한 기금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평생토록 사과 농사를 지은 그저그런 농부’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의 이름으로 국제적 상까지 제정됐는지 궁금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여느 어버이처럼 허리가 휘도록 농사를 지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3남2녀를 공부시켰다. 그중 3명이 대학교수가 된 게 남다르다면 다를까. 하지...

    2005.05.08 17:48

  • “82세 아들 부부 효심에 세상근심 몰라요”

    5월, 가정의 달이다. 가정은 따뜻한 웃음과 행복한 순간이 피어나는 순수의 키워드다. 사랑과 온정이 사라진 이 땅, 아픔과 슬픔을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대의 마지막 피난처다. 어둡고 거친 곳에서 야윈 가슴으로 살면서도 사랑을 지키는 가족을 만났다. 정용수 할아버지 가족이다. 정할아버지는 107세. 주민등록번호 991016-9397×××.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 많은 할아버지다. 아들 정병훈씨(82), 며느리 이옥희씨(74), 그리고 태어난 지 77일된 증손자와 살고 있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들과 며느리의 나이를 합하면 264살. 인천 남동구 구월동 빌라 지하층에 사는 정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40여분을 헤맸다. 한두 동씩 지은 고만고만한 빌라들이 미로를 만들며 수백채 모여있는 곳에서 정할아버지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지도도 무용지물. 가까스로 아들 정병훈 할아버지가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파트를 찾았다. 자택에서 걸어서 3분거리였다. ...

    2005.05.01 17:50

  • “한국공예 진수 사명감갖고 유럽 전파”

    1900년. 스러져가는 왕조를 외롭게 지키던 고종황제는 신문물의 홍수에 부대꼈을 법하다.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세와 그 문화적 충격은 어떠했을까.(오히려 그 때문에 우리 문화를 더 아꼈을지도 모르지만) 고종황제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우리 민속공예품을 보내 조선의 ‘작품’을 세계에 알렸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101년 후 파리 국제박람회에 한국의 공예품이 선을 보이게 된다.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 회장(59). 그가 회원 26명과 함께 2001년 파리 국제박람회에 참가한 것이 100년의 간극을 이은 셈이다. 이칠용 회장은 오는 5월12일부터 22일까지 파리 국제박람회에 이어 5월27일부터 6월6일까지 낭시 국제박람회에 참가, 한국의 공예문화를 알린다. 한국 공예품의 유럽 전시 16회. 이제 유럽인들에게도 한국 공예품이 낯설지 않다. 그들은 한국 역사는 잘 알지 못했지만 장인정신은 알아보았다. 한국인보다 더 공예품을 반겼다. 이회장은 불과 5년 만에 유럽 구석구석...

    2005.04.24 17:36

  • “석전대제 禁女의 문 우리가 열었죠”

    한국인은 보수성이 강하다. 문화도 남성 위주다. 그러다보니 어느 나라보다 남성 중심인 유학적 전통이 많이 남아 있다. 변화의 욕구가 들끓는데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의례가 제법 된다. 서울의 성균관을 비롯한 전국의 향교에서 봄과 가을에 치르는 석전(釋奠)이 대표적이다. 석전은 공자를 비롯한 선현을 기리는 의례다. 공자의 고향인 중국 곡부에서도 사라진 지 오래다. 2004년엔 우리 유림들이 곡부에서, 그것도 공자 후손 앞에서 보란 듯이 재현했다. 석전만은 우리나라가 종주국인 셈이다. 국가 의례의 하나인 석전은 남성만의 의례였다. 향교가 아닌 한국 유학의 총본산인 서울 성균관 대성전에서 시행되는 석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석전은 이미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균관 석전에서 맡은 여성의 역할이 만만치 않다. 관세(灌洗·제관인 헌관이 손을 씻는 의식을 담당)부터 주요 제관으로 제주인 초헌관(初獻官)을 비롯한 헌관의 안내를 맡는 알자(謁者)...

    2005.04.14 06:38

  • “석전대제 禁女의 문 우리가 열었죠”

    한국인은 보수성이 강하다. 문화도 남성 위주다. 그러다보니 어느 나라보다 남성 중심인 유학적 전통이 많이 남아 있다. 변화의 욕구가 들끓는데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의례가 제법 된다. 서울의 성균관을 비롯한 전국의 향교에서 봄과 가을에 치르는 석전(釋奠)이 대표적이다. 석전은 공자를 비롯한 선현을 기리는 의례다. 공자의 고향인 중국 곡부에서도 사라진 지 오래다. 2004년엔 우리 유림들이 곡부에서, 그것도 공자 후손 앞에서 보란 듯이 재현했다. 석전만은 우리나라가 종주국인 셈이다. 국가 의례의 하나인 석전은 남성만의 의례였다. 향교가 아닌 한국 유학의 총본산인 서울 성균관 대성전에서 시행되는 석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석전은 이미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균관 석전에서 맡은 여성의 역할이 만만치 않다. 관세(灌洗·제관인 헌관이 손을 씻는 의식을 담당)부터 주요 제관으로 제주인 초헌관(初獻官)을 비롯한 헌...

    2005.04.1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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