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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어제의 오늘
  • 1971년 실미도사건 발생

    1968년 1월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한 사건이 벌어졌다.이들은 수류탄과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한국군 복장으로 휴전선을 넘어 수도권까지 잠입했다. 하지만 세검정 고개 자하문을 통과하려다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에 정체가 드러났고, 우리 군경과 교전을 벌였다. 당시 교전에서 28명이 사살되고 2명은 도주했으며, 1명은 생포됐다. 그때 생포된 사람이 현재 목회 활동을 하고 있는 김신조씨다.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비정규전에 대비하기 위한 향토예비군이 그해 4월1일 창설됐다. 대외적으로 요란스럽게 향토예비군이 창설되던 바로 그날 비밀스러운 부대 하나가 만들어졌다. 중앙정보부의 ‘특수공작 지시’에 근거해 창설된 ‘실미도 부대’다. ‘209파견대’ ‘684특공대’ ‘오소리공작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 이 부대의 창설 목적은 단 하나다. 북한에 잠입해 김일성을 죽이는 것.‘실미도부대’는 북...

    2011.08.22 21:31

  • 1911년 ‘모나리자’ 도난

    꼭 100년 전인 1911년 8월22일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명화 ‘모나리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성과가 없었다. 파리에서 뉴욕으로,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로 수사 범위를 넓히면서 모나리자를 찾아다녔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당시 경찰은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까지 용의선상에 올렸다. 이들은 조사 끝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2년 뒤인 1913년 3월12일 사람들이 도난 사실을 잊어갈 즈음 범인이 잡혔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미술상이 받은 편지가 증거가 됐다.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으로 보낸 이 편지에는 “모나리자를 내가 갖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 절도범은 모나리자 보호 액자를 제작할 때 유리공으로 참여한 빈센초 페루자였다. 페루자가 그림값으로 제시한 금액은 10만달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전 세계를 놀라게 한 절도 사건이었지만 페루자가 받은 형량은 고작 7개월이었다. 페루자는 작품...

    2011.08.21 21:30

  • 1992년 제2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경그룹 선정 파문

    SK텔레콤이 노태우 정권의 특혜를 받아 제2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돼 거대 통신기업으로 성장했다고 믿는 사람이 많지만 이는 사실과 조금 다르다. SK텔레콤은 제2 이동통신 신규 사업자가 아닌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 때 지분 인수를 통해 통신업에 진출했다. 진출 시기도 노태우 정부가 아니라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다.1992년 제2 이동통신 민간 사업자 선정을 통해 1896년 한국에 전화가 처음 설치된 이후 100년 가까이 정부가 독점해 온 통신업에 처음으로 경쟁체제가 도입된다. 당시 재벌 경제력 집중 억제정책에 따라 4대 그룹의 참여가 배제된 속에서 선경, 포항제철, 코오롱, 동양, 쌍용, 동부그룹 등 6개 컨소시엄이 경쟁에 뛰어든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사업에 걸맞게 당시 6개 컨소시엄에는 국내외 사업체 440여곳이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7월 1차 심사에서 선경, 포항제철, 코오롱 등 3개 그룹으로 후보가 압축됐고, 8월20일 제2 이동통신 전화부문 사업자로...

    2011.08.19 21:39

  • [어제의 오늘]1991년 소련 공산당 ‘8월 쿠데타’
    1991년 소련 공산당 ‘8월 쿠데타’

    1991년 8월19일 오전 6시, 소련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긴급 방송이 흘러나왔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자칭한 혁명세력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으며 겐나디 야나예프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다”고 발표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정규방송 대신 발레곡 ‘백조의 호수’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공산당 강경 보수파가 주도한 ‘8월 쿠데타’의 신호였다. 모스크바 시내에 공수부대와 전차 사단 등이 배치됐고 19일 오후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다.고르바초프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반발한 공산당 강경 보수파의 8월 쿠데타가 발생한 지 20주년을 맞았다.국가보안위원회(KGB) 위원장 블라디미르 크루치코프, 부통령 야나예프 등 8인이 중심이 된 쿠데타 세력은 거사 하루 전인 18일 크림반도의 별장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던 고르바초프를 찾아가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고 야나예프 부통령에게 권력을 넘길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쿠데타 ...

    2011.08.18 21:19

  • 1966년 톈안먼 광장 홍위병 집회

    1966년 8월18일.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天安門) 광장은 전국에서 올라온 수백만명의 홍위병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붉은색 표지의 을 흔들었다. 단상에 오른 마오쩌둥(毛澤東)은 “모든 반란은 타당하다”고 외쳤고, 홍위병들은 환호했다. 중국 대륙을 광란으로 몰아간 문화혁명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문화혁명은 그해 5월16일 마오쩌둥의 제창으로 시작됐다. 그는 공산당을 지배하고 있는 부르주아 계급의 자본주의적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중국의 젊은이들이 사상과 행동을 규합해 계급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선동했다. 5월25일 마오쩌둥의 뜻을 받든 베이징 대학의 젊은 철학과 강사 네위안쯔는 대학당국과 교수들을 우파 또는 반당분자라고 고발하는 대자보를 써 붙였다. 29일에는 베이징 칭화대학 부속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홍위병이 결성됐다.홍위병 대표단은 7월27일 마오쩌둥에게 서한을 보내 공산주의를 위해 사회와 정치를 뒤집어 엎고, 대량 숙청을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

    2011.08.17 21:35

  • 1947년 인도-파키스탄 국경선 확정

    1947년 8월17일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선인 래드클리프 국경선이 확정됐다. 8월14일 파키스탄이, 다음날인 15일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영국 연방의 주권국가가 된 이후에야 국경선이 확정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은 연방제를 골격으로 하는 인도의 독립과 권력이양을 약속했다. 인도 독립에 대한 아이디어는 여러 가지였다. 인도 총독을 지낸 웨이블 경은 통일된 상태로 인도에 권력을 넘겨주고, 필요하다면 인도인들 스스로 인도를 분할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다수의 영국인들은 권력이양을 서두르면 힌두교와 이슬람교, 시크교가 뒤섞인 인도 대륙의 분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947년 당시 총독을 맡아 인도 독립의 전권을 위임받은 루이스 마운트배튼 경은 권력이양을 서둘렀다. 인도의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인도 국민회의와 무슬림연맹은 각기 서로 다른 구상을 갖고 있었다. 마운트배튼 총독은 1947년 6월3일 인도를 힌두교 지역과 무슬림 지역으로...

    2011.08.16 21:36

  • 1977년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애런 프레슬리. 황제라는 칭호에 걸맞게 그는 로큰롤의 역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 빌보드 차트 10위권에 든 노래가 36곡이고, 그중 18곡은 1위에 올랐다. 미국에서 1억장 이상, 세계적으로 10억장 이상의 음반을 팔았다. 그에게 감히 어깨를 견줄 가수는 비틀스뿐이다. 로큰롤은 1950년을 전후해 생겨난 음악 장르다. 블루스와 컨트리, 흑인 가스펠이 적당히 섞인 로큰롤은 소리를 지르는 듯한 창법이나 노골적인 성 묘사, 격렬한 춤 때문에 사회 주류층인 백인들로부터 외면당했다. 하지만 불쾌하고 반항적인 느낌 때문인지 젊은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1954년 무렵 선 레코드사의 사장 샘 필립스는 로큰롤 시장을 키우려면 로큰롤을 흑인처럼 부르는 백인 가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믿음 속에서 찾아낸 게 프레슬리였다. 필립스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윽한 눈매와 냉소적인 미소로 새로운 풍의 노래를 부르는 프레슬리에게 10대 소녀팬들부터 녹아들었고, 19...

    2011.08.15 21:28

  • 1974년 서울지하철 1호선 개통

    대한민국 최초 지하철인 ‘서울지하철 1호선’ 개통식이 1974년 8월15일 열렸다. 이날 오전 11시 청량리 지하철역에서 개통식을 한 뒤, 첫 열차 108호가 청량리~서울역 간 운행을 시작하며 지하철 시대의 막이 올랐다.1호선은 서울시 중구의 서울역과 동대문구 소재 청량리역을 잇는 노선으로 현재 별도의 노선 색은 없다. 개통 당시에는 빨간색 선을 사용했다. 개통 당시에는 ‘종로선’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공식 명칭은 아니다. 현재 역 수는 서울역, 시청, 종각, 종로3가, 종로5가, 동대문, 동묘앞, 신설동, 제기동, 청량리 이렇게 10곳이다. 당시 기본 구간 요금은 30원이었다.서울에 고속 대량수송 수단인 지하철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다. 1968년 서울시는 도로교통 체증이 심각해지자 서울의 전차를 없앴다. 그러자 서울로 이주해 온 도시노동자들이 이용할 대중교통수단이 마땅치 않게 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가 지하철 건설을 추진...

    2011.08.14 21:59

  • [어제의 오늘]1992년 ‘세계 왼손잡이의 날’ 제정
    1992년 ‘세계 왼손잡이의 날’ 제정

    “나의 오른손이 왼쪽에 있을 뿐이다.” 시솜시나 시인(본명 박종구)이 쓴 ‘왼손잡이’의 한 구절이다. 왼손잡이는 그저 왼손이 편해서, 오른손보다 왼손을 더 많이 사용하는 사람일 뿐이다. 사소한 차이지만 고대로부터 왼손잡이들은 소수자로서 오른손잡이와 다르다는 이유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어왔다.문화적 편견은 다양했다. 로마시대에 생긴 악수는 무기를 사용하는 오른손을 맞잡는 평화 의식이었기에 왼손잡이는 ‘믿지 못할 사람’으로 여겨졌다. 중세 유럽에서 예술성이 뛰어난 왼손잡이는 악마에게 재능을 받은 것으로 의심을 사기도 했다. 예수가 로마병사의 창에 왼쪽 옆구리를 찔렸고, 승천 후엔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다는 성경 기록 때문에 왼쪽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는 주장도 있다.언어적 차별은 극명하다. 전 세계 언어의 대부분이 오른쪽은 방향뿐 아니라 ‘정확·권위·정의·능숙’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반면 왼쪽엔 ‘어색·서툰·잘못·부정’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말도 마찬가지다. 오른...

    2011.08.12 21:03

  •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 이뤄집니다.”여름휴가가 한창이었던 1993년 8월12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사진)은 오후 7시45분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대통령긴급명령을 발동해 1993년 8월12일 오후 8시를 기해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금융실명제란 말 그대로 금융기관과 거래를 함에 있어 가명이나 차명이 아닌 실명의로 거래해야 하는 제도를 뜻한다. 비실명계좌의 실명확인 없는 인출이 금지되고 3000만원 이상 인출할 경우 국세청에 통보하고 자금 출처를 조사할 수 있게 됐다.금융실명제가 정착된 지금에야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한국에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저축 장려를 위해 예금주의 비밀보장, 가명·차명 혹은 무기명에 의한 금융거래를 허용해왔다. 그러나 차츰 경제가 성장하고 금융거래의 규모가 커지면서 지하경제가 발달하게 되었고 정경유착으로 이어져 사회적 병폐가 생겼다.금융실명제 도입에 촉매가 된 대...

    2011.08.11 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