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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어제의 오늘
  • 2001년 ‘알뜰한 당신’ 부른 가수 황금심 별세

    “울고 왔다 울고 가는/설운 사정을 당신이 몰라주면/그 누가 알아주나요/알뜰한 당신은…/무슨 까닭에 모른 체하십니까요.” 1937년 발표되어 7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애잔한 노랫말과 구슬픈 멜로디로 감동을 주는 가수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이다.‘외로운 가로등’ ‘울산 큰애기’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황금심(1922~2001)은 이난영·장세정 등과 함께 해방 전후 가요계를 풍미했던 1세대 여가수다. 식민지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던 황금심의 당시 인기는 오늘날의 인기가수 아이유나 걸그룹에 대한 열광 그 이상이었다.부산 동래에서 7자매 딸부잣집의 막내로 태어난 황금심의 본명은 금동(金童)이었다. 부친이 아들에 대한 열망이 커 태어나기 전부터 사내아이 이름을 지어 놓은 것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돼 가족은 서울(당시 경성부) 청진동으로 이주해 여관을 운영했는데, 마침 이곳에 연예인들의 출입이 잦았다. 그 중 경성보통학교(지금의 덕수초등학교)를 ...

    2011.07.29 21:34

  • 1890년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사망

    “고통은 영원하다.”37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버리지 못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들판에서 자신의 가슴을 향해 총을 겨눈 지 이틀 만인 1890년 7월29일 동생 테오도로스의 옆에서 눈을 감았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정신질환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눈을 감은 뒤에야 인상주의의 거장,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서양화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1853년 네덜란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그림을 통해 하나님에게 봉사하기로 결심한다. 체계적인 그림 공부는 하지 못했다. 900여점의 그림과 1100여점의 습작은 정신질환에 시달리면서 자살을 감행하기 전인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에 모두 탄생했다. 20대 후반에야 작품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고 정신적 불안이 그를 지배했다.사랑하던 여인과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하고 1885년 아버지...

    2011.07.28 21:07

  • 1794년 ‘공포정치’ 주역 로베스피에르 처형

    프랑스 혁명이 만든 발명품 중 하나가 단두대(기요틴)다. 참수형 죄수들의 고통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이 무시무시한 도구는 혁명이 고조되던 1793~1794년에만 1만7000여명의 목숨을 앗았다. 이 단두대에 가장 많은 사람을 밀어넣은 이도 결국 그 아래 목을 내미는 신세가 된다.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다.1758년 북프랑스 아라스에서 태어난 로베스피에르는 어릴 때부터 총명했다. 파리의 명문 루이르그랑 학원을 다녔는데, 당시 왕위에 오른 루이 16세가 학원을 방문하자 학생 대표로 환영사를 했다. 이 학생은 그로부터 18년 후 왕을 단두대로 보낸다.고향에 돌아온 로베스피에르는 서민을 대변하는 변호사로 명성을 쌓는다. 1789년 5월 루이 16세는 신분제 의회인 삼부회를 소집했고, 그는 제3신분 대표로 뽑혀 파리로 간다. 그해 7월 혁명이 일어나자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세력 중 좌파(좌·우파라는 말도 프랑스 혁명의 발명품이다)인 자코뱅당의 일원이 된다.혁명의 와중에 ...

    2011.07.27 21:50

  • 1985년 63빌딩 준공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60번지. 1985년 7월27일 이곳에 동양 최고의 빌딩이 우뚝 섰다. 63빌딩이다. 지상 높이 249m에 지하 3층 지상 60층, 연면적 16만6000㎡. 해발 높이는 264m로 남산보다 1m 낮고 당시 동양 최고 빌딩이던 일본 도쿄 선샤인 빌딩보다 25m 높았다. 63빌딩은 88서울올림픽과 함께 강성해진 한국 국력의 상징이었다. 19세기 중반 철강을 활용한 건축공법의 발달, 엘리베이터의 발명으로 초고층 빌딩 건축이 가능해지면서 마천루는 각국의 첨단건축공법과 국력을 보여주는 시험대가 됐다. 63빌딩은 미국 SOM사와 국내건축가 박춘명씨가 설계를 맡았고 시공도 국내기술로 해결해 당시 “한국건축술의 개가로 인정받았다”. 건물은 1980년 2월 착공해 총공사비 1800억원을 들여 1985년 5월 완공하고 7월27일 정식개장했다. 1층부터 39층까지 건물폭을 줄여나가고 좌우로 30㎝가량 탄력을 갖도록 설계돼 초속 40m의 강풍과 진도 7의 지진에도 견딜...

    2011.07.26 21:43

  • 1950년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사슴이 숨어 있는 부락이라 하여 녹은(鹿隱)으로 불리다 일제강점기 때 부락 이름이 너무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노근(老斤)으로 바뀌었다. 이 마을에서 맨 처음 목화를 재배했다고 해서 목화실(목화곡)로도 불린다.사슴이 숨어 살 만큼 아늑한 이 마을에서 1950년 7월26일 끔찍한 범죄가 벌어졌다. 6·25전쟁이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때, 노근리 인근 마을 주민 수백명은 노근리 철교 밑 ‘쌍굴다리’ 속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북한군의 공격을 피해 몸을 숨긴 그곳이 지옥이 되고 말았다.당시 이곳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려던 미군 1기갑사단 예하부대는 “미군의 방어선을 넘어서는 자들은 무조건 적이므로 사살하라. 여성과 어린이는 재량에 맡긴다”는 명령을 받고,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의 가슴에 기관총을 쏘아댔다. 머리 위로 포격을 퍼붓기도 했다. 그야말로 학살이었다. 29일까지 3일간 계속된 만행으로 135명이 숨을 거두고 4...

    2011.07.25 21:31

  • 2007년 탈레반, 납치한 샘물교회 배형규 목사 살해

    “가즈니주 카라바그의 무샤키 지역에서 머리·가슴·배에 총탄 10발을 맞은 한국인 남자 시신이 발견됐다.”2007년 7월25일 아프가니스탄 경찰의 발표가 외신을 타고 한국에 전해졌다. 청년신도 등 20명을 이끌고 아프간으로 선교활동을 떠난 분당 샘물교회 배형규 목사(사진)의 시신이었다. 피랍 인질들의 무사를 빌었던 가족들과 국민들은 비탄에 빠졌다. 그 해 7월14일, 경기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배형규 목사와 샘물교회 청년회 신도 등 20명은 단기선교와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아프간에 입국했다. 이들은 같은 달 23일까지 체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9월2일에야 한국 땅을 밟았다. 2명은 싸늘하게 식은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한국에서 출발한 20명과 아프간 현지에서 합류한 안내인 3명은 19일 버스를 타고 남부 칸다하르에 있는 힐라 병원과 은혜샘 유치원으로 향했다. 수도 카불에서 170㎞ 거리의 가즈니 주 카라바그 지역을 통과하다 탈레반 무장 세력에 납치됐다. 탈레...

    2011.07.24 21:35

  • 1885년 미국 제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 사망

    미국 대통령들의 인생은 대체로 파란만장하다. 제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impson Grant·1822년 4월27일~1885년 7월23일)의 삶도 그랬다. 미국 워싱턴주에 그의 이름을 딴 ‘그랜트카운티’가 있고 미화 50달러 지폐에 얼굴이 새겨질 정도로 훌륭한 군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10인’에 선정될 정도로 무능하고 끔찍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1822년 오하이오주에서 가죽가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랜트는 17살 때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다. 졸업 후 장교로 임관, 멕시코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웠지만 알코올 중독 탓에 불명예제대를 한다. 농사를 짓고 부동산회사를 경영하기도 했지만 잇따라 사업에 실패했다. 실의에 빠져있던 그를 구한 것은 남북전쟁이었다. 다시 군인으로 돌아온 그랜트는 굵직한 전투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둔다. 1864년 북군 총사령관에 오르고 이듬해인 1865년 남군 사령관인 로버트 리 장군(1807~1870)의 항...

    2011.07.22 21:18

  • 1934년 미국 갱스터 존 딜린저 사살

    대공황 시기 미국 시카고. 미국연방수사국(FBI)에는 ‘공공의 적’ 1호였고 시민들에겐 ‘로빈 후드’와 같은 의적으로 인식됐던 희대의 은행강도 존 딜린저가 있었다.딜린저는 21살이던 1924년 친구와 함께 어설프게 식품점을 털다 경찰에 체포됐다. 친구는 변호사를 통해 무죄를 호소하는 전략으로 가벼운 형을 받았다. 하지만 변호사를 쓸 수 없었던 가난뱅이 청년 딜린저는 관대한 처분을 바라고 죄를 고백했다가 10년이 넘는 형을 선고받았다.교도소에서 딜린저는 당시 유명한 은행강도 해리 피어폰트와 러셀 클라크를 만나 그들로부터 각종 범죄수법을 전수받았다. 수감생활 동안 익힌 기술은 딜린저를 최고의 은행강도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1933년 5월 가석방된 뒤 딜린저는 미국 중서부 일대의 은행을 털며 명성을 떨쳤다. 1년 남짓한 기간에 11개 은행을 습격해 30만달러라는 거액을 손에 넣었다. 보안관 1명, 경찰관 7명, FBI 요원 3명을 살해했다. 번번이 인질을 앞세워 경찰의 포위망을...

    2011.07.21 21:29

  • [어제의 오늘]1994년 토니 블레어 영국 노동당 당수로 선출
    1994년 토니 블레어 영국 노동당 당수로 선출

    그의 등장은 화려했다. 영국 노동당 최연소 당수, 20세기 영국 최연소 총리, 80%를 넘는 지지율, 노동당 역사상 최초의 3기 연속 집권 등. 그러나 10년간의 총리직을 마치고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총리 관저)를 떠날 때는 ‘부시의 푸들’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옥스퍼드 법대를 나와 변호사를 하던 토니 블레어는 좌파운동가 집안 출신의 동료 변호사 셰리 부스와 결혼하면서 노동당에 입당했다. 1983년 총선에서 당선된 후 당시 야당인 노동당의 예비 내각에서 내무, 법무, 에너지, 노동 장관을 거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노동당 내에서는 우파였다. 노동당이 고수하던 국유화 정책을 포기하고 분배뿐 아니라 성장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94년 5월 존 스미스 노동당 당수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숨지면서 그에게 기회가 왔다. 그해 7월21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블레어는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수로 선출됐다. 79년 보수당에 내준 정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노동당이 전통적...

    2011.07.20 21:36

  • 1932년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출생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다.”세계적인 예술가이자 미디어 아트를 개척한 예술가 백남준의 지향점은 이 한 문장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1950년대 그의 기이하고 전위적인 예술은 당대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지만, 당시 그의 실험은 오늘날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미술과 비미술, 전통과 현대, 예술과 테크놀로지, 동양과 서양 등의 범주에 얽매이지 않고 늘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적 실천을 벌인 유목민, 백남준. 1932년 7월20일 일제강점기 경성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그저 한국, 한민족이라는 키워드로 포섭되지 않는다. 조선과 홍콩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한국전쟁 직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에서 미학을 공부한 그는 유럽철학과 현대음악에 관심을 가졌다. 58년 독일로 건너간 뒤, 음악에 우연적 요소를 도입한 존 케이지를 만나면서 그의 삶은 변곡점을 그리게 됐다. 이후 그는 미술실험집단인 플럭서스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2011.07.19 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