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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방식을 교체하는 게 혁명”···흙으로 돌아간 농민 사상가 천규석[생사고투]⑧
    “삶의 방식을 교체하는 게 혁명”···흙으로 돌아간 농민 사상가 천규석⑧

    지난 7월 25일 별세한 ‘농본 민주자치 공동체주의 농민’ 천규석은 2022년 9월 어느날 유언을 남겼다. 이 유언을 2025년 4월 출간한 마지막 책 <사람들은 다 어디 갔노 청산만 나를 부르네>(도서출판 전망)에 실었다. 유언 제목은 ‘이렇게 만들고 지킨 농장, 나와 함께 묻어다오’다.“내가 남긴 이 농장을 옛 무덤의 부장품처럼 내 죽거들랑 내 무덤 속에 함께 묻어다오. 아니다. 이 농장 전체를 아버지가 묻힌 거대 무덤으로 치부해다오. 그래서 자손 대대로 어떤 괴짜 선대 할아버지가 남긴 이 농장 무덤을 대를 이어 보존하고, 그 뜻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길이길이 기념하게 해다오.”농장 만들기도, 지키기도 쉽지 않아 나온 유언이다. 천규석은 “단지 땅 위에서 내가 하고 싶을 때 일해서 먹고사는 농민”을 추구했으나 개발과 파괴라는 현실의 벽에 종종 부딪히곤 했다.이 농장을 나와 함께 묻어다오…땅은 내 생명2021년 연말에는 어떤 부동산이 고향 경남 창녕군 영...

    2025.10.09 16:15

  • 가해자로 몰린 딸은 26년을 잠들지 못했다···‘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 이지혜와 어머니 김영순[생사고투]⑦
    가해자로 몰린 딸은 26년을 잠들지 못했다···‘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 이지혜와 어머니 김영순⑦

    “차라리 그때 딸을 찾지 못했다면 그 사고를 당하지 않고 어디에서 잘 살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괴로워요.” 이지혜의 어머니 김영순이 울먹이며 말했다. 딸이 초등학교 가기 전 지하상가에 데리고 갔다가 손을 놓쳐 잠시 잃어버린 일을 떠올렸다. “오죽하면 이런 생각을 다 할까 하면서 또 괴롭습니다.”딸은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다. 1999년 10월30일 오후 6시50분 인천 중구 인현동 한 상가 건물 지하에서 난 불이 2층 호프집으로 번졌다. 15분 동안 55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79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사망자 기준으로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165명), 1974년 대왕코너 전소(88명)에 이어 세번째로 큰 화재 사고다. 희생자들은 인천 시내 고등학생들이다. 딸도 현장 사망자 중 한 명이었다.장애인과 약자 도우려던 착한 딸김영순은 이쁘고 착한 딸에 대한 기억으로 하루하루 버틴다. 딸은 1982년 6월29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첫째는 아들이라 둘째...

    2025.08.18 17:48

  •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아디다스 신발 노동자의 삶과 투쟁[생사고투]⑥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아디다스 신발 노동자의 삶과 투쟁⑥

    “자랑스러운 우리 노동자의 날, 내가 사회에 발붙인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권미경이 1991년 5월 1일 노동절에 쓴 일기 한 문장이다. 권미경이 태어난 건 1969년 6월 24일이다. 전북 장수에서 나 1971년 부산으로 이주했다. 1982년 2월 아미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다음 달 들어간 곳은 중학교가 아니라 보세 공장이다. 열세 살 때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다.열세 살 소녀 노동자배우려고 했다. 공장 일을 하며 동주여자중학교 야간부를 다녔다. 1985년 졸업했다.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못했다. 공장을 계속 다녔다. 1985년 3월~1987년 10월 대일산업, 같은 해 10월~1988년 12월 청산, 1989년 1월~1990년 3월 세원에서 미싱사로 일했다. 그해 6월 대봉 재봉과로 들어갔다. 독일 아디다스 제품을 OEM방식으로 생산·수출하던 회사다.이듬해 노동은 유달리 고됐다. 1991년 11월 14일자 일기에 쓴 구...

    2025.07.03 17:37

  • [생사고투]⑤“10만원 더 남기려다 사람 잡는 세상”···한순간 사그라진 아들의 생애 앞에서
    ⑤“10만원 더 남기려다 사람 잡는 세상”···한순간 사그라진 아들의 생애 앞에서

    이재훈은 지갑에 5만원권 지폐 두 장을 지니고 다닌다. 아들 이선호의 생애 첫 월급 일부다. 아들은 2017년 수능을 치른 뒤 친구들과 일본으로 졸업 여행 갈 돈을 마련하려 동네 마트에서 아르바이트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강인하게 키우려 했다. 친구들과 놀고먹는 ‘비용’은 아들 스스로 감당하게 했다. 아들은 그렇게 번 돈으로 부모에게 10만원씩을 선물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생애 첫 노동의 대가를 지갑에 넣고는 한 번도 빼지 않았다. 이재훈과 세 차례 유선으로 인터뷰했다. 그 내용으로 정리한 아들의 생애와 아버지의 회한이다.수학 선생님을 꿈꾸던 착한 아이아들은 1998년 4월 1일 부산 동구 수정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늘 ‘올바름’을 강조했다. “불쌍한 친구들 보면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사 줘라. (넉넉하지 않아도) 그런 돈은 아빠가 얼마든지 줄 수가 있다”고 가르쳤다. 아들은 착하고 바르게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길에서 5000원짜리 지폐 하나를...

    2025.05.21 15:43

  • 안창호에 구애한 여자가 아니라 제국·자본에 맞선 독립운동가[생사고투] ④ 최영숙
    안창호에 구애한 여자가 아니라 제국·자본에 맞선 독립운동가 ④ 최영숙

    ‘인도 청년과 가약 맺은 채 세상 떠난 최양의 비련, 서전(瑞典, 스웨덴의 한자식 표기) 대학에서 인도 청년 가약 맺고 애아(愛兒)까지 나온 뒤에, 서전 경제학사 최영숙양 일대기’. 잡지 ‘삼천리’의 1932년 5월 1일자 기사 제목이다.최영숙 사망(4월 23일) 8일 뒤 나온 이 기사 제목은 1920~30년대 ‘신여성’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 재현 방식과 대중의 편견을 드러낸다. 당시 ‘한국 최초의 여성 경제학사이자 스웨덴 유학생’의 ‘사생활’에만 주목한 선정 보도를 두고 “야박한 세상 사람 혀끝과 붓끝에 오르내리게 되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신여성’) 같은 비판과 반론을 담은 기사도 나왔다. 90여 년이 지난 지금 득세하는 건 허구도 마다하지 않으며 이야깃거리로 취급하는 삼천리 부류의 보도다. 당시 삼천리는 “동무와 손을 잡고 스키하러 다니던 일”이라는 최영숙의 글 중 ‘동무’를 ‘그’로 바꾸며 ‘생활기’를 ‘연애담’으로...

    2025.05.02 06:00

  • [생사고투]③목숨 건 ‘뿌리 찾기’···벽 앞에 울다
    ③목숨 건 ‘뿌리 찾기’···벽 앞에 울다

    마티유 성탄 푸코는 국제입양(해외입양) 기관이나 브로커가 ‘입양 성공 사례’로 내세울 만한 사람이었다.1986년 12월23일 전북 이리시(현 익산시)에서 태어났다. 생후 4개월 때인 1987년 4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프랑스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양아버지는 특수교육 교사, 양어머니는 프랑스어·영어 교사였다. 양부모는 “교육과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프랑스 사회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줬다. 마티유 성탄 푸코는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마티유 성탄 푸코는 프랑스 전통 석공이자 목수였다. 장인 교육기관인 콩파뇽 뒤 드부아에서 배웠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복원 프로젝트,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 작업에도 참여했다. ‘성공 국제입양인’만 조명하는 한국에선 ‘화마로 무너진 노트르담 복원에 한국계 장인도 참여’ 같은 제목의 기사로도 날 법한 삶이었다. 로리안 시몽 사이에 2019년생 딸과 2023년생 아들을 뒀다. 프랑스 동부 프랑슈콩테에서 산...

    2025.04.03 06:00

  • [생사고투]②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외로워하며 살았다···결박 벗어낸 김나영의 한 생애
    ②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외로워하며 살았다···결박 벗어낸 김나영의 한 생애

    “걸을 줄 몰라”. 김나영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새내기 활동가 조아라를 처음 만났을 때 한 말이다. 2014년 3월 어느 날 김나영은 한 노인요양병원 침대에 결박된 상태였다. 묶여 지내다 걷는 방법을 까먹었다. 지적·정신장애를 가졌다. 환청, 환시에도 시달렸다. 이 아픈 사람을 두고 병원은 치료와 돌봄보다는 ‘손쉬운’ 감금과 결박을 택했다. 1967년 10월 18일 태어났다. 부모가 누군지, 집이 어딘지 모른다. 어렸을 때 대전 한 보육원에 간듯하다. 유성초·유성여중을 졸업했다는 기록은 남았다. 다시 같은 도시 정신요양원으로 갔다. 언제, 왜인지는 알 수 없다. 2006년 발바닥행동의 김정하와 송효정이 인권실태 조사를 하러 정신요양원을 찾아가기 전까지 김나영에 관한 기록은 이게 다다.이때 김나영은 시설 여러 문제를 알렸다. 한 달에 한 번 전화가 허락된 날 김나영은 김정하에게서 받은 명함의 번호를 눌렀다. “정하야, 나는 아무도 없으니까 네가 날 찾아와야 해.” 기록활...

    2025.03.07 06:00

  • [생사고투]①‘한인 최초 볼셰비키 혁명가’의 33년 짧은 삶
    ①‘한인 최초 볼셰비키 혁명가’의 33년 짧은 삶

    공장 감독관 시절 공장주의 부조리에 분개해 노동운동 참여처형 앞두고 일본군 향해 “착취의 쇠사슬을 끊으시오” 외쳐‘생사고투’는 세상에 덜 알려진 채로 또는 무명으로 묻힌 이들의 삶과 죽음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게시일 즈음 날짜에 과거나 동시대 출생하거나 사망한 이들이 생전 겪은 고투에 관한 부고입니다.1885년 2월22일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김수라)이 ‘노령 연해주 추풍 영안평’에서 태어났다. 러시아 시베리아 우수리스크의 시넬리코보다. 33년 뒤인 1918년 9월25일 하바롭스크에서 죽었다. 죽음의 형식은 ‘위인’을 이루는 요소가 되곤 한다. 김알렉산드라는 반혁명세력인 러시아 백군에게 총살당했다. 사형장 부근 아무르강(헤이룽강)에 버려졌다.혁명의 한길에서 비슷한 시기 죽음을 맞았다는 점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를 떠올린다. 둘 다 “영웅적으로” 죽고, “야수적으로” 살해당했다. 룩셈부르크는 김알렉산드라 처형 이듬해인 1919년 1월15일 독일 ...

    2025.02.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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