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5공 전사
  • [5공 전사-4화]신군부 입맛대로…지우고 비틀고 매도한 ‘민주화 열망’
    신군부 입맛대로…지우고 비틀고 매도한 ‘민주화 열망’

    무림의 비기(秘記)처럼 떠돌던 <제5공화국전사(第五共和國前史)>가 세상에 제 모습을 드러냈다. 간혹 언론에 인용됐지만 전체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군부의 자화자찬으로 꾸며진 채 완성됐음에도 불구하고 <5공 전사>는 왜 빛을 보지 못했을까? 필자가 이 책을 처음 접할 때부터 들었던 의문이다. 아마도 신군부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만들어진 <한국군사혁명사>와 같은 책을 흉내 내려 했던 것 같다. 신군부의 집권이 대한민국을 구한 ‘구국의 결단’이며 ‘역사의 필연’ 정도로 자랑할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신군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한국 사회가 나아갔다. 신군부는 5·18을 ‘내란’ 또는 ‘폭동’으로 매도했으나 국민들은 신군부의 거짓말을 믿지 않았다. 되레 국민들은 제5공화국을 ‘피 묻은 권력’ ‘학살정권’으로 비판하며 저항했다. 신군부가 <5공 전사>를 세상 밖으로 내놓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

    2018.10.15 06:00

  • [5공 전사-4화]“광주 시민들, 숱한 왜곡·고통의 시간 속 역사 바로잡아”
    “광주 시민들, 숱한 왜곡·고통의 시간 속 역사 바로잡아”

    “ ‘폭도’ ‘불순분자’로 규정됐던 광주 시민들이 지금은 민주화운동을 한 이들로 불립니다. 구 망월동 묘역에서 제사도 못 지내게 하더니, 이제는 국가에서 5·18을 기리고요. 우리를 내란 혐의로 재판한 신군부가 오히려 내란세력이었다는 게 인정됐죠. 숱한 왜곡,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힘들게 꾸준히 진상을 밝히면서 역사를 바로잡아온 것입니다.”김종배 전 국회의원(64·사진)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학생수습위원회 부위원장 겸 장례위원장이었다. 당시 5월25일부터는 새로 조직된 시민학생수습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27일 계엄군이 도청에 진입할 때까지 최후의 항쟁을 지휘하다 붙잡혔다. <제5공화국 전사> 본문 4편 1602~1603쪽에는 “25일 저녁 조선대생 김종배는 정부 당국에 대한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무기반납을 보류하고 투쟁을 계속한다는 자기주장에 동조하는 YWCA 계열의 청년들을 도청에 불러모아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2018.10.15 06:00

  • [5공 전사-3화] 상부 지시로 광주역서 첫 발포…신군부 핵심이 증언 ‘물증’
    상부 지시로 광주역서 첫 발포…신군부 핵심이 증언 ‘물증’

    5월20일 광주역 난사 관련“드디어 자위권 발동” 묘사 3공수 상위 조직 ‘2군사령부’ 발포 금지 지시 내렸지만 다음날 오전까지 발포 계속 공식 아닌 ‘별도 지휘’ 받은 듯“데모 군중 앞에서 겁내지 말고 과감히 행동하라.”경향신문이 국방부와 소송을 통해 확보한 <제5공화국 전사>는 1980년 5월20일 광주역에 도착한 제3공수여단장 최세창이 작전 투입을 앞두고 있던 부하 장병들에게 이렇게 훈시했다고 적었다.3공수는 이날 오후 11시쯤 광주역 앞에서 시민들에게 M16 소총을 쐈다. 5·18 2년 뒤 편찬된 <5공 전사>는 최세창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에 대해 “자위권 발동의 지시가 있었으나 인내와 극기로 버티어 왔던 계엄군들은 드디어 자위권을 발동하였다”면서 “이날 밤 11시경 광주소요의 발발 이래 최초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고 기록했다.광주역 앞 발포가 ‘자위권 발동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

    2018.10.11 06:00

  • 계엄군, 도청 앞 집단발포 전날 ‘상부 발포 명령’ 내려졌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5월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기 하루 전 계엄군은 상부로부터 ‘자위권 발동(발포) 지시’를 받았던 것으로 <제5공화국 전사>에서 확인됐다. “도청 앞 집단발포는 상부 지시가 아닌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던 신군부의 주장과 달리 사전에 ‘발포 명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10일 경향신문이 국방부와의 소송을 통해 확보한 전두환 정권의 비밀책자 <5공 전사> 4편에는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3공수여단이 1980년 5월20일 오후 11시 자위권 발동 지시를 실행한 것으로 나온다.<5공 전사>는 5월20일 광주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 ‘자위권 발동 지시’가 있었으나 선량한 시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인내와 극기로 버티어 왔던 계엄군들은 드디어 자위권을 발동하였고 진압봉, 최루탄, 화학탄 등을 총동원하여 시위진압에 사력을 다하였다”라고 기록했다. 또 “극렬 폭도들을 물리치...

    2018.10.11 06:00

  • [5공 전사-3화] 무자비한 소탕작전에 “군이 기여 안 하면 위신 문제가” 궤변
    무자비한 소탕작전에 “군이 기여 안 하면 위신 문제가” 궤변

    계엄군 무력진압 실행 앞서 작전 필요성 검토 보고서 시민들을 잠재적 간첩 간주 아전인수식 해석이 대부분 특전부대 ‘하면 된다’ 신조 등 모든 측면서 ‘즉각 소탕’ 결론“군의 사기 위해 필요” 궤변 작전 과정과 성과에 대해선“악몽 끝나고 새 아침 시작” ‘적군’ 물리친 듯한 기술 가득1980년 5·18민주화운동은 열흘째인 27일 계엄군의 무력진압으로 일단락됐다. 계엄군의 마지막 작전명은 ‘상무충정’이었다. ‘무예 숭상’을 뜻하는 상무(尙武)에 ‘충실하고 올바르다’는 충정(忠正)을 더한 것이다. 모순적인 작전명 아래 시민들이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전두환 신군부의 <제5공화국 전사>를 검토한 결과, 이는 시민들을 잠재적 ‘고정간첩’으로 간주하고, 군 사기와 ‘하면 된다’ 신조 등을 고려해 결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군대가 시민을 짓밟은 날은 ‘악몽이 끝나고 새 아침이 시작된’ 날로 기록했다.<5공 전사>는 ...

    2018.10.11 06:00

  • [5공 전사-3화] 공수부대, 강경 진압 주저한 지휘관 보직 박탈…“투입 1시간 만에 시민 149명 검거” 자랑까지
    공수부대, 강경 진압 주저한 지휘관 보직 박탈…“투입 1시간 만에 시민 149명 검거” 자랑까지

    3개 여단 3280명 광주 투입 광주총괄이던 윤흥정 사령관 ‘소극적’ 이유 소준열로 교체“무기 회수·추이 관망 목적” 당시 협상 나선 시민들 악용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공수부대는 모두 3개 여단이나 됐다. 5월17일 밤 7공수여단이 가장 먼저 광주에 도착했고 19일 11공수가 추가됐다. 20일에는 3공수까지 광주에 투입됐다. 투입된 병력은 7공수 688명, 11공수 1200명, 3공수 1392명 등 총 3280명이다.<제5공화국 전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전남도경은 전남의 군소도시로부터 630여명의 기동경찰을 추가 동원하였고 계엄사령부는 제11공수와 3공수여단 병력을 광주시에 추가 투입하였는데 5월18일 2600여명 규모의 데모 진압병력은 20일에는 5800여명으로 증가됐다”고 기록했다.국군의 최정예 부대였던 공수부대는 광주에 투입된 직후부터 시민들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며 강경 진압으로 일관했다. 공수부대 지휘...

    2018.10.11 06:00

  • [5공 전사-3화] “죽음 각오하고 마이크 잡았는데, 시민군을 나약한 존재로 서술해 분통”
    “죽음 각오하고 마이크 잡았는데, 시민군을 나약한 존재로 서술해 분통”

    도청 골목골목에 총 겨누곤호소에 답한 시민 없었다니5·18 대동정신을 조롱한 것아직 세상 우습게 아는 그들응징하는 데 힘 모으고 싶어“살아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순간이었습니다. 목숨을 구걸하기나 한 것처럼 시민군을 나약한 존재로 서술한 것에 분통이 터집니다.”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 바로 전에 ‘마지막 방송’을 했던 박영순씨(59). 그는 당시 대학 2학년생으로 모교인 광주여고 등 2곳에서 가야금 강사를 하다 23~27일 시민군 방송반원으로 항쟁에 나섰다. 박씨는 <5공 전사>가 발굴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 스스로 반란군이요, 폭도임을 고백했으니 이젠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되는 것 아니냐”면서 “아직도 세상을 우습게 아는 그들을 응징하는 데 힘을 모으고 싶다”고 말했다.그는 <5공 전사> 4편에서 ‘이날 새벽 첫 총성이 울리자 도청에...

    2018.10.11 06:00

  • [5공 전사-2화] ‘문재인·김부겸·유시민·백남기…’ 신군부 ‘학원사찰 계보도’ 첫 공개
    ‘문재인·김부겸·유시민·백남기…’ 신군부 ‘학원사찰 계보도’ 첫 공개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 5월 전국 26개 대학 교수·학생 458명을 담은 학원사태 주동자 계보도를 작성해 대대적인 체포·사찰에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한 5월17일 직전에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무력화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신군부가 전국 대학별로 그린 학생운동 계보도 묶음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경향신문이 국방부와의 소송을 통해 9권 전권을 확보한 전두환 정권의 비밀책자 <제5공화국 전사>에는 ‘대학생 학원사태 주동자 배후체계도’와 ‘각 대학 학원사태 주동자 계보’가 실려 있다. 계보도는 1980년 5월6일과 15일에 각각 작성됐으며, 세세한 사찰 내용도 담고 있다. 한 대학교에서 적게는 3명, 많게는 52명에 이른다.‘경희대 계보도’ 가장 위에는 ‘除籍復學生(제적복학생)’ 바로 아래에 “文在寅(문재인)·法(법)4”라고 쓰여 있다. 주동자로 분류된 문 대통령과 제적·복학생 2명은 박정희 유신정권 당...

    2018.10.08 06:00

  • [5공 전사-2화] 학생운동을 “적화통일 지향” 규정…시위 타깃인 전두환은 ○○○으로 간접 표현
    학생운동을 “적화통일 지향” 규정…시위 타깃인 전두환은 ○○○으로 간접 표현

    ■ 5공 전사에 표현된 ‘1980년 대학생들’“조국이 처한 국가적 위기의 실상을 인식하려들기보다는 자기들의 독선을 행동으로 표현하기에 급급”“민주투사연하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과시”“기고만장과 안하무인격 태도”병영집체계획제도 거부에 대해 “대학생으로서의 이해수준과 양식을 의심케 하는 자세”“사회주의적 혁명 분위기 달성 징후”“남북한 용공통일을 성취시키며 나아가서는 적화통일을 지향하는 방향”<제5공화국 전사>는 1980년 5월 대학가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데 주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불순분자’의 배후조종, 학생들의 ‘독선과 횡포’에 따른 것으로 규정했다. “적화통일을 지향”하는 행위라고도 했다. 5·17 계엄 확대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전남지역 대학생들이 참여한 5·18민주화운동을 ‘반국가적’인 활동으로 낙인찍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5공 전사> 본문 4편의 ‘학생소요 사태’ 부분은 유...

    2018.10.08 06:00

  • [5공 전사-2화] 458명 대학가 계보도 ‘깨알 작성’…배후로 ‘DJ’ 그 밑에 ‘KT’
    458명 대학가 계보도 ‘깨알 작성’…배후로 ‘DJ’ 그 밑에 ‘KT’

    부록 실린 26개 대학 계보도사실상 ‘학원 사찰 기록물’출신·교우관계·시위 전력에A·B·C급 나눠 세세히 분류전두환 정권의 비밀문서 <제5공화국 전사>에는 당시 전국 26개 대학의 학생운동 계보도 37개와 교수·학생 등 458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일종의 학원 사찰 기록이다. 출신 지역과 고교, 선후배 관계, 시위 참여 경력에 더해 학생들을 ‘A·B·C’급으로 나누거나 ‘행동총책’처럼 역할을 구분하는 등 깨알같이 적었다. 체포를 위한 준비문건이자, 신군부가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이전부터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조작에 착수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다.학원사찰 계보도는 2차례에 걸쳐 만들어졌다. 1980년 5월6일자 ‘대학생 학원사태 주동자 배후 체계도’와 15일자 ‘각 대학 학원사태 주동자 계보’다. 당시 대학가를 사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대학교당 적게는 3명부터 52명까지 이름을 적은 계보도를 그렸다.‘대학생 학원...

    2018.10.08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