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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다는 말도 못하고 이렇게…아이고 내 새끼, 이렇게는 못 보내”
“아버님, 여기 어딘지, 무슨 일로 와 있는지 아시겠어요?” 화성시청 공무원의 말에 혼절한 듯 엎드려 울던 남성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발생 열흘 만인 지난 4일 화성시청 추모 분향소에는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가 안치됐다. 유가족들은 위패와 영정을 끌어안은 채 분향소로 들어섰다. 한 명 한 명 영정이 제단 위에 놓일 때마다, 유가족들 사이에서 새어 나오던 울음은 점점 더 커졌다. “아이고 내 새끼….” “뜨겁다는 말도 못하고 이렇게… 못 보낸다, 살려내!” 일부 유가족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비명 같은 울음을 토해냈다. 고 최은미선씨의 아버지 최병학씨도 그중 하나였다. 딸을 잃은 그는 온몸으로 오열했다. 영정 안치와 헌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바닥에 엎드려 신음하고 몸부림쳤다. 주변 사람들이 부축해 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는 딸의 영정을 붙든 손을 쉽사리 놓지 못했다. -
불길과, 편견과 맞서 싸웠다···퇴임 소방관의 ‘빛나는 명찰’
“40년1개월의 공직생활 동안 대통령이 9번 바뀌었습니다.”지난달 30일 여성 소방관 1기이자 전북소방청 최초 여성 지휘팀장인 정은애씨가 자신의 퇴임 축하 파티에서 담담히 말했다. 서울 이태원의 한 레즈비언바에서 열린 이날 파티에는 소방관·친구 등 40여명이 참석해 정씨를 축하했다. 트랜스젠더 아들 한결씨도 어머니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씨는 화염을 넘나들며 생명을 구해낸 영웅이자 성소수자로 살고 있는 아들의 삶을 받쳐준 든든한 조력자로 살아왔다. 그는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문제로 분투했고 동료들의 죽음에 목소리를 내왔다. 또한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나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퀴어 당사자들과 ‘앨라이(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사람)’는 정씨를 ‘모두의 어머니’라고 불렀다.“‘성소수자 친화적’이고 ‘소방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이해하는 상담사 및 인권교육가가 되는 것이 다음 목표”라 ... -
더위에 질려버린 광교저수지…악몽처럼 다시 돋아난 염증
낮이 가장 긴 절기상 하지인 지난 21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의 광교저수지 인근에서는 불볕더위 때문인지 산책하는 시민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광교저수지는 수원시의 수원(水源) 중 하나다. 계속되는 더위로 저수지가 초록색으로 변해 있었다. 저수지에 설치된 3개의 부력수차(물을 순환시켜 수질을 정화하는 장치)가 부지런히 돌았다.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저수지를 내려다보았다. 녹조로 저수지의 색깔이 주변 숲과 구별되지 않았다. 녹조는 왜 생길까. 수질과 유속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기온 상승이 주된 발생 조건이다. 기온 상승으로 수온이 올라가면 녹조류와 플랑크톤이 활발하게 증식한다. 이로 인해 녹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녹조가 여름에 많이 나타나는 이유다. 6월 된더위로 시작된 올여름은 유난히 더울 것으로 예상돼 ‘녹조라떼’가 다시 기승을 부릴 것 같다. -
하늘과 물 맞닿은 백두산 천지…맑고 청명해 더욱 안타까운 ‘남북’ 관계 악화의 현실
북한의 오물 풍선에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지난 11일 중국을 통해 해발 2744m 백두산 천문봉에 올랐다. 연무가 흩어진 뒤 드러낸 천지의 풍광은 ‘천지개벽’이라 할 만큼 신비롭고 광활했다. 함께 오른 관광객들은 너나없이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넋을 잃은 채 카메라를 꺼내들었다.남북관계가 적대를 거두고 협력의 분위기를 키워가던 2018년 9월20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천지를 함께 찾았다. 그 이후 천지는 남북 화해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남북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긴장감은 높아지고 불신의 벽은 견고해지고 있다.남북관계에 돌파구는 없을까? 잠시 머문 백두산 정상에는 세찬 바람이 끊임없이 불었다. 하지만 높은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천지의 물결은 잔잔하기만 했다. -
전깃줄보다 질기고 76만5천볼트보다 강한 ‘우리’
정전된 집에 전기가 다시 들어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눈이 어둠에 적응하며 익숙한 풍경을 보기 시작할 때쯤 불이 켜졌다. 온통 깜깜하던 세상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마법이 아닐 리 없었다.코드 하나, 스위치 하나면 되는 마법 속에서 살아 실감하지 못하지만 전기는 마법이 아니라 생산품이다. 누군가는 전기를 만들고, 옮기고, 저장하고, 판매한다. 그 과정에서 송전탑이 세워진다. 전선을 걸고 전기를 옮기기 위해서다.10년 전 경남 밀양시에 대규모 송전탑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밀양 주민들은 거세게 싸웠고, 전국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함께했다. 지난 8일 전국 15개 지역에서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밀양에 다시 모였다. 송전탑 아래를 걷는 사람들은 작았다. 100m가 넘는 송전탑을 그저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사람들은 “계속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하겠다”고 했다. “삼척과 당진, 태안과 새만금, 부산과 울산을 가로질... -
65세 이상은 ‘권리 박탈’ 정부 지침…장애 노인을 위한 일자리는 없다
중증장애인은 만 65세 이상이 되면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의 지침이다.지난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장애인도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진정이 접수됐다. 진정인인 최윤정씨가 기자회견에서 준비해 온 발언문을 읽었다. 중증장애를 가진 최씨의 발언은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발음이 무너지고 목에선 바람소리가 새어 나왔다.“경제적 빈곤을 더하는 지침에 삶까지 병들고 있습니다. 왜 우리 인생이 평등의 기회를 빼앗기는 것만 아니라 노인과 장애인의 갈라치기로 사용되어야 하나요?”뙤약볕 아래서 힘겹게 발언을 이어간 최씨는 말을 맺은 뒤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북받친 감정에 눈가를 연신 비벼댔다.‘노인도, 장애인도, 그 누구도 노동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
혐오 살인도 교제살인도 없도록…바뀌어라, 여성이 안전한 사회로
‘강남역 살해사건’ 8주기인 지난 17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2016년 5월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했다. 가해자는 “평소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추모식 참가자들은 ‘여기, 강남역에서! 다시, 반격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모두가 안전한 성평등 사회를 위해 우리가 퇴행을 집어삼키는 ‘반격’의 시작이 되겠다”고 외쳤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계속되고 있는 교제살인 피해자를 추모하고, 여성 폭력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 참가자는 손팻말에 ‘사회가 바뀌나 내가 바뀌나 보자’라는 문장을 써넣었다.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3월 발표한 ‘2023년 분노의 게이지: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 및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 분석’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내 여성 살해’는 최소 1... -
“대통령 사진 잘려 유감” 용산에서 걸려온 전화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을 사흘 앞둔 지난 7일 대통령실 대외협력비서관실에서 전화가 왔다. 1면에 작게 들어간 윤 대통령의 얼굴 사진이 위와 아래가 잘려 나가서 유감이라는 내용이었다. 머리가 아찔했다. 지금 내가 사는 나라가 북한이 아닐 터인데….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었지만, 출근길 버스 안의 분위기가 정숙했던 터라 일단 알았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대한민국 대통령의 얼굴 사진에 대한 언론 보도 지침을 대통령실이 따로 마련해 놓은 것일까? 이날 통화한 대외협력비서관실 직원은 해당 날짜의 신문에 야당 지도자 사진은 윤 대통령에 비해 이미지가 좋다는 언급도 덧붙였다. 어린이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배우자 김혜경씨의 유튜브 캡처 이미지였다. 글쎄…, 대통령의 이미지를 야당 지도자와 비교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은 일 아니던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취임 첫날을 다룬 2017년 5월 11일의 경향신문 지면을 살펴봤다. 2면에서 10분 단위... -
입막음당해온 ‘진실’ 향해…드디어 첫걸음
이태원 참사 발생 551일 만인 지난 2일 마침내 ‘이태원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은 재석 259명, 찬성 256명, 반대 0명, 기권 3명으로 가결됐다. 본회의장 참관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유가족들은 법안이 통과되자 꾹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참사 이후 유가족들은 단식과 삭발, 오체투지, 1만5900배 밤샘 기도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특별법의 필요성을 외쳤다. 법안의 정식 명칭은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다.유가족들은 법안 통과 직후 국회 본청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힘써주신 시민들과 야당 의원들에게 감사드린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해준 여당 의원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진상규명이 제대로 첫걸음을 떼기 위해선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고 덧붙였다. -
메뉴판에서 안 오른 건 라면사리뿐…민생은 뒷전인 불편한 만남 속 말없이 허기를 채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첫 회담이 열린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을 찾았다. 일부 상인은 뉴스전문채널을 켜놓고 영수회담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대다수 상인들은 TV를 꺼두거나 다른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이날 회담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모두 발언 이후 비공개로 진행됐다. 공개된 인사 장면과 발언 영상은 잠시 뒤 뉴스 속보로 방송됐다. 뉴스 패널들이 어떤 의제가 논의될 것인지, 영수회담의 의의는 무엇인지 등을 분석하는 장면이 이어졌다.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한 앵글에 잡힌 영상을 찍는 동안 한 상인이 물었다. “도대체 뭘 찍는 거예요?” 지나가던 시민과 주변 상인들도 호기심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곧 “아~, 그게 오늘이었지. 둘이 만난다고 했어”, “시장에서 (관심있게) 보냐를 알아보려고 왔나 보네”하며 저마다 말을 보탠다.윤 대통령 취임 720일째인 이날 열린 영수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다. 135분간의 회담이 끝난 뒤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