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B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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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B컷]메뉴판에서 안 오른 건 라면사리뿐…민생은 뒷전인 불편한 만남 속 말없이 허기를 채운다

    메뉴판에서 안 오른 건 라면사리뿐…민생은 뒷전인 불편한 만남 속 말없이 허기를 채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첫 회담이 열린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을 찾았다. 일부 상인은 뉴스전문채널을 켜놓고 영수회담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대다수 상인들은 TV를 꺼두거나 다른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이날 회담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모두 발언 이후 비공개로 진행됐다. 공개된 인사 장면과 발언 영상은 잠시 뒤 뉴스 속보로 방송됐다. 뉴스 패널들이 어떤 의제가 논의될 것인지, 영수회담의 의의는 무엇인지 등을 분석하는 장면이 이어졌다.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한 앵글에 잡힌 영상을 찍는 동안 한 상인이 물었다. “도대체 뭘 찍는 거예요?” 지나가던 시민과 주변 상인들도 호기심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곧 “아~, 그게 오늘이었지. 둘이 만난다고 했어”, “시장에서 (관심있게) 보냐를 알아보려고 왔나 보네”하며 저마다 말을 보탠다.윤 대통령 취임 720일째인 이날 열린 영수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다. 135분간의 회담이 끝난 뒤 대...
  • [금주의 B컷]자립 위한 장애인들의 “투쟁”, 차별에 맞서 제 머리를 깎을 뿐

    자립 위한 장애인들의 “투쟁”, 차별에 맞서 제 머리를 깎을 뿐

    투쟁, 이들은 몇 번씩 “투쟁!”이라 외쳤다. 발언에 나선 사람들은 인사도 “투쟁!” 한마디로 대신했다. 대회가 진행될수록 더 많은 투쟁의 목소리가 모였다.지난 19일 서울시청 앞에서 장애인 차별 철폐의날 전국 집중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날 중증장애인 4명은 삭발로 투쟁했다. 올해 서울시가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다. 와상형 휠체어에서 삭발을 기다리던 이영애씨(58) 뒤로 영상이 흘러나왔다. 영상 속 이씨는 57년 만에 자립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공공일자리 사업으로) 일도 하고 월급도 받으면서 자립하게 되었다”며 “떨리고 두렵고 신나기도 한다”고 했다.투쟁이라는 말은 무겁고, 비장하고, 어쩌면 무섭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이들의 작고 여린 투쟁은 제 머리를 깎을 뿐, 그 시간이라도 우리를 봐달라고 외칠 뿐.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머리카락으로 투쟁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매 순간이 투쟁인 삶은...
  • [금주의 B컷]안전에 투표를 진실에 한 표를

    안전에 투표를 진실에 한 표를

    “2014년 세월호를 기억한다면, 2023년 한 해병의 희생을 기억한다면, 2022년 10월31일 이태원 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투표해야 합니다.”이태원 참사로 동생을 잃은 유정씨가 떨리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22대 총선을 이틀 앞둔 지난 8일 참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생명안전 국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후보에 투표해달라”고 외쳤다.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여러분의 한 표가 가족과 친구의 불행을 막고, 안전사회로 향하는 발걸음이 될 수 있다”며 시민들에게 투표를 독려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유가족들은 ‘진실에 투표해주세요’라고 적힌 대형 팻말을 들고 지난 4일부터 시작한 ‘진실대행진’ 캠페인을 이어나갔다.이날 이태원 참사 특별법 통과를 요구하는 국회 앞 농성 천막 왼쪽엔 유가족의 배낭들이 놓여 있었다. 배낭 끝에 단단하게 매달린 노란색 리본과 보라색 리본이 한참 동안 시선을 붙들었다.
  • [금주의 B컷]청진기 자리에 달린 구호 배지…고통의 목소리 들어주길

    청진기 자리에 달린 구호 배지…고통의 목소리 들어주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교수진이 지난 25일 의료원 교수 총회를 열고 한꺼번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교수 비상대책위는 총회에서 전공의와 의대생에 대한 비방과 위협을 즉시 멈추고, 잘못된 의료 정책 및 정원 확대 추진 철회와 필수의료를 위한 협의체 구성을 정부에 요구했다. 비대위는 총회에 참석한 의사들에게 배지를 나눠줬다. ‘필수의료사수 의료새싹을 보호해주세요’ ‘젊은 의사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정부가 의료계와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고 했지만, 교수들의 사직은 이어지고 있다. ‘의대생 2000명 증원’으로 시작된 의·정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19개 의대가 모인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 구성원 대부분이 사직서 제출을 결의하면서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의대 교수들이 당장 의료 현장을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의료 공백이 길어지며 환자들의 고통과 불안은 커지고 있다.고려대 의대 교수들이 모두 사직서를 낸 당일 안암병원에 북적이는 환자들 사이로...
  • [금주의 B컷]입틀막 그만!

    입틀막 그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가 자유일지언정, 우리는 항상 자유를 쟁취해 왔다. 표현의 자유는 특히 더 그렇다. 침략과 약탈, 전쟁과 독재의 역사 속에서 표현의 자유는 억압받아 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신문지법이, 전두환 정권 때는 보도지침이 있었다. 이후 우리 헌법은 21조에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적었다. 법률로 제한할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쟁취한 자유다.민주주의 정상회의 둘째 날인 지난 19일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21조넷)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활동가들은 “표현의 자유 없이 민주주의 없다”며 “현 정권이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 [금주의 B컷]그들이 끊은 건 돈이 아닌 삶…“그래도 우리의 노래는 멈출 수 없어요”

    그들이 끊은 건 돈이 아닌 삶…“그래도 우리의 노래는 멈출 수 없어요”

    “사람이 오면 꼬리 흔~들어요개사료 먹어요강아지랑 얘기 나눠요맘속으로 사랑한다고~~”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이연옥씨(52)는 작사·작곡가이자 가수다. 이씨는 매주 한 곡씩 노래를 만든다. 혼자서 하는 것은 아니다.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이하 노노공) 강사인 만수씨(35·음악가 이민휘)와 지적장애를 가진 10여명의 수강생들과 함께 작업을 한다. 이들 중증 발달장애인에게 노노공 수업은 곧 ‘노동’이다.2022년 시작된 노노공은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의 일환이었다. 수강생들은 거리에서 장애인들의 권리를 알리는 캠페인을 벌이거나 노래를 만드는 문화예술노동을 하면서 생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벌었다. 그런데 서울시가 올해부터 예산을 삭감하고 사실상 사업을 폐지했다. 그동안 퇴직금과 주휴수당을 인정받으면서 주 15시간, 최저임금을 받아온 노노공 노동자들도 포함됐다.예산을 뺏겼지만 노노공 노동자들은 올해도 쉰 적이 ...
  • [금주의 B컷]아픈 몸, 지쳐가는 마음…돌볼 ‘의사’ 정녕 없나요

    아픈 몸, 지쳐가는 마음…돌볼 ‘의사’ 정녕 없나요

    의대 증원 문제를 두고 정부와 의사들 간의 갈등이 3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번 주말이 지나가면…’ ‘다음달이 되면…’이라는 바람이 무색하게도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사진기자로 의료진, 환자, 응급실 등 병원을 맴돌며 새로운 장면을 담아내긴 쉽지 않고, 오늘은 또 뭘 찍을지 고민은 깊어집니다.어떤 현장은 카메라를 들기가 참 불편합니다. 일에 앞서 찍히는 당사자를 고려하지 않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그렇습니다.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이렇게까지 (취재)할 일인가’ 망설여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장기입원 중인 것으로 보이는 어린 환자와 휠체어를 미는 보호자를 봤을 때도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에 선뜻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휠체어를 지나친 뒤 뒤돌아 엘리베이터에 비친 모습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데, 문득 ‘저 아이는 인생의 몇 퍼센트를 병원에서 보냈을까?’ 궁금했습니다. 병동에 북적이는 어린이 환자와 보호자를 보며 의대 증원의 ‘실현’과 ‘저지’라는 강경한 ...
  • [금주의 B컷]이 늦깎이 고교 졸업생들 표정이 말한다

    이 늦깎이 고교 졸업생들 표정이 말한다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기 싫어하는 것이 학생의 본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때가 되면 학년이 바뀌고, 졸업하고, 또다시 입학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충만한 해방감을 느끼며 방학하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개학했다.거의 평생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살아왔는데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거의 없다. 직업란에 ‘학생’ 대신 쓸 말이 없어졌을 때가 돼서야 “학교 다녀요”라는 한마디가 얼마나 나를 쉽게 설명해줬는지 깨달았을 뿐이다.지난 27일 졸업한 일성여자중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순전히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에 왔다. 학교에 가는 대신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웠다. 졸업생 대표는 연설에서 “배우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갈 길을 몰랐을 때 학교를 오게 됐다”고 했다.학생들은 배우고 싶은 마음을 힘껏 펼쳤다. 알파벳부터 배워 길거리의 간판을 읽어내고, 노래하듯 구구단을 외웠다. 늦게 시작한 공부가 힘드냐고 누가 물으면 “힘들...
  • [금주의 B컷] 무책임에 레드카드

    무책임에 레드카드

    “아시안컵 우승이 부임 후 첫 목표다.”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3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 기자회견에서 목표를 밝혔다. 손흥민, 김민재, 황희찬, 이강인 등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대거 포함된 이번 축구대표팀은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목표로 했다. 붉은악마들은 늦은 시간까지 태극전사를 응원하며 우승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지켜봤다.그러나 부족한 전술과 계속되는 연장전 끝에 얻은 승리로 힘겹게 나아가는 대표팀을 바라보며 처음과 달리 불안함은 커져만 갔다.요르단과의 4강전에서 유효 슈팅 0개, 2실점하며 탈락했다. 역대 최고 전력을 갖췄다고 평가받은 클린스만호 선수들은 종료 휘슬과 함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축구팬들의 야유를 들으며 입국한 클린스만 감독은 인터뷰에서 대표팀을 계속 이끌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귀국한 지 이틀 만에 클린스만 감독은 미국으로 떠났다.그로부터 얼마 뒤 4강전을 앞두고 대표팀 내...
  • [금주의 B컷] 오늘도 끊임없이 묻는다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오늘도 끊임없이 묻는다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호소(닉네임)는 드랙(성별이나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의상과 화장, 행위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 예술의 한 장르) 아티스트다. 어려서부터 지정 성별과 성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던 그는 젠더를 둘러싼 사회적 혐오의 한가운데 서 있어야 했다. 이후 호소는 드랙을 통해 ‘정상성·아름다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무대 위에서 호소는 소수자로 살아온 삶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스스로를 여성과 남성을 오가는 상상 속 존재로 표현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그는 “제 드랙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며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 정상성의 범위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질문할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공연이 끝나고 호소가 자신의 동료를 껴안았다. 강렬한 음악에 휩싸인 요란함 속에서 이들은 소수자로 살며 겪은 서로의 기억과 트라우마를 조용히 위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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