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파내고 들어엎기를 반복한 청계천, 민초들의 운명과도 닮아있다](http://img.khan.co.kr/news/c/300x200/2019/12/16/l_2019121601001684000148091.jpg)
정월대보름의 꽉 찬 달이 떠오르는 저녁, 집집마다 등불이 걸렸다. 솥에 찐 찰밥으로 배를 채운 아이들이 어둑해진 하늘에서 연을 거둬들이면, 공터에서 마른 짚단을 태운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풍물패의 공연이 벌어지자 벌써부터 탁주에 취한 취객들이 불 주변을 돌며 춤을 췄다. 주민들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강가로 쏟아져 나와 섞였다. 대나무 자루에 걸린 초롱에서 새어나온 은은한 불빛이 반딧불 무리처럼 긴 행렬을 이뤘다. 어른들은 광통교를 시작으로 청계천의 열두 다리를 밤새도록 밟아 돌아다녔고, 쌀가루를 하얗게 얼굴에 뒤집어쓴 아이들이 멋모르고 대열의 꼬리에 따라붙었다. 다리로 다리를 밟아 액을 막는다는 뜻의 풍속이라는데, 그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먼 옛날에도 거의 없었을 것 같다. 그저 도시 전체가 낭만에 흠뻑 젖은 밤이 지나가는 게 다들 아쉬워서 밤을 배회하지 않았을까.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예수의 생일을 떠올리지 않고도, 현대인들 역시 한파가 덮친 거리로 끌...
2019.12.16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