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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기계의 정확도 높이는 ‘인간부품’ 육성공장 아닐까
ㆍAI 학습데이터 가공 기업 ‘크라우드웍스’ 교육장 참관“소화전이 있는 비상구 사진, 다들 보이시죠? 이 사진에 있는 글자를 한 자도 빠짐없이 입력해주시면 됩니다. 띄어쓰기 단위로 ‘바운딩’(영역 설정)을 하고 글자를 입력해주세요. 여기 ‘소화전’이라는 단어는 글자 사이 간격이 넓으니 ‘소 화 전’이라고 써야겠네요.”마우스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혹 놓친 부분이 있을까, 모니터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대기도 했다. 이따금 질문하는 것 빼고는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작업은 단순했다. 컴퓨터가 사진 속 글자를 읽을 수 있도록, 단어마다 영역을 설정한 뒤 어떤 글자인지 적어주면 됐다. 한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한 자 한 자 손으로 짚어가며 소리내는 법을 알려주는 것과 같다.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는 인공지능(AI)을 학습시키는 데 쓰인다. 식품포장 뒷면에 적힌 성분표, 세계사 강의노트 필기, 직장동료와의 카카오톡 대화…. 다양한 환경에서 수집·가공된 데이터... -
정형화된 고체에서 ‘액체’로 변화하는 노동…산재보험 등 안전망에 걸릴 수 없어
“당신은 여기 ‘고용’되는 게 아닙니다. ‘합류’하는 겁니다.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는 거죠.”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에서 택배회사 창고 사장은 택배기사직에 지원한 리키에게 이렇게 말한다. 리키는 자유의지에 따라 일하게 된 것에 뿌듯해한다. 하지만 아무런 보호 없이 ‘노예노동’의 굴레로 떨어졌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노동자를 전통적 고용관계로부터 되도록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는 ‘긱 경제’의 본질이 드러난다.반길 수 없지만,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현상이 전 세계 노동시장판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일자리’ 아닌 ‘일감’ 위주 노동이 늘어나는 것이다. ‘가짜 자영업자’ 논란이 끊이지 않는 플랫폼 노동과 관련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일자리 한 개 늘리기가 정말로 어렵다. 이 관점에서만 보면 대리운전기사 한 명 늘어나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2018년 기준 일자... -
무너지는 일과 삶의 경계···노동이 녹아내린다
이 땅에서 ‘비정규직’이라는 표현이 광범위하게 쓰인 지 20여년. 정부가 신규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주력하는 사이 비정규직이라는 단어에도 담기 어려운 ‘비정형 노동’이 하루가 멀다하고 생겨나고 있다.하나의 일자리는 이제 ‘일감’ 단위로 잘게 쪼개진다. 소위 ‘마이크로 노동’이다. 이러한 종류의 노동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는 인공지능(AI) 학습데이터 수집 작업에서 쉽게 확인된다. 작업자들은 집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플랫폼 기업의 지시에 따라 마우스 클릭만 몇 번 하면 그만이다. 숙련된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노동이지만 일하는 만큼 돈이 들어온다.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기에 육아와 병행할 수도 있다. 대신 휴가지에서도 일을 해야 하고, 거의 매일 장시간 노동을 해야 이 일로 생활을 할 수 있다. 회사가 주는 유급휴가나 4대보험 등 사회안전망도 없다.또 다른 예는 지난해 말 개봉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에 등... -
일자리 아닌 일거리···'일정치 않음'을 살다
노동의 미래를 모두 알 수는 없다. 다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의 면면들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짐작해볼 수 있다. 경향신문은 이를 위해 ‘노동의 미래’에 가까운 6명의 노동자를 심층면접했다. 이들은 디지털 플랫폼 기술 발전과 결부돼 새롭게 등장한 일을 하거나 과거부터 있었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산업시대 표준 고용관계 속에 있지 않아 노동법과 사회복지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틈 날 때마다 노트북을 열고 일감 단위 단순노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플랫폼을 이용해 여러 개의 부업을 하는 이도 있다. 국가를 믿고 있을 수 없어 자기계발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다. 더 나은 대안이 이들에게 없었다는 점에서 각자의 선택은 100% 자발적으로 보기 어려웠다. 삶의 의지를 불태우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숨기지 못하는 점도 비슷했다.■‘N잡’ 하는 허 대리“아버지가 일용직 노동자였는데 하루는 오토바이를 타다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