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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내가 사랑한 한끼
  • [내가 사랑한 한끼]나는 슬플 때 미역국을 끓여
    나는 슬플 때 미역국을 끓여

    ‘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올해로 딱 서른이 됐다. 한참 덜 자란 기분인데 벌써 서른이라니. 그래도 ‘나 좀 어른 된 것 같다’ 느끼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다음날 먹을 음식들을 미리 만들어둘 때다. 한번 마음 잡고 만들어 놓으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토마토 마리네이드, 깻잎장아찌 혹은 미역국 같은 음식들.요리 실력은 내가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 발맞춰 성장했다. 서울에 있는 언론사에 취업하면서 본격적인 자취 생활이 시작됐다. 삼겹살과 소주, 회와 소주, 꼬리찜과 소주, 감자탕과 소주… 계속되는 회식에 저녁 메뉴 선택권과 퇴근 시간 결정권을 모두 빼앗겨버린 나는 ‘속 편한 집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전날 밤까지 빨갛고 기름진 술안주들을 밀어 넣다가, 다음 날 아침 빈속에 아메리카노를 때려 붓는 막돼먹은 식습관을 더는 지속할 수 없었다.요리에 뜻은...

    2021.10.20 14:41

  • [내가 사랑한 한끼]미드 속 주인공은 생존을 고민하고, 나는 생각한다 ‘내일 저거 먹어야지’
    미드 속 주인공은 생존을 고민하고, 나는 생각한다 ‘내일 저거 먹어야지’

    ‘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우유를 한 팩 샀다. 매대에서 가장 작은 사이즈의 우유를 집으며 마지막으로 우유를 샀던게 언제였더라, 생각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 오랜만에 우유를 산 이유는 단 하나. 어제 정주행한 넷플릭스 ‘클릭 베이트’ 에서 형사 로샨이 씨리얼을 먹는 장면을 봤기 때문이다. 범인 검거에 실패하고 퇴근한 그는 불 꺼진 집에서 씨리얼을 꺼내 침대에 걸터앉는다. 그는 망한 수사, 망한 결혼, 망해가는 연애 때문에 씨리얼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며 한 가지 생각만 했다. 내일은 꼭 씨리얼을 먹어야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음식들’을 좋아한다. 몇 년 전 내가 먹고 마신 치즈버거와 커피의 절반 이상은 ‘길모어걸스’에서 루크가 운영하는 식당의 대표 메뉴가 치즈버거와 커피였기 때문일 것이다. 로렐라이가 ...

    2021.10.13 14:05

  • [내가 사랑한 한끼]물에 빠진 양파님,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물에 빠진 양파님,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많은 어린이가 그렇듯 어릴적 나도 편식을 했다. 채소를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싫은 건 양파였다. 처음부터 양파를 제일 싫어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기억이 또렷하다. 엄마가 소불고기를 해줬다. 고기만 야금야금 빼서 밥 한 공기를 뚝딱했다. 양파를 요리조리 피해 떠낸 국물을 끼얹어 야무지게 비벼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뜨려고 했을 때 엄마가 나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내가 남긴 양파를 자기 숟가락에 모았다. “아, 해.” 두려운 순간이었다. 양파 더미가 올려진 숟가락이 입술 앞까지 바짝 다가왔다. 꾹 닫힌 앞니를 엄마가 숟가락 모서리로 두드렸다. “아, 하라니까.” 무서워서 이를 열었고 숟가락이 들어왔다. 양파 더미를 씹는데 눈물과 함께 구역질이 났다. 엄마는 다시는 내가 양파를 뱉지 못하게 했다.그다음부터 양파를 먹는 건 언제나 ...

    2021.10.06 18:01

  • [내가 사랑한 한끼]자타 공인 ‘빵순이’ 비건 디저트의 세계에 눈뜨다
    자타 공인 ‘빵순이’ 비건 디저트의 세계에 눈뜨다

    ‘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종종 케이크를 사러 가는 집 근처 카페가 하나 있다. 3년 전 상도동으로 이사 온 뒤 동네 산책을 하다 발견한 이곳. 어쩐지 먹을 때마다 케이크가 야금야금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만 빼면 재료들의 충실한 맛이 늘 만족스러운 곳이다.맛없는 디저트를 먹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기 때문에 낯선 가게를 들어갈 때는 꽤 신중한 편이다. 이 카페를 처음 봤을 때 실패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사장님의 자부심마저 느껴지는, 가게 앞 입간판 때문이었다. “100% 동물성 생크림으로 디저트를 만듭니다.”생크림이면 생크림이지 ‘동물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 ‘식물성’도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아마 당신은 디저트에 관심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겠다.동물성 크림은 우유 속 유지방으로 만든 것으로 보통 ‘생크림’이라고 하면 이 크림을 가리킨...

    2021.09.29 14:55

  • [내가 사랑한 한끼]“뭐 이런 데 돈 쓰냐”던 엄마의 진심
    “뭐 이런 데 돈 쓰냐”던 엄마의 진심

    ‘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20대의 엄마는 호텔리어였다. 지금도 결혼·출산한 여성의 경력단절은 해결되지 않은 사회문제인데, 1980년대는 오죽했을까. 엄마는 결혼 후 원래 일하던 곳에서 직장생활을 이어가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싶다.엄마는 호텔리어의 꿈은 접어야 했지만, 직장인의 고된 삶은 안타깝게도 멈출 수 없었다. ‘잠깐 하겠다’던 엄마의 벌이는 내가 학업을 마친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 공장에서 보낸 시간이 호텔에서 일한 시간을 훌쩍 넘어갔다. 내 벌이가 시원찮다고는 생각하면서도 그게 부끄럽지는 않았는데, 엄마한테 ‘이제 일 그만 하시라’고 자신있게 말 못하는 순간이 오면 참 피하고 싶었다.엄마에게도 ‘공장에서 받아주질 않는’ 나이가 찾아왔다. 일터는 일용직 자리가 많은 병원이나 뷔페로 바뀌었다. 그 때 엄마는 마카롱을 처음 만났다. 뷔페에 진열돼 있던, 형형색색 강렬한 마카롱과의 조우,...

    2021.09.15 15:07

  • [내가 사랑한 한끼]예닐곱에 깨친 숨어서 먹는 국밥의 맛
    예닐곱에 깨친 숨어서 먹는 국밥의 맛

    ‘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국밥을 좋아했다. 당연히 거짓말이지만 아주 어림없는 소리는 아니다.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어떤 음식에 대한 기억은 유독 선명하다. 날씨와 분위기까지, 그때로 돌아간 듯 되살릴 수 있다.엄마는 세 살 어린 동생은 집에 두고 나만 데리고 외출하는 날이 많았다.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아직 떡꼬치에 통닭의 양념 대신 케첩을 발라 먹었던 것으로 추측해보면 예닐곱 살 무렵이었다. 양념 통닭을 먹을 수 있도록 처음 허락을 받은 것이 일곱 살 때였기 때문이다.추운 겨울, 찬 바람을 피해 천호동 구 사거리 인근 음식점에 들어갔다. 엄마가 뭔가를 시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검고 무거운 그릇에 펄펄 끓는 뽀얀 국물이 담겨 나왔다. 동생도 함께 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엄마는 나와 식당에 가면 한 가...

    2021.09.08 14:44

  • [내가 사랑한 한끼]고봉밥을 잊지 못하는 나…탄수화물 중독자의 고백
    고봉밥을 잊지 못하는 나…탄수화물 중독자의 고백

    ‘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밥이 보약이다.’ 어릴 적 어른들이 자주 하던 말씀이에요. ‘밥’은 끼니가 아니라 곡물을 말해요. 저의 고등학생 시절 밥공기를 요즘 쓰는 것과 비교하면 크기가 4배쯤은 될 거 같아요. 엄청나죠? 저만 유별났던 게 아니라 그땐 대부분 그랬어요. 반찬과 밥의 비율이 요즘엔 4대1이라면 그땐 1대1이었을 거예요. 드라마 <전원일기>를 보세요. 양촌리 사람들 밥사발이 얼마나 큰지, 깜짝 놀랄걸요? 저도 그 시절에 자랐네요. 어릴 적엔 밥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였어요. 찬이 마땅치 않으면 날계란을 뜨거운 밥에 풀어 간장과 함께 비비면 ‘한 그릇 뚝딱’이었죠. 밥맛이 없을 때는 물을 말아 김치를 얹어 먹었고, 별식으로 밥에 라면스프를 뿌려 먹기도 했어요. 국민학생(‘연식’이 자꾸 노출되네요) 때 어느 식품회사에서 ‘도시락 다시다’라는 부식을 출시했어요....

    2021.09.01 15:43

  • [내가 사랑한 한끼]알싸하고 저릿한 매움! 마라, 넌 구원이었어
    알싸하고 저릿한 매움! 마라, 넌 구원이었어

    ‘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혈중 마라 농도는 식사 메뉴를 선택하는 결정적 요소다. 일주일이 넘게 마라탕이나 마라샹궈를 먹지 못했다면 이미 임계치를 넘었다. 어떤 음식을 떠올려도 ‘기승전 마라’로 수렴하고 마는 위기. 대체 음식은 없다. 무조건 마라탕을 먹어야 한다. ‘마라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점심과 저녁을 모두 마라식(食)을 하기도 하고, 전날 저녁에 마라샹궈를 먹어 놓고는 다음날 점심에 마라탕을 먹기도 한다.친구들은 마라가 먹고 싶을 때면 으레 내게 연락을 한다. 가게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는데, 체인별로 큰 차이점은 없다. 고수를 꼬치 메뉴처럼 1000원씩 따로 받느냐, 다른 야채와 함께 무게로 측정하느냐 정도가 다르다. 나머지는 그 지점이 얼마나 깨끗하고 정갈하게 재료를 준비하느냐에 달려있다. 땅콩 소스로 구수함에 힘을 주는지, 마라로 칼칼함을 내는지, 산초를 많이 넣어 혀가 찡한 맛을...

    2021.08.25 13:56

  • [내가 사랑한 한끼]고수며들었다, 해장하러 간 쌀국숫집에서
    고수며들었다, 해장하러 간 쌀국숫집에서

    ‘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고수를 가리켜 누군가 ‘굶주린 암사자의 입 냄새’라고 표현했던 게 아직 잊히지가 않는다. 내 주위 대부분 한국 사람은 고수 향을‘세제 냄새’라고 묘사했다. 고수와의 첫 대면은 2007년 중국을 여행하던 중에 이뤄졌다. 시퍼런 고수 이파리를 무심코 씹었는데, 뿜어져 나온 ‘퐁퐁’ 향이 입안에서 사라지지 않을 때의 당혹감. 지역 고유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마음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이후 낯선 음식을 접할 때마다 고수가 들었는지를 확인하게 됐다.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외의 음식에 복병처럼 고수가 있었다. 멕시칸 식당에서 시킨 부리또에서 고수를 발견했을 때 느낀 배신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래도 ‘노 코리앤더(고수 넣지 마세요)’가 한국인 여행자의 기초 회화에 사실상 포함돼 있다기에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싶어 괜히 마음을...

    2021.08.18 14:12

  • [내가 사랑한 한끼]떡볶이에 탄산 마시던 우리, 어느새 서로의 운동을 응원하는 사이가 됐다
    떡볶이에 탄산 마시던 우리, 어느새 서로의 운동을 응원하는 사이가 됐다

    ‘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오전 11시 45분. 회사 동기 A와 오랜만에 함께 점심을 먹었다.“피티는 어때?” “달리기는?”진동벨을 받아들고 식탁에 앉자마자 서로의 운동에 대해 묻다니. 이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다. 평소 같이 밥을 먹으면 열에 여덟 번은 떡볶이를 먹으며 얼음 컵에 탄산을 곁들이던 우리인데 말이다. ‘건강식’을 먹기로 합의하고 고른 메뉴는 회사 근처 한 카페에서 파는 그린커리다.코로나 때문에 몇 달을 못 본 새 우리는 꽤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맛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몸에도 좋은 음식을 찾아 먹으려 노력한다. 안부를 물을 때는 요즘 무슨 운동을 하는지를 묻는다. 살 빼기나 다이어트 말고 그냥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어느새 운동하는 일상을 즐겁게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요새 무슨 운동을 하는지, 그 운동은 얼마나 재...

    2021.08.04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