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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세상이 몰라도 나는 알지, 당신이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만든 기획입니다. 1회 ‘잘 봐, 언니들 인생이다’가 보도된 이후 많은 분들이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셨습니다.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콘텐츠를 책으로 만들기 위해 진행한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에는 2158분이 4326만원 을 모금해주셨습니다. 경향신문 젠더기획 특별취재팀은 더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나누고 싶었습니다. 늘 가치있는 노동을 해온 우리 곁의 많은 여성들과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여기 이 지면에 빼곡히 담긴 이름과 이야기는 그런 취지에 공감해준 분들이 정성스레 쓴 ‘180자 편지’입니다. 독자들의 편지는 3월2일과 4일자 경향신문 지면에 나눠 게재됩니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기획의 마지막을 완성해주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광고면 원본 PDF 파일 보기 (https://drive.google.com/file/d/1GOdeA... -
오늘도 출근하는 언니들 "나는 내가 명함이에요. 내 자신이"
명함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에겐 쉽게 주어지는 것, 누군가에겐 동경의 대상, 하루에도 수천장씩 뿌려지고 버려지는 것,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자리를 과시하는 것, 능력을 증명하는 것, 최소한의 안전장치, 이만큼 열심히 살아왔다는 위로. 한 장의 명함엔 여러 정보가 담겨있지만 그 사람의 진짜 이야기는 보여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평생 일한 여성들에게 명함을 찾아주고 싶었다. 그림자가 아니라 삶의 주체이자 진짜 일꾼으로 살아온 그들의 가치를 뽐내고 싶었다. 젠더기획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마지막 회는 ‘오늘도 출근하는 언니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환갑을 앞둔 50대 여성부터 70대의 시작과 함께 새 인생을 계획하는 여성까지 ‘명함만 없었던 여성들’은 오늘도 기꺼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학습코치 이선옥이선옥씨(55)는 2019년 3월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 찬 바람이 불던 봄이었다. ‘맘시터’ 출근 첫날. 대형 고층 아파... -
세상이 몰라도 나는 알지, 당신이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만든 기획입니다. 1회 ‘잘 봐, 언니들 인생이다’가 보도된 이후 많은 분들이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셨습니다.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콘텐츠를 책으로 만들기 위해 진행한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에는 2158분이 4326만원 을 모금해주셨습니다. 경향신문 젠더기획 특별취재팀은 더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나누고 싶었습니다. 늘 가치있는 노동을 해온 우리 곁의 많은 여성들과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여기 이 지면에 빼곡히 담긴 이름과 이야기는 그런 취지에 공감해준 분들이 정성스레 쓴 ‘180자 편지’입니다. 독자들의 편지는 3월2일과 4일자 경향신문 지면에 나눠 게재됩니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기획의 마지막을 완성해주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광고면 원본 이미지 파일 보기 (https://drive.google.com/file/d/10uSKd... -
춘자, 광월, 계화씨···산·들·바다에서 일하고 울고 위로받았다
전라남도 진도군 수역리의 주종목은 대파와 배추다. 두 달 전 심은 대파가 김춘자씨(73)의 허리 높이까지 자랐다. 바람이 불 때마다 초록색 대파밭이 너울거렸다. 춘자씨의 대파밭은 1000평 남짓이다. 동네에서는 소농으로 꼽힌다. 대농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만평 이상의 밭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12월20일 진도에서 만난 춘자씨가 고랑에 난 잡초를 뽑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대파에 가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농촌에서 여성의 일은 이런 식이다. 여성 농민의 삶을 그린 소설집 <호미>의 정성숙 작가는 이를 밭고랑에서 ‘기어다닌다’고 표현했다. 쭈구려 앉아 일하는 탓에 마을에는 허리와 무릎이 성한 여성이 드물다.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2020년 농업인 업무상 질병 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민은 장시간 근무, 반복 동작, 불편한 자세, 과도한 힘 또는 중량물 취급으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 앓는다. 농기계 사고 치사율은 교통사고보다 9.1배 높다. 농기계는 육중... -
딸들은 엄마의 노동에서 여성의 노동을 읽어냈다
대형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김은화씨(35)는 퇴사 후 ‘딸세포’라는 1인 출판사를 차렸다. 처음 낸 책은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2019). 은화씨 엄마 이야기였다. 은화씨는 직접 엄마를 인터뷰하고 엄마의 삶을 썼다. 엄마가 이혼한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은 엄마를 한 사람의 강인한 노동자로 바라보게 해줬다. 은화씨는 “책을 쓰고 나서 편해졌다”고 말했다. “엄마가 (내가) 지켜줘야 하는 사람이 아닌 매우 강인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은화씨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엄마는 그간 가족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나 생계부양자 같은 호칭은 남성에게만 명예롭게 주어졌다. 나는 여기에 대항해서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다고, 아니 살렸다고. 그녀의 노동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엄마는 우리 가족의 생계부양자였으며, 진정한 가장이었다고 말... -
"일하는 여자가 되어라" 딸에게 전하는 순자씨의 진심
윤순자씨(68)는 고3이다. 올해의 고민 중 하나는 ‘고3답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다. 수능을 볼까 말까. 대학에 갈까 말까. 올가을쯤 결정할 생각이다. ‘담양도립대가 2022년부터 신입생 전원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기사를 봐두긴 했다. ‘60대답게’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서두르지 않는다. 인생의 많은 것이 얼마나 느닷없이 결정되는지 순자씨는 안다. 순자씨는 32년 동안 운영한 식당을 2014년 정리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검정고시를 통과해 전남여고 부설 방송통신고교에 들어갔다. 공부하느라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지만. 돈 떼먹는 손님들 붙잡으러 뛰어다니는 것보단 영어, 컴퓨터 때문에 머리 아픈 게 낫다. 순자씨에겐 딸이 셋 있다. 평생의 꿈이었던 공부를 시작한 순자씨는 ‘대학생’이 되어 ‘일하는 여자’가 된 딸들의 삶이 자신의 삶과 얼마나 다른지 알고 싶었다.함께 식당을 운영했는데 아빠는 ‘사장님’이고 엄마는 ‘사모님’이었다. 더 많은 일을 한 건 ... -
희자씨를 담기에 '집사람'은 너무 작은 이름
장희자씨(62)는 5남매 중 맏딸이다. 한 남성의 아내, 두 아들의 엄마다. 며느리이자 시어머니다. 이것은 모두 ‘관계 속의 희자씨’에게 붙은 이름들이다. 희자씨는 운수회사의 뛰어난 경리사원이었다. 두 아들을 반듯하게 키워낸 양육전문가다. 부모를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아픈 시부모를 간호한 돌봄전문가다. 20년 넘게 자원봉사를 한 봉사전문가다. 이것은 모두 희자씨가 해온 일들이 만든 이름이다. 기쁠 희(喜). 아들 자(子). 희자씨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받쳐주는 총무 역할만 맡는 것 같은 인생이 속상할 때도 있었다. 60대가 된 희자씨는 자신의 이름을 좋아한다. 직함은 없지만 가정에서 중요한 일을 해왔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가족에게도 이웃들에게도 기쁨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집사람’. 희자씨처럼 결혼 후 집안일을 도맡아 온 여성들을 우리 사회는 집사람이라 불러왔다. 국립국어원과 여성정책연구원이 집사람을 성차별 용어로 지정한 것이 2... -
어느날 그들의 노동이 사라진다면
손가락을 ‘딱’ 부딪쳐 특정 집단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우주 빌런(악당)이 2022년 대한민국에 상륙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빌런은 60세 이상 여성들을 잠시 데려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많은 사람이 비탄에 빠졌을 때 어떤 이들은 ‘숫자’와 ‘손실’을 따졌다. 2021년 상반기 기준 임금근로자 2064만6569명 중 60세 이상 여성은 153만3410명. 노동력 7.4%의 증발을 두고 안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고령 여성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으니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고. ‘세금으로 만든 노인 알바’ ‘혈세로 만든 허드렛일’처럼 노인 노동을 향한 혐오적 시선이 낙관에 일조했다. 딱! 그들이 증발하자, 대한민국은 마비됐다. ‘필수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 4분의 1이 사라졌기 때문이다.필수노동자 4명 중 1명은 60세 이상 여성필수노동자 4명 중 1명은 60세 이상 여성 노동자다.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가 통계청 지역별 고용조사 마이크로데... -
1954년 32만명의 딸들이 태어났다
1954년. 전국에서 32만여명의 딸들이 태어났다. 정확히는 그보다 더 많은 아이가 출생했겠지만 통계는 없다. 1955년 실시된 인구주택총조사의 1세 여아(32만4018명)로 추정할 뿐이다. 1953년 정전협정 직후, 출생신고가 온전히 자리 잡지 못한 때였다.또 다른 ‘정애씨’들의 삶▶️참고 기사 [젠더기획]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그들은 ‘1950년에 태어난 1954년생’ 손정애씨와 비슷한 모습으로 태어나고 자랐고 나이 들었다. 전쟁 직후 혼란과 엉성한 행정 속에서 자란 것, 서울 아닌 경상도에서 태어나 경상도 아닌 서울에서 일해온 것, 10대부터 시작된 노동이 진행형인 것이 그렇다. 그때는 서울보다 경상남도 인구가 더 많았는데, 0~4세 여아도 경남(29만459명)이 서울(10만8194명)의 2.68배였다. 65세 이상 여성 133만명은 국숫집에서, 아파트 복도에서, 텅 빈 강의실에서, 또는 누군가의 집... -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손정애씨(72)의 가게는 서울 남대문시장 칼국수 골목에 있다. 의자는 일렬로 네 개. 네 명이 동시에 앉으려면 어깨와 팔꿈치가 스칠 각오를 해야 할 만큼 아담한 규모다. 17개 국숫집이 모여 있는 이 골목에서 정애씨는 ‘훈이네’라는 간판 아래 20년째 밥을 짓고 국수를 만든다. 칼국수를 주문하면 비빔냉면을, 찰밥을 주문하면 수제비를 주는 이곳은 뭐든 ‘1+1’이다.정애씨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지만, 국숫집만으로 그의 삶을 다 설명할 순 없다. 정애씨는 1970년대 제사공장(양잠업) 노동자였고, 88 서울 올림픽 땐 한식당 오너셰프(요리도 하는 경영자)였으며, 1990년대 남대문 패션시장 호황기 땐 여성복 디자이너이자 사장님이었다. 돈 버는 노동의 사이사이 돌봄과 가사 노동도 쉰 적 없다. 연년생인 딸과 아들을 키웠고, 시아버지를 간호했으며, 뇌경색과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을 20년 넘게 돌보고 있다.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하는 정애씨는 “내가 벌어 사는 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