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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
  • [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 대법관 압박해 송기복씨 일가 간첩단 만들고 ‘동백림 사건’ 재판까지 개입
    대법관 압박해 송기복씨 일가 간첩단 만들고 ‘동백림 사건’ 재판까지 개입

    1978년 민간인을 폭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검찰로부터 불법 체포된 연규찬씨(77)는 복권을 위해 40년에 걸쳐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검찰청,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진정을 제기했다.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사법부가 판단을 내린 사건은 재조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연씨는 “국가기관이 누명을 씌우고 범죄자로 만들어놓고선 사법부 판단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면 억울함은 어떻게 푸느냐”고 말했다.연씨는 자신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피해자가 국가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가족을 통해 검찰과 사법부를 압박했다고 의심한다. 당시 파출소에 함께 있었던 목격자 권모씨도 “노인이 권력기관을 운운하며 행패를 부리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연씨의 의심이 사실인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군사정권은 정보기관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법부 판결에 개입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82년 ‘송씨 일가 간첩 조작 사건’이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는 송기복씨 등 일가가 점조직식 간첩단이라...

    2022.12.18 20:59

  • [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 “내 조카가 고위직” 취객 협박 후…검사는 영장 없이 수갑 채워
    “내 조카가 고위직” 취객 협박 후…검사는 영장 없이 수갑 채워

    1977년 보은 삼산파출소 근무 중“택시가 안 태워준다”며 찾아온 술에 취한 이씨 고성 지르며 난동“내가 정말 너무 억울해서 콱 죽어버리려고 했다니께요. 법원 앞에 목매달고.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지난 13일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인사말 대신 손을 붙잡고 하소연을 시작했다. 45년 전 한 취객의 모함으로 검사에게 불법체포를 당한 뒤 옥살이로 인생이 망가졌다는 말을 할 때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노인은 잠시 목을 가다듬은 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제출한 진실규명 신청서를 품 안에서 꺼냈다. 이미 손때로 너덜너덜해진 신청서는 노인의 억울함을 증명해줄 목격자들의 연락처와 메모로 빼곡했다. 진실화해위는 조사 필요성을 인정해 지난달 1일 조사개시를 결정했다.노인의 진실규명 신청서는 1977년에서 시작한다. 노인의 이름은 연규찬(77). 24세부터 경찰관으로 일하던 연씨는 1977년 겨울 충북 보은경찰서 삼산파출소에서 카빈총을 ...

    2022.12.18 20:59

  • [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 복영호씨와 사망 직전까지 노동운동…“미행당한다” 말한 뒤 실종, 9년간 주검 은폐
    복영호씨와 사망 직전까지 노동운동…“미행당한다” 말한 뒤 실종, 9년간 주검 은폐

    1992년 8월29일 오후 9시55분. 경기 시흥역에서 한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 남성은 시흥역 저상홈 선로변에서 서울발 광주행 열차에 부딪쳐 두개골이 파열된 상태였다. 사고로 얼굴이 심하게 망가졌고, 소지품은 없었다. 경찰은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신원 미상의 남성은 파주시 용미리에 있는 무연고 사망자 유골 안치소 ‘추모의집’에 잠들었다.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이 시신이 노동운동가 박태순씨(사망 당시 27세)라는 걸 밝혀낸 건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01년이었다. 박씨는 수원에서 노동운동을 조직한 복영호씨와 함께 1987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활동했다. 이 조직은 창설자인 복씨 이름을 따 경찰로부터 ‘복씨 조직’으로 불렸다. 경찰이 박씨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1987년 복씨가 경찰에 불법 구금된 이후로 추정된다.박씨의 사망에는 의문점이 많다. 박씨는 사망 당일 오후 6시30분쯤 공장에서 일을 마친 뒤 저녁을 먹고 오후 9시쯤 역곡역에 들어...

    2022.12.07 21:28

  • [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 고문 피해 3층서 투신…경찰, 치료비 내주고 ‘침묵 각서’ 요구
    고문 피해 3층서 투신…경찰, 치료비 내주고 ‘침묵 각서’ 요구

    1987년 낯선 천장 아래서 눈을 뜬 복영호씨(당시 26세)는 주위를 둘러봤다. 온몸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고 경찰 한 명이 병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 병원에 누워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확실한 건 병실의 소독약 냄새, 부러진 허리와 머리뼈를 찌르는 고통, 그리고 하반신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감각뿐이었다.기억을 되찾은 건 며칠 뒤였다. 진통제가 고통을 잠시 줄여주자 복씨는 자신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의 사찰을 받았으며, 책을 복사하다가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에 끌려갔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쇠창살, 지하, 고통스러운 고문, 창문. 몇 가지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기억의 편린을 이리저리 조합한 끝에 복씨는 자신이 3층에서 뛰어내려 경찰서를 탈출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복기했다.복씨는 붕대를 갈러 온 간호사에게 “집에 전화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간호사는 복씨를 강도살인 사건 용의자로 알고 있었다. 형...

    2022.12.07 21:28

  • [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 시골 주민들 끌고와 ‘조폭’ 누명…술값 외상 있던 난 ‘두목’ 몰려
    시골 주민들 끌고와 ‘조폭’ 누명…술값 외상 있던 난 ‘두목’ 몰려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1980년 5월20일 경북 경산군 시골 마을의 골목은 조용했다. 저녁 뉴스에선 북한의 남침 징후가 보여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된다는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평소 동네 술집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즐기는 홍순주씨(당시 29세)였지만, 거리에 감도는 스산한 느낌에 홍씨는 일찍 귀가했다. 통금 시간이 지난 새벽 2시, 홍씨는 개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비비며 연 현관문 앞엔 남자 네 명이 서 있었다. 경산경찰서 소속 형사라고 밝힌 이들은 홍씨가 ‘영남대학교 살인사건’에 연루됐다고 설명했다. 영남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몰랐던 홍씨는 자신이 이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듣지 못한 채 차량으로 끌려갔다. 당시 영남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없었다. 자신을 경찰서로 끌고 가려고 지어낸 얘기란 걸 홍씨는 대구교도소에서 출소한 4개월 뒤에야 알게 됐다.홍씨의 친구 김상철씨(당시 31세)의 집에도 형사들이 찾아왔...

    2022.11.17 20:59

  • [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 ‘경찰 초동조치 미흡’ 여론 비판 커지자 전두환까지 나서 수사 압박…진범은 체육교사
    ‘경찰 초동조치 미흡’ 여론 비판 커지자 전두환까지 나서 수사 압박…진범은 체육교사

    “모든 수사기관을 동원하여 이른 시일 안에 이윤상군이 부모 품에 돌아가게 되도록 최대의 노력을 하라.”1981년 2월27일 대통령 전두환씨는 이 같은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중학교 1학년 이윤상군(당시 14세)이 유괴된 지 107일째 되는 날이었다. 비밀리에 수사를 벌여왔던 경찰도 공개수사로 전환했다.우표를 사고 체육선생님을 만난 뒤 집에 오겠다던 이군이 종적을 감춘 것은 1980년 11월13일이다. 그날 밤 이군의 아버지는 “4000만원을 준비하라”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 뒤이어 전화를 건 젊은 여성은 “경찰에 신고하면 아들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했다.범인들은 협박 전화를 62통 걸고 편지도 5통 보내왔다. 아동이 아닌 11세 이상 소년이 유괴된 것은 처음이었다. 여성이 낀 3~4인조 범행으로 추정되는 점도 기존 유괴 사건과 달랐다. 경찰은 면식범에 의한 계획범행으로 판단해 이군과 그의 부모 주변 인물을 500명 넘게 조사했지만 범인을 잡지 ...

    2022.10.25 22:34

  • [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 5일 밤낮 고문에도 스물다섯 살 ‘용의자’는 무엇을 자백할지 몰랐다
    5일 밤낮 고문에도 스물다섯 살 ‘용의자’는 무엇을 자백할지 몰랐다

    ‘형사 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헌법 제27조 4항에 명시된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에 명기돼 근대 인권법의 기본 원칙이 됐다. 이 원칙에 입각해 모든 시민은 적법 절차에 따라 수사를 받고, 재판에서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다.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 군부독재 아래 검찰과 경찰은 용의자를 죄인처럼 다뤘다. 엉뚱한 사람을 잡아 고문해 허위 자백을 받고, 혐의를 증명하지 못하면 다른 혐의를 씌워 가뒀다. 몸이 망가졌고 정신이 피폐해졌다. 무고한 피해자들은 삶이 송두리째 무너진 채 집으로 돌아갔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마음껏 몽둥이를 휘둘렀던 수사관들은 수사기관에 남아 있지 않다.그러나 피해자들의 상처는 과거의 시간과 함께 그대로 박제돼 있다. 경향신문은 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에 갇혀 검경의 강압수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사연을 연재한다. 양태가 다르고 정도는 덜할지라도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

    2022.10.25 22:34

  • [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①]경찰은 왜 민간인을 고문했을까···전두환까지 나선 ‘이윤상군 유괴 살인 사건’은
    경찰은 왜 민간인을 고문했을까···전두환까지 나선 ‘이윤상군 유괴 살인 사건’은

    “모든 수사기관을 동원하여 이른 시일 안에 이윤상군이 부모 품에 돌아가게 되도록 최대의 노력을 하라.”1981년 2월27일 대통령 전두환씨는 이같은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중학교 1학년 이윤상군(당시 14세)이 유괴된 지 107일째 되는 날이었다. 비밀리에 수사를 벌여왔던 경찰도 공개 수사로 전환했다.우표를 사고 체육 선생님을 만난 뒤 집에 오겠다던 이군이 종적을 감춘 것은 1980년 11월13일이다. 그날 밤 이군의 아버지는 “4000만원을 준비하라”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 뒤이어 전화를 건 젊은 여성은 “경찰에 신고하면 아들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했다.범인들은 협박 전화를 62통 걸고 5통의 편지도 보내왔다. 아동이 아닌 11세 이상의 소년이 유괴된 것은 처음이었다. 여성이 낀 3~4인조 범행으로 추정되는 점도 기존 유괴 사건과 달랐다. 경찰은 면식범에 의한 계획범행으로 판단해 이군과 그의 부모 주변인물을 500여명 넘게 조사했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다.이 사건이...

    2022.10.25 11:22

  • [단독][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①]‘이윤상군 유괴 살인 사건’ 범인 몰려 고문···눈과 내 인생 잃었다
    ‘이윤상군 유괴 살인 사건’ 범인 몰려 고문···눈과 내 인생 잃었다

    ‘형사 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헌법 제 27조 4항에 명시된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1789년 프랑스 인권 선언에 명기돼 근대 인권법의 기본 원칙이 됐다. 이 원칙에 입각해 모든 시민은 적법 절차에 따라 수사를 받고, 재판에서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다.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 군부독재 아래 검찰과 경찰은 용의자를 죄인처럼 다뤘다. 엉뚱한 사람을 잡아 고문해 허위 자백을 받고, 혐의를 증명하지 못하면 다른 혐의를 씌워 가뒀다. 몸이 망가졌고 정신이 피폐해졌다. 무고한 피해자들은 삶이 송두리째 무너진 채 집으로 돌아갔다.수십년이 지난 지금 마음껏 몽둥이를 휘둘렀던 수사관들은 수사기관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상처는 과거의 시간과 함께 그대로 박제돼 있다. 경향신문은 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에 갇혀 검경의 강압수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사연을 연재한다. 양태가 다르고 정도는 덜할지라도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지...

    2022.10.2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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