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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경쟁과 불안이 쏠림 원인…특권에 부담 부과하고 선택지 넓혀야”
경향신문 창간 77주년 기획 ‘쏠림 사회 한국, 강남 리포트’는 지리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특정 지역과 분야가 압도하는 현상이 비수도권 지역 인구 소멸이라는 물리적 불균형을 초래할 뿐 아니라 가치 배분을 왜곡시킴으로써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박배균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 등 지리·교육·주거 분야 전문가들은 지난 5일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열린 좌담에서 한국 사회의 쏠림 현상의 이면에 극심한 경쟁과 불안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짚었다. 그리고 쏠림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 누리는 혜택과 이득을 합리적으로 분배하고 쏠림 바깥의 선택지를 넓히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좌담 진행은 김재중 스포트라이트부장이 맡았다.- 우리 사회 여러 문제의 근원에 과도한 쏠림이 있다는 지적에 동의하나.최은영 소장 = 쏠림이라는 키워드가 강남의 특성을 잘 잡아냈다고 생각했다. 지리적... -
‘제2의 강남’ 송도의 역설…“강남 쏠림 강화할 베드타운 우려”
서울 강남이 한국 사회 쏠림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은 부동산과 교육으로 압축된다. 도로가 직선으로 뻗어있고, 주거와 상업지구가 사각형으로 구획된 신도시는 대표적인 부동산 투자 상품으로 고공 행진했다. 강북에 있던 ‘명문고’들이 이전하자 자녀의 ‘명문대’ 입학을 노리는 학부모들이 뒤따랐고 이들의 수요에 맞춰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열렸다. 부동산과 교육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강남의 인기를 끌어올리면서 사람과 일자리, 인프라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의 장으로서 강남의 ‘성공’은 대한민국 도시 발전 모델로 자리 잡았다. 전국 곳곳에서 ‘제2의 강남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경기 분당과 광교, 인천 송도, 부산 해운대, 대구 수성, 대전 유성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곳들은 인근 지역보다 부동산 가격이 월등히 높고, 학원 등 사교육 업체가 집중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새로 조성된 도시여서 정주 여건이 양호하고 비교적 소득이 높은... -
“공공주택 최고…강남일수록 공공임대 단지 더 늘어야”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규모 개발에 밀려난 도시 철거민들의 절규가 이어진 끝에 1989년 영구임대주택이라는 세입자 대책이 발표됐다. 이후 30여년이 흐르는 동안 국민임대·행복주택·장기전세·매입임대·전세임대·청년안심주택 등 다양한 공공임대 형태가 도입됐다. 2020년 기준 공공임대는 전국에 약 170만호로 전체 주택의 8.0%, 전체 임차 가구의 20%에 달한다.특히 서울·수도권 지역에선 주거 비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20·30세대를 중심으로 공공임대에 대한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SH의 2차 청년안심주택 241호에는 2만4079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 99.9 대 1을 기록했다. 집값이 전국 최고인 강남 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에도 공공임대가 있다. 서초구와 송파구 공공임대 단지에 각각 살고 있는 유검우씨(38)와 박지선씨(38)는 정부의 주택 정책 패러다임이 소유에서 공공임대 위주로 대전환해... -
악화하는 공공성…경기·인구·기후 변화 대처할 장기 대안 시급
정부와 지자체, 국회가 주도하는 규제 완화 흐름을 타고 전국에서 재개발·재건축이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서울시도 재건축·재개발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게 해주는 대신 주택 공급과 공공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강남 지역부터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강남 재건축의 추세는 대단지·고급화다. 이미 전국 최고 수준인 강남 아파트들이 재건축을 통해 가격이 더 상승할 공산이 크다.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는 “투자로 움직이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강남은 시장을 측정하는 척도이자 변동성을 키우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강남 부동산’이 부동산을 둘러싼 각종 문제의 진원지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왜곡된 부동산 시장을 바로잡으려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이익환수법)’ 등 현존 법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주택금융시장을 개편하고 장기적으로 인구·기후 변화에 대응할... -
자녀 없고 직장 멀어도 강남…재건축으로 다시 태어나는 강남
서울 구로구에 사는 40대 정영훈씨(가명)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 직장은 강서구에 있다. 교육에 신경 쓸 자녀가 없고, 직장이 서울 반대편에 있는 정씨지만 “삶의 목표”가 강남 아파트를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증권사를 다니다 이직한 정씨는 증권사 퇴직금과 근로소득을 지난 10년간 주식에 꾸준히 투자했다. 주식 투자는 성공적이어서 수억원을 굴리고 있다. 주식 투자를 계속하려던 정씨는 얼마 전부터 생각을 바꿨다. 집을 사기로 한 것이다. 정씨는 “지난번 부동산 가격 폭등을 보며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면서 “틈틈이 부동산 관련 공부를 한 결과 강남 아파트가 내 삶의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지금 정씨는 70대 어머니와 구로구 신축 아파트에 월세로 산다. 지난해 11월 이사했다. 보유 자금이 충분했음에도 월세를 택했다. 전에 살던 양천구 목동 아파트에서 매매가가 전세가 이하로 떨어지는 역전세의 두려움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매매가 17억원짜리 아파트에 ... -
대치동으로, 유명학원으로, 의대로···‘몰빵’ 사회
김형원씨(19·가명)는 지난 2월 경남 통영에서 서울행 버스에 홀로 몸을 실었다. 버스는 4시간여를 달려 서울 서초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김씨는 다시 한 시간가량 지하철을 타고 경기 성남으로 이동했다. 김씨의 최종 목적지는 비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 20개가 마주 보고 있는 고시원이었다. 두세 평 남짓한 방에는 1인용 침대와 책상,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비치됐고, 샤워기와 변기가 설치된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김씨는 월세 90만~100만원짜리 서울 대치동 학사의 차선책으로 월세 50만원에 이 방을 구했다. 강남과 분당 사이에 있어 이동이 수월할 거란 계산도 작용했다. 재수생 김씨가 상경한 건 인터넷으로만 접한 학원 강사의 현장 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하지만 인기 강사의 수업 정원이 차는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대치동과 분당의 대형학원에 각각 대기를 걸어야 했다. 대기표를 받아 들고 꼬박 3개월을 기다린 뒤에야 대치동 학원에 자리가 났다.... -
강남 교사들의 고민···“문제풀이 기계를 만드는 것 같아요”
서울 강남은 학생·학부모의 교육에 대한 열의와 관심이 남다른 만큼 경쟁도 치열한 곳이다. 강남 지역 공교육 현장의 교사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교육청 연수에서는 ‘활동 중심 교육을 하라’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라’는 요구를 많이 받거든요. 최근 10년간 배출된 교사들은 그런 수업을 꽤 하는데, 그나마 중학교는 먹혀요. 근데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도 반발하고 학부모 이의제기도 이어지죠. 중학생들도 ‘진도는 언제 빼냐’고 해요. 이런 수업에서 배우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강남 지역 중학교에 근무하는 김자영 교사는 정부가 표방하는 공교육의 지향점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이렇게 토로했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학원 문제집을 풀고 교실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은 최근 등장한 풍경은 아니다. 이런 풍조에 맞서 공교육 스스로 변화하려는 시도와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입시가 압도하는 현실에서 교사들은 획일적인 교육을 강... -
공교육의 적은 사교육일까?···들쭉날쭉 입시정책이 ‘쏠림’ 불렀다
지난해 한국의 사교육비 총액은 25조9538억원으로 추산됐다. 전년 대비 10.8%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사교육비는 국내외 경제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증가세를 유지해 왔다.전문가들은 사교육이 변함없이 번창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리저리 휩쓸린 입시정책에 있다고 말한다. 교육과 입시에 대한 장기적 비전이나 사회적 합의가 견고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권의 차별성’을 부각하려 하거나 여론에 휩쓸려 정책이 너무 쉽게 바뀌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변화에 직면한 수험생과 학부모가 문을 두드리는 곳은 사교육이기 마련이다. 공교육과 달리 오직 입시에 특화된 사교육 업계는 정책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해 신속하게 ‘상품’을 만들어 낸다. 전문가들은 특히 2010년대 이후 교육·입시 정책에 정치적 고려가 개입하는 경향이 심해졌다고 말한다.이명박 정부: 고교 다양화의 그늘이명박 정부는 ‘자율과 경쟁’을 강조했다. 대입 입... -
강남 60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강남 집중
올해는 서울 강남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된 지 60년이 되는 해다. 1963년 1월1일 박정희 정권은 서울 영역을 대폭 확대했다. 이때 서울 성동구로 편입된 경기 광주군 일대가 바로 오늘날 강남이다.강남 개발의 주요 목적은 사대문 또는 강북에 밀집된 인구 분산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부동산 투기 등 부작용을 동반했지만 인구 분산 측면에서 보면 30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1990년대 이후 교육·부동산 수요뿐 아니라기업·일자리 집중되며 쏠림 심화스타벅스 매장, 포털 검색 결과도 가장 많아강남은 1990년대부터 교육·부동산을 필두로 각 분야에서 서울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기업과 자본 집중이 가속화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지역이 됐다. 강남의 눈부신 변화는 특정 분야 또는 지역에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단기간에 급속한 성장을 도모하는 불균형 발전 전략의 대표적 결과이다. 쏠림과 집중의 구심점 강남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한국 사회가 ... -
모든 걸 돈으로 사는 강남, 그럴수록 공공의 빈자리는 커진다
“강남은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좋은 동네지만, 그 안에 제공되는 공공 서비스는 아주 취약합니다. 도시에서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것이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만 이뤄져 있다면, 그게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을까요?”서울 강남·서초구 지역 이슈를 다루는 시민단체 ‘노동도시연대’의 남궁정 사무국장의 말이다. 강남은 ‘부자 동네’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로 강남 지역은 기업 본사들이 몰려 있고 부동산 가격이 높은데다 유동인구도 많아 상권이 발달한 덕에 재산세, 취득세 등 각종 세입이 풍부하다. 재정자립도가 서울 전체에서 1위(강남 58.9%), 2위(서초 57.8%)를 다툴 정도로 재정이 넉넉하다. 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쾌적한 편의 시설을 제공할 수 있는 배경이다. 청담역 지하에 조성한 ‘미세먼지 프리 존’이나 대치동 학원가 앞에 집 모양 가건물로 만든 ‘스트레스 프리 존’도 이에 해당한다.하지만 남궁 사무국장은 “강남·서초의 행정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