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의 도시관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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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만나면 반가운 ‘클래식 기사님’ 오늘 공연도 잘 부탁합니다

    만나면 반가운 ‘클래식 기사님’ 오늘 공연도 잘 부탁합니다

    온다. 저 멀리 내가 탈 버스가 다가오고 있다. 카드 지갑을 꺼내 가슴 옆에 반듯하게 들고 버스 기사님에게 눈을 맞춘다. 버스가 다가온다. 시선을 놓지 않고 집중한다. 버스가 속도를 줄이며 정확히 내 앞에 선다.“치익” 소리를 내며 버스의 문이 열린다. 내 옆에 서 있던 아저씨가 발을 먼저 들이민다. 새치기는 안 되지! 팔을 뻗어 버스 문 옆에 있는 손잡이를 잡으며 아저씨를 차단한다. 서울 생활 10여년, 이 정도 생존력은 갖추고 있다.“안녕하세요~.”삑-. 카드를 찍는다. 정확히 내 앞에 버스 세우기, 오늘도 성공이다. 몇년 전부터 혼자 즐기는 놀이다. 카드를 잘 보이게 가슴 앞이나 얼굴 옆으로 들고, 기사님에게 정확하게 눈을 맞춘다. 그러면 열의 아홉은 버스가 정확히 내 앞에 선다.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설 수 있는지 감탄스러울 정도다. (단 노약자가 있으면 그분 앞에 버스가 선다) 타면 기사님께 내면의 따봉을 날리며 인사를 한다. 별것 아닌데...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카페인은 몰라도 카페人은 영원할 거야

    카페인은 몰라도 카페人은 영원할 거야

    오늘은 안 가야지. 그럴 돈 모아서 집 사야지. 결심해보지만 자동으로 몸이 그쪽으로 향한다. 간판을 보면 충동을 이길 수 없다. 목이 말라도, 마르지 않아도 일단 그냥 들어가보고 싶은 곳이다.“어서 오세요-”카페는 누구나 갈 수 있다. 여름엔 시원한 에어컨이 있고 겨울엔 따뜻한 히터가 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바깥과 달리 벌레나 바람도 없다. 음료수 한 잔 살 돈만 있으면 쾌적한 공간과 시간을 살 수 있다. 시간제한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오래 머물 때 음료 한 잔을 더 시키는 건 어디까지나 체면 때문이다).“주문하시겠어요?”요즘 카페의 메뉴는 대부분 비슷하다. 굵은 글씨로 ICED AMERICANO, CAFE LATTE, CAFE MOCHA 하며 영어가 쓰여 있고(엄밀히 말하면 이탈리아어), 옆에 눈곱만한 크기로 한글이 쓰여 있다(아예 한글을 안 써놓는 가게들도 있다. 그런 가게들은 ‘1인 1음료 주문해주세요’는 열심히 한글로 써놓는다)...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주차 분노, 예술이 되다

    주차 분노, 예술이 되다

    차가 없어 다행이다. 서울 한 귀퉁이에 살며 오늘도 하는 생각이다. 서울은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다. 저녁 7시, 내가 사는 빌라도 주차장이 이미 만석이다. 겹쳐 대는 것은 물론이고, 밤이면 입구까지 차가 비죽 나와 있다. 이런 세상에 내 차 한 대를 더 보탠다? 굳이?서울은, 아니 도시는 언제나 주차 전쟁이다. 차는 인간이 가진 물건 중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 세로로 세워서 착착 대놓을 수도 없고 위로 박스 쌓듯 쌓아놓을 수도 없다. 내가 어릴 때 TV에서 말하길 미래에는 차를 접어서 주머니 안에 넣을 수 있을 거라 하더니 무슨 소리, AI가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는 마당에 아직 차는 백미러 접히는 게 고작이다.서울의 오래된 동네는 대부분 자가용이 없던 시대에 만들어졌다. 다세대주택으로 여섯 일곱 가구가 사는 곳이라도 주차장 하나 없는 경우가 많다. 성북구에서 내가 2년간 살았던 3층집도 세 가구가 사는데 주차할 자리는 딱 하나뿐이었다. 그것...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방울이 울리면  ‘발굴 탐험’이 시작된다

    방울이 울리면 ‘발굴 탐험’이 시작된다

    코팅이 다 벗겨진 간판, 녹슨 셔터, 덕지덕지 붙은 안내문,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뿌연 유리창, 가게 밖에 쌓여 있는 노랗게 색이 바랜 물건들, 수많은 사람이 밟아 무늬조차 없어져 버린 현관 발매트.나는 오래된 가게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것은 오래된 문구점이다. 언제 어디서든 오래된 문구점을 보면 당장에라도 뛰쳐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니면 어릴 때처럼 창문에 찰싹 달라붙어 뭐가 있는지 구경이라도 하고 싶다. 오늘도 은평구에 있는 한 문구점 앞에서 본능적으로 발을 멈췄다. 하지만 오래된 가게에 들어가는 것은 다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시간도 충분해야 하고, 현금도 있으면 좋다. 던전을 공략하는 헌터가 빈손으로 불쑥 입장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던전 공략하는 헌터의 마음으로 유리문 하나 넘으면묵은 종이 냄새와 약간의 곰팡내가 반겨주는 ‘오래된 문구점’타이태닉 엽서·연필·‘유물급’ 자료집…구경에 1시간 훌쩍남은 건 먼지...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잃고 애타는 마음, 읽고 챙겨준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잃고 애타는 마음, 읽고 챙겨준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키 큰 메타세쿼이아의 부러진 가지에 열쇠가 걸려있다. 딱 내 키 높이다. 평범한 은색 열쇠인데 방 열쇠보다는 크고 대문 열쇠보다는 작은 느낌이다. 여기는 초등학교 담장 바로 옆. 주변을 둘러봐도 이 열쇠로 열 만한 문은 없다. 청소도구함 같은 것이 있나 봤지만 그것도 아니다. 어느 초등학생이 자기 집 열쇠를 학교에 올 때 여기 걸어놓고, 집에 갈 때 다시 가져가는 걸까? 이런저런 상상을 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나무에 걸린 열쇠 사건’은 7년 동안 풀리지 않았다.은평구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슷한 풍경을 봤다. 전봇대 핀에 CD가 걸려있었다. ‘초통령’으로 불리는 아이브(IVE)의 CD였다. 아니, 요즘은 홍보를 이렇게 하나? 발을 들고 간신히 CD를 빼서 보니 뒷면이 잔뜩 긁혀 있다. 요즘 아이돌 ‘덕후’들은 포토카드 때문에 CD를 몇십 장씩 산다던데, 너무 많아서 토템으로 걸어둔 건가? 한참 생각하고는 다시 제자리에 걸어두었다.그러다 며칠...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7)“이러니 수박에 빠져들 수밖에”

    (7)“이러니 수박에 빠져들 수밖에”

    여름이다. 본격적인 여름이 와버렸다. 이마와 양 겨드랑이에서 분수처럼 땀이 뿜어져 나온다. 내가 사는 집은 꼭대기 층이라 달궈지는 공기에 항복하고 일찍부터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이 없는 공간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다. 당연히 나의 산책도 올스톱됐다. 비슷한 생각인지 한여름 낮에 나가보면 길에 사람이 없다.지하철 역사에 들어가면 그래도 살 만하다. 동네 어르신들이 얼마 없는 의자에 모여앉아 연신 부채를 부치고 있다. 그냥 지하철 역사에 의자를 100개 정도 갖다놓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퇴근시간대에 난리가 나겠지?). 이런 와중에 젊은이들은 덥지도 않은지 긴소매에 긴바지를 입은 사람이 많이 보인다. 추운 계절에는 외투 안에 크롭트티셔츠나 반바지를 입고 다니더니 정작 여름이 되니까 아무도 반바지를 안 입는다. 민소매를 입고 그 위에 얇은 셔츠나 점퍼를 걸치고 통이 넓은 긴바지 차림에 운동화까지 신고 있다. 거기에 헤드폰까지 낀 사람들을 보면 감탄...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6) 대림역에 붙은 독수리 초상화를 보다

    (6) 대림역에 붙은 독수리 초상화를 보다

    “저게 왜 저기에 있지?”가끔 거기에 있으면 안 되는 것들을 전철역에서 발견한다. 아니, 꽤 자주다. 오늘도 발견했다. 멋지게 돋아난 하얀 깃털에 날카롭고 선명한 동공, 날렵하게 호선을 그리는 노란 부리. 더없이 잘생긴 독수리(엄밀히 말하면 흰머리수리)의 얼굴이 대림역 엘리베이터 상단에 붙어있다.지하철에서 아이돌 생일 광고는 맨날 보지만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독수리 초상화가 붙어 있는 것은 처음 본다. 잘생긴 배우의 프로필 사진 같기도 하다(이 사진을 썼다면 당장 합격이다). 심지어 크기도 크다. A4용지 4장에 부분 인쇄해 코팅한 후 모자이크타일처럼 이어붙였다. 덕분에 독수리의 얼굴은 거의 가로 40㎝, 세로 60㎝에 육박하는 존재감을 뽐낸다.“이따 보고 지금은 가자, 이다야.”내 친구 모호연은 이런 상황에 익숙하다. 나랑 같이 걸으면 20m를 똑바로 걷지 못한다. 내가 자꾸 “뭐지?”하면서 멈추고 이상한 걸 찾아내기 때문이다. (불쌍한 녀석!) ...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5)도시에서 ‘이타적 화단’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

    (5)도시에서 ‘이타적 화단’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

    쓰레기 더미만 보이던 주택가빌라 담장에 모란꽃이, 건물 사이에 흰 백일홍이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활짝누군가 공 들여 돌본 흔적아직 인류애가 있구나 느끼게 해나도 현관에 화분을 내놓아볼까“오늘은 어디로 가지?”매일 똑같은 동네에서 똑같은 고민을 한다. 어디로 갈지는 내 맘이다. 지나가는 어르신이 나를 힐끔 본다. ‘저 처자는 벌건 대낮에 일도 안 하나’ 하는 눈빛이다. ‘나는 프리랜서라고요!’ 속으로 항변해 봤자 소용없다. 한낮에 ‘추리닝’을 입고 어디 뭐 재밌는 거 없나 휘적휘적 돌아다니는 모습이 누가 봐도 100% 동네 백수다.오르막길을 올라 동네 뒷산 입구 쪽으로 가본다. 이곳에는 5층짜리 나지막한 빌라들이 여러 동 있다. 빨간 벽돌을 쓴 것을 보니 1990년대 이전에 지어진 것 같다. 담장에 걸린 알록달록한 빨래, 개똥을 버리지 말라는 분노의 경고문을 눈으로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응?”뭔가 대단한 붉은 것이 시야에 살짝 스쳤다....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4)꽃피는 봄이 오면…나는 꽃구경하는 ‘사람’을 본다

    (4)꽃피는 봄이 오면…나는 꽃구경하는 ‘사람’을 본다

    찰칵, 봄에는 누구나 꽃 사진을 찍는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꽃 앞에서 홀린 듯이 카메라를 들고, 카톡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이 꽃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바뀐다. 사람들이 보내오는 메시지에도 꽃이 가득하다. 작년에 봤던 꽃인데 올해도 여전히 반갑고, 겨우내 이름을 몰랐던 나무들이 꽃으로 정체를 드러낸다.“창경궁 홍매화 대박! 그런데 사람 미어터짐.” 트위터에는 실시간으로 꽃 소식 중계가 올라온다. “드디어 봄이야 #벚꽃 #벚꽃스타그램 #봄날” 인스타그램 피드도 꽃 사진으로 가득하다. “불광천 벚꽃 피었나요?” “방금 보고 왔는데 이번 주말이면 만개할 거 같아요 ㅎㅎ.” 동네 오픈채팅방에서도 언제 무슨 꽃이 피는지가 제일 중대한 이슈다.꽃이 피는 계절이 아닐 때에도 나는 도시를 관찰하면서 기록을 위한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을 참고해 나중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주거지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의 집 담벼락에 붙은 ...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3)‘처음 간 식당’에서 범상치 않은 메뉴를 맛보다

    (3)‘처음 간 식당’에서 범상치 않은 메뉴를 맛보다

    ‘또 뭘 먹어야 돼?’오늘도 나는 치열하게 고민한다. 평일 저녁 6시 반, 이미 춥고 배고프다. 저녁밥 오디션 최종 결승 후보는 두루치기와 김밥이다. 두루치기와 김밥, 남이 보면 당연히 두루치기가 이길 것 같은 게임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김밥집은 이미 여러 번 가본 곳이지만 두루치기집은 아직 안 가본 식당이기 때문이다.처음 가는 식당은 선택하기 어렵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맛없음을 감내할 수 있을 만한 용기 말이다. 사실 돈이 많다면 얼마든지 실패해도 된다. 한 끼에 3만원씩 척척 내놓으며 조금도 상처받지 않는다면 무얼 먹어도 괜찮다. 그 가격에 맛이 없다면 그건 식당의 실패지 나의 실패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한 끼의 실패가 너무나 뼈아프다. 그나마 8000원 이하의 실패라면 용서할 만하다. 하지만 1만5000원이라면? 그런데 맛이 없다면? 맛이 없는데 심지어 몸에도 안 좋은 음식이었다면? 그날 내내 맛없는 식당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고, 그 집 앞을 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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