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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의 도시관찰일기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삭막한 줄 알았는데 살 만한 곳이었잖아!
    삭막한 줄 알았는데 살 만한 곳이었잖아!

    어느 날 망원시장에서 생전 처음 보는 것을 봤다. 이게 붙어 있던 곳은 된장과 고추장을 파는 집이다. 빵집에서 빵 나오는 시간을 적어놓은 건 흔히 본다. 정육점에서 소 잡는 요일을 간판에 새겨 놓은 것도 본 적 있다. 하지만 장 담그는 날을 따로 알려주는 건 처음 봤다. 더 신기한 건 그날이 바로 ‘손 없는 날’이라는 거다. 손 없는 날에 이사하는 건 나도 안다. 이때 이사를 하면 가격이 더 비싸다. 그런데 손 없는 날과 고추장의 상관관계는 도통 모르겠다.생각해보니 몇달 전 일이 떠올랐다. 같은 빌라에 사는 아주머니가 김장을 했다며 김치를 주신 적이 있다. “우리 김장하느라 많이 시끄러웠죠, 아휴, 좋은 날 받아서 하느라…” 웃으며 김치를 받으며 속으론 물음표 10개를 띄웠다. 김장하는데 좋은 날을 받았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지? 좋은 날씨에 한다는 건가, 아니면 휴가를 냈다는 건가?망원시장에서 손 없는 날에 장을 담근다는 걸 보자 갑자기 이해가 ...

    2025.04.26 12:00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입꾹닫’하고 사는 세상, 용기 내볼까
    ‘입꾹닫’하고 사는 세상, 용기 내볼까

    ‘오늘도 한마디도 안 했네.’집에 들어와 신발을 벗으며 깨달았다. 오늘 어디를 갔더라. 새로 생긴 국밥집에서 경상도식 소고기국밥을 먹고, 마트에 가서 버섯과 양배추를 사고, 카페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는 동안 어떤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오늘 내가 간 모든 곳에 키오스크가 있었다. 단말기의 매끈한 화면을 들여다보며 국밥을 주문하고, 마트에선 셀프 계산을 했다. 카페에서도 키오스크를 썼고, 버스는 카드를 태그하면 끝난다.요즘 도시에서는 원한다면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가게를 들어갈 때 ‘안녕하세요’, 물건을 받을 때 ‘감사합니다’ 정도는 하겠지만 그걸 제외하면 대화랄 것은 전혀 없다. 옛날에는 길에서 붙잡고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나 시간을 물어보는 사람이라도 있었지만, 요즘은 없다. 휴대폰 맵에 위치를 넣으면 뭘 타고 어디서 내려서 어떻게 가는지 내비가 다 알려준다. 이러다 보니 젊은 사...

    2025.03.29 09:00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매일 똑같은, 그러나 새로운 발견 산책은 탐험!
    매일 똑같은, 그러나 새로운 발견 산책은 탐험!

    나의 주중 일과는 매일 똑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책상 앞으로 가 모닝페이지를 쓴다. 잠이 덜 깼을 때 손으로 1~2페이지를 아무 내용이나 쓰는 것인데 내용은 시시하다. ‘오늘 아침엔 일찍 일어났다. 뭔가 재밌는 꿈 꾼 것 같은데… (중략) 다음 마감은 뭘 해야 하나. 어쩌구 저쩌구…’ 모닝페이지를 쓰고 나면 두유나 사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바로 작업을 시작한다. 40분을 집중하고 20분은 쉰다. 쉬는 시간에는 같이 사는 작가 친구와 함께 ‘새천년건강체조’를 한다. 어릴 때 운동장에서 하던 중간놀이 시간과 똑같다.11시40분이 되면 점심을 먹는다. 점심은 현미밥에 배춧국, 김치와 간단한 반찬 한두 가지가 전부다. 때때로 반찬가게에서 나물을 사다가 비빔밥을 해 먹거나, 친구가 마파두부밥을 할 때도 있다. 점심을 먹고는 4시까지 일을 한다. 일이 끝나면 밖으로 나가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한다. 솔직히 매일 산책하는 건 귀찮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가 사는...

    2025.03.01 09:00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깨소금보다 고소하고 간간, 내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깨소금보다 고소하고 간간, 내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1년을 돌아 또다시 설날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분명 1월1일 되자마자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다 나누었던 것 같은데, 음력설이 되면 똑같은 인사를 또 한다. 덕분에 새해 복은 늘 두 번씩 받는다.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어릴 때는 설날이 좋았다. 설날 아침의 공기는 다른 날과 달랐다. “이다야! 다른 사람 다 왔데이! 일어나라!” 할머니 집의 절절 끓는 온돌에 거의 구워지다가 눈을 뜨면 성에 낀 창문이 보였다. 밖으로 나가면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채로 마당에 쌓인 눈을 밟아본다. 하늘은 아주 옅고 푸르고 구름도 적다. 신기하게도 설날 당일엔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 거의 없고 대부분 화창한 겨울날이었다. “깟깟” 늘 듣는 까치 소리도 설날에는 운치 있게 느껴진다.설날엔 먹을 게 많았다. 첫 상은 무조건 떡국이다. 경상도식 떡국엔 두부와 소고기를 함께 볶은 ‘꾸미’가 고명으로 올라온다. 무,...

    2025.01.27 15:00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수많은 불빛 그 한가운데서 다시 만난 희망
    수많은 불빛 그 한가운데서 다시 만난 희망

    여의도를 메운 각양각색 사람들과 광장을 채운 K팝에 맞춰 들썩이며 시민으로서 하나도 외롭지 않았다“탄핵!” 외치며 다음을 꿈꾸게 됐다“여러분, 나라가 망했어요.”12월3일 밤, 타이베이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받은 메시지다. 나는 2주간의 대만 여행을 마치고 다음날 입국을 앞두고 있었다. 짐도 다 싸고, 침대에 기대 여행일지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에 몇 개의 알림이 동시에 울렸다. “2024년에 계엄령이래요” “이거 가짜뉴스 아니에요?” “이다야, 한국은 큰일 났다” 읽을 틈도 없이 메시지 알림은 계속 이어졌다. 머리가 띵했다. 아니, 나 돌아가도 되는 거야?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공항에 들어섰다. 진짜 나라가 뒤집혔다. 뒤늦게 소식을 따라가느라 마음이 초조했다. 다행히 국민들의 힘으로 계엄은 해제됐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토요일에 친구들과 탄핵 집회에 나가기로 약속했다.결전의 날이 왔다. 기온은 영상 1도. 안에 내복을 껴입고,...

    2024.12.28 09:00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만나면 반가운 ‘클래식 기사님’ 오늘 공연도 잘 부탁합니다
    만나면 반가운 ‘클래식 기사님’ 오늘 공연도 잘 부탁합니다

    온다. 저 멀리 내가 탈 버스가 다가오고 있다. 카드 지갑을 꺼내 가슴 옆에 반듯하게 들고 버스 기사님에게 눈을 맞춘다. 버스가 다가온다. 시선을 놓지 않고 집중한다. 버스가 속도를 줄이며 정확히 내 앞에 선다.“치익” 소리를 내며 버스의 문이 열린다. 내 옆에 서 있던 아저씨가 발을 먼저 들이민다. 새치기는 안 되지! 팔을 뻗어 버스 문 옆에 있는 손잡이를 잡으며 아저씨를 차단한다. 서울 생활 10여년, 이 정도 생존력은 갖추고 있다.“안녕하세요~.”삑-. 카드를 찍는다. 정확히 내 앞에 버스 세우기, 오늘도 성공이다. 몇년 전부터 혼자 즐기는 놀이다. 카드를 잘 보이게 가슴 앞이나 얼굴 옆으로 들고, 기사님에게 정확하게 눈을 맞춘다. 그러면 열의 아홉은 버스가 정확히 내 앞에 선다.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설 수 있는지 감탄스러울 정도다. (단 노약자가 있으면 그분 앞에 버스가 선다) 타면 기사님께 내면의 따봉을 날리며 인사를 한다. 별것 아닌데...

    2024.11.30 09:00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카페인은 몰라도 카페人은 영원할 거야
    카페인은 몰라도 카페人은 영원할 거야

    오늘은 안 가야지. 그럴 돈 모아서 집 사야지. 결심해보지만 자동으로 몸이 그쪽으로 향한다. 간판을 보면 충동을 이길 수 없다. 목이 말라도, 마르지 않아도 일단 그냥 들어가보고 싶은 곳이다.“어서 오세요-”카페는 누구나 갈 수 있다. 여름엔 시원한 에어컨이 있고 겨울엔 따뜻한 히터가 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바깥과 달리 벌레나 바람도 없다. 음료수 한 잔 살 돈만 있으면 쾌적한 공간과 시간을 살 수 있다. 시간제한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오래 머물 때 음료 한 잔을 더 시키는 건 어디까지나 체면 때문이다).“주문하시겠어요?”요즘 카페의 메뉴는 대부분 비슷하다. 굵은 글씨로 ICED AMERICANO, CAFE LATTE, CAFE MOCHA 하며 영어가 쓰여 있고(엄밀히 말하면 이탈리아어), 옆에 눈곱만한 크기로 한글이 쓰여 있다(아예 한글을 안 써놓는 가게들도 있다. 그런 가게들은 ‘1인 1음료 주문해주세요’는 열심히 한글로 써놓는다)...

    2024.11.02 09:00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주차 분노, 예술이 되다
    주차 분노, 예술이 되다

    차가 없어 다행이다. 서울 한 귀퉁이에 살며 오늘도 하는 생각이다. 서울은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다. 저녁 7시, 내가 사는 빌라도 주차장이 이미 만석이다. 겹쳐 대는 것은 물론이고, 밤이면 입구까지 차가 비죽 나와 있다. 이런 세상에 내 차 한 대를 더 보탠다? 굳이?서울은, 아니 도시는 언제나 주차 전쟁이다. 차는 인간이 가진 물건 중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 세로로 세워서 착착 대놓을 수도 없고 위로 박스 쌓듯 쌓아놓을 수도 없다. 내가 어릴 때 TV에서 말하길 미래에는 차를 접어서 주머니 안에 넣을 수 있을 거라 하더니 무슨 소리, AI가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는 마당에 아직 차는 백미러 접히는 게 고작이다.서울의 오래된 동네는 대부분 자가용이 없던 시대에 만들어졌다. 다세대주택으로 여섯 일곱 가구가 사는 곳이라도 주차장 하나 없는 경우가 많다. 성북구에서 내가 2년간 살았던 3층집도 세 가구가 사는데 주차할 자리는 딱 하나뿐이었다. 그것...

    2024.10.05 15:00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방울이 울리면  ‘발굴 탐험’이 시작된다
    방울이 울리면 ‘발굴 탐험’이 시작된다

    코팅이 다 벗겨진 간판, 녹슨 셔터, 덕지덕지 붙은 안내문,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뿌연 유리창, 가게 밖에 쌓여 있는 노랗게 색이 바랜 물건들, 수많은 사람이 밟아 무늬조차 없어져 버린 현관 발매트.나는 오래된 가게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것은 오래된 문구점이다. 언제 어디서든 오래된 문구점을 보면 당장에라도 뛰쳐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니면 어릴 때처럼 창문에 찰싹 달라붙어 뭐가 있는지 구경이라도 하고 싶다. 오늘도 은평구에 있는 한 문구점 앞에서 본능적으로 발을 멈췄다. 하지만 오래된 가게에 들어가는 것은 다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시간도 충분해야 하고, 현금도 있으면 좋다. 던전을 공략하는 헌터가 빈손으로 불쑥 입장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던전 공략하는 헌터의 마음으로 유리문 하나 넘으면묵은 종이 냄새와 약간의 곰팡내가 반겨주는 ‘오래된 문구점’타이태닉 엽서·연필·‘유물급’ 자료집…구경에 1시간 훌쩍남은 건 먼지...

    2024.08.31 09:00

  • [이다의 도시관찰일기]잃고 애타는 마음, 읽고 챙겨준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잃고 애타는 마음, 읽고 챙겨준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키 큰 메타세쿼이아의 부러진 가지에 열쇠가 걸려있다. 딱 내 키 높이다. 평범한 은색 열쇠인데 방 열쇠보다는 크고 대문 열쇠보다는 작은 느낌이다. 여기는 초등학교 담장 바로 옆. 주변을 둘러봐도 이 열쇠로 열 만한 문은 없다. 청소도구함 같은 것이 있나 봤지만 그것도 아니다. 어느 초등학생이 자기 집 열쇠를 학교에 올 때 여기 걸어놓고, 집에 갈 때 다시 가져가는 걸까? 이런저런 상상을 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나무에 걸린 열쇠 사건’은 7년 동안 풀리지 않았다.은평구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슷한 풍경을 봤다. 전봇대 핀에 CD가 걸려있었다. ‘초통령’으로 불리는 아이브(IVE)의 CD였다. 아니, 요즘은 홍보를 이렇게 하나? 발을 들고 간신히 CD를 빼서 보니 뒷면이 잔뜩 긁혀 있다. 요즘 아이돌 ‘덕후’들은 포토카드 때문에 CD를 몇십 장씩 산다던데, 너무 많아서 토템으로 걸어둔 건가? 한참 생각하고는 다시 제자리에 걸어두었다.그러다 며칠...

    2024.08.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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