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의 언니는 제초제를 한 컵 따라놓았다고 했다. “죽겠다”고 했다. 알코올 중독에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던 언니였지만, 7년 전 그날 처음 꺼내놓은 얘기는 이민순씨(63·가명)의 몸과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이 떨리게 만들었다. 언니 진순씨(66·가명)는 그날 처음으로 5·18 당시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동생에게 털어놓았다.진순씨는 22세였던 1980년 5월 이후 정신을 놓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지만 3남4녀의 둘째딸로 평범하게 자라 온 진순씨였다. 가족들은 진순씨가 시가(시댁) 식구들의 반대로 목포에 두 아이들을 두고 쫓겨 나와서 그렇다고 짐작했다. ‘공수부대원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죽인다’는 소문이 횡행했던 날들이 지나고 나주 친정으로 온 진순씨는 넋이 나가 있었다. 밤낮으로 우는 언니를 보고 민순씨는 언니가 실성했나 생각했다.이듬해부터 언니는 광주에서 혼자 살았고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가족들도 고통에 빠졌다. 엄마는 둘째딸을 돌려놓으려고 갖은 애...
2024.05.31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