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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피해자, 지금은 생존자, 미래엔…조력자 되고 싶어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힘들었지만 이별을 잘 이겨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뒤 그 남자가 내가 다른 남자와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니냐고 추궁하더니, 차에 태워 욕설을 퍼부으며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끌고 가 목을 조르고, 뺨을 때리고, 발길질했다. 식칼을 가져와 겨누고 찌를 듯이 위협했다. “내 손으로 너를 죽이겠다”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김지영씨(가명)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보통의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몇년 전, 전 연인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교제폭력 피해 생존자다. 가해자는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받아 감옥에 갔다. 지난 6일 만난 그는 “사건 직후엔 ‘내 잘못’이라며 오랫동안 자책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많았다”며 “아직도 피해자를 탓하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가해자의 잘못’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플랫 ‘더 이상 한명도 잃을 수 없다’ 아카이브 페이지https... -
교제살인 통계, 성별 구분 필수…‘젠더화된 폭력’ 확인해야
교제 폭력, 교제 살인 사건이 잊을 만 하면 크게 보도되지만 여전히 국내에선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경찰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범죄가 살인으로 이어진 사건 규모를 처음으로 집계했다. 2023년 발생한 살인(미수 포함) 사건의 피의자는 778명이다. 이중 192명(24.6%)이 전·현 배우자와 전·현 애인, 사실혼 배우자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이 ‘친밀한 관계’에 의한 살인 규모를 파악한 건 처음이다.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친밀한 관계에 의해 얼마나 죽을 위험이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성별 구분 통계를 발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엔(UN) 경제사회국 자료를 보면 다수의 살인 사건 피해자는 남성이지만 가해자를 친밀한 파트너로 좁히면 80% 이상의 피해자가 여성”이라며 “이는 ‘젠더화된 범죄’”라고 말했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경찰은 가장 중요한 성별 구분은 뺀 반쪽짜리 통계만 내놓은 셈”이... -
‘교제 폭력 처벌’ 법안 모두 ‘임기 만료’ 폐기…이번 국회도 똑같을까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살인 등의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자는 주장은 오랫동안 제기됐다. 하지만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주장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여성 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는 더 떨어졌다. 법을 정비해 처벌의 근거를 마련해야 할 국회에선 관련 법이 발의됐다가 논의도 한 번 없이 번번이 폐기됐다.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2016년 개원한 20대 국회 이후 현재 22대 국회까지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처벌 강화 등을 담은 법률이 발의된 것은 총 9건이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을 개정해 결혼하지 않은 연인 관계인 경우도 처벌 대상에 포함하거나, 아예 ‘데이트폭력방지법’ ‘교제폭력처벌법’ 등을 신설하자는 방안이다.여기에 형법상 교제폭력의 기준을 마련하고, 피해자 보호 절차와 지원기관 운영에 필요한 사항 등을 규정하자는 의견이 더해졌다. 또 피해자가 협박이나 보복 우려 등 이유로 가해자와 합의했을 경우 ... -
신고 7만790건, 구속은 226명…겨우 재판 가도 ‘초범이라 감형’
지난해 7월, 경기 구리시 한 오피스텔에서 20대 남성 A씨가 여자친구를 감금한 뒤 수차례 강간하고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A씨는 바리캉으로 상대의 머리카락을 미는가 하면 얼굴에 소변을 누거나 침을 뱉는 가혹 행위까지 저질렀다. 피해자는 5일 만에 오피스텔에서 가까스로 탈출해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 사건은 ‘바리캉 폭행 감금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끔찍한 피해에 공감하며 A씨를 엄벌에 처할 것을 요구한 시민들의 탄원서는 1·2심 합쳐 2만5000건이 넘는다.한국여성의전화 이제 활동가는 피해자가 의료·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왔다. 지난달 22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피해자는 사건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일 20여종의 약을 복용할 정도로 후유증이 크다. 정신과 치료와 심리 상담을 병행하며 회복에 집중하는 상황”이라면서 “감금 당시 피해도 문제지만, 이후 재판 과정에서 범행을 부인하는 가해자와 이를 두둔하는 ... -
쯔양 측 변호사 “친밀한 관계 악용해 상대방 ‘착취’, 피해 눈덩이처럼 커진다”
“교제 폭력은 단순한 폭행이 아니에요. 연인 사이에서만 알 수 있는 정보를 악용해 상대방을 착취한 겁니다. 피해자는 ‘내가 참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한 번의 피해를 방치하면 눈덩이처럼 커져요.”‘1000만 유튜버’ 쯔양(본명 박정원)을 대리하는 태연 법률사무소 김태연 변호사는 25일 이렇게 말했다. 쯔양은 지난달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전 남자친구이자 전 소속사 대표인 A씨로부터 과거 수년간 폭력, 성폭행, 협박, 강요, 공갈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공개해 큰 파장이 일었다. 그는 A씨 강요로 유흥업소에서 일해야 했으며, 성관계 강요로 임신했다가 임신중지 수술을 했다고도 말했다. 이 모든 것이 협박의 빌미가 되어 불공정 계약에 묶이게 됐고, 유튜브 방송으로 벌어들인 수익도 거의 정산받지 못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플랫 ‘더 이상 한명도 잃을 수 없다’ 아카이브 페이지https://x.com/flat_niunamenos... -
“다 아는 사이라, 앞길 망칠라…딸 위험신호 그냥 넘긴 것 후회”
대한민국에선 만 17세가 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주민으로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존재와 자격을 증명하는 문서다. ‘효도 효’에 ‘곧을 정’, 효도하며 곧게 살라는 뜻을 담아 지은 이효정씨(20)의 이름, 그 이름이 쓰인 주민등록증은 발급된 지 겨우 2년도 되지 않아 폐기됐다. 지난 4월 10일 동갑내기 전 남자친구 A씨에게 폭행당해 사망하면서다.4월 1일, A씨는 헤어진 효정씨가 전화와 메시지에 응답하지 않자 자신을 무시했다며 새벽에 경남 거제에 있는 효정씨 원룸에 무단침입했다. 그는 효정씨 몸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르고 머리와 온몸을 무차별 폭행했다. 피해자는 외상성 경막하 출혈 등으로 전치 6주 진단을 받고 치료받다가 패혈증에 의한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열흘 만에 사망했다. 뇌를 둘러싸고 있는 경막 안쪽 뇌혈관이 터져 피가 고이고, 그 피가 썩어서 장기 기능이 상실되면서 생명을 잃었다는 뜻이다.지난달 17일 거제에서 만난 효... -
교제 관계, 모호해서 처벌 불가? 해외에선 ‘이렇게’ 한다
지난 4월 호주에선 여성 폭력에 반대하는 전국적 시위에 수천명이 모였다. 올해 들어 살해된 여성이 28명이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늘어났기 때문이다.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직접 시위에 참석해 “여성과 아동에 대한 폭력은 ‘국가적 위기’이자 사회 전체의 문제”라며 “이를 근절하기 위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정부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 보호 등에 10억 호주달러(약 9000억원)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수사기관도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가정폭력범 소탕’에 나섰다. 뉴사우스웨일스(NSW)주 경찰은 한 달 뒤 가정폭력 범죄자와 고위험자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해 554명을 체포했다. 가정폭력 문제로 경찰에 접수된 신고를 바탕으로 관련 정보를 수년간 축적하고, 고위험 범죄자를 추려 붙잡은 것이다. 수사기관이 여성 폭력 증가에 경각심을 가지고 인력과 자원을 투입한 결과다.한국은 다르다. 매년 몇 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목숨을 잃는지... -
“바뀌는 게 있다면, 분신자살이라도 하고 싶어” 두 딸 잃은 아버지의 절규
사는 곳도, 나이도, 하는 일도 모두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죽음이었다. 한국에서는 매일 최소 한 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목숨을 잃거나 잃을 위기에 처한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남편이나 연인 등에게 살해된 여성은 최소 138명이다. 살인 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까지 합하면 피해는 449명으로, 19시간에 한명 꼴로 생명을 잃거나 위협당한다.‘매일 한 명.’ 이 숫자는 너무나 단조롭고 일상적이어서 잘 와닿지 않는다. 서울 강남 의대생 여자친구 살해, 전 국가대표 럭비 선수 성폭행, 경기 하남 교제 살인, 경기 화성 오피스텔 모녀 살인, 경남 거제 교제 폭력. 올해 몇 달 사이 벌어진 이 사건들은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됐지만, 엇비슷하게 느껴진다. 미처 이름도 붙이지 못한 죽음은 이보다 훨씬 많다. ‘말을 듣지 않아서’, ‘나를 무시해서’, ‘다른 남자와 연락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서’ 스러진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