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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워크 K
  • 외눈박이의 누드 사진 [카메라 워크 K]
    외눈박이의 누드 사진

    누드. 여기에 항상 따라붙은 두 가지 단어는 외설과 예술. 그 중간은 별로 없는데, 비평가 존 버거는 간단하게 외설이라 불러도 무방하다는 논지를 <다른 방식으로 보기 Ways of Seeing>에서 펼친다. 이야기 방식은 존 버거답게 복잡하지 않다. 마네의 누드화 ‘올랭피아’(1863)를 보자. 침대 위에 누워 관객을 빤히 쳐다보는 벌거벗은 올랭피아. 그녀를 나체의 남자로 바꾸어보자. 우리는 그 그림을 과연 참아낼 수 있을까?지금은 예술이라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마네의 ‘올랭피아’ 조차도 사실 당시엔 외설 시비가 있었다. 마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올법한 이상적인 비율의 여인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 사실 그는 티치아노의 ‘우리비노의 비너스’의 구도를 차용해 실재의 창녀 모습을 그린 것이다. 비너스의 눈길은 고혹적이고 올랭피아의 눈빛은 도발적이다. 어쨋든 관객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 대상은 바로 남성이다.사진은 어떨까? 에드워드 웨스턴 등 유명 사진작가들은 저마다...

    2025.03.13 13:18

  • 두 도시 이야기와 사진 그리고 [카메라 워크 K]
    두 도시 이야기와 사진 그리고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소설의 제목처럼 격변기의 두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영국의 런던과 프랑스의 파리. 영국에는 ‘턱이 큰 왕’ 조지 3세와 ‘평범한 얼굴의 왕비’ 샬럿 소피아가 왕좌에 앉았고, 프랑스에도 ‘턱이 큰 왕’ 루이 16세가 살았다. 하지만 프랑스의 왕비는 아름다웠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스캔들에 휘말렸던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의 목은 콩코드 광장에 설치된 기요틴의 육중한 칼날에 잘려 나갔다.작가는 <프랑스 혁명사>에서 토머스 칼라일이 보여준 “철학에 뭔가를 더 보태기를” 바라면서 소설을 썼다. 서술의 방법...

    2025.02.27 15:28

  • 가짜뉴스가 될 뻔했던 ‘123호외’ [카메라 워크 K]
    가짜뉴스가 될 뻔했던 ‘123호외’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 27분,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겨울밤의 정적을 깨고 서울 여의도의 하늘을 가로지르던 블랙호크 헬기는 국회 경내에 착륙했다. 헬기에서 내린 계엄군은 국회 본청으로 향했다. “파렴치한 종북반국가세력”이 국회에 있었던 것일까? 1시간 후, 박안수 계엄사령관은 포고령 제1호를 발동했다.“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비상계엄 포고령에 상관없이 언론사 기자들은 국회로 향했다. 시민들도 그랬다. 기자가 아니지만 카메라를 손에 든 이들이 시민과 함께 있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다. 이들은 ...

    2025.02.05 13:19

  • 모래언덕에서 펼쳐지는 초현실주의 놀이 [카메라 워크 K]
    모래언덕에서 펼쳐지는 초현실주의 놀이

    뉴욕 월스트리트의 한 변호사 사무실. 신입 필경사 ‘바틀비’는 서류를 검토하라는 변호사의 지시에 아주 부드럽고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한 대목이다. 아주 성실해 보였던 필경사 바틀비가 아무 이유도 없이 자기 본연의 업무를 ‘단호하게’ 거부하자 변호사는 어떻게 직원을 다루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린다. 월급을 올려 달라는 뻔한 항의의 표시가 아니었기에 변호사는 당황할 수밖에.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는 바틀비의 말과 행동은 체제에 깊게 편입된 우리에게 당혹스러운 상대가 아닐 수 없다.우리는 필경사 바틀비와 비슷한 인물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 그리고 다른 예술작품에서도 발견된다. 초현실주의자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중산모를 쓴 신사,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의 ‘만우절’ 시리즈에 나오는 고깔모...

    2025.01.06 15:08

  • 비상계엄 선포는 누가 사진 찍었을까? [카메라 워크 K]
    비상계엄 선포는 누가 사진 찍었을까?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대통령으로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 (중략)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12월 3일 오후 10시 28분경부터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신문사는 발칵 뒤집혔다. 퇴근했던 부서장들이 속속 편집국으로 모였고, 사진부장은 대통령실 출입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실 전속 사진이 방금 막 들어왔습니다!” 오후 11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소식은 사진기자가 아닌 대통령실 전속 사진사가 찍은 사진으로 다음날 특별판에 실리게 됐다.비상계엄 상황이니 대통령실은 출입 기자들을 소집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도 대통령실은 자주 출입 기자들의 취재를 제한한 채 전속 사진사를 통해 찍은 사진을 미디어에 배포한다. 그 기준은 뭘까? 현직 ...

    2024.12.19 13:29

  • 살육의 기억, 끝나지 않는 폭력 [카메라 워크 K]
    살육의 기억, 끝나지 않는 폭력

    “살육은 종전과 함께 멈추지 않았다. 전쟁의 생존자들은 닭과 야생조류에게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해야 했다.”부천 삼정동의 옛 쓰레기 소각장 중앙제어실에 걸린 흑백 사진은 다소 초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철조망에 갇힌 살아있는 닭과 기둥에 매달린 죽은 새들의 축 늘어진 몸뚱이들과 깃털.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나무 박스에 기대어 카메라를 응시하는 한 청년은 장사꾼이라기보다는 대학생처럼 보이지만 사진 캡션에는 분명히 “닭장수”라고 적혀 있다. 1957년 서울 남대문 시장의 풍경이다. 젊은 시절의 고 한영수(1933-1999) 작가는 산 짐승과 죽은 짐승 사이에서 전쟁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는 22일까지 부천아트벙커B39에서 열리는 <우발적 미래의 시원>에 걸린 사진 중 하나이다.같은 공간에 사진을 건 이재갑, 강용석 작가의 작품은 전쟁의 직접적인 기억이라기보다는 그 흔적들이다. 이재갑 작가의 사진은 베트남 전역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이고, 강용석 작...

    2024.12.11 11:35

  •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데칼코마니[카메라 워크 K]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데칼코마니

    아슬아슬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휴전이 발효된 참에 한 번쯤 구경해볼 만한 사진전이 개막해 소식을 전한다. 서울 삼청동 뮤지엄한미에서 열리는 <시대의 아이콘: 아놀드 뉴먼과 매거진, 1938-2000> 기획전이다. 피카소, 앤디 워홀 등 세계적인 예술가의 초상이 주류를 이룬 전시이지만, 정치인들을 모아 놓은 챕터에서는 그동안 보도사진에서 보던 이미지와는 다른 세계 수장들의 초상을 만나보게 된다. 최봉림 뮤지엄한미 부관장은 이 사진들을 보며 지금의 세계 정세에 대한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했다.사진미술관의 하얀 방들을 거쳐 회랑 같이 긴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존 F. 케네디를 비롯한 세계 지도자들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이 중 아놀드 뉴먼의 스타일과 다른 초상이 2점 등장하는데, 그 주인공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장인 야세르 아라파트와 이스라엘 총리였던 이츠하크 라빈의 초상이다. 사진은 극단적으로 크로핑됐고, 데칼코마니처럼 똑...

    2024.11.3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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