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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여름에 시장에 가는 이유
누구나 아는 사실, 여름은 덥다. 더운 것에 더해 둘러싼 공기마저 수분을 가득 품고 있어 무겁다. 에어컨의 제습 기능을 최대로 돌리는 듯한 홋카이도의 여름을 만끽하고 온 뒤라 한반도의 꿉꿉한 여름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사람은 살아가며 자급자족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의 것을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사람이 모이고 물건과 돈이 오가는 시장에 가야 한다. 덥든 춥든 때가 되면 장이 서고 사람이 모인다. 먹고살기 위해서 말이다. 충북 음성장은 2와 7일이 든 날에 열린다. 7월22일 음성장으로, 나 또한 먹고살기 위해 더위 속 장터로 떠났다.음성은 출장보다는 낚시하기 위해 자주 갔었다. 음성군에는 이름난 저수지가 많아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맹동지, 원남지, 초평지 등이 알려진 저수지다. 음성 읍내에 도착하니 예전에 여기서 밥 먹고 낚시하러 가던 생각이 났다. 또한, 고속도로가 지금 같지 않던 20년 전 음성을 거쳐 괴산의 업체를 찾아가던 기억 또한 났다. 에어컨 바... -
대단하진 않아도 구색은 제법, 군침도는 특산물에 위가 든든하군
군위 오일장은 3, 8일장이다. 매월 달력에 3, 8일이 든 날에 장이 선다. 7월3일, 대구에 편입됐다는 플래카드가 반기는 군위에 도착하니 시간은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2023년 7월1일자로 경북에서 대구시로 주소가 바뀌었다고 한다. 군위가 경북이던 시절, 나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전국을 100만㎞ 운전하고 다녔지만 군위는 스쳐 지나도 머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진짜로 없었나 생각해보니 딱 한 번 부계면에서 밥 한 번 먹은 적이 있었다. 무슨 일로 들렀는지는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다. 10년이 지나 대구시 군위군이 된 생소한 동네의 장터 모습이 궁금했다.읍내 상설시장을 가로지르는 통로에 오일장이 선다. 이웃한 의성과 비슷한 규모지만, 의성보다 길이도 짧고 상인도 적었다. 사실 대구시와 접해 있기에 어느 정도 규모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배후 도시가 있는 지역은 규모가 상당했기에 그런 생각을 해봤다. 배후 도시로 광주시가 있는 전남 화순이나 사... -
입맛 부추기는 민물새우라면 새벽부터 달다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 하면 비빔밥, 콩나물 해장국, 피순대 등을 떠올리곤 한다. 필자는 전주 음식 하면 우선 두부부터 떠올린다. 오래전, 22년 전이었다. 서울 양재동에 있는 aT센터에서 열린 식품박람회를 갔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두부 코너에 시선이 꽂혔다. 그때는 진짜로 드물었던 국내산 콩으로 만든 두부였다. 하던 일이 국내산과 친환경 상품을 구하는 일인지라 다가가서 시식용 두부를 맛봤다. “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두부 가격 4500원, “오…으억!” 자동 반사로 터져 나왔다. 지금이야 국내산을 쓰는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격이다. 20년 전에 대기업에서 나온 국내산 두부가 2000원 후반대였다. 다른 국내산 두부보다 두 배가량 비쌌다. 명함을 주고받고는 연락을 기다렸다. 가격을 떠나 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먼저 연락을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추석을 앞둔 여름 끄트머리에 함정희 사장님과 딸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두부를 ... -
드디어 찾았다! 눈이 번쩍 뜨이는 ‘시장표 보물’
경북 의성과 경남 의령 사이에서 잠시 고민을 했다. 둘 다 양파와 마늘 수확이 한창일 동네다. 선택은 경북 의성, 유기농 사과 농원에 볼일이 생겨 의성으로 다녀왔다. 경상북도 의성을 처음 간 것은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이다. 친환경 사과 농원이 의성 다인면에 있어 찾아갔었다. 20년 전에는 저농약 인증이었고 지금은 유기농 사과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를 매년 몇 번을 다니면서 사과 품종에 대해 배우고 공부했다. 우리가 흔히 부사라 하는 사과에도 여러 종류가 있음을 알았다. 동북 7호, 미얀마, 로열골드 등 다양한 사과 맛을 봤다. 몇 년 전에는 시나노 골드라는 노란 사과도 생산했다. 지금이야 여러 곳에서 생산하는 게 노란색 사과지만 그때는 낯설어하던 사과였다. 특히 유기농 농원의 사과는 모양도 좋지 않고 크기도 작지만 자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이 있다. 유기농 농원을 겉에서 구별하는 방법은 풀이다. 나무 주변에 풀이 자연스레 자라고 있다. 사과밭을 거닐면 풀향기가 그윽... -
5월의 시장엔 주인공이 없다? 굳이 꼽자면 ‘마늘쫑’이 있다
5월은 계절의 여왕! 참으로 많이 듣고 말해 왔다. 20대 후반까지는 이 말이 맞는 줄 알았다. 봄이 가장 빛나는 시기에, 어린이날을 비롯해 갖가지 행사가 있어 그런가 싶었다. 화창하게 갠 날이 비 오는 날보다 많아서 떠나기에도 좋다. 여행 떠나는 이에게는 5월이 계절의 여왕이겠지만 음식 재료를 생산하거나 유통하는 이에게는 저주받은 달이다. 1년 중 가장 애매한 시기가 5월이다. 여름것은 이르고 봄것은 끝물이라 나는 것이 드물다. 지난겨울에 수확한 것 또한 상품성이 떨어지는 지점이 5월이다. 여름것이 난다고 하더라도 식품의 질이 별로인 경우가 많고 양이 적어 그나마 괜찮은 것은 가격이 비싸다. 5월은 떠나기는 좋은 계절, 그나마 괜찮은 것이 나는 곳이 어딜까 곰곰이 생각했다. 불현듯 20년 전에 떠났던 봄날의 끄트머리가 기억났다. 친환경 우유와 요구르트를 찾아 임실역 뒤편으로 갔었다. 숲골우유가 거기에 있었고 치즈 저장고에 쌓여 있던 치즈도 구경했다. 몇 해 지나 국내... -
다 늦은 봄이지만…‘꿀잼’은 지금부터
이번 시장은 전남 나주다. 나주로 떠나면서 봄나물 보기에 늦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 사심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선택이었다. 1982년 초등학교 5학년부터 타이거즈 팬으로 살았다. 태어난 곳과 자란 곳은 대구와 인천이지만 40년 내내 팬이었다. 장이 열리는 날에 광주에서 야구 경기가 있어 겸사겸사 나주로 결정했다.5월 초, 역시나 시장에서 나물 보기는 어려웠다. 나주는 예전에 세지면을 자주 갔다. 2010년까지 세지에는 토하젓을 생산하는 곳이 있었다. 공장 옆 저수지와 양식장에서 새뱅이를 양식했다. 양식한 새뱅이로 젓갈을 담근 것이 토하젓이다. 저가의 중국산이 밀려오면서 생산을 포기했었다. 내 기억으로는 우체국 통신 판매에서 토하젓을 유일하게 판매했었다. 토하젓은 따뜻한 밥에 양념한 토하젓 넣고 비벼 먹는 것이 기본. 더 맛나게 먹는 것은 돼지고기와 궁합을 맞추는 것이다. 삶은 것도 좋고 구운 것도 좋다. 구운 것도 생고기나 양념한 것을 차별하지... -
거참 맛있네! 사과의 거창~한 변신
경남 거창은 사과의 고장이다. 거창을 둘러싼 높은 산이 있어 사과 재배에 딱 좋은 환경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덕유산과 수도산을 뒷산으로 두고 지리산 자락인 거망산과 황석산이 서쪽에 있다. 높은 산 주변은 일교차가 크기에 당도가 높고 단단한 사과가 난다. 사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과일이다. 생과 중심의 유통이 일반적이다. 가공품이라고 해봐야 사과를 건조한 말랭이나 칩 정도에 착즙한 주스를 용기 모양만 달리해서 유통할 뿐이다. 사과빵이라고 해봐야 수입 밀에 색소를 더해 사과 모양을 흉내낸 것만 있을 뿐이다. 거창은 다른 사과 산지들과 달랐다. 사과로 많은 것들을 만들고 있었다.서울에서 거창을 가는 방법은 고속도로에서 거창 나들목으로 나가는 방법이 있다. 그 외에는 무주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덕유산을 넘는 방법도 있다. 고속도로보다 살짝 늦지만 주로 이 길로 다닌다. 덕유산을 넘는 동안 벚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버찌를 먹은 새들이 날아다니며 ... -
‘초록빛 보약’ 제철 미나리…보랏빛 밑동 보일 때가 ‘제맛’
“청도 미나리 언제 가냐? 비어 있는 날짜가 몇개 있는데.”청도 미나리가 궁금하시다며 허영만 선생님께서 문자를 보내셨다. 청도라? 미나리가 맛으로 빛나는 청도는 봄이 제격이다. 청도행은 오랜만이다. 청도역 앞에서 샀던 매운 무짠지 김밥이 먹을 만했다는 기억, 십년 전 쿠팡에서 근무할 때 반건시 때문에 두어 번 갔던 게 전부인 동네다. 읍내에서 한재 쪽으로 가던 길가에 있던 곶감 공장이 어렴풋이 생각날 정도로 청도와의 인연은 거의 없었다. 선생님이 주신 날짜와 장날을 맞춰보니 4월9일(4, 9장), 일요일과 맞았다. 날짜도 날짜지만 봄이 제철인 미나리 보러 가기에 딱 좋은 때였다.아침 길을 부지런히 달려 정오 즈음 청도에 도착했다. 남쪽과 중부 지방의 벚꽃은 거의 진 상태라 꽃구경 차량이 드물어 염려보다는 차가 밀리지 않았다. 선생님 모시고 간 시장은 작년 산청 오일장 이후 거의 1년 만이다. 청도는 대구와 가깝다. 대구 수성구와 달성군과 거... -
봄, 화사하게 달고 순수하게 쓰다
봄이 한창인 화순에 대한 기억은 그리 좋지 못했다. 다른 전라도의 오일장을 가도 부러 뒤로 미뤘다. 화순 남면의 어느 골짜기에서 맛본, 강렬하게 질긴 토종닭의 식감이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화순 오일장 취재를 미루고 미뤘던 까닭은 따로 있다. 17년 전 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밀 새우깡을 같이 기획한 후배가 암 투병하던 곳이 화순의 전(남)대(학교) 병원이었다. 어느 날 그쪽 회사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다. 한 번 얼굴 보러 오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미루지 않고 바로 내려가 마지막 얼굴을 보고 이야기까지 나눴다. 얼굴 보고 온 다음주 후배는 세상을 떠났다. 화순 근처에 가면 그 생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화순을 향하는 내 마음은 평소 출장길과 달리 무거웠다.마음은 마음, 취재는 취재. 화순 오일장은 3, 8일장이다. 매달 시내 중심에 있는 고인돌 시장에 장이 선다. 읍내에서 고개만 넘으면 바로 광주인지라 장이 제법 크다. 화순은 바다가 ... -
봄 내음 따라 갔지만 너 땜에 더 설렜지
김해는 멸치국수다. 김해를 생각하면 공항도, 부산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멸치국수만 생각난다. 전국 팔도를 다녀도 음식 생각이 먼저 나는 곳이 드물다. 김해 출장 잡히면 멸치국수 먹을 생각이 먼저 난다. 그렇게 김해는 나에게 멸치국수의 도시다.멸치는 대가리와 내장을 따라고 한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가르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그 이야기가 맞았다. 멸치를 잡아서 육지로 가져와서는 삶고 말린다. 기름이 많은 멸치는 삶고 말려도 기름 성분이 시간이 지나며 시나브로 상한다. 냉장고가 집마다 없던 시절, 누렇게 뜬 멸치는 대가리를 따고 내장을 제거해야만 했다. 냉장고가 차고 넘치는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멸치는 잡아서 육지로 가져오지 않고 배에서 삶는다. 삶은 멸치를 육지로 가져와 바로 말린다. 건조를 끝낸 멸치는 냉동고에서 보관한다. 멸치 기름이 누렇게 상할 틈이 없다. 과학기술이 음식 재료의 상태를 변하지 않게 바꾸었지만, 멸치 대가리 따던 습관은 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