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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쑥’ 이 뻔한 조합은 가라~ ‘쏨뱅이 쑥국’ 납신다~
봄을 찾아간 여행이었다. 남쪽은 이미 봄이었다. 3월 초라면 매화가 봄을 먼저 알리는 곳, 전라남도 광양이 제격이다. 광양은 포항과 더불어 철의 도시다. 이미지는 철의 도시지만, 강과 바다 그리고 산을 품고 있기에 빌딩과 아파트만 덩그러니 있는 풍경과는 달리 포근함이 반겨준다.광양은 크게 제철소가 있는 지역과 광양읍이 있는 지역으로 나눌 수가 있다. 광양장은 제철소와 떨어진 광양읍에서 매 1, 6이 든 날에 열린다. 커다란 시장 건물과 주변으로 장이 들어선다. 아침 일찍이라 사는 사람보다는 파는 사람이 더 많았다. 파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곧 사람이 몰린다는 방증이다. 사람 없는 장은 파는 사람도 적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시장을 찾기 시작했다. 몇 바퀴 도니 살 것이 보였다. 씀바귀, 냉이를 비롯해 지난 울진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쑥도 여러 곳에서 팔고 있었다. 보랏빛 살짝 도는 나물이 있길래 여쭈었더니 할머니 왈, “씹나물, 된장으로 조물조물 무치면 맛나”. 이... -
2019~2023 미적인 시장 어워즈 ‘계절별 최고의 맛’
2019년 1월24일 첫 원고가 지면을 통해 소개되었다. 4년이 지난 2023년 2월, ‘1’에서 출발한 시장은 어느덧 100이 되었고 세 권의 책으로 묶였다. 다닌 시장에서 사고 먹은 것 모두가 ‘내돈내산’(내 돈 내고 내가 산다)이었다. 그렇게 선택한 식당이 300개 정도. 먹고 나서는 원고 쓰기를 포기한 식당도 제법 된다. 4년 동안 먹고 즐긴 것에서 계절별로 3개씩, 12개를 선택했다. 재료에 계절을 더해 맛이 가장 빛날 때를 선정했다.▶봄 3~5월원목 재배한 버섯을 구워 소금 솔솔~ 계란프라이 하나 척 얹으면 덮밥의 끝판왕!하루가 다르게 바람에 온기가 묻어나는 봄은 나물이다. 식당에 가면 햇나물 두어 가지는 꼭 나오는 때다. 양양의 산나물 부침개, 강릉 새벽시장의 각종 새순 나물, 할매들 옹기종기 모여 나물을 팔던 경남 고성의 오일장이 대표적이다. 산청에서 지리산이 내준 나물 비빔밥과 여수 밤바다를 내려다보며 굽는 토종닭의 매력 넘치던 맛. 부여에서... -
비릿, 매콤, 달달…겨울 한 그릇 뚝딱 비우다
2023년, 신년 맞이 해돋이도 볼 겸 울진을 찾았다. 동해에서 해돋이는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정도는 아니다. 밤새 운전할 생각으로 날씨를 검색하니 구름이 잔뜩 끼었다. 해돋이는 다음으로 미뤘다. 새벽 5시, 서울에서 출발했다. 새벽녘 차가 드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천까지는 차가 제법 많았다. 새벽길을 달려 울진장에 도착하니 오전 10시가 넘었다. 거리상으로는 350㎞ 정도지만 직접 가는 고속도로가 없는 탓에 시간이 걸린다. 울진 오일장에 가까워지니 예전 울진 유기농박람회가 생각이 났다. 또 생각이 난 것은 홑게, 허물 벗은 게를 회로 맛본 적이 있다. 껍질이 부드럽기에 살짝만 힘을 줘도 다리 살이 쏙 빠졌다.울진 오일장은 읍내 바지게시장에서 열리는 장이 가장 크다. 2, 7장으로 이웃한 동해시 오일장보다는 작아도 제법 규모가 있었다. 바지게시장 주변으로 한쪽은 선수들이, 또 다른 쪽은 할머니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바지게... -
달콤 쌉쌀 논산
지난 18일, 명절을 앞두고 원래 정한 목적지는 속초였다. 숙소 예약까지 했다가 내륙의 논산으로 바꾸었다. 지난 4년 오일장을 다니는 동안 한겨울 내륙의 오일장을 간 적이 거의 없다. 몇 년 전 진도 오일장 날짜를 잘못 알고 간 다음에 부랴부랴 취재한 문경이 유일하다. 한겨울에 내륙은 하우스 채소 외에는 거의 없거니와 겨울 바다는 끝없이 맛있는 것을 내주기에 겨울은 무조건 바닷가였다. 그런데도 논산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논산은 오랜만이다. 예전에는 논산에 옻칠공방이 있어 자주 갔다. 장수 곱돌, 경주 생활 자기, 영암 토기 등을 취급할 때 논산에서 생산하는 옻칠 제품이 좋아 자주 갔었다. 20년 전 산 제품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논산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군대의 도시다. 젊은이들에게는 잠시 동안 절망의 도시다. 훈련소 입대하는 청년에게 젊은 시절 이보다 더 큰 절망감은 없다. 그런 도시 논산의 겨울은 사실 달콤하다. 한겨울 속초보다 논산을 선택한 이유다. ... -
겨울에 활짝 피는 ‘제주의 맛’
‘겨울 제주는 맛있다’라는 이야기를 지면, 매체를 통해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야기한다. 계절 나름의 맛이 있어도 겨울 제주가 가장 맛있다. 게다가 여행 비용이 여름이나 단풍 지는 가을보다는 반값이다. 항공, 차량 렌트, 숙박 등 여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 가지에 들어가는 돈이 적다. 비용만 적은 것이 아니라 사람까지 적어 다니기 수월하다. 이런 조건에서 맛으로 빛나는 제주 겨울 여행을 멀리할 이유가 없다.제주는 날마다 장이 선다. 제주도 둘레를 한 바퀴 돌면 대략 200㎞다. 1박2일 일정의 제주라면 그 일정에 오일장을 넣어도 된다는 이야기다. 제주시는 제주시(2, 7일장), 한림(4, 9일장) 세화(5, 0일장)장이 있다. 서귀포는 고성(5, 0일장), 대정(1, 6일장), 서귀포(4, 9일장), 성산(1, 6일장), 중문(3, 8일장), 표선(2, 7일장)장이 선다. 날짜를 보면 하루도 빠짐없이 장이 선다. 사는 사람과 시장 크기에 따라 오일장 규... -
‘가는 날이 장날’ 그 와중에 만난 12월 광어·반지, 입에서 사르륵
전국 시군 중에서 오일장이 없는 곳이 몇 곳 있다. 속초와 강릉이 그랬다. 강릉은 그나마 천변에서 새벽시장이 열린다. 오일장이 상설시장으로 바뀐 정읍, 아직 가지 않은 전주 또한 없다. 당연히 있을 것 같은 목포 또한 오일장이 서지 않는다. 다만 목포역 뒤 구 청호시장 주변에서 새벽시장이 열린다. 새벽시장은 이른 시간에 열리는 대신 가격이나 품질이 좋기에 찾는 이가 많다. 오일장만큼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곳이 새벽시장이다. 청호시장은 ‘신(新)과 구(舊)’ 두 개의 시장이 있다. 예전 청호시장 자리에 대교가 놓일 계획에 기존 시장은 이전했다. 다리 건설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그 자리에 노점상이 들면서 다시 새벽시장이 열리고 있다. 목포 새벽시장 보러 가는 길 내내 눈이 내렸다. 잠시 드는 작년 장흥처럼 오일장이 서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으나, 눈이 와도 도시이니 상설시장이나 수산물 시장은 열리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안일함은 현실이 됐다. 전남지역에 내... -
겨울에 더 맛있어서 ‘콩닥 콩닥’
이번에는 대전광역시다. 인천, 부산, 광주, 울산 지난번 대구에 이어 유일하게 가지 않던 광역시다. 계절마다 각 지역에서 저마다의 맛을 뽐내기에 대전은 미루고 미뤘다. 오일장 시리즈 세 번째 책 마감을 앞두고 있다. 해를 넘기면 더는 안 될 듯싶어 다녀왔다. 27년 동안 지방 출장을 다녔다. 다닌 거리가 100만㎞ 가까이거나 넘지 않았을까 싶다. 사통팔달로 뚫려 있는 지금의 고속도로와 달리 과거에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려면 대전을 지나는 것이 필수였다. 내려가던 길이나 올라오는 길에 대전 표지판이 나타나면 “이제 반 왔네”였다. 지역을 다니는 동안 가는 곳마다 추억을 쌓았지만, 오가던 길에 있던 대전은 그냥 ‘반’의 의미였다.대전은 역 앞 중앙시장이 규모도 크고 먹거리, 볼거리가 많다. 사람이 모이면 거래가 필연적으로 따라오기에 시장이 선다. 오가는 사람의 수에 따라 시장 규모가 결정된다. 기차 시간이 남는다면 빵 사는 줄에 동참하는 것보다는 시장 구경을 한다.... -
진미, 별미, 일미… 대구 현풍장 흑염소 숯불구이부터 묵은지 김치찌개까지
30대 초반이던 2000년, 첫 대구 출장길에 동천 다리를 찾아간 적이 있다. 어릴 적 엄마나 이모들이 만나면 빠지지 않았던 농담. “점마 동천 다리 밑에서 주워 왔는디…”가 생각이 나서다. 도대체 말로만 듣던 동천 다리 밑이 어딘가 싶었다. 형과 누나와 달리 대구에서 태어났어도 기억은 없다. 돌이 되기 전 평택으로 왔기 때문이다. 태어난 곳은 대구, 자란 곳은 인천이기에 둘 다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구 오일장을 찾아가는 길에 30대의 추억이 잠시 스쳤다. 대구는 넓은 도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그 때문에 여름이면 ‘대프리카’ 소리를 듣는 곳이다. 모든 광역시가 그러하듯 대구 또한 주변의 군을 통합해 광역시가 되었다. 그로 인해 시골과 도시 풍경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오일장이 선다. 시내 중심의 반야월시장(1, 6장), 불로시장(5, 0장)이 있다. 달성군에도 두 개의 장, 현풍시장(5, 0장)과 화원시장(1, 6장)이 선다. 네 개 시장 중에서 5... -
메타세쿼이아 길, 잔정 많은 사람들…보물처럼 숨어 있네
끄트머리의 가을은 겨울나기를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김장을 준비하고 나무는 겨울을 지내기 위해 형형색색 물든 단풍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분주해지는 시기에 고추장의 고장, 전라북도 순창에 갔다. 순창은 필자에게 소중한 곳이다. 갔던 곳마다 추억은 쌓이기 마련이지만, 여기만큼 특별한 곳은 없다. 첫 번째 이유는 고추장 할머니와의 만남, 시간으로는 2000년이다. 상품 구매를 위해 물어물어 순창의 문정희 할머니를 만나러 갔었다. 전주에서 임실을 지나 순창으로 가는 길을 지도만 보고 찾아갔다. 점심 전 도착한 필자에게 할머니는 아랫목에서 쌍화탕을 꺼내주셨다. “어여 마셔.” 그 한마디에 말 하나를 보탰다. “딸과 이야기해.” 이야기는 잘 풀렸고 첫 출장에서의 인연은 벌써 20년이 넘었다. 담양과 순창 잇는 24번 지방도로 조금 돌아도 도열한 나무 반기고 느리게 도착해 산 찐빵·구운 산자‘조금 더 살 걸’ 귀경길 내내 후회 밤콩... -
우물우물, 샘나는 맛
가을 내장산처럼…노랗게 ‘뻥’ 튀기거나빨갛게 ‘쓱’ 비비거나정읍하면 22년 전 떠났던 출장길이 떠오른다. 타고난 역마살의 시발점이었다. 그 당시 목적지는 정읍이 아니라 전남 영광이었다. 고속도로도 변변치 않던 시절, 서울서 지방 가는 고속도로라고는 경부, 영동, 호남 고속도로만 있었다. 하지만 출장 가는 재미를 알았다. 덕분에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영광에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정읍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고창을 지나 영광으로 가야만 했다. 구불구불 국도길 따라 지났던 황톳길의 여운이 강렬했는지 정읍이나 태인 나들목으로 빠질 때면 “그랬지” 하는 혼잣말과 함께 2000년 풍경이 자동 소환된다. 이번에도 정읍 나들목에서 빠지지 않고 태인으로 빠져 잠시 일을 보고는 정읍 시내로 갔다.막 단풍 들기 시작한 내장산 돌아좌우 하나씩 튀밥 집 자리한 시장오래된 점포들 만나는 재미 쏠쏠산외면의 좋은 콩으로 빚은 두부고소함이 다른 것들의 열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