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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 뱀의 해…뱀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오래전 스리랑카에서 비단구렁이가 담긴 자루가 동물원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뱀이 국가검역 대상이 아니어서 동물원으로 바로 들어왔다. 비단구렁이 상태를 확인하려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루를 열었다. 그러자 봉인이 풀린 듯 자루 속에 있던 알 수 없는 곤충들이 날아올랐고 몇 마리는 내 목덜미 안으로 들어갔다. 온몸을 뒤적여 잡아보니 납작한 파리였고 눌러도 잘 죽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가서 옷을 벗으니 두 마리가 붙어 있었다. 다음날 비단구렁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비늘 사이에 깨알 같은 진드기가 많았다. 진드기에게 물린 부위를 치료하느라 여러 날 비단구렁이를 가까이했는데 성질도 온순하고 촉감도 그만하면 괜찮았다. 신진대사가 느린 뱀은 주사도 며칠에 한 번만 맞으면 됐다. 사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에 불시착한 외계생물 같은 이 친구에게 호기심이 갔다.뱀은 크는 몸에 맞게 탈피를 한다. 동물원에 사는 노랑 아나콘다는 허물을 벗기 전 온몸이 탁한 회색빛으로 변한다. 습한 나라가 ...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동물도 그렇다
중학교 과학 실습 시간이었다. 실험실 유리병에는 개구리들이 들어 있었다. 잠시 후 에테르에 취한 개구리들은 몸의 균형을 잃고 잠이 들었다. 조별로 개구리를 꺼내어 칠판에 게시된 해부도와 개구리 몸속의 실제 장기들과 비교하였다. 나를 포함한 일부 학생들이 아직 살아 있던 개구리를 땅에 묻지 못하고 한참을 주저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개구리 해부가 과연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적 도움을 줬을까?고등학교는 생물이 선택과목이었다. 매주 생물 수업이 기다려졌다. 생물 선생님이 먹이사슬을 보여주며 맹금류를 흉내 내시는 모습이 그리 재미있었다. 책상을 박차고 날아가 선생님의 팔에 내려앉고 싶을 정도였다. 그 후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에서 아나운서가 야생동물을 맛깔나게 설명할 때면 생물 선생님이 생각났다. 동물원에 일하면서도 생물 교사 자격 취득을 위해 교육대학원 진학을 고려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가끔 대안학교 생물 선생님을 상상해본다. 날이 좋아 참기 어려운 날, 아이들과 산과... -
개장수에게 끌려갈 위기…‘수박이 구출 작전’
3년 만에 만난 장군이는 시골 동네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장님댁 골든리트리버 장군이가 앞서면 작은 개 똘똘이가 뒤따랐다. 장군이와 똘똘이를 만난 이웃 어르신들은 마치 아는 집 아이들을 대하듯 이름을 부르며 머리를 쓰다듬었고 개들도 눈을 가늘게 뜨며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고 있었다.3년 전 봄, 시골 개 의료봉사를 위해 청주 문의면 묘암리로 가는 국도는 떨어진 벚꽃으로 자동차 바퀴에 꽃물이 들 지경이었다. 홍매화가 붉은 마을 입구를 지나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 나왔다. 중성화 수술을 위해 모인 개들 중 닮은꼴 여럿이 있었는데 이유를 묻자 이장님댁 똘똘이를 지목했다. 똘똘이는 이웃들의 원성으로 갇혀 지냈으나 수술 후 장군이와 동네 마실을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묘암리 이장님은 마을 고양이가 늘어나 중성화 수술을 원하셨다. 산골마을 고양이들은 이주가 어렵다. 마을 어르신들이 주는 먹이가 고양이 수에 비해 적어지면 야생화되어 야생조류를 사냥하고 다수 번식... -
야생동물은 아픈 곳을 숨긴다
청주동물원 야생동물보전센터 공사가 한창이다.센터 안에는 멸종위기종 생식세포 보관실, 검진실, 수술실이 있다. 질병을 숨기는 야생동물 특성상 조기 발견을 위해선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하다. 이때 생식세포를 간단한 방법으로 채취할 수 있다. 이 땅에서 사라질 위기에 있는 토종 야생동물 보전을 위해선 생식세포의 냉동보관이 한 방법이다. 또 특정 전염병에 강한 종과 약한 종이 있다. 한국인과 긴 역사를 함께한 토종동물들의 생식세포 유전자를 연구하면 코로나19 같은 인수공통질병에 대한 한국인의 방어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공동연구를 하고 있는데 일명 주모니아 프로젝트(Zoonomia Project)다. 이 프로젝트를 위한 연구 재료의 절반 이상이 미국 국립 스미소니언 동물원에 냉동 보관되었던 다양한 야생동물 생식세포라고 한다.최근 스미소니언 동물원 연구팀은 멸종위기종 세포를 달에 저장하려는 계획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지구에서 세포를 냉동 저장하려면?19... -
버려지고, 방치되고…야생성 잃은 동물들 어디로 가야 할까
보통의 직장인이면 출근길에 갑자기 동해로 핸들을 돌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지 않을까?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가득 찬 시내버스가 있다. 시내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벗어나 난데없이 동해로 가는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내려달라고 아우성쳤지만 버스 운전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운행에만 집중했다. 얼마 후 사람들은 자포자기하여 조용해졌다. 어쩌면 그중 일부는 일상을 벗어난 엉뚱한 상황에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도심 속 노선을 순환하던 시내버스도 가다서다의 무한 반복의 운명을 거스르며 고속도로를 맘껏 달렸다. 시내버스 아니 고속버스는 결국 바다에 도착했고 버스 운전사는 승객들을 내려줬다. 풀려난 사람들은 모처럼 보는 바다에 표정이 밝아졌다.버스 운전사는 곧 경찰에 붙잡혔다. 취재기자들이 이유를 묻자 버스 운전사의 대답은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서”였다. 바다에 간 사람들은 버스 운전사의 처벌을 원치 않았고 덕분에 버스 운전사는 회사를 ... -
바람의 딸, D를 데리러갔다
청주동물원은 사자 ‘바람이’로 대중에 많이 알려졌다. 실내동물원의 비좁은 공간에서 전시·체험용으로 살아왔던 사자 바람이를 동물원으로 데려오면서다.그 당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라’라 이름 붙여진 미니 말과 작은 새장에 갇혀 있던 천연기념물 독수리 ‘하늘이’도 함께 구조됐다.이후에도 실내동물원에 남겨진 동물은 있었다. 바람이의 딸, ‘D’라고 불리는 암사자다. 검색해 보니 과거 TV 동물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었다. 바람이는 2017년 짝인 암컷 사이에서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한 마리는 폐사했고 다른 한 마리가 D다.바람이는 올해 만 스무 살이다. 7년 동안 좁은 공간에 갇혀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청주동물원으로 구조됐을 때 많은 시민이 바람이의 사연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백수의 왕으로 아프리카 평원을 누렸어야 할 자유로운 야생동물에게 공감했을 것이다. 바람이가 청주로 오면서 비었던 사육장에 D가 대신 살게 되자 “바람이의 딸... -
단칸방보다 좁은데···동물이 있다고 ‘동물원’일까
모르는 번호였다. 청주로 내려가는 차 안이라 핸즈프리로 전화를 받아보니 대전에 있는 방송사 기자였다. 어느 실내동물원의 동영상을 보내주면 자문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영상만 보고는 판단하기 어려울 거 같아 직접 방문하겠다고 말한 뒤 대전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방송사 기자와 만나 동물원 입구로 들어섰다. 마중 나온 직원들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안내받은 3층 옥상의 단칸방 같은 공간에 사자와 호랑이가 전시되어 있었다. 야생동물을 실내에 가둬 전시하는 행태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있다 보니 좁은 곳에 가둔 동물들 모습이 방송에 나가면 오던 손님도 끊긴다며 동물원 측의 염려가 컸다.작년 말 기준 국내 110개 동물원 중 20% 정도만이 공영이고 나머지는 사립이다. 공영은 지자체나 공기업에서 운영하고 사립은 대부분 개인 소유다. 말 못하는 동물들이 직접 자신들을 대변할 리는 없고 동물원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동물원 동물의 삶은 좌우된다. 특히 개인의... -
청주동물원 ‘테마파크’ 아닌 ‘야생동물 보호소’가 되다
한때 유행했던 허무 개그가 떠오른다. 아기 낙타가 특이한 외모로 친구들에게 놀림당하자 엄마 낙타가 그 생김새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이야기다. “우리 등은 왜 이렇게 생겼어?” “그건 우리가 사막에서 생존하기 위해서지, 누구도 갖지 못한 자랑거리야.” 환한 얼굴로 돌아갔던 아기 낙타는 이번엔 “발이 왜 이렇게 생겼어?”라고 묻는다. “그건 모래사막을 건너기 위해서지.”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들에게 갔던 아기 낙타는 이내 다시 달려와 묻는다. “그럼 눈썹은 왜 이렇게 길어?” 엄마 낙타는 “덕분에 모래바람이 눈에 들어가지 않지”라며 다독인다. 한참 생각하던 아기 낙타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그럼 왜 우린 동물원에 있어?” 동물권과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과거의 이야기지만 요즘 부각되는 동물원에 대한 문제의식과 잘 들어맞는다.2006년이었다. 수년째 동물원 동물들을 진료하고 있었지만, 그간 결과가 안 좋을 때가 많았다. 200종 가까운 동물들을 치료한다는 건 고민과 도전의 연속이... -
동물원은 신기한 곳도 ‘슬픈 곳’도 아니다
2014년 현장실사를 나온 환경부 담당 사무관이 청주동물원을 둘러보았다. 작은 욕조 같은 수달사, 모든 면이 시멘트인 곰사, 몇 발자국 걸어가면 끝인 호랑이사. 그나마 지붕이 없어 사육장 크기의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것이 동물들의 위안이었다.실사를 마친 사무관은 이런 동물원에 서식지외보전기관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이름을 주면 그에 걸맞은 내용을 반드시 채우겠다고 했고 사무관은 생각에 잠겼다.사무관의 큰 그림이었는지 간절함으로 흔들리는 내 눈빛이 다소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없지만 2014년 2월 서울대공원, 에버랜드 다음으로 환경부 서식지외보전기관이 됐다. 그 명분으로 국내 멸종위기종 연구를 시작했고 그 무렵부터 4년의 기록을 담은 영화가 왕민철 감독의 <동물, 원>이다.물고기 먹는 법부터 하나하나 배워가는 ‘아기 물범’ 초롱이, 청주동물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터줏대감 표범 직지, 생의 마지막 길목에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호랑이... -
“나도 한때 반려동물…” 생태교란종은 억울하다
서울의 한 대학교 연구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거북이들에 대한 생태연구가 끝났는데 남은 거북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거북이들이 국내에 포획되기는 하지만 외국에서 들어온 생태교란종이라 사용 이유가 끝나면 폐기해야 한다.얼마 전까지는 연구 종료 후 폐기 방법이 마땅치 않아 냉장이나 냉동실에 거북이들을 넣고 죽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아무리 연구라지만 거북이와 많은 날을 지내온 연구원들이 거북이들을 직접 폐기해야 하는 마음은 오죽했을까 싶었다. 거북이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국내 여러 기관에 전화를 돌려보았지만 딱히 답을 얻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것은 연구원들이 거북이를 냉동실에 넣은 뒤 죽은 줄 알고 몇달이 지나 상온에 꺼내 놓았는데 소수의 거북이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몇해 전 어느 중년 남자가 동물원에 찾아왔다. 본인이 강원도에 땅을 샀는데 그 안에 작은 동물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동물원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