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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너, 하얀 속살, 매력이 죄…색과 이중적 맛에 유혹의 과일로 낙인
얼마 전 설을 앞두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설 명절 구매 희망 선물세트’ 설문조사를 했다. 가장 선호도가 높은 것은 과일혼합세트와 사과세트였다. 지난해 추석에도 사과세트가 꼽혔다. 그러고 보면 사과는 주고받는 데 큰 부담 없는, 보편적이고 무난한 명절 선물로 여겨진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금사과’라거나 ‘하루 사과 한 알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건강식품으로 꼽히는 데다 다른 과일에 비해 보관성이 좋다는 점도 사과의 미덕이다.그런데 사과는 이 미덕만큼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것 같다. 너무 흔하고 평범해서인지 모르겠다. 최근 들어 별 모양 사과 같은 신품종이 나오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과를 보고 호기심과 설렘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품종까지 따져가며 구매 전쟁이 벌어지기도 하는 복숭아나 딸기와 달리, 사과 품종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주력 품종인 부사를 제외하면 감홍, 아오리, 양광 정도가 이름이 알려진 사과 ... -
뭣에 쓰는 물건인고? 생김새는 망측 씹는 맛은 발칙
호화로운 유람선 파티.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톱배우 천송이(전지현)에겐 스테이크도 푸아그라도 캐비아도 눈에 차지 않는다. 허기진 그가 찾는 것은 개불 한 접시에 소주다. 스테이크를 썰던 동료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천송이는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물가에 왔는데 그 정도는 먹어줘야 하는 거 아냐?” 2013년 방영됐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치맥’ 등 ‘K먹방’을 세계에 알리는 첨병이 됐다. 그중 개불도 빼놓을 수 없다. 생김새에 이름까지 범상치 않은 이 해산물은 방송 직후 노량진 수산시장을 중국 관광객들로 북적이게 만든 주역이 됐다.개불은 횟집에서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 주로 사이드 메뉴로 먹는 해산물이다. 따로 한 접시 시켜 소주 안주로 삼기도 딱이다. 쫑쫑 썰려 접시 위에 오른 진한 핑크빛 개불의 매력은 쫄깃한 식감에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달큼함이 배어 나오는 그 맛도 일품이다.개불은 손질되기 전후의 모습이 판이하다. 큼... -
수퇘지의 페로몬과 같다는 ‘땅의 고환’···인간도 홀렸다
땅의 고환(testicles of the earth). 이건 도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걸까. 힌트를 제시한다. 식재료의 하나다.식재료는 종종 은유의 대상이 된다. 굴을 ‘바다의 우유’로, 강황을 ‘밭에서 나는 황금’으로 칭하는 것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례다. 성적인 의미를 담아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홍합을 ‘동해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홍합을 먹으면 성적인 매력이 더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탐스러운 붉은색, 풍성한 과즙을 가진 토마토를 오랫동안 ‘사랑의 사과(a love apple)’라고 불렀다.은근한, 혹은 미루어 짐작할 만한 단어를 적당히 사용할 법하건만 대놓고 ‘고환’이라니. 이다지도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의 대상이 되는 식재료가 또 있을까. ‘땅의 고환’이 지칭하는 대상은 트러플(송로버섯)이다. 캐비아·푸아그라와 함께 서양 요리 ‘3대 진미’값비싸고 진귀한 식재료로 꼽히는 트러플은 캐비아, 푸아그... -
"내가 갈 때까지 씻지 말고 기다리시오"...황제도 반했다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다. 이 중 음식을 소재로 한 콘텐츠는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데 비교적 유리하다. 최소 ‘평타’ 이상은 보장한다. 원초적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음식을 만들고 먹고 식재료를 고르는 제각각의 과정은 그 모습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기 쉽다. 음식에 이종 장르를 결합해 다종다양한 서사를 만들어낸 인상적인 콘텐츠도 많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던 <흑백요리사>는 원초적 욕망과 이상적 가치에 소구하며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문화 콘텐츠 소재로 음식이 적극 활용되었던 것은 회화가 유일한 시각적 콘텐츠이던 과거에도 비슷했던 것 같다. 17세기에 발달했던 네덜란드 정물화는 귀족이나 부유한 시민계급에 사랑받았다. 당시 화가들이 주로 사용했던 피사체는 꽃 혹은 음식이었다. 음식을 주인공 삼은 그림을 두고 많은 미술학자나 평론가들은 인간 욕망의 반영이라고 말한다.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 조건이 음식이고 인간의 근본 욕구... -
화끈, 부끄···입에 담기 어려운 떡
한 커뮤니티에 올랐던 글이 사회관계망서비스를 비롯해 뉴스로까지 퍼지면서 잠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인들의 모임에서 누군가가 “이 정도면 떡을 치죠”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분위기가 말 못할 정도로 싸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발화자의 의도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뜻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전혀 ‘다른 뜻’을 떠올렸다. 부자연스럽게 조용해진 분위기를 어색한 웃음으로 마무리했다는 것이 주된 사연으로, 최근 몇년 새 불거진 문해력·어휘력 문제까지 소환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를 달궜다.포털사이트 사전을 찾아보면 ‘떡을 치다’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①양이나 정도가 충분하다 ②(속되게) 남녀가 성교하다 ③어떤 일을 망치다. 앞서 언급된 사연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떠올렸던 ‘다른 뜻’이 이 중 무엇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이만큼이면 떡을 치고도 남는다”라거나 “이번 시험 완전 떡 쳤어” 등으로 활용될 때면 어느 자리에서건 거리낌 없이 사용할... -
푸릇함 속 야릇한 19금 채소
따지고 보면 들어본 이야기이고,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그래도 늘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화젯거리가 있다. ‘뭐가 몸에 좋다더라’ ‘이런 증상이 있을 때 이걸 먹으면 특효다’ 따위의 건강 정보다. 내 몸의 건강 상태와 직결되는 먹거리 이야기에 동하는 원초적 호기심은 뿌리치기 어렵다.기승을 부리는 더위가 가실 줄 모르는 요즘 꽤 많이 언급되는 먹거리가 있다. 특유의 향과 청량한 뒷맛을 가진 채소, 부추다. 의사나 식품 전문가들이 권하는 부추의 효능은 기력 회복과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다. 혈액 순환을 돕고 소염효과도 뛰어난 데다 간과 위장, 신장의 기능을 개선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기력을 잃고 지치기 쉬운 여름철을 나는 데 도움이 되는 팔방미인 부추의 효능을 보노라면 보약에 버금갈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동의보감>이나 <식료찬요> 같은 옛 의서에도 부추는 간을 튼튼하게 해주고 위장과 신장을 이롭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지대 초빙교수... -
유혹의 디저트 ‘티라미수’
부드럽고 달콤한 맛, 사르르 흘러내리는 질감의 디저트. 티라미수다.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 곳곳에서 때아닌 티라미수 타령이 한창이다. “티라미수 케익 티라미수 케익~”하는 노랫말에 맞춰 간단한 춤을 추는 영상이 릴스와 틱톡, 쇼츠 등 쇼트폼 플랫폼을 점령했다. 원곡은 2015년 인디밴드 위아더나잇이 발표했던 ‘티라미수 케익’.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재미있고 쉬운 안무가 더해지면서 우연찮게 챌린지 바람을 탔다. 덕분에 앞으로 티라미수를 보면 이 곡을 자동반사적으로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한동안 아메리카노 커피 하면 밴드 십센치가 떠올랐던 것만큼.이탈리아 ‘출신’인 티라미수는 익숙하고 흔하다. 동시에 고급스럽고 로맨틱한 이미지도 있다. 늘 고민하게 마련인 데이트에서 디저트로 선택했을 때 센스 없다는 타박을 들을 확률이 거의 없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와 같은 ‘커플데이’에도 초콜릿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다. 편의점에서 간편하게 뚝딱 사 먹을 수 있... -
정력엔 ‘펄떡펄떡’ 꼬리? 몸통이 억울하겠네
다닥다닥 이어지는 간판의 행렬 속. 무심코 한 곳에 눈이 갔다. ‘살아 있는 비아그라.’ 그로테스크한 기분이 들었으나 간판의 홍수 속에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혹시 장어집인가’ 싶었는데 맞았다. 웬만한 중장년층에게 장어는 스태미나를 충족시켜주는 보양식으로 통한다. 기력이 떨어지는 여름철엔 특히 장어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을 비롯해 좋은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먹고 나면 기력이 생기고 든든하다. 그뿐인가. 고소하고 진한 풍미를 지닌 진미인지라 많은 미식가를 유혹한다. 숯불 위에서 자글자글 연갈색 빛으로 익어가는 장어는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돈다.장어의 여러 부위 중에서도 고갱이로 꼽히는 것은 꼬리다. 힘차게 펄떡거리는 장어 꼬리는 정력과 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수년 전 지인들과 함께 갔던 장어집에서 서빙하던 분은 유독 장어 꼬리를 남자들 쪽으로 놓아줬다. “이거 먹고 힘쓰면 내일 아침 밥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
고운 자태에 씐 음심 복숭아는 억울해
‘도화살’이라는 말이 있다. 사주·명리에서 많이 쓰는데, 일반인에게도 꽤나 익숙하다. 예로부터 도화살이 있는 사람은 남성 혹은 여성에 대한 편력이 강한 것으로 여겨졌다. 도화살에는 성적 방종, 음란, 색기, 호색 따위의 의미도 따라붙는다. ‘도화살(桃花煞)’에서 ‘도화(桃花)’는 복숭아꽃을 의미한다.‘도색잡지’ 혹은 ‘도색영화’라는 단어도 있다.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나 중년층 이상에게는 익숙하다.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 등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도색잡지의 대표격이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곤 했던 이 잡지를 수완이 좋아 손에 넣은 아이들은 성적 호기심이 들끓던 또래 사이에서 종종 권력자가 됐다. 여기서 ‘도색’(桃色)의 뜻은 복숭아 혹은 복숭아꽃 빛깔이다.딱히 긍정적인 이미지는 아닌 이 단어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복숭아 혹은 복숭아꽃이다. 향긋하고 부드러운 식감, 새콤달콤한 과즙, 탐스러운 모양새의 그 곱디고운 과일에 왜 이런 이미지가 씌... -
아…왠지 모르게 연상되는 ‘그것’
넷플릭스 콘텐츠 목록을 탐색하다 한 제목에 눈길이 머물렀다. ‘소시지 파티’. 혹자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머릿속 ‘음란 마귀’를 흔들어 깨우며 민망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제목. 맞다. 지금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 의미다. 무대는 대형마트의 식품매장. 주인공은 길쭉한 프랑크 소시지 ‘프랭크’와 그의 여자친구인 핫도그번 ‘브렌다’이다. 인간들에게 선택돼 마트 밖으로 나가는 것이 천국의 삶이라고 믿고 있는 식료품들에게 어느 날 천국의 실체가 까발려지면서 이에 맞선 식료품들의 파란만장한 모험기가 펼쳐진다. 앙증맞은 캐릭터가 나선 애니메이션 영화이긴 하나 B급 유머와 질펀한 ‘섹드립’이 판을 친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과격한 난교 장면에서 쏟아지는 대사들을 듣고 있노라면 어질어질할 정도다.이 영화의 원래 제목도 ‘Sausage Party’다. 영화적 재미로 만든 단어인가 싶어 사전을 찾아봤더니 남성이 주류인 모임을 지칭하는 속어라는 설명이 나온다. 그러고...